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출연이라는 뜻밖의 기회로
배우 인생의 두 번째 시작을 예고하고 있는 류수영.
제2의 전성기에서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는
긍정의 아이콘 류수영을 만났다.
첫 번째 무대 작품으로 고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을 택했다. 이 작품의 무엇에 끌려 출연을 결정하게 됐나?
<진짜 사나이> 지지난 부대에 들어갈 때 매니저가 이런 작품이 들어왔다고 대본을 줬다. 훈련이 끝나고 무척 피곤한 상태에서 대본을 봤는데, 한번에 다 읽었다. 대본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나라면 이렇게 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욕심이 났다.
뮤지컬은 처음 해보는 건데, 출연을 망설이진 않았나? 망설여지는 순간이 있었다면, 가장 큰 고민은 뭐였나?
내가 노래를 소화할 수 있을까. 그게 첫 번째 고민이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뮤지컬 넘버를 찾아서 들어봤다. 노래를 들었을 땐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다수의 뮤지컬 관람 경험을 떠올려 봤을 때, 모든 배우가 다 노래를 잘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웃음) 더욱이 <아가씨와 건달들>은 노래보단 대사가 많은 작품이니까. 작년 겨울부터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던 것도 용기를 내는 데 도움이 됐고.
보컬 트레이닝? 훗날 무대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건가?
꼭 무언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에 대한 투자의 의미로 트레이닝을 받은 거다. 배우가 노래를 잘하면 매력적이지 않나.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고 싶은 마음에 보컬 선생님한테 가요도 좋고, 팝송도 좋으니, 노래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트레이닝을 받았다.
무대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군 복무 시절 호루라기 연극단에 있었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극단에서 많은 공연을 해봤을 테니까.
맞다. 호루라기 연극단에서 배우로 공연했을 뿐 아니라, 대본도 써보고, 스태프로도 일해보고, 연출도 해봤다. 그때 참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많이 배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경험은 관객들의 살아 있는 반응을 몸소 느꼈던 거다. 주로 문화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공연을 하다 보니 호응이 날것 그 자체였다. 공연이 재미있으면 박수를 치고, 조금이라도 지루하면 바로 옆 사람하고 잡담을 나누는 식인데, 그런 일차원적인 리액션에서 얻는 희열이 있었다. 뮤지컬에 관심을 가진 건 절친 후임병이었던 (조)승우의 영향도 컸다. 승우 덕분에 뮤지컬을 많이 접하기도 했고, 그 친구가 무대 위에서 ‘임파서블 드림’ 같은 명곡을 부르는 모습에 많은 자극을 받았다. 나도 더 나이를 먹기 전에 무대에 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 타이밍에서 뮤지컬은 의외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을 때,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게 두렵진 않았나.
지금의 인기는 군인으로서 사랑받는 거라서 괜찮다. (웃음) 사실 회사에서는 내가 뮤지컬 하는 걸 좀 반대했다. 지금 분위기가 좋으니 드라마나 영화로 상승세를 이어가야 하는데, 공연을 하려면 아무래도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니까. 하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을 때 무대에 서는 게 예전부터 생각했던 일이라 내가 꼭 해야겠다고 했다. 무대를 어떤 피난처가 아닌, 도약처로 삼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거다. 지금이 그 타이밍이지 않을까, 감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무대에 서고 싶었던 건가?
어떤 배우나 무대 연기를 병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다. 실시간으로 관객의 리액션을 받으며 연기한다는 건 배우에게 짜릿한 일이니까. 그런데 막상 방송이냐 무대냐 하는 선택의 상황에 놓이면 순간적인 욕심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영향력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차이가 크다보니 무대가 후순위가 되는 거다. 하지만 이번엔 더 늦기 전에 관객과 호흡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출연을 미룰 수 없었다.
장르도 장르지만, 기존의 이미지와 다른 성격의 인물을 맡았다는 점에서도 도전이 아닐까 싶었다. 지금까진 소설가, 교수, 기자 같은 반듯한 엘리트 캐릭터를 주로 맡아왔는데, 이번에는 타고난 도박꾼을 연기해야 하지 않나.
캐릭터의 직업은 달라졌지만, 똥폼 잡는 건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귀티가 나야 하는 것도 똑같고. (웃음) 어쨌든 스카이가 지금까지 맡아온 인물과는 거리가 있는 캐릭터인 건 맞다. 그래서 연습 초반엔 좀 새로운 표현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다. 그런데 솔직히 스카이의 등장 신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그 몇 장면 안에서 류수영의 일탈을 보여줄 수 있을진 잘 모르겠다. 이지나 연출님도 내가 어떤 변신을 하기보단 기존 이미지의 캐릭터를 보여주길 원하시는 것 같고.
지금 이야기는 다양한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처럼 들린다.
생각해 보면, 나도 이십대 중반까진 온갖 역할을 했다. 신인상이나 조연상 같은 연기상도 다 악역으로 받았다. 그런데 주인공을 맡으면서부터 순한 역할이 많이 들어오더라. 성격 좋고, 공부 잘하고, 집안도 완벽한데, 사랑할 땐 지고지순하기까지 한, 넥타이를 꽉 졸라매고 있을 것 같은 캐릭터들 말이다. 사실 제작자들은 캐스팅할 때 배우 한 명, 한 명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지 않는다. ‘이번엔 류수영에게서 이런 매력을 끄집어내 보는 게 어때?’ 하고 캐스팅하는 게 아니라, 류수영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대로 역할을 맡기는 거다. 만약 내가 좀 더 많은 매력을 보여줬다면, 다양한 이미지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그런데 요즘엔 한편으로, 한 배우에게 뚜렷한 이미지가 있고, 그걸로 정점을 찍을 수 있는 연기를 한번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대단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연 연습은 해보니 어떤가.
연습 셋째 날까지는 정말 재미있었다. 그 후론 드라마 촬영 때문에 지방에 머무느라 일주일 만에 연습실에 나가려니 스트레스가…. (웃음) 어쨌건 작품을 연습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 좋았다. 한 장면을 가지고 여러 시도를 해보는 것은 다른 현장에서는 겪을 수 없는 경험이니까. 연출님이 ‘그렇게 하면 어떡해. 여기선 이렇게 해야지. 느낌 몰라?’ 이렇게 가감 없이 독설을 날리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웃음) 이젠 어떤 현장에 가도 어리지 않기 때문에 연기에 대해 조언을 받을 일이 거의 없는데, 누군가 내 연기에 대해 같이 고민해 준다는 게 참 좋더라.
혹시 이지나 연출이 특별히 주문한 게 있나?
연습 초반엔 뮤지컬을 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과장해서 연기했다. (과장된 톤과 몸짓으로) “아, 그랬어? 지금 갈게” 이런 식으로. 그런데 연출님이 최대한 평소에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하라고 하시더라. 내가 뛰어난 성량을 가지고 있는 배우는 아니지만(웃음), 목소리가 좋으니까 그걸로 어필할 수 있는 걸 해보라고 하셨다. 그때 생각이 깨졌다.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고.
오늘 두 번째 런 스루를 했다고 들었는데, 특별히 어렵다고 느낀 점이 있었나?
스카이와 사라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하바나 장면은 잘못하면 지루해지기 쉽겠더라.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상황이 노래 한 곡으로 표현이 되니까, 좀 빤한 뮤지컬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내가 연기를 엄청 잘해야겠지. (웃음) 그리고 오늘 연습을 보면서 다시 느낀 건, <아가씨와 건달들>이 분명 재미있는 작품이긴 한데, 주인공들이 극을 잘 살리기엔 어려운 작품이라는 거다. 고전적인 작품이다 보니 요즘 말로 세련되게 빠진 상황이 아닌 데다, 예상하기 어려운 반전의 로맨스가 아니지 않나. 그 안에서 재미를 주려면 뭔가 장치가 필요하다. 오늘 (송)원근이가 하는 런 스루를 보고 그림이 좀 잡혔으니까 어떻게 하면 관객들을 좀 더 즐겁게 할 수 있을지 포인트를 잡는 게 숙제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건 스카이가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거다. (웃음)
하바나 장면 지문에 이렇게 써 있다. ‘스카이의 노래를 듣고 홀려 있는 사라’. 나는 노래를 잘 못하는데 어쩌면 좋나. 상의 탈의라도 해야 할까. (웃음) 연출님은 공연이 끝나면 저 남자와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스카이가 멋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진짜 어려운 주문 아닌가. 글도 마감에 닥치면 써지듯이, 연기도 마감이 만든다. 공연 전날 뭔가 팍 떠오를 거라고 믿고 있다. (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1호 2013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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