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릴 미> 2차 팀의 공연이 막을 내렸다. 지난 12월부터 세 달간 무대 위에서 팽팽한 심리전을 펼친 네이슨과 리차드.
이제 무대에서 내려오는 그들이 서로를 향한 애증을 담아 편지를 보냈다.
정동화 네이슨
작년 여름에 오랜만에 만난 녹촤. 처음부터 난 알고 있었어. 당신의 포로가 될 것이란 걸. 오랜 시간 함께 무대에서 무대 밖에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 지난날을 생각하니 곧 당신과 헤어질 날이 존재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 하지만 헤어짐이 있으면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겠지? 네이슨이란 사람을 존재하게 해준 당신에게 고맙고, 또 다음 생에는 꼭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새로운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게 나의 개인적이고 지극히 작은 바람이야. 내 바지를 찢고, 어깨 뽕도 찢고, 내 마음까지 찢은 당신이지만 당신이 꽤 오랫동안 그리울 것 같아. 기다릴게.
에녹 리차드
많이 아팠지. 공연 때마다 맞고 뜯기고 던져지고. 너에게 몇 자 적으려니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그런데 그거 아니? 공연 중에는 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못 배길 만큼 날 미치게 만드는 너의 얄미운 모습들. 분명 내 말 잘 듣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 너인데 어느 순간 나도 네가 없으면 안 될 것 같단 말이야. 이젠 공연을 하면서 누가 누구에게 길들여지는 건가 자주 생각하게 돼. 어쩌면 널 막 대하는 것도 그런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일지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너 너무 불쌍하게 보이지 좀 마라. 사람들이 네 굵은 팔뚝과 말벅지를 본다면 절대 불쌍하게 보지 않을 텐데. 그런 근육맨이 여리고 착한 척을 하다니. 네 엉덩이가 자주 바지를 먹는 것도 네 허벅지 때문이야! 음하하하. 흠... 그래도 우리 그동안 행복했다, 그치? 그동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더할 나위 없을 만큼 좋았다. 사랑하고 사랑한다.
정동화 네이슨
작년 겨울부터, 아니 작년 여름부터 우리의 사랑과 전쟁은 시작되었지. 한 번은 이렇게 그리고 또 한 번은 저렇게. 언제나 그렇듯 우린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새처럼 즐거웠어. 몰두하고 있는 네가 다칠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그런 너에게 난 결국 무장 해제당하고 말았지. 항상 친구처럼 나를 맞아주고 대해준 당신이 그래서 무척 좋았어. 우린 싸우는 것도 좋아해서 처음엔 너무나 격렬한 나머지 이소룡의 절권도가 떠오를 정도로 심각했던 거 기억나? 그래도 즐거웠어. 우리 또 어떤 상황에 어떤 곳에서 다시 만날까? 무척 궁금하고 벌써부터 미리 엿보고 싶어. 친구 같지만 나를 끔찍이 아껴주고 이해해 주는 당신 때문에 이 여정이 오랫동안 내 가슴에 새겨져 있을 거야. 도빈 리차드, 날 안아줘. 왜냐고? 자꾸 멋있으니까.
백형훈 네이슨
먼저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어. 날 있는 힘껏 밀어도 내가 잘 밀리지 않아서 힘들었지? 사과할게. 너의 유약한 모습을 더 아름답게 보여줬다고 생각하자고 하면 억지겠지? 아무튼 고생했어. 그리고 넌 참 옷이 잘 어울려. 부럽다, 개자식. 농담이야~ 정장을 입어도 예쁘구나 감탄한 적 많았어. 장국영 머리도 잘 어울리고. 이렇게 지덕체를 다 갖춘 네가 왜 살인을 저질러야만 했니. 엄청난 범죄이며 우리가 잘못했다고, 누구나 다, 사회적으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일을. 난 알리고 싶었다. 결국 난 너를 따랐지만, 아무래도 후회가 커. 우리 다음 생애는 평범한 연인으로 예쁘게 사랑하자! 안녕!
문성일 리차드
나의 영원한 공범자 형훈 네이슨에게. 타자기가 아닌 손 편지로 너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 1년 만에 공원에서 널 다시 만났을 때 난 굉장히 당황스러웠어. 네가 몸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 했거든.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너를 내동댕이치는 건 너무 힘들었어... 뭐랄까, 투포환을 던지는 것 같다고나 할까...? (농담이에요.) 아무튼 그동안 자유로운 나를 하염없이 기다려주고 잡으려고 해줘서 고마웠어. 하지만 난 널 또 떠날 거야. 으하하하.
김도빈 리차드
안녕? 잘 지내고 있냐? 또 멍청하게 새나 보고 있냐? 난 여기서 잘 지내고 있다! 여기 되게 편해! 아무것도 안 해도 되고 밥을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파!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아무도 나한테 뭐라 하지 않는다! 여기가 아주아주 좋아, 정말 행복하다고! 하지만... 그리워. 니체 책, 내 칼, 타자기, 다이아몬드 성냥, 아버지, 우리 엄마, 동생 새끼... 그래 맞아. 네가 제일 보고 싶어. 너도 여기 내 옆에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아니잖아. 넌 거기서 행복하게 지내라! 이쁜이 동화야! 벌써 무슨 굿바이 편지니? 금방이다 정말. 너랑 이렇게 좋은 작품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고 공연 한 회 한 회가 새로웠어! 많이 그리울 거야! 나중에 또 만나자! 사랑해! 아! 다음에 UFC 같이 보자!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8호 2015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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