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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OPLE] <마이 버킷리스트> 주민진 [No.140]

글 | 안세영 사진 | 심주호 2015-05-22 6,763

미소, 그 이면의 얼굴

주민진이라는 배우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웃고 있는 입이다. 입꼬리를 말아 올린 상냥한 미소는 보는 이의 마음까지 느슨하게 만드는 그만의 필살기. 그러나 그 미소가 유독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그것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년의 천진한 웃음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거기에는 무언가 쓰디쓴 것을 꿀꺽 삼키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씩 웃어 보일 때의 애달픈 여운이 아른거린다. 


그래서일까. 슬픔을 삭이고 더 활짝 웃으며 노래하는 역할에서 그의 존재감은 빛을 발했다. 기생이 된 여동생을 둔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북한군 변주화가 그랬고, 백혈병에 걸린 딸을 둔 <비스티 보이즈>의 호스트 알렉스가 그랬다. 그에 비하면 <마이 버킷리스트>의 강구는 그가 지금까지 맡아온 아련한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인 양아치 고등학생 최강구. 하지만 주민진이 연기하는 강구에서는 그 허세 밑에 깔린 여린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강구의 첫 키워드는 ‘외로움’이었어요. 텍스트만 본다면 강구는 마냥 세 보이는 캐릭터죠. 하지만 사람은 어떤 모습을 감추기 위해 그 반대의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강구의 감춰진 내면에는 뭐가 있을까 고민했죠. 왜 남을 배려하지 않는 거친 말과 행동을 보이는 걸까? 오히려 누구보다 약하고, 외롭고, 상처받길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닐까?”




빛과 그림자 같은 인물의 양면을 자연스레 포착해 내는 그의 연기는 단순히 타고난 아우라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다. <마이 버킷리스트> 홍보팀은 그에 대해 ‘주변을 괴롭히는 스타일’이라는 고발 아닌 고발을 해왔다. 철저한 대본 분석을 바탕으로 질문을 퍼붓는 그 때문에 스태프들도 어물쩍 넘어가지 못하고 함께 공부해야 했다는 것. 같은 역할의 이지호와는 밤마다 전화상으로 캐릭터에 대해 논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는 매 공연 콜 시간보다 일찍 나와 상대역 김성철과 디테일을 맞춰 나가는 중이다. 작년 11월 초연에 이어 두 번째로 작품에 참여한 만큼 캐릭터를 완성하고 싶은 욕심과 책임감이 크다는 것이 주민진의 고백이다. “매회 고민의 결과를 반영해서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드릴 계획이에요. 저 때문에 고생하신 연출님께는 정말 죄송합니다. 조금이라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을 때마다 ‘왜죠?’ 하고 물고 늘어졌더니 이젠 아예 절 피해 다니시는 것 같아요. (웃음)”

주민진이 뮤지컬 무대에 데뷔한 것은 2006년. 하지만 배우가 된 건 엄밀히 말해 초등학생 때 일이다. 좋아했던 TV 재연 프로그램에 보낸 일반인 출연자 지원 엽서가 덜컥 뽑힌 게 시작이었다. “얼결에 불려 가서 촬영을 마쳤는데, PD님이 절 보고 ‘똘망똘망하니 배우 수업을 받아보라’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난 배우로 태어났다는 착각에 빠졌죠. (웃음)” 그는 5년간 각종 영화와 방송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된 후에는 연기를 접고 춤에 빠져 살았다. 다시 배우로 고개를 돌린 것은 연기와 춤, 노래를 함께할 수 있는 뮤지컬 무대를 발견하고부터다. “공익 근무를 하고 있을 때, 지인 한 분이 제가 좋아할 것 같다며 뮤지컬 작품을 소개해 주셨어요. 처음 본 게 <지킬 앤 하이드> 공연 영상인데, 헉! 진짜 재밌는 거예요! 그 길로 다짜고짜 뮤지컬 아카데미를 찾아갔죠. 1년 동안 저녁마다 수업을 듣다가, 운 좋게도 공익 근무가 끝나자마자 작품을 맡게 됐어요.”


운이 따르고 승승장구가 계속되자 자신도 모르게 우쭐해졌다. 하지만 그에게도 좌절의 순간은 찾아왔다. “그때까진 제가 정말 타고난 줄 알았어요. 이 정도면 뭐라도 하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렇게 4~5년 활동하다 스물여섯 살 무렵인가, 지원하는 오디션마다 죄 떨어지는 거예요.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만둘 생각까지 했어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학교나 학원에서 오랜 기간 훈련받은 친구들에 비해 저는 정식으로 배운 기간이 너무 짧더라고요. 욕심을 내서 다시 공부를 하자 마음먹었죠. 진짜 연기의 재미를 알게 된 건 그때부터였어요.”


배우로 사는 한 공부를 계속하리라 마음먹었다는 그는 실제로 동료 배우 신성민, 임철수, 최성원, 박해수, 이준혁과 ‘하고 싶다’라는 배우 집단을 만들어 매주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다. 벌써 1년 반 넘게 계속해 온 스터디다. “거창한 건 아니지만 모여서 연기 관련 책도 읽고, 강사를 초빙해 신체 훈련도 받고 있어요. 이번 주에는 <마이 버킷리스트> 대본을 함께 읽었는데, 각자 다른 관점에서 제가 못 보던 걸 짚어주니까 도움이 되더라고요. 무엇보다 공연을 하면서 힘들 때 서로 고민을 나누고 위로할 수 있는 모임이 있다는 게 좋아요.”


주민진은 요즘 대학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 중 한 명이다. 3월부터 뮤지컬 창작진을 주인공으로 한 토크 콘서트 <투 가이즈 쇼>의 MC로 활약 중이고, 5월에는 차기작인 연극 <그날의 시선>에도 출연한다. <극적인 하룻밤> 이후 두 번째 연극 도전이다. “연극도 꾸준히 하고 싶었는데 그동안 마땅한 작품을 찾지 못했어요. <그날의 시선>의 경우 감사하게도 먼저 제안이 왔고, 작품도 욕심이 났기 때문에 참여를 결정했죠. 제가 맡은 김도준이라는 캐릭터는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이에요. 이전처럼 쉽게 이해되는 캐릭터는 아닌데, 그만큼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열심히 작전을 짜고 있어요.”


뮤지컬 바깥까지 경계를 넓히며 쉬지 않고 무대에 오르는 그에게도 여전히 무대는 떨리는 공간이다. “무대 뒤에서 정말 많이 떨어요. 스태프를 붙잡고 ‘내가 이 직업을 왜 선택했지?’ 하소연할 정도로요. (웃음) 연습 때도 종종 ‘내가 감히 이걸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하죠. 특히 좋은 배우를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그게 좋은 배우를 향한 제 욕심이고, 그런 지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더 노력하는 것도 사실이에요.” 빛나는 무대 뒤에 보이지 않는 치열함의 시간이 있다는 것은 이 바닥에선 흔한 진실이다. 하지만 그 뻔한 진실이 왠지 뻔하지 않게 들렸던 건, 역시 그 말을 하면서 그가 지어 보인 미소 때문일 게다. 쓴 것을 삼키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씩 웃어 보이는, 그 미소가 지닌 역설적인 진실성 말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0호 2015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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