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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TRAVEL] <영웅>의 ‘얼음 도시’ 하얼빈 생존기[No.138]

글 | 정재진 영상디자이너 사진 | 정재진 영상디자이너 2015-04-02 6,696


지난 2월 7일과 8일, 하얼빈(哈爾濱) 최대 규모 극장인 환구(環球) 극장에서 뮤지컬 <영웅>이 공연됐다.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진 혹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연은 전 회 매진을 기록하며 한국 뮤지컬과 안중근 의사에 관한 중국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이런 성공 뒤에는 단 이틀간의 공연을 위해 일주일 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한 국내 스태프들이 있었다. 그중 현장의 중심에 있었던 정재진 영상디자이너가 험난하지만 보람 있었던 이번 공연의 제작 과정을 글과 사진으로 전해 왔다.  



혹한과 열악한 환경을 극복한 공연의 달인들

‘이건 꼭 내가 가야 해!’ <영웅>의 하얼빈 시 초청 소식을 접한 후 나는 왠지 모를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안중근 의사와 하얼빈이라는 역사적인 공간의 조합 때문이었을까. 살인적인 추위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내 몸은 어느새 하얼빈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실려 있었다. 그리고 2월 4일, 상의 여섯 겹, 하의 두 겹을 껴입은 ‘북극곰’ 비주얼로 하얼빈 땅을 밟았다. 


의외로 첫날에는 하얼빈의 혹한을 체감하지 못했다. 도착하자마자 찾은 환구 극장에서 공연 준비에 한창인 스태프들이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가 얼음 도시의 추위를 무색케 했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은 제작 여건이 넉넉지 못해서 모든 파트를 최소 인원으로 구성해 힘겹게 진행했다. 세트는 이미 완성돼야 할 시점이었지만, 실제 진행은 절반밖에 되지 않아 계획했던 일정은 이미 늦어지고 있었다. 요인은 여러 가지였지만, 우선 현지인들의 느린 작업 방식이 무엇이든 일사천리로 처리하는 국내 스태프에겐 잘 맞지 않았다. 또 시 차원의 초청 공연임에도 극장 상황은 큰 규모에 비해 너무 열악했다. 



물론 어느 공연이나 셋업 과정에서 변수는 생기기 마련이지만, 실제 공연을 진행한 경험이 없는 극장 측과의 소통은 큰 난관으로 다가왔다. 가령 세트를 장착하기 위한 장치인 배튼(Batten)의 하중이 <영웅> 세트를 감당할 수 없다고 해서 세트를 다시 제작했는데, 확인 결과 원래의 하중을 견딜 수 있어서 스태프들을 허탈하게 했다. 조명 파트에서는 요청했던 장비와 준비된 것이 달라서 어려움을 겪었고, 의상 파트에서는 협소한 공간과 복잡한 동선으로 의상 전환에서 곤욕을 치렀다. 영상 파트는 가장 중요한 기차 장면 프로젝션을 위해 세트에 설치되는 미러 반사판이 분실되는 사건이 있었지만, 다른 파트에 비하면 애교로 봐줄 만한 변수였다. 


하지만 그런 변수와 관계없이 첫 공연일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미션은 셋업 7일간의 짧은 시간 안에 조선 경복궁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는 무대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국내 스태프들은 모두 임기응변의 달인이 되어야 했다. 그 ‘미션 수행’에 합류한 나도 다양한 ‘멘붕’ 상황에서 침착하고 끈질기게 일을 처리하는 한국 공연인의 근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로소 실감한 영웅의 삶과 다가온 공연

둘째 날, 기온이 영하 26도까지 내려가고 거센 찬바람에 얼굴에 닿자 ‘살점이 떨어진다’라는 표현을 실감했다. 굳은 의지 하나로 하얼빈에 왔던 안중근 의사가 더욱 존경스럽고, 나아가 죄송한 마음마저 들었다. 이 추위보다 더했으면 더했을 당시 여건과 여순 감옥에서 혹독한 생활에 비하면 우리의 치열함은 한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발열 내의와 수면 양말까지 착용하고 이 역사적인 공연을 할 수 있는 것도 독립군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 차가운 얼음의 도시는 그런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생생하게 느끼게 했다. 


셋째 날인 6일, 하얼빈에 도착한 배우들의 합류로 극장 안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얼마 전 <그날들>에서 함께 작업한 안중근 역의 강태을을 하얼빈에서 다시 만나니 동지애마저 느껴졌다. 극장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객석에서 녹음된 중국어 교재를 들으며 대사 연습을 시작했다. 중국 관객들에게 친근한 재미를 선사할 1막 왕웨이 만두 가게 장면의 중국어 대사 신을 리얼하게 표현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번 공연의 캐스팅이 확정되기 전부터 참여 의지를 내비쳤다는 그는 ‘하얼빈에서 안중근으로 중국 관객과 만난다’는 사실에 살짝 긴장하면서도 설레는 인상이었다. 




중국 관객을 만나기 전 막바지 리허설이 있던 7일, 피로는 절정에 다다랐다. 따로 지정된 공간 없이 객석 제일 뒤 20석을 비워 마련된 영상 음향 조명 콘솔은 간신히 사람이 드나들 정도의 폭이라 종일 선 채로 일을 해야 했다. 손발은 퉁퉁 부어올랐고 체력은 방전됐지만, 전 스태프들은 서울 공연의 완성도에 최대한 가깝게 작품을 다듬어갔다. 문득 하얼빈에 오기 전, 이곳의 상징인 빙등 축제를 기대하며 ‘얼음 왕국의 엘사’가 되는 상상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렇게 공연을 마친 후의 여흥을 상상하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 하루를 버텼다. 그날 밤, 같은 방을 쓰는 다른 팀 스태프가 자신이 지금도 일하는 듯한 잠꼬대를 하는 것을 보니 안쓰럽기까지 했다. 배우들은 대사를 잊는 꿈이 악몽이겠지만, 꿈에서까지 긴장하며 일하는 스태프들은 그런 힘든 현실 자체가 악몽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무사히 도착한 하얼빈 기차

대망의 첫 공연. 중국어 자막이 있다 해도 현지 관객들이 얼마나 올까 싶었는데, 예상 외로 객석의 80%는 중국인들이었고, 1,600석이 가득 채워졌다. 심지어 극장 출입문 앞에서는 말로만 듣던 암표상까지 볼 수 있었다. 로비의 포토존 앞에는 기념사진을 찍는 중국 관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현지 언론의 관심도 매우 뜨거웠다. 




중국 관객의 관람 태도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곳은 국내에서처럼 옆자리 관객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까봐 마음을 졸일 필요가 없었다. 경직되지 않고 자유스러운 관람 마인드 때문이다. 우리는 입장이 늦으면 다른 관객의 시야를 가릴까봐 머리를 숙이고 이동하지만 이곳에선 당당하게 가로질러 들어왔다. 휴대폰 촬영은 물론, 플래시를 터트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음식물 반입도 가능해 VIP 객석에는 음료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까지 마련돼 있다. 가장 편안한 환경을 조성해 극에 몰입하게 하는 이곳의 관람 문화는, 제한된 상황에서 점잖게 집중하는 우리 정서와는 차이가 커 눈길을 끌었다. 



공연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런데 셋업 기간에 큰 문제가 없었던 영상 파트에서 인터미션 때 ‘대박’ 사건이 발생했다. 객석에 공급되는 전기를 차단하다가 프로젝터 전원까지 꺼져버린 것이다. <영웅>에서 가장 상징적인 하얼빈 역 기차 등장 신을 포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무대 뒤편으로 달려가 다시 켜진 프로젝터 화면이 제대로 출력되는지 확인했지만, 영상 비율 설정이 변경될 가능성까지는 점검할 여유가 없었다. 불안감을 가진 채 2막에 돌입한 나는 마치 이토를 암살하기 위해 기다리는 안중근 의사의 심정으로 그 장면을 기다려야 했다. 이윽고 기적 소리와 함께 영상 속 기차가 등장했고, 다행히도 무사히 그 장면을 넘길 수 있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중근 의사처럼 “천주여 고맙습니다!”를 속으로 외쳤고, 그렇게 공연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작품의 전체적인 완성도에선 당연히 2011년 뉴욕 공연이 나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서울 공연에 가까운 완성도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선 이번 공연에도 높은 점수를 줄 만했다. 특히 어느 파트도 실수 없이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는 사실만으로도 성공적이라고 자평할 수 있다. 윤호진 연출은 스태프와 배우가 독립운동을 하는 마음으로 공연을 치렀다고 말했는데, 그 말대로 이 춥고 낯선 땅에서 고군분투한 제작진 덕분에 관객들은 2015년 하얼빈에서 역사 속 안중근을 생생히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선지 공연 철수 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의 밤 공기는 굉장히 차가웠지만 한편으론 상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한 도시, 하얼빈

도착 첫날 공항에서 숙소로 달리는 택시 안에서 바라본 하얼빈의 첫인상은 중국적이지 않은 이국적인 도시였다. 나중에 여유를 갖고 둘러보니 유럽 건축 양식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한때 패션의 도시로 불렸던 만큼, 서울의 백화점을 여러 개 합쳐놓은 만큼의 거대한 쇼핑 센터가 환구 극장과 연결되어 있기도 했다. 마치 삼성동 코엑스몰 같달까. 이처럼 극장 주변에는 압도적인 규모의 건축물들이 즐비했다. 또 LED의 천국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리 곳곳에 LED 전광판과 전식(電飾, 전구 등으로 이뤄진 옥외 장식)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한국 뮤지컬에서 LED는 비용 부담이 커서 사용할 기회가 별로 없는데, 중국에서 창작뮤지컬을 하게 된다면 이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영웅> 제작 과정은 역사적 장소인 하얼빈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체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를 통해 공연인으로서의 나를 돌아보고 지금 우리에게 ‘영웅’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되짚어보는 계기도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든 이 공연 덕분에 사람들은 과거의 안중근을 현재의 하얼빈에서 만날 수 있었다. 또 역사적 공감대 위에서 동료, 관객과 예술적 교감을 이룬 작업이었기에 더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영웅>에 보낸 중국 관객들의 열렬한 박수 역시 국적을 초월하는 감동과 공감의 방증이었다. 그래서 어려운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도 굳건히 버텨온 <영웅>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고, 자랑스러움과 고마움도 자연스레 우러나왔다. 


이틀 만에 끝난 공연은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그 마음은, 더 나은 중국 극장에서 개관작으로 새롭게 올라갈 내년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졌다. 이번 공연을 발판으로 한국의 창작뮤지컬이 중국 뮤지컬 시장 활성화에 더 많이 기여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러기 위해선 완성도 있는 창작뮤지컬 콘텐츠 개발과 전문 스태프 양성, 관련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열악한 환경의 개선과 스태프들의 노고에 상응하는 보상도 해결할 과제다. 이런 점에서 이번 공연은 중국 뮤지컬 시장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비록 하얼빈에 오기 전부터 내심 기대했던 빙등제는 가지 못했지만, 영하 26도의 환구 극장 앞에서 잠시 엘사가 되어 이번 공연의 힘들었던 여정을 모두 ‘렛 잇 고’ 할 수 있었다. 뮤지컬 <영웅>, 이제 한국으로 ‘렛츠 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8호 2015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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