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i Jae Woong 2007년 <더뮤지컬>이 뮤지컬계 관계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배우’ 로 이름을 올렸을 때도, 2년 후 첫 영화로 영평상과 춘사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받았을 때도, 배우 최재웅에게서 드라마틱한 변화의 조짐은 감지되지 않았다. 그는 기이할 정도로 꾸준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했고 아무래도 보편적이지 않은 기준으로 선택한 듯한 출연작 리스트를 갱신해나갔다. 하지만 역시 가장 신기한 것은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부러 돌아가는 것만 같아서 마음을 쓰이게 했던 이 남자가 여봐란 듯 화려한 대극장 경력 하나 없이 어느덧 한국 뮤지컬계가 신용하는 몇 안 되는 젊은 배우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이다. 우리도, 그 자신도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인생사,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시간을 거슬러 2006년 <쓰릴 미> 초연 공연 당시 ‘이야기쇼’에 출연했던 최재웅을 만날 수 있다면, 슬그머니 웃어주고 싶다. 1퍼센트의 긍정적 여지도 남겨두지 않고 ‘<헤드윅>은 제가 하면 안 되는 작품’이라고 무심하게 손사래를 치는 그를 보면서 말이다.
왜 그렇게 단호하게 안 할 거라고 말했어요? 이렇게 재공연까지 할 거면서.
그때는 80kg이었으니까요.(웃음) 지난 공연 막바지에 <로맨스, 로맨스> 연습에 들어가야 해서 급하게 마무리를 하느라 아쉬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다시 하게 된 거예요.
지난 공연 때는 상당히 고집 세고 완고해 보이는 헤드윅이었어요.
이지나 선생님이 대본대로 하라고 하셨어요. 대본대로 해서는 드라마적으로 표현이 안 될 부분에 다른 요소를 첨가해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넌 그냥 대본만 가지고 한번 해보라고 하셨죠. 이번에도 시키는 대로 할 거예요. (안 그럴 거 알아요.) 유연함… <트라이앵글>, <엣지스>를 하면서 그걸 많이 배웠어요. 이전에는 정해진 것들을 딱 정확하게 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좀 달리 해보려고요.
여담인데, <헤드윅>으로 지금까지 인터뷰를 했던 배우 중에서 대본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연기를 했다고 말한 사람이 조승우 씨였어요.
흠. 걔도 사실은 대본대로 했을 거예요. 멋있게 보이려고 그렇게 말한 걸 거야.(웃음)
<헤드윅>은 영화로 먼저 접했어요? 아니면 뮤지컬?
영화로 먼저 봤죠. 색감이나 질감이 정말 예뻤어요. 뮤지컬은 초연 때 (오)만석이 형 공연을 봤는데 자리가 없어서 벽에 달라붙다시피 해서 겨우 봤던 기억이 있어요. 충격이었죠. ‘어떻게 저런 모습을 보여주지?’ 2004년이었나? 졸업을 막 했을 때였는데 그때는 내가 그런 작품을 할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어요.
막 대학을 졸업한 패기 넘치는 어린 배우일수록 센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거 아닌가요?
저 같은 경우는 그 당시 주목받지 못하는 배우였고… 뭐라고 해야 하나, 혼자서 연기를 한다는 게 너무나 부담스럽게 느껴졌죠. 나 혼자 1시간 40분 동안 극을 한다니 우와…. 거기에 대한 두려움이 정말 컸어요.
나중에 제의를 받았을 때 망설였던 이유이기도 하겠네요. 상대 배우와의 호흡, 주고받는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우니까 사실상 모노드라마인 <헤드윅>은 정말 힘들었겠어요.
그렇죠. 학교를 다니면서 배우 훈련을 받을 때 그런 연기 위주로 배운 사람인데. 내가 하려는 것보다 저 사람이 어떻게 했을 때 내가 그걸 어떻게 받아야 하는가에 집중하도록 배웠거든요. 그런데 <헤드윅>은 내가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줘야 하고, 그 상대가 관객이니까 힘들다고 생각했죠. 내 스스로 능동적으로 해나갈 계기가 없으니까. 무대에 내가 하는 말의 목적이 되는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하니까 처음에 연습을 할 때는 벽을 보고 말하는 것 같아서 힘들었어요. 그런데 후반으로 갈수록 역시 경험을 해봐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처음에는 관객들이 저에게 에너지를 주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점차 그들이 저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바라고, 또 주고 있더라는 걸 깨달았죠.
배우 인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인가요.(웃음)
흠, 뭐 그렇게 큰 건 아니고요. 예를 들어 제가 관객으로 작품을 보면 다음에 저 사람이 이랬으면 좋겠다거나, 이런 걸 보게 될 거다,라는 기대를 하잖아요. 다른 관객들도 그러는데 그게 무대 위에서 상대 배우의 연기처럼 구체적으로 나에게 와 닿아서 리액션을 유발하는 게 아니더라도 그것 또한 나한테 온다는 걸 알게 되니까, 더 유연해지더라고요.
헤드윅에 대해 되기까지 큰 난관 없이 다 이해가 됐어요?
이해가 됐다기보다는, 뭐랄까. 이해를 하려고 노력한다기보다는 그냥 받아들인다는 느낌? 나는 그냥 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열려 있었어요. 다른 작품일 경우에는 왜 그랬을까라거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건 아닌데…라는 고민을 많이 하는데 <헤드윅>은 워낙 대본도 잘 빠지고 음악적 고리도 탄탄해서, 그런 의심이 없었어요.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도 그랬고 공연을 봤을 때, 그리고 대본을 읽었을 때, 시즌3 때 김달중 선생님 버전의 대본은 또 다른데, 그것까지 다 보면서 어, 이건 내가 의심할 필요가 없는 작품이다 생각했죠.
공통 질문이에요. 헤드윅 출연을 결정했을 때 제일 먼저 이야기한 사람과 그 반응은?
(조)정은이랑 (조)승우였을 거예요. 정은이는 ‘맙소사’를 두 번 외치고 승우는 군대 있을 때라 통화만 했는데 ‘으흐흐흐’ 하고 한참 웃던데요.
<헤드윅>의 노래 중 가장 친밀감을 느끼는 곡은?
‘위그 인 어 박스’ 같은 경우에는 많이 공감하는 내용이죠. 여장이나 뭐 그런 게 아니라도 배우라면 알 거에요. (허탈감 같은 거요?) 네, 약간. 특히 코믹하거나 과장된 분장을 할 때나, 공연을 끝내고 씻으러 세면대 앞에서 거울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들거든요. 누구나 그럴 거예요. 마스크를 쓴다고 하는, 메이크업을 하면, ‘어느새 나는 무대 위의~’ 그 노래처럼 다른 무언가가 되잖아요. 예를 들어 <쓰릴 미> 때 양복 갖춰 입고 넥타이를 매면 나가야 할 그 타이밍이 되는데, 그런 순간에요. 배우들은 다 공감할 거예요.
어렸을 때 엄마 화장품을 몰래 발라보거나 여자 옷을 입어본 적 있어요?
그럼요. 있죠. 저 어렸을 때 되게 예뻤어요. (그는 웃지 않았다.) 못 믿네. 엄마가 외출을 해서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장난으로 엄마 립스틱을 발라본 적은 있죠. 예쁘다, 생각했죠. 이상하다거나 하면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냥 장난이었으니까.
헤드윅이 사랑하는 여성 영웅들이 있잖아요. 그런 맥락으로 좋아하는 디바가 있어요? 여자로 태어난다면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라든가.
대학 때 여성학 수업을 들었어요. 오숙희 씨에게 수업을 들었는데, 그분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저는 멋있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내가 정말로 행동을 한다면 한비야 씨요. 멋있잖아요. 용기 있고 자유로운 여자. 아니면 그냥 아예 우리 엄마처럼 살든가. 전형적인 엄마로.
수술을 받기로 한 한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글쎄요, 음. 비싼 데서 하지 그랬어. 왜 남겨가지고…
토미와 헤드윅, 그리고 헤드윅과 이츠학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토미 신은 제가 이 공연에서 제일 좋아하고, 할 때도 재미있어 하는 장면인데… 솔직히 처음에는 토미의 마음에 대해서는 잘 안 느껴졌어요. 일단은 인물의 밸런스가 헤드윅 쪽이 강하니까. 거울일 수도 있고, 샴쌍둥이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서로가 바라는 이상향인 거 같기도 해요. 싫어하는 자기 모습인 것 같기도 하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여지가 있기 때문에 재미있어요. 복선에 의한 정확한 결말이 아니라 확실하게 단정 짓지 않는다는 거, 의문에서 끝난다는 게 좋아요. 토미는 헤드윅에게 질문을 하고, 헤드윅은 토미에게 대답을 하지만 헤드윅의 이야기도 정답이 아니라 ‘그렇지 않을까?’라는 거잖아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2호 2011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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