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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원스> 박지연 [No.135]

글 |송준호 사진제공 |김수홍 2015-01-06 6,908
모두가 하나 되는 순간의 행복



글쎄, 또 박지연이다.
많은 여배우들이 <원스>의 ‘걸(Girl)’ 역에 관심을 보였고 ‘카더라’ 통신도 난무했지만 결국 배역을 따낸 것은 박지연이었다. 그녀의 프로필에서 이번 캐스팅은 이제까지와는 다소 다른 느낌이다. <맘마미아!>의 소피, <레 미제라블>의 에포닌, <고스트>의 몰리가 신예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면, 이번 무대는 본격적인 배우로서 역량을 입증하는 전장처럼 느껴진다. 노래와 연기, 연주까지, 모든 게 결코 녹록지 않은 <원스>의 무대. 박지연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걸과 만나고 있을까.


우여곡절 끝에 만난 그녀, 걸(Girl)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와 그 노래에 숨겨진 아픔을 한 번에 알아보는 그녀. 음악을 통해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호감을 느낀다. 서정적인 줄거리와 그에 걸맞은 음악으로 충만한 <원스>는 잔잔하고 로맨틱한 작품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소탈하고 당찬 성격의 걸과 무뚝뚝한 가이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무미건조한 대화를 나눈다. 내내 건랭한 세계가 축축한 온기를 띠게 되는 순간은 그들이 음악으로 소통할 때다.

이제까지 주로 감정 과잉의 인물들을 맡아온 박지연에게 이런 작품은 처음이다. 게다가 극 중 걸은 결혼도 했고 애까지 딸린 별거녀다. 박지연의 청초한 마스크와 상큼한 이미지는 이런 캐릭터와는 닮은 구석이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친다. “뮤지컬의 걸은 영화와 조금 달라요. 더 세련되고 사랑스러운 데가 있어요. 오디션때도 그런 디테일들을 살려서 마치 내가 그녀인 것처럼 소박하게 입고 갔다가 심사위원들에게 칭찬을 받기도 했죠.”

철저히 그 인물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그녀가 오디션에서 높은 승률을 보이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레 미제라블>때 제 옷 중 가장 에포닌스러운 걸 입고 갔더니 ‘도대체 그런 거지 같은 옷은 어디서 구했냐’며 사람들이 웃더라고요. (웃음)”  데뷔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맘마미아!>, <레 미제라블>, <고스트> 같은 대형 작품의 오디션에 척척 합격해온 비결은 자신에 대한 ‘절대 확신’이다. “‘이거 진짜 하고 싶은데, 잘 해낼 수 있을까’ 같은 전전긍긍이 아니라 ‘난 이거 해!’라는 자세를 가지고 해야 되는 것 같아요.”

사실 박지연은 <원스>에 합류하지 못할 뻔했다. <고스트> 때문에 도저히 오디션 준비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고스트>는 공연 안팎으로 준비할 것들이 많았어요. 무엇보다 집에 피아노가 없으니 <원스>를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죠.” 준비 안된 상태에서 섣부르게 오디션을 볼 수 없었던 그녀는 <원스>에 대한 미련을 접고 <고스트>에만 매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차 오디션이 운명처럼 다시 치러졌고, 이번에는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하지만 ‘피아노 연주’라는 걸림돌이 있었다. 다행히 기타 연주가 가능해 기본적인 코드를 알고 있었던 박지연은 피아노도 금방 습득할 수 있었다. 대표곡인 ‘Falling Slowly’는 오디션 전날에야 곡이 나와 당황스러웠지만, <고스트>의 동료이자 <원스>에도 함께 지원했던 이창희와 하룻밤을 꼬박 새워 연습해서 무사히 오디션을 치를 수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피아노를 ‘맛있게’ 연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저도, (전)미도 언니도 가장 힘들었던 건 연기보다 피아노였어요. (웃음) 다른 때는 안 떨리는데 피아노 연주는 떨려요. 합주에선 잘되는데 제 장면만 들어가면 왜 떨릴까요. 공연까지 매일 계속 연습하는 수밖에 없겠죠.”

어렵다고 푸념하면서도 박지연은 연신 ‘행복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웃는다. 그러더니 대뜸 ‘행복하냐’고 묻는다. 얼른 답을 하지 못하자, 이렇게 거침없이 질문을 던지는 게 걸과 자신이 닮은 점이란다. “걸은 그런 질문으로 슬픔에 빠진 사람을 건질 수있는 사람이에요. 단 며칠 만에 상대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도 있는 여자죠.”

하지만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어떤 일을 마음먹으면 반드시 해내는 ‘당찬’ 사람이라는 것이다. 박지연도 이에 수긍한다. “맞아요. 남자의 음악을 듣고 확신이 든 순간 모든 것들을 다 행동으로 옮기죠. 그와의 관계에서도 주도하는 쪽이고, 함께 음악을 하는 무리에서도 리더예요. 저도 전에 밴드 활동을 할 때 리더여서 그런지 더 잘 통하는 것 같아요. 이런 사람과 함께한다면 한순간도 힘들지 않겠죠? 저도 그런 걸을 보여주고 싶어요.”


함께함의 즐거움



박지연은 유독 신시컴퍼니와 인연이 깊지만 그건 이번에 ‘가이’로 출연하는 이창희도 마찬가지다. 많은 작업을 함께해온 두사람은 프리뷰부터 또 한 번 호흡을 맞춘다. 박지연은 이창희와의 조합에 점수를 주면서도 윤도현에 대한 기대감도 빼놓지 않는다. “창희 오빠에게는 날것의 이미지가 있는데 그게 가이의 모습과 정말 잘 어울려요. 도현 오빠는 다 알고 있듯이 기타와 함께 자란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가이가 딱 그런 사람이라 어떨 때는 이게 도현 오빠 이야기 같기도 해요. 뮤지컬 넘버 소화력이야 말할 것도 없으니 오빠가 기타 치고 노래 한 소절 부르면 저는 턱에 힘이 쫙 풀려요. (웃음)”

더블 캐스팅에서는 상대 배역 못지않게 같은 배역을 맡은 배우에게도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특히 이번에 박지연과 역할을 나눠 맡는 건 연기 잘하기로 유명한 전미도다. 처음에는 두 사람의 왜소한 이미지가 비슷해 서로에게 스트레스였다고. 그런데 각자 한 번씩 신을 진행한 뒤에는 서로의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돼 이제는 ‘절친’이 됐다. “연습하다 보면 피곤한 날이 있는데, 그럴 때면 상대방이 알아서 자연스럽게 나서요. 서로 부탁을 하는 게 아니라 언니와 저의 바이오리듬이 그래요. 궁합이 잘 맞는 거죠.”

많은 인물이 등장해 등퇴장이 잦은 이전 작품들에 비하면 <원스>는 박지연이 데뷔 후 무대에 서 있는 시간이 가장 긴 작품이 될 것이다. 퇴장이 거의 없다. 이는 관객의 시선을 계속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고도의 집중력과 카리스마를 발휘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에너지의 소모도 크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의상이 한 벌이라는 거예요. (웃음) 얼마 전에 1막 런스루를 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까 끝났더라고요. 그렇게 재밌게 하니까 체력적인 문제는 괜찮을 것 같아요. 다만 관객에게 계속 노출된다는 점은 좀 걱정이 돼요. 내게 극장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다 흡수할 수 있는 힘이 있을까? 실은 항상 고민하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건 시간이 지나야 해결되는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도 박지연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다. 그녀와 함께 무대에 서는 모든 배우들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솔로곡을 부르는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박지연이 혼자 주목받을 수 있는 독창보다 합창이 좋다는 것은 의외다.  “합창은 느껴지는 힘이 달라요. 제가 백날 솔로 해봤자 다 같이 합창하는 거 못 이겨요. 합창에는 특유의 열기가 있어요. <레 미제라블>에서 마지막에 ‘우리 함께 싸우자’ 노래 부르잖아요. 그땐 우리 몇십 명과 관객 몇천 명이 이렇게 막~ (팔을 벌렸다가 끌어모으면서) 하나가 되는 그 장면은 소름이 돋아요.”

<원스>에서도 박지연에게 그런 느낌을 주는 장면이 있다. ‘Falling Slowly’ 부분에서 가이와 피아노를 치다가 앙상블의 바이올린과 나머지 악기들이 들어오는 순간이다. “그땐 정말 전율이 확 느껴져요. 모두가 하나가 된 느낌이랄까요. 솔로곡은 저 하고 싶은 대로 맘껏 뽐낼 수 있고 그럴 기회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순간은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그런 희열을 배우뿐 아니라 관객들도 같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유독 장기 공연작들과 인연이 많은 박지연은 지난 2년 동안 연말연시를 공연장에서 보냈다. 올해도 크리스마스와 12월 31일 모두 공연장에서 보낼 것이 예상된다. 3년째 일을 하며 새해를 맞는다면 한편으론 지긋지긋할만도 한데, 그녀는 그게 더 다행이고 행복하단다. “<고스트> 때는 대부분 신이 혼자여서 공연 내내 많이 외롭고 슬펐거든요. 그런데 <원스>는 많은 사람들과 신 나게 노래하고 연주하고 대화하는 공연이어서 외롭지 않을 것 같아요. 또 이 공연으로 나의 어떤 한 부분이 변할 수 있다면, 정말 의미 있는 한 해의 마무리가 될 것 같아요.”

박지연이 생각하는 <원스>는 ‘힐링극’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힐러’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 남에게도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게 이 직업의 진짜 의미 같아요. 열심히는 했어도 최선은 아니었던 공연에도 위로받는 사람들을 보면 고마움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껴요.” 그래서 그녀는 관객에게 <원스>를 빨리 보여주고 싶다. 더 이상 혼자 즐겁자고 하는 일이 아니니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5호 2014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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