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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FACE] <드림걸즈> 박은석 [No.138]

글 | 안세영 사진 | 심주호 2015-04-02 6,438

묵묵히 용기있게     



2012 <왕세자 실종사건>  구동


2013 <노트르담 드 파리>  페뷔스
2014 <드라큘라>  드라큘라
2015 <주홍글씨>  로저 칠링워스
2015 <드림걸즈>  제임스 썬더 얼리




6년 차 뮤지컬 배우 박은석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것은 작년 7월 <드라큘라>의 타이틀롤을 맡으면서부터다. 류정한, 김준수라는 정상급 스타 배우 사이에 나란히 오른 그의 이름을 보고 어리둥절했던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언더스터디’라는 설명이 따라붙긴 했지만 처음부터 7회 공연을 보장받고 프레스콜과 뮤직비디오에 참여하는 등 그의 역할은 사실상 트리플 캐스트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이례적인 캐스팅에 대한 호기심, 나중에는 헌칠한 키에 풍부한 성량을 자랑하는 드라큘라에 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일부러 그의 공연을 찾는 이들도 생겼다. 이렇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언더스터디가 있을까 싶은데, 인터뷰 자리에 나온 박은석은 ‘부족한 점을 깨닫는 기회’였다며 담담하게 당시를 회상했다.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신 데 감사하지만 솔직히 그때는 작품 외에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요. 첫 타이틀롤인 만큼 드라마를 끌고 갈 힘이 많이 필요했고 책임감도 무거웠거든요.” 대극장 주연 경험이 없던 그를 <드라큘라>의 무대에 세운 것은 연출가 데이비드 스완이다. 전작인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페뷔스 역의 그를 눈여겨보고 먼저 개인 오디션을 제의해 온 것. “하지만 그때까지도 드라큘라 역을 맡게 될 줄은 전혀 몰랐죠. 연출님이 제게서 뭘 발견하셨는지 저도 궁금해요.”



예측 불가인 것은 그의 데뷔 전 이력도 마찬가지다. 열 살 무렵부터 8년을 검도에 매진한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접한 피리 소리에 빠져 국악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하고 군대도 군악대로 가며 보낸 시간이 다시 8년. 배우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제대 후 다시금 미래를 고민하면서부터다. “웃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는 ‘빛과 소금’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했는데,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 가장 좋겠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작가나 연출이 될 순 없을 것 같고, 배우가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 전까지는 연극이나 뮤지컬을 본 적도 없었다는 박은석은 마치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배우의 길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연극영화과로 다시 진학한 것이 스물다섯 살 때 일이다. 오랫동안 해온 검도와 국악을 포기하며 미련이나 회의가 남았을 법도 한데 박은석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 경험들이 지금 배우 생활을 하는 데 플러스 요소가 됐어요. 검도를 통해 무대 위에서 필요한 신체적 감각을 기를 수 있었고, 국악을 통해 뮤지컬에서 필요한 음악적 감각을 기를 수 있었죠. 사실 검도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배운 건 인내예요. 마인드 컨트롤은 배우 생활을 하는 데도 정말 중요하잖아요? 16년이란 세월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늦게 시작한 만큼 그는 재학 중에 부지런히 오디션을 보러 다녔고, 2010년 <몬테크리스토>의 앙상블로 뮤지컬에 데뷔했다. 이어지는 배우 경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서재형 연출, 한아름 작가와의 인연이다. 박은석의 첫 주연작 <왕세자 실종사건>은 두 창작자가 이끄는 극단 ‘죽도록 달린다’의 첫 창작뮤지컬이기도 하다. 지난 1월 선보인 극단의 두 번째 창작뮤지컬 <주홍글씨> 역시 박은석이 주연을 맡았다. 여기에 앙상블로 출연했던 음악극 <더 코러스-오이디푸스>와 한아름 작가가 쓴 <영웅>까지 합치면 네 작품째 연을 맺은 셈. 두 창작자와의 작업은 배우 박은석에게 성장의 밑거름이었다. “사실 <왕세자 실종사건> 때는 연출님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기도 바빴어요. 다시 뵐 때는 함께 토론할 수 있는 배우가 되자는 목표로 열심히 했는데, <주홍글씨> 때 정말 그렇게 됐죠. 제가 먼저 의견을 내고 연출님과 의논하며 역할을 완성해 갔거든요. 그래서 이번 작업은 정말 재밌고 행복했어요.” 


드라마틱한 인생담만 놓고 보면 무모한 인물을 상상할 수 있겠지만, 실제 그는 인터뷰 중간중간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천천히 얘기해도 되죠?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아요.” 1분쯤 침묵 속에서 답을 기다리다 보니 그의 평소 성격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단박에 “쓸데없이 진지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은 편이에요. 그게 연기에 방해가 될 때도 있어요. 배우는 무대 위에서 감각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생각이 많아지면 그 인물로 살기가 힘들잖아요.” 단점만 알려주고 장점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그에게 자기 자랑이 서투르다 한마디 하자 멋쩍게 웃어 보인다. “제가 성격이 그래요.” 하지만 작품을 맡으면 원작 소설과 영화부터 섭렵하는 그의 꼼꼼함이 장점이 아니면 무엇이랴. 연습이 없을 때도 밖에 나가는 것보다는 집에서 영화 보는 것을 즐긴다는 박은석. 그것도 그냥 영화가 아니라 고전 영화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여태껏 해온 작품 역시 <노트르담 드 파리>, <드라큘라>, <주홍글씨> 등 고전적인 것이 많았다.


<드림걸즈>는 그가 처음으로 경험하는 쇼 뮤지컬이다. 관객으로서는 기대도 의심도 클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가 맡은 캐릭터는 쇼맨십이 강한 R&B 가수 ‘제임스 썬더 얼리(지미)’가 아닌가. 박은석 자신도 어려움을 순순히 인정했다. “지미는 저와 정반대의 인물이에요. 고민이 없고 본능에 충실하죠. 게다가 그는 소울풀한 R&B 음악을 하는 사람인데 저는 클래식한 창법에 익숙하거든요. 한마디로 큰 벽을 넘고 있어요.” 허들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다름 아닌 ‘이야기’에 있다. 인터뷰의 끝은 그렇게 초심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드림걸즈>의 인물들은 성공을 위해 주변의 기준을 따라가다가 점점 본래의 자신을 잃고 공허해져요. 지미도 그래요. 성공을 위해 대중적인 음악과 타협했지만 도저히 본능을 억누르지 못하죠. 그렇게 다시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돌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 덕분에 연습이 어려워도 힘이 나요.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도 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거니까요.” 그 초심을 잃지 않고 <드림걸즈>로 또 한 번의 한계를 넘어섰을 때 그가 어떤 배우로 성장해 있을지 기다려진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8호 2015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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