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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풀 하우스> 무난함의 미덕, 평범함의 한계 [No.128]

글 |정수연(한양대 연극영화과 겸임교수) 사진제공 |Story P 2014-06-02 4,060
창작뮤지컬의 봄? 붐?
올봄의 풍경은 희한하다. 개나리, 철쭉, 목련, 벚꽃에 라일락까지 봄꽃이란 봄꽃이 한꺼번에 피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흐드러지게. 노란 개나리 옆에 나란히 핀 벚꽃을 보자니 어느새 라일락 향이 코끝에 와있다. 세상이 미치니 꽃들도 미쳤나보다고 말하지만 꽃들은 미쳐도 참 예쁘다. 비록 제때는 잊었어도 꽃다운 자태와 향기는 여전히 아름답고 은은하다. 기상이변을 걱정하며 황사와 미세먼지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매년 봄을 기다리는 이유는 오직 하나, 꽃 때문이다. 반복은 지루함과 동의어가 아님을 꽃이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언제 봐도 반갑고 자꾸 봐도 새롭다.  
      
그런데 올봄에 흐드러진 것이 비단 꽃들만은 아니다. 크고 작은 창작뮤지컬이 한두 편도 아니고 줄줄이 막을 올리고 있다. 장르에서나 규모에서 작품의 스펙트럼도 꽤나 넓다. 한국적인 소재의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이국적인 분위기로 존재감을 자아내는 작품도 있다. 드라마를 장르 이동시킨 발랄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영화의 문제의식을 가져온 진지한 작품도 눈에 띈다. 역사 속 인물들을 미스터리의 주인공으로 삼는 상상력과 누구나 다 아는 탐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추리물의 상상력이 하나의 유행처럼 만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작품이 각자의 완성도를 갖추고 작품마다 개성을 드러내며 동시다발적으로 공연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창작뮤지컬의 ‘붐’이 일었다.  

이런 ‘붐’이 창작뮤지컬의 ‘봄’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일단 지속성을 확보한 공연 레퍼토리가 축적되고 있는 것을 보면 창작뮤지컬의 성과가 단지 양에만 있지 않음은 분명하다. 배우의 팬덤이나 여타의 프리미엄에만 의지해 기계적으로 재탕하는 작품은 열외로 치자. 다시 공연될 때마다 이야기와 음악, 연출의 빈틈을 보완하면서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나, 연작을 표방하며 창작의 자신감을 드러내는 작품 등 오로지 작품의 텍스트라는 썩지 않는 골격을 제대로 갖춰나감으로써 승부를 거는 공연이 늘어나는 것은 창작뮤지컬의 성과가 질적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일 거다. 이런 작품은 다시 봐도 재밌고 자꾸 봐도 질리지 않는다. 물론 극소수이긴 하지만.  

무수히 다양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창작의 토대는 분명 확장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속적 자산으로 남는 작품이 여전히 빈약한 것은 창작뮤지컬의 봄이 아직은 만개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라이선스 뮤지컬에서의 완성도란 재현의 완벽함일 테지만, 창작뮤지컬은 수정과 보완의 가능성에 언제든지 열려 있다. 공연의 과정 자체가 작품의 완성도를 보완하는 수행의 과정인 것이다. 창작뮤지컬의 작품성은 언제나 최종적 결론이 유보되고 있는 셈이다. 결론이 아니라 과정으로서 자신의 작품을 인식하는 것. 집이 아니라 길 위에 서있는 작품은 공연을 반복할 때마다 진보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뮤지컬에서의 창작의 정신일지도 모르겠다. 창작뮤지컬의 완성도는 지속하는 힘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그 힘이 모여 봄을 열어젖히는 거다. 



<풀 하우스>의 무난한 미덕
<풀 하우스>에는 그런 힘이 있을까? 지금껏 드물었던, 하지만 이제는 등장해야 하는 ‘지속성을 가진 드라마컬’이 될 힘 말이다. 이 작품의 첫인상(단지 첫인상이다!)이 식상해 보이는 까닭은 전적으로 다른 작품들의 원죄에 있다. 드라마나 영화를 원작으로 삼는 작품 중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재공연된 예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량으로만 보자면 아마도 창작뮤지컬 전체를 통틀어 장르적으로 우세한 축에 속할 테지만, 그에 비해 살아남은 작품은 아주 적다. 비슷비슷한 작품들에서 볼 수 있었던 약간의 성공과 큰 실패는 새로운 의미 창출을 위한 생산적인 교류와 축적을 이루지 못한 채 개별 작품 안에서 또다시 되풀이되어 왔을 뿐이다. 같은 계보에서 출발한 <풀 하우스>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

작품만으로 볼 때 <풀 하우스>의 만듦새는 오목조목 귀엽고 사랑스럽다. 톱스타와 일반인이 계약결혼을 하고 어쩔 수 없이 한집 살이를 하다가 진짜 사랑이 싹튼다는 이야기, 사실 이런 이야기는 무대에서 적잖이 봐온바 부끄럽게 유치해지기 쉬움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풀 하우스>는 ‘짧은 시간의 설득력’을 구사한다. 적어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면서 찌릿찌릿 사랑이 확인되는 식의 구태의연한 직설법은 사용하지 않는 거다. 두 사람이 함께 있어도 각자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방이 눈을 감을 때이다. 절대 성급하지 않다. 그런데 이 성급하지 않음이 두 사람의 관계에 설득력을 더해주는 거다. 작지만 세련된 연출이다. 연출자 성재준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틀 안에서 관계 설정의 시간성을 존중한다. <풀 하우스>가 비슷한 부류의 작품과 구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앙상블의 활용이 많은 것도 역시 이 작품의 극적인 역동성을 잘 보여준다. 이런 부류의 작품이 칠팔월 강아지 혓바닥처럼 축축 늘어지는 데는 사건의 진행이 상황으로 구성되기보다 주인공의 대사로 주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지루한 무대 버전이랄까. 이런 경우 앙상블은 할 일 없는 병풍에 그치고 만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앙상블이 정말 다양한 가상의 역할을 소화하며(심지어 카드 역할까지!) 극의 진행을 쫀쫀하게 만들더라. 이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니 작품은 더욱 뮤지컬다울 수밖에 없다. 이들의 노래와 춤은 극의 색깔을 발랄하고 재치있게 장식한다. 무대도 전환이 많은 것에 비하면 분주하기는커녕 오히려 단정하고, 두 연인이 사람들을 속이고자 자기의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부르는 거짓말 같은 사랑 노래를 포함해 음악은 전체적으로 예쁘고 사랑스럽다. <풀 하우스>는 뮤지컬로서의 형식과 자의식이 분명한 작품이다. 



무난함은 지속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 하우스>가 지속성을 얻기 위해 가야 할 길은 멀어 보인다. 이 작품에서 빛나는 설정과 장면들은 이야기의 골격이 아니라 곁가지에 몰려 있다. 일례로 이 작품에서 제일 눈에 띄는 카드 게임 장면은 재미있고 기발했지만, 그 장면은 사실 이야기의 전개상 없어도 크게 상관이 없다. 여주인공이 쓴 시나리오를 재연하는 전쟁 장면도 마찬가지다. 두 병사의 사랑 이야기(?)는 픽픽 웃음이 새도록 재밌지만, 전체에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장면이다. 소품에 가까운 이야기에 비해 무대화의 규모가 너무 큰 것이 문제였을까. 이야기의 전개에 꼭 필요하지 않은 부분이 오히려 규모 있는 볼거리로 가득 채워졌으니 공연으로서는 다행이지만 작품으로서는 주객이 전도된 형상일 터다. 잔재미가 빛나려면 골격이 튼튼해야 하건만 이 작품의 골격은 원체 허약한 데서 더 진화한 것 같진 않다. 

원래 <풀 하우스>는 드라마보다는 상황에서 비롯되는 에피소드가 도드라지는 이야기이다. 요즘 말로 남녀 주인공의 ‘썸타기’가 매회 반복되던 드라마였으니 이런 이야기를 이만큼의 뮤지컬다운 장면으로 채우기도 쉽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 작품이 일군 ‘뮤지컬다움’이 드라마의 기시감을 날려버릴 만한 ‘장르의 한 방’을 갖추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시선을 작품의 골격으로 돌리자면 여전히 이야기의 기승전결은 빈약하고 인물의 동기도 희미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등장하는 조폭과 그의 악행(살인!)은 두 연인의 관계는 진전시킬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이야기의 허술함을 부각시킬 뿐이고, 갑자기 한 여자에게 쏠리는 ‘실장님’의 사랑의 작대기는, 그 쿨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재미없다. 곽선영이 만들어낸 한지은의 사랑스러움이 이 허술함의 많은 부분을 메웠을 뿐이다. 전체적으로 귀엽고 아기자기하지만 다시 찾을 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은 무난함이다.

<풀 하우스>가 지속될 수 있는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두 연인의 미묘한 사랑의 감정을 그려내는(두근두근!) 로맨틱 코미디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겠고, 이 미묘함을 연기하는 배우를 발굴하는 작품으로 위상을 굳힐 수도 있겠다.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만들어내는 연출의 솜씨를 충분히 기대할 수도 있을 거다. 길은 여러 갈래로 뻗어 있다.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아직 풀 하우스, 집에 들어앉을 때는 아니라는 거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8호 2014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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