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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발트에서 발칸까지]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No.97]

글 |김일송(씬 플레이빌 편집장) 2011-10-10 3,795

이 조각품은 리투아니아의 소유물이긴 하지만, 리투아니아를 대표하는 작품이라 말할 수는 없다. 처음부터 이 사진을 보여주려 했던 것은 아니다. 선택은 순전히 순간의 충동에 따라 이루어졌다. 하나의 사진, 다시 말해 하나의 이미지를 선택한다는 건, 그 이미지로 대표되는 하나의 드라마를 선택한다는 것. 본래 보여주려 마음먹었던 드라마는 전혀 다른 것으로, 두 개의 이미지에 두 편의 드라마를 구상해놓았다.
하나는 수도 빌뉴스의 일몰 풍경에 관한 것이었다. 저녁노을을 반사하며 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빌뉴스의 구시가지 거리 풍경에 대해, 영화 제목인 ‘선셋대로’를 그대로 가져온 제목까지 내심 정해놓은 상태였다. 그 아래 내용까지도. 다른 하나는 리투아니아와 러시아를 가로지르는 국경, 울타리 아래로 피어난 꽃에 대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함민복 시인의 시집 제목을 가져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다.
수도의 저녁 풍경을 담은 먼저 것에서는 리투아니아의 지금 사회상을 보여줄 수 있었고, 경계 도시의 국경 풍경을 담은 나중 것에서는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리투아니아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원고를 작성하기 위해 사진을 확인하는 순간, 이 사진에 눈이 멈췄다. 마음이 묶였다. 무엇이 변덕을 부리게 만든 것일까.

 

 

이 조각품은 클라이페다라는 항구도시 한구석에 가만히 놓여있었다. 분명 그 주변 어딘가에 작가명과 작품명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애써 찾으려 노력하지 않았다. 이렇게 소개할 줄 알았다면 작가명·작품명을 미리 적어놓는 건데 말이다. 하지만 이제와 그것을 알기 위해 먼 길을 되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나는 조각품을 ‘사내’라 명명하기로 마음먹었다. 행여 수첩 어딘가 원제가 적혀있다 해도 나는 짐짓 모르는 척 사내라고 명명할 것이다. 사내라 호명하는 순간, 그가 나에게로 와 사내가 될 것이니까. 사내는 어떻게 나로 하여금 피그말리온을 꿈꾸게 만든 것일까.
그곳을 지나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햇볕은 작열했고 거리는 눈부셨다. 붐비는 사람들 틈에서 벗어나 한적한 거리를 찾아 피신했을 때였다. 무슨 공터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나왔다. 렌즈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 사내는 시내 중심부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공터에 외딴섬마냥 방치되어 있었다. 사내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관광객들은커녕 시민들도 그에게는 관심이 없는 게 분명했다. 등 위에 피어난 하얀 반점은 그가 오랫동안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었음을 증명했다. 시민들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반점 따위는 없었을 것. 하지만 그가 주목받는 존재였다면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가 방화·방탄유리 속에 보호받는 존재였다면, 필경 나는 사내를 지나쳤을 것이다. 때로 호감은 연민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정작 그에게서 발길을 돌리지 못한 건, 제사(題詞)에서 알 수 있듯 그 모든 것을 웅변하는 뒷모습 때문이었다. 동그랗게 등을 말아 웅크려 앉아 있는 저 모습을 보라. 저 처연한 뒷모습을 보고 어떻게 등 돌릴 수 있었겠는가. 들썩이며 울고 있는 저 등을 보고 어떻게 눈 감을 수 있었겠는가. 늑골과 늑골 사이, 늑간 하나하나가 슬픔을 토해내고 있는데 말이다. 도대체 사내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던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 사연까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사내는 분명 혼자 울고 있었다. 햇볕이 작열하고 나의 뒤로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그가 나를 의식하기라도 할까봐, 나는 가만히 숨죽여 그의 등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슬픈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도 없었다. 오랫동안 그렇게 그는 울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나는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내가 어떻게 그 자리를 벗어났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어쨌거나 그는 아주 오래 울고 있었다.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차마 눈물도 흘리지 못한 채 속으로 흐느껴.
혹 그의 얼굴을 본 자 중에, 내 말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내는 울던 게 아니라, 단지 피곤에 지쳐 있었을 뿐이라고. 심지어 사내가 벙글벙글 웃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분명 울고 있었다. 아무리 그가 웃는 표정으로 진실을 감추려 해도, 표정을 꾸미지 않는 등은 언제나 무방비 상태로 진실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다시 그를 떠올린다. 기억은 여전히 사내가 울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나는 자신할 수가 없다. 그가 울고 있었는지. 어쩌면 그때의 내가 울고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또는 지금 글을 쓰는 내가 울고 있을 수도. 이제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해 역시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제목은 시인 기형도의 시 ‘기억할 만한 지나침’ 마지막 행에서 빌려왔다. 눈 오던 밤, 이름 모를 남자의 우는 모습을 우연히 접한 시적화자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때와 같이 눈이 퍼붓는 어느 날 다시 그를 떠올리며 읊조리는 말이다. 본문 사이사이에 그의 시를 그대로, 또는 변용하여 사용했음을 미리 밝힌다. 

 

 

글쓴이 김일송은 씬 플레이빌의 편집장, 일상을 툴툴 털고 발자국이 적은 곳을 골라 디디는 아웃사이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7호 2011년 10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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