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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ECIAL INTERVIEW] <쓰릴 미> 쿠리야마 타미야 연출, 무대, 인간을 탐구하는 곳 [No.117]

글 |이민선 사진 |박진환 2013-07-01 4,613

<쓰릴 미>는 2007년 초연 당시,
뮤지컬도 긴장감 있는 심리극을 다룰 수 있고
밝고 유쾌하지 않아도 관객들을 흥분시킬 수 있음을 증명하며,
한국 뮤지컬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재공연될 때마다 출연하는 배우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스태프 구성도 관객들의 관심의 대상이 됐다.
이번 공연의 연출가에게는 더욱 많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동경 신국립극장의 예술감독을 지낸 바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연출가 중 한 명인 쿠리야마 타미야가 참여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먼저 선보였던 쿠리야마 버전의 <쓰릴 미>가
한국 관객에게는 어떤 반응을 이끌어낼까.
새로운 <쓰릴 미>를 통해 그의 연출 스타일을 들여다보았다.

 

 

       

 

 

연출을 맡기 전에 <쓰릴 미>를 본 적이 있으신지요? 이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습니까?
공연을 본 적은 없었고 대본으로 처음 접했습니다.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오페라든 기본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극 중 인물들의 관계에서 감동이 느껴져야 하죠. <쓰릴 미>의 드라마는 보통의 연극보다 더 복잡하게 엮여 있고 인물들의 욕망이 잘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심리극이 음악과 무척 조화롭게 전개돼 흥미로웠습니다. 음악 구성이 정말 재밌었는데요. 각각의 솔로곡이 있고, 두 사람이 공범자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코러스가 나옵니다. 제일 재밌었던 건 작가가 지문에 ‘관객이 박수치지 않도록’이라 써놓은 거였어요. 거기서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었지요. 보통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선 한 장면이 끝나면 전개되던 이야기를 끊어버리고 박수를 치죠. 물론 그런 공연도 재미가 있지만, 이 작품은 드라마를 계속 이어 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음악이 있는 공연의 연출 작업을 하면서 브레히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관객들의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만든 음악은 싫어요. 관객들의 감정이 한껏 끌어 올랐을 때 갑자기 조명을 딱 꺼버린다든지, 그런 걸 좋아하죠. (웃음) 연극을 연출할 때도 달콤한 배경 음악이 흐르게 하는 일은 절대로 안 합니다.


관객 입장에서 본다면 조금 심술궂으신 거 아닙니까?
공연을 통해 관객과 배우가 함께 인간과 세계에 대해 생각하자는 게 저의 노선입니다. 3년 전에 타계한 일본의 유명한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를 무척 좋아하고 그와 쭉 함께 작업했는데, 그분의 생각도 그렇죠.


<쓰릴 미>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음, 사실, 이 작품의 주제는 이것이고, 볼거리는 이것이라고 정해서 가르쳐주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무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면 됩니다. 굉장히 많은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날 텐데, 어느 장면이 좋으면 감동받고 아니면 거부하고, 그러길 바랍니다. <쓰릴 미>의 매력을 말한다면, 젊은 사람들이 항상 하는 실수이기도 합니다만, 이상을 좇느라 너무 먼 곳을 본 나머지 정작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은 보지 못했다는 거죠. 두 사람은 가난해서 또는 원한이 있어서 살인을 저지른 게 아니에요. 부잣집에서 부족한 것 없이 살아온 이들은 평범한 일상이 재미없고 싫다는 이유로 아이를 죽이죠. 어쩌면 우리는 현실보다 더 위에 있는 이상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니체라든지 다른 어떤 것을 바라보고 이상을 좇으며 평범한 일상을 거부하죠. ‘너무 멀리 왔어’라는 곡이 있어요.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너무 멀리 와버린 겁니다. 이 작품은 54세의 중년 남자가 먼 과거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기억을 돌이키는 내용입니다. 먼 기억 속 이야기이기 때문에 무대 디자인에서도 색채감을 제거했습니다. 검은 무대는 ‘나’의 머릿속 공간, 즉 뇌 속 극장이라고 할 수 있죠. 그곳에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우선적으로 달라진 무대 디자인이 눈에 띕니다. 무대 위에 또 무대가 있고 복층 구조네요.
복층 구조는 일본에서 <쓰릴 미>를 공연했던 동경 은하 극장에 우연찮게 2층 무대가 있어서 그걸 그냥 쓴 것뿐입니다. 무대 위의 사각형 무대는 일본의 전통 공연 장르 ‘노’에서 가져왔습니다. ‘노’는 사각형 무대 위에서 우주를 표현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그곳은 여러 공간으로 바뀌며, 그 안에서 수많은 세계를 표현할 수 있죠. <쓰릴 미> 속 모든 장면이 다 ‘나’의 기억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리얼한 표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각 무대에 어떤 소품 하나라도 갖다 두면 그곳은 현실 속 특정 공간이 되죠. 가방 하나를 두면 그건 그들이 훔친 물건이 든 가방이 되고요.

 

 


 

사각 무대 주위를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등 배우들의 움직임이 더 활발해진 것 같습니다.
공간의 변화를 표현하기 위함이지, 역동적인 느낌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습니다. 무대에서는 공간 활용에서도 관계를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나’와 ‘그’를 동성애 관계로 만들려 하지 않았습니다. 동성애라 할지라도 보통 한쪽은 남자, 다른 쪽은 여자로 나뉘죠. 이 두 사람에게 가능한 여러 관계 중 저는 힘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드라마를 만들려 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그’가 ‘나’를 지배하고 있어요. 계단 위에 ‘그’가 있고 계단 밑에 ‘나’가 있죠. 그렇지만 감옥에 갔을 때 두 사람은 같은 높이에 있어요. 무의식중에 이렇게 상하 관계를 보여줬죠. 그런데 공연에서 의식적으로 어떤 공식이 만들어지는 순간 재미없어집니다. 관객들의 예상을 배반하는 게 재밌죠. 무대에서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그 안에 숨어 있는 인물들의 심리를 보는 게 중요합니다. 두 사람의 표정만 보고 슬프거나 기쁘다고 볼 게 아니죠. <쓰릴 미>에서 ‘그’가 ‘나’를 보고 슬쩍 웃는 장면이 있어요. 관객들이 ‘그’의 표정이 아니라, ‘나’가 ‘그’의 웃는 모습을 보고 그 의미를 알아챈 것을 보았을 때, 둘의 관계가 관객에게 설명된 거죠.


<쓰릴 미>는 한국에서 팬이 많은 작품입니다. 새로 올라오는 공연이 어떨지 많은 관객들이 궁금해 하고 있는데, 한국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길 바라시는지요?
과거의 <쓰릴 미>를 못 봐서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비교할 수는 없네요. 인간이란 절대적인 신념을 가졌을 때 굉장히 큰 힘을 내지만, 별것 아닌 작은 일로도 무너져버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 작품이 살인이라는 무서운 사건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양면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는 인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 점을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그간 한국에서 공연한 <쓰릴 미>에는 주로 젊은 연출가가 참여했습니다. 왠지 과감하고 도발적인 작품은 경험이 많은 연장자에게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편견을 갖게 되는데요.
음, ‘이 작품이라면 연출할 수 있겠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하는 건 흥미 없어요. 뭔지 단번에 알 수 없는 작품, 무언가 나를 끌어당기는 작품과 대면하고 싶어요. 내가 잘 모르는 세계와 만나보고 싶지요. 닐 사이먼의 작품 같은 건 대본 자체가 충분히 완벽해서 읽는 순간 끝이에요. 재밌지만 연출하고 싶은 마음은 안 생기죠. 그리스 비극이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이 가능해요. 어느 부분을 어떻게 잘라서, 내가 어느 틈으로 들어가서 연출할지, 아주 재밌죠. 물론 두렵기도 하고요.


오랫동안 수많은 작품을 경험하시고도 여전히 연출하는 게 새롭고 두려우십니까?
그럼요! 나 스스로 계속 변화하지 않고 똑같다면 그 시간은 무의미합니다. 내가 계속 바뀌지 않으면 안 돼요. 새로운 작품을 만나서 그것에 영향을 받고 감동받지 않으면, 관객에게 전달해줄 것도 없습니다. 일본에서 보통의 다른 연출가들은 배우는 서랍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경험한 것이 많아야 꺼낼 수 있는 게 많다는 의미죠. 난 그런 의견에 부정적인 편입니다. 배우가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하지 못한 것과 접하는 게 연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맡는 역할이고, 그 자신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배우가 멋진 직업인 거죠. 연습실에서 그 캐릭터와 처음으로 마주 보고 만나는 겁니다. <쓰릴 미>를 예로 들자면, 쇠파이프와 염산으로 아이를 죽인 것이 어떤 건지 연습실에서 체험해보는 겁니다. 그런 일을 저질러버린 두 명의 소년은 뭘 얻었고 뭘 잃어버렸을까, 배우들과 그런 대화를 나누죠. 가끔 연습하다가 배우들이 ‘아, 알겠어요’라고 말할 때가 있어요. 난 그게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무대에 올라간 후에도 배우들은 그 감정을 모르는 게 나아요. 매일 무대로 그걸 찾으러 가면 되죠. 상대 역할을 만나는 것도 무대에서 처음 있는 일이어야 하고요. 배우 스스로 매일 두근두근하고 궁금해야지, 계속 똑같이 반복되는 상업 연극은 영상물과 같아요.


<쓰릴 미> 외에 한국 국립극단에서 제작한 <밤으로의 긴 여로>를 통해 한국 배우와 작업해보셨습니다. 한국 배우들에게는 어떤 특별한 점이 있었나요?
스고이!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훌륭했습니다. 6주간 <밤으로의 긴 여로>를 연습하면서, 계속 생각했습니다. ‘뭘까, 대체 왜 이들은 이렇게 잘할까?’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열정이었어요. 제가 연극을 시작했던 과거에는 연극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일본에는 그런 열정이 없습니다. 한국에는 아직 있어요. 배우들의 몸속에 뜨거운 열정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립극단 손진책 감독님께 일본 활동을 그만두고 한국 국립극단 스태프가 되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한국 배우들과 작업하고 싶어요. 이상한 말이지만, 일본에서 스타는 연기를 잘하면 안 돼요. (한국도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소녀시대와 AKB48(일본 걸그룹),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어떤 차이인지 아시겠죠?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란 생각이 듭니다. 연극에 임하는 배우들의 자세도 그렇더라고요. 일본에서 주류인 연극 연출가 노다 히데키(<빨간 도깨비>로 유명한 일본의 작가 겸 연출가)가 그리는 세상은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만화 같은 세계죠. 그게 일본 연극의 주류가 되어 버렸습니다.


유명한 고전 연극이든 규모가 큰 뮤지컬이든, 여러 장르와 스타일의 공연을 연출하면서도 핵심은 현실의 인간을 이야기하고 싶은 건가요?
그렇습니다. 이성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제어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 그런 걸 보여주는 게 좋아요.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부조리합니다. 어떤 존재인지 몰라도 돼요. 해답을 얻을 수 없는데, 그래서 인간은 매력적이죠. 그런 인간을 그려내는 공연을 하고 싶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7호 2013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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