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하나!
<원스>의 음악감독 마틴 로우와 협력 음악감독 김문정,
함께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두 사람은 등장부터 오래된 친구처럼 화기애애했다.
알고 보니 벌써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은 진짜 친구 사이라고.
2003년 <맘마미아!> 공연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이 이번엔 <원스>를 위해 다시 교감을 나누었다.
두 음악감독이 들려주는 <원스>의 살아있는 음악 이야기.
음악의 힘
함께 작업하면서 느낀, 서로의 장점은 뭐예요?
마틴 로우 많은 음악감독들과 작업을 해봤는데, 문정은 첫눈에 최고임이 분명했어요. 우린 취향이 비슷해요. 좋아하는 것도 같고, 문제점도 똑같이 발견하죠. 그만큼 제 일을 더 쉽게 만들어줘요. 문정은 싸우기도 잘하는데, 저도 마찬가지에요. 이건 무엇보다 공연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는 걸 의미해요. 그래서 <원스>도 문정과 꼭 함께해야 한다고, 프로덕션에 제가 요청했어요.
김문정 외국 스태프들은 대부분 그동안의 작업을 유지하길 원하는데, 마틴은 달랐어요. 우리의 상황을 이해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줘요. 다른 사람들은 말이 안 통하면 금방 통역을 찾는데, 마틴은 눈을 쳐다보면서, 서툰 영어도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줘요. 그만큼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게 만들죠. 또, 거짓말을 안 해요.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는 표현이 명확해서, 배우들에게 정확한 디렉션을 줄 수 있어요. 배우들의 성과 이름을 다 외워서 불러주는 흔치 않은 외국 스태프이기도 해요. 그만큼 우리 문화를 존중해주는 사람이에요.
뮤지컬 작업에 앞서 영화 원작을 먼저 봤을 텐데, 어땠어요?
마틴 로우 뮤지컬 작업을 제안받았을 땐, 영화를 보지 못한 상태였어요. 영국에선 한국만큼 유명한 영화가 아니었거든요. 이 일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이 점에 초점을 맞춰 영화를 봤는데, 할 수 있겠더라고요. 사실 진짜 음악영화는 손에 꼽히는데, 이 작품이 바로 그런 영화였어요. 이 뮤지컬 하고 싶다!
김문정 재밌는 게, 난 그 반대였어요. 이걸 어떻게 뮤지컬로? 치정, 복수, 배신처럼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코드도 없고, 이야기가 잔잔하잖아요. 도대체 이걸 뮤지컬로 어떻게 표현할까? 그런데 공연 보고 나서 깜짝 놀랐죠.
영화에 명곡들이 참 많잖아요. 특히 어떤 음악이 기억에 남았어요?
마틴 로우 영화에서 ‘Gold’가 30초 정도밖에 안 나오는데, 대개 흥미로웠어요. 디너파티 장면에서 바로 다음 컷으로 전환되거든요. 그 부분을 굉장히 잘 만든 것 같아요. 첫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이 ‘Say It To Me Now’를 부르는 것도 참 좋았어요. ‘Falling Slowly’는 말할 것도 없고.
김문정 ‘Falling Slowly’는 정말 잘 만든 곡이에요. 매우 심플하면서도 강렬하잖아요. 도레미레 도레파미, 이 멜로디를 누가 거부할 수 있겠어요?
무대에선 이런 음악의 힘이 더 밀도 있게 느껴져요. 그 힘은 어디서 비롯된 거죠?
마틴 로우 영화 OST를 엄청 분석했어요. 헤드폰 끼고 계속 OST를 들었어요. 기타 한두 대만 쓴 곡을 들으면서, 이건 기타 다섯 대 정도 더 써도 되겠구나! 이런 식으로 OST 본연의 음악을 십분 존중하면서, 악기를 조금씩 더해 오케스트레이션을 팽창시켰어요. 원곡의 느낌에 이질적인 악기는 억지로 넣지 않았어요. 무대에서 드럼을 쓴 곡도 ‘When Your Minds Made Up’ 하나였어요. OST에서 드럼을 쓴 곡이 이 곡뿐이니까! 이런 점이 힘을 발휘한 것 같아요.
김문정 하나 더 덧붙이자면, 어쿠스틱의 힘! 작품의 스토리텔링과 감성이 내추럴하고 따뜻하잖아요. 그 본질 자체를 이끌어내는 것이 어쿠스틱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본질 그대로 자유롭게
배우들에게 악기를 들게 한 것, 어떻게 시작된 아이디어였나요?
마틴 로우 처음엔 가이가 기타, 걸이 피아노를 쳐야 한다는 컨셉이었어요. 그런데 무대에서 이 둘만 연주를 하고, 따로 오케스트라가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이상하더라고요. 뭔가 잘못된 느낌? 모두 배우들이 연주를 해야겠더라고요. 결국, 이 작품 자체가 모든 배우들이 악기를 들어야 한다 말하고 있었어요.
지휘자 없이 12명의 배우들이 음악을 만들잖아요. 이 악기 구성은 어떻게 이루어진 거죠?
마틴 로우 처음엔 누가 어떤 악기를 연주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였어요. 바이올린 두 대, 첼로 하나, 베이스 하나, 악보에 미리 정해진 것도 있지만, 애매한 곡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다양한 악기를 모아놓고 연습을 시작했어요. 기타 연주자들이 이런저런 악기를 집어 들고 연주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기타 지겨운 사람 만돌린 한 번 연주해봐! 그리고 맘에 들면 극 중에 반영했죠. 배우들의 자유에 맡기고, 전 그 소리가 좋은지 판단했고요. 그러면서 점층적으로 누가 어떤 악기를 연주할지 결정했어요. 그래서 프로덕션마다 소리가 조금씩 다르죠.
김문정 뉴욕 공연 연습을 보면서, 이건 뉴욕이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한국 공연에도 똑같이 적용하더라고요. ‘악보에 있는 대로 연주해!’가 아니라 ‘좀 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봐!’ 이런 식으로 멜로디를 하나 주고, 배우들이 스스로 만들게 했어요. 흥미로운 경험이었죠. 배우들이 스스로 화음을 찾을 수 있게 기다려주는 거잖아요. 마틴이 배우들을 하나의 뮤지션으로 존중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만큼 배우들의 성장하는 모습이 느껴지겠네요.
마틴 로우 모든 연습이 그래요. 근데 배우들이 어느 정도 공연에 익숙해졌을 땐 좀 위험해요. 그 이후에도 계속 발전하길 바라는 게 우리 마음이거든요. 연습 첫날, 항상 모든 배우들에게 말해요. 너희들이 <원스>를 정말 사랑하게 될 수도 있고, 그냥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에 하나로 남을 수도 있어. 어느 쪽이든 이 작품을 마쳤을 때,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한층 발전한 뮤지션이 되길 바란다.
김문정 한국 공연에선, 전미도 씨가 모험을 한 캐스팅이었어요. 피아노를 한 번도 쳐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오디션 때 만족할 만한 연주력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오디션 때 악기를 잘 다뤄야 한다는 요건이 있었지만, 또 특별히 연극성이 강한 작품인 만큼 미도 씨에게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마틴은 브로드웨이에서 걸 역을 맡은 크리스틴 밀리오티도 이런 경우였다며, 그녀에게 기회를 줬죠. 이후 미도 씨는 정말 열심히 연습했고, 어제 마틴이 그녀의 공연을 보고 크게 칭찬을 하더라고요. 미도 씨가 마틴을 보자마자 우는데, 그 심정이 이해됐어요.
걸과 가이 역을 맡은 네 배우의 강점은 뭐라고 생각해요?
마틴 로우 (전)미도나 (이)창희를 보면, 둘 다 굉장히 야망이 있어 보여요. 늘 갈망하는 배우에요. 이 작품에 진짜 관심이 많은 배우라는 게 느껴져요. (윤)도현은 말 그대로 진짜 록스타고, (박)지연은 <맘마미아!>부터 알고 지냈는데, 한눈에 주인공감이란 걸 알아차렸죠.
김문정 도현 씨에게 기타는 자기 몸의 일부예요. 그래서 기타를 치고 노래할 때 좌중을 압도하는 힘이 느껴져요. 미도 씨는 외국인 연기를 한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작업인데, 치밀하고 계산된 연기를 보여줘요. 어떤 관객은 진짜 외국 사람이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지연 씨는 정말 사랑스러운 배우예요. 실용음악에도 관심이 참 많고, 보이스도 좋고, 안정감이 있어요. 창희 씨는 뭔가 꿈틀거리고 있는데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날것의 느낌이 있어요. 정말 가이의 감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요.
공연 시작 전과 인터미션 때 펼쳐지는 프리쇼도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어줘요. 아이리시 펍 분위기를 내기 위한 설정이라고 들었는데, 음악적으론 어떤 역할을 염두에 둔 건가요?
마틴 로우 관객들이 음악을 접하면서 공연장을 걸어 들어오게 하고 싶었어요. 주변을 둘러보면 늘 음악이 있고, 누구나 이 음악에 뛰어들 수 있다! 프리쇼는 총 6곡으로 구성되는데, 모두 아이리시 음악과 체코 음악이에요. 3곡은 배우들이 날마다 하고 싶은 걸 정하고, 3곡은 매일 같아요. 잘 들어보면 이 전통 음악들을 원곡 그대로 연주하지 않고, 나름 재밌게 편곡했어요. ‘Esti Si Ja Pohar’의 경우 체코 남자들이 술 마시면서 부르는 노래인데, 여자 셋이 부르게 바꿨죠.
음악 덕분에 아름다운 장면들이 많은데, 그중 어떤 장면을 좋아해요?
마틴 로우 드럼 세트 치울 때, ‘Drum Break Down’이란 노래가 나와요. 가장 마지막에 만든 곡이라 이 장면이 애착이 가요. 곡 어레인지까지 모든 작업을 끝냈는데, 갑자기 한 곡을 더 써야 한다고 해서 얼마나 짜증났는지! (웃음) 극 중에서 드럼을 무대에서 빼야 해서, 모두가 고민했어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아무도 아이디어를 못 냈는데, 제가 머리를 좀 썼어요. ‘Drum Break Down’이 ‘Gold’ 아카펠라 전 곡이거든요. 그래서 드럼을 치울 때, 아카펠라 음정을 찾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었어요. 개인적으로, 그 장면 볼 때마다 흡족해요. (웃음) ‘Gold’와 ‘Sleeping’도 정말 좋아요. ‘Gold’는 기이할 정도로 훌륭한 곡이라, 뭘 해도 좋더라고요. 그래서 아카펠라 버전으로도 만들 수 있었죠.
김문정 인상적인 게, 드럼은 무대에 세팅이 되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악기거든요. 근데 그 장면으로 걸의 부서진 마음을 표현했다니! 이들은 정말 천재다 싶었죠. 저도 ‘Gold’랑 ‘Sleeping’을 참 좋아하는데, 특히 ‘Sleeping’은 제가 엄마라서 그런지 조그만 딸에게 위로를 받는 엄마의 심정이 많이 와 닿아요. 연습실에서부터 눈물을 많이 흘리게 한 곡이죠.
<원스>의 음악을 더욱 가까이 느끼고 싶은 관객들에게, 관람 팁을 살짝 알려주세요.
마틴 로우 영화 OST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잘 알 거예요. 이 공연이 오리지널 음악에 얼마나 충실한지! 제가 좋아하는 비밀인데, 알려드릴까요? (웃음) 걸이 헤드폰으로 ‘If You Want Me’를 듣거든요. 실제로 헤드폰으로 그 원곡을 들으면, 양쪽 귀에 기타 소리가 다르게 들려요. 저는 그 사실에 완전 집착했어요. 그래서 무대에서도 상수와 하수를 나누어, 기타를 서로 번갈아가며 연주하게 했죠. 그만큼 원곡의 느낌을 잘 살려냈어요.
김문정 ‘열린 마음’으로 공연장에 와주세요. 사실 한국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운드가 있을 수도 있어요. 사운드 디자인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게 아니라 바로 앞에서 연주하는 느낌이고. 그래서 조금 답답하게 느끼실 수도 있는데, 그 자체가 작품의 매력이에요. 인위적인 소리를 쾅쾅 때리는 게 아니라, 음악이 서서히 스며들게끔 하는 거죠. 또, 만돌린, 벤조, 까혼처럼 국내에서 익숙하지 않는 악기들을 보고, 그 소리를 듣는 재미를 직접 눈과 귀로 느껴보세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6호 2015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