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난 김성민은 무대에서 볼 때보다 거대했다.
장신과 큰 체구, 단호한 눈빛의 조합은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전해졌다. 그가 얼마 전 연기한
<레 미제라블>의 장 발장은 그런 풍채에서 중후함이
돋보였다면, 이제는 <노트르담 드 파리>의 페뷔스에
맞춘 듯 다부지고 젊어졌다. 하지만 좋은 연기가 체격이나
이미지만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건 그가 데뷔 후 6년의 시간 동안 얻은 교훈이기도 했다.
근거 있는 남성성의 매력
올해 장 발장과 그랑테르로 19세기의 파리에서 활약한 김성민은 이번에는 15세기 파리에 소환돼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 서고 있다. 벌써 네 번째로 맡고 있는 근위대장 페뷔스는 김성민의 대표 캐릭터가 된 지 오래다. 페뷔스는 작품의 팬들에게 주로 욕을 듣는 캐릭터이지만 김성민이 출연하는 날은 다르다. 그의 깨끗하고 안정된 고음 처리와 박력 있는 연기에, 그날의 페뷔스는 ‘나쁜 놈’에서 ‘나쁜 남자’로 재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배우로서 다른 역이 욕심이 안 난다면 거짓말이다. 실제로 이번 공연의 오디션에서도 콰지모도, 그랭구아르, 클로팽까지 준비해 가기도 했다. 물론, 결과는 지금과 같다. “아무래도 다 못 보여드린 것 같아요. 페뷔스가 와서 흉내내는 것처럼 보신 모양이에요. (웃음)” 건장한 체구에 남성적인 캐릭터라는 점에서 클로팽도 어울릴 것 같지만, 그의 남성성은 더 단정하고 정제된 느낌이다. 집시 우두머리보다는 군인의 이미지에 가깝다. “실제로도 좀 ‘딱 떨어지는’ 스타일이에요. 얼굴 생김새도 그렇고, 무엇보다 성격이 그렇죠.”
이런 엄격한 기질은 자신에게도 적용됐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학 입학 후 잠시 접어두었던 음악에의 갈증을 풀기 위해 부모님께 1년의 시간을 허락받았다. 그 길로 학원에 등록했고, 비용은 웨이트 트레이너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벌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실제로 피는 안 났지만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 노래 실력은 부쩍부쩍 늘어갔다. 이후 학원 선생님이 내민 지원서를 받아 오디션장에 섰고, 오디션계의 금지곡인 ‘This is the Moment’를 부르고도 1차 합격의 영광을 누렸다. 자신이 공언한 날로부터 363일째 되는 날이었다. “날짜를 기억하는 건 정말 1년 안에 안 되면 그만두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부모님께 폐를 끼치면 안 되니까.”
부모님께 공언한 1년의 기한을 고집스럽게 지키려는 성격은, 확실히 ‘바른 길’이나 ‘규칙’에 대한 그의 강박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군 복무 중에도 속칭 ‘FM(Field Manual) 스타일’인 그 때문에 후임병들은 지옥 같은 2년을 보내야 했다. 반면 상관들에게는 최고의 인재(?)였던 그는 전역하는 날까지도 직업 군인의 길로 들어오라는 권유에 시달렸다고.
그리고 이런 그의 모습은 <노트르담 드 파리>의 크리에이터들에게도 보였던 모양이다. 실제로 군인이 어울렸던 사람이라 군인 역할에 최적화된 배우였던 셈이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굳어진 이미지 탓인지 그는 <노트르담 드 파리> 외에는 그리 다양한 프로필을 만들지는 못했다. <돈 주앙>, <몬테크리스토>, 그리고 얼마 전 <레 미제라블> 정도가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그래서 그도 이제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다. 고정된 틀을 깨야 할 시점에 대한 것이다. “배우는 수많은 얼굴을 내면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 제겐 그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려면 일단 확실한 한 가지 모습을 정립하는 게 우선이겠죠.”
또 한번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
캐릭터든 소양이든 배우로서 새로운 얼굴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김성민에게 그것은 절실하다. “이제까지는 운이 좋아 작품을 계속해왔지만 언젠가 밑천이 드러나면 한계가 올 거예요. 사실 전에도 그런 위기가 와서 한동안 작품을 못한 적도 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는 드러낼 밑천도 없긴 했지만. (웃음)”
<노트르담 드 파리>와 <돈 주앙>을 병행했던 2009년, 3년 차에 접어들면서 벌써 바쁜 일정을 소화하게 된 그는 약간의 자만심과 함께 배우로서 지켜야 할 것들을 하지 못했다. “소위 말하는 ‘똥배우’가 된 거죠. 그 후 오디션을 볼 때마다 다 떨어졌어요.” 계속된 스트레스를 술과 음식으로 풀다 보니 언제부턴가 걷잡을 수 없는 몸이 되어갔고, 배역은 더 멀어졌다. 그때 그에게 연락을 준 사람이 유희성 연출이었다. 그리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처음 앙상블을 경험했던 작품이 <피맛골 연가>다. “모든 게 다 열악했지만 굉장히 즐겁게 작업했던 작품이에요. 욕을 너무 많이 먹었는데도 행복했을 정도니까요.”
<피맛골 연가>는 김성민이 배우로서의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전에는 ‘내가 이 작품을 한다’는 사실이 중요했는데, 앙상블을 거치면서 깨달은 거예요. ‘내가 이 작품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가 중요한 거라는 사실을요.” 이후 작품에 임하는 자세가 바뀐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얼마 전의 <레 미제라블>이 바로 그렇다. “살면서 닥쳐올 위기, 불가항력의 사고들이 있다면, 그때 종류별로 다 경험한 것 같아요. 정신과 신체가 한꺼번에 무너져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상황에서도 공연을 했거든요. 해야 했으니까요.” 두 가지 역할을 오갔던 그는 다른 배우보다 더 힘들었을 법하지만 내색도 안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해서다. “그 한 역할을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저는 오히려 복받은 사람인 거죠. 그래서 더 치열하게 관리를 했어요.”
이렇듯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한 김성민이 다시 맡는 이번 페뷔스 역시 이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하루하루 하면서도 제가 뭘 하는지 몰랐던 것 같아요. 혼자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달까. 지금은 무대에 나가기 전 이 신에서 내가 뭘 해야 하는 걸까 생각하고, 무대 위에 있을 때에도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민해요. 배우가 당연히 무대 위에서 해야 할 고민들을 이제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마치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에요. (웃음)”
그의 여정을 반추하면, 궤도에서 잠시 이탈해 먼 길을 돌아 다시 원점에 선 것 같다. “맞아요. 쭉 직진했어야 하는데, 잘못 가고, 돌아가고, 샛길로 빠지고, 밑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와서 처음 자리에 선 기분이에요.” 의미 있는 시행착오를 통해 그가 스스로에게 내린 과제는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체력, 신체 활용, 호흡법, 화술 같은 기초적인 부분부터 시작해서 배우로서 갖춰야 할 감성이나 마인드도 보완해야죠.”
처음 마주했을 때 그는 인터뷰가 익숙하지 않은 듯 다소 경직돼 보였다. 하지만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자신에 대한 모든 선입견을 걷어내듯 엉뚱하고 쾌활한, 또 다른 김성민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마치 1회부터 위기를 자초하고 헤매다가 자기 페이스를 찾는, 슬로 스타터 투수처럼. 하지만 그런 사람이 한번 흐름을 타면 무서운 상승세를 이어가곤 한다. 탄탄한 하드웨어에 개념 있는 새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김성민 ver 2.0’이 기대되는 이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2호 2013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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