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은 나에게서부터
<팬텀>으로 첫 타이틀롤을 맡은 카이는 배우로 보여줬던 영역을 확장하며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만난 카이식 유머를 향한 반응도 좋다. 7월에는 <아리랑>에서 악역에도 도전한다.
이런 광폭 행보 덕분인지 여느 때 이상으로 라이브 토크의 열기도 뜨거웠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기에 더 행복해 보이는 카이가 전하는 못다 한 이야기.
타이틀롤의 무게
THE MUSICAL 처음 대극장 주연을 맡은 소감이 궁금해요.
카이 감격적입니다!
“배우들 각자의 활동 무대는 달랐지만 정말 멋진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어서 감사한 일이었어요. 살아있는 전설 류정한 형님과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 (박)효신이와 같은 역을 맡을 수 있다는 것도요. 아직 신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아요. 많은 기대와 부담을 안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나만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떤 관객이라도 인정해 주지 않을까, 다르게 봐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THE MUSICAL 그동안 신사적이고 귀족적인 캐릭터를 해왔는데 <팬텀>의 ‘에릭’은 상처가 많고 어두운 캐릭터잖아요. 어떻게 캐릭터에 접근했는지 궁금합니다. (reimy6724)
카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상처가 있으니 저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본 것뿐입니다.
“저는 4년 동안 고작 네다섯 작품을 했을 뿐이에요. 아직도 제가 성장 중이라 생각해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할 시간도, 역할도 많으니까 많이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팬텀’은 (했던 역할들과) 다른 캐릭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감정의 폭이 넓어졌지만 캐릭터 자체가 난폭하거나 악랄하진 않거든요. 그래서 내면의 상처를 꺼내는 데 주력했어요. 저는 기본적으로는 제 자신에서부터 출발했어요. 세 명이 구별될 수 있는 방법도 동시에 생각해 보고요. 제가 연기하는 팬텀은 나약한 인물인 것 같아요. 가련하고 불쌍하고 버려진 인물이라는 데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런 모습들이 많이 보였으면 좋겠어요.”
THE MUSICAL <팬텀> 첫 공연에서 가면이 부서졌잖아요.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tethys1110)
카이 그 순간이 열흘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도 왜 그렇게 대처했는지 모르겠어요. 딱 한 번 거울 보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연습을 한 적이 있었어요. 무의식적으로 그 행동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배는 후진이 안 돼서 자칫하면 설 수 있을 거라는 약간의 걱정은 모든 팬텀들이 갖고 있었지만, 가면이 부서질 거란 생각은 아무도 못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예상치 못한, 그것도 절정의 순간에 부서져서 순간 당혹스러웠어요. ‘밖으로 나가야 하나,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본능적으로 한 것 같아요. 집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다가 가면이 없어서 손으로 가리고 제 눈을 바라본 적이 한 번 있었어요. 아마 그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나온 게 아닐까 해요.”
THE MUSICAL 팬텀으로 열연 중인데 세 팬텀 중 카이 팬텀만의 매력이 있다면 뭔가요? (aen1004)
카이 로맨틱. 성공적.
THE MUSICAL <팬텀>에서 김순영 씨와의 어울림이 다른 커플보다 높게 나온 기사를 봤는데요. 둘의 호흡에 대해 한 말씀 해준다면? (eeekteen)
카이 저의 뮤지컬 데뷔 무대가 생각나 순영 누나에게 힘을 보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지금은 제가 더 힘을 받고 있네요. 놀라운 배우입니다.
“김순영 누나랑만 무대에 올라본 상태라 다른 두 배우는 아직 낯설어요. 임혜영 배우는 워낙 무대 경험이 많고 <두 도시 이야기> 때 뮤지컬 첫 케미스트리 연기를 할 때 많이 도움받아서 편해요. 그것도 배우의 능력 같아요. 선혜 누나는 징그럽도록 똑똑해요. 한 번 얘기하면 다 알아듣거든요. 마이크를 착용하고 연기하고 노래하는 게 약간 어색할 수도 있을 텐데 잘 해내고 계시고. 유럽 공연 일정 때문에 연습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동선을 빠짐없이 체크하셨더라고요. ‘저런 모습이 디바구나’ 하면서 감탄했어요.”
카이표 애드리브
THE MUSICAL <팬텀> 대사 중 크리스틴과 피크닉 갈 때 했던 재미있는 대사들은 카이 팬텀만의 애드리브인가요? 공연 보면서 많이 웃고 감동받았어요. (plusluck)
카이 네. 잠을 설치며 연구 중입니다. 비밀인데 애드리브 연구하느라 공연이 적은 거예요.
“연출님께서 마지막 격정적인 결말로 치닫기 전에 잠깐 쉬어 가는 템포를 주는 부분이 피크닉 장면이니 편하고 자유롭게 연기하라고 하셨어요. 극의 흐름이 깨지지 않는 선에서 결말을 보기 전 관객들이 실컷 웃을 수 있도록 잠깐의 포인트를 주고 싶었어요. 항상 노트를 들고 다니는데 거기에 정말 여러 가지를 적어봤죠. ‘이렇게 하면 재밌을까? 이렇게 하면 과한가?’ 하면서요. 진짜 ‘개콘’만큼 웃기더라도 극이 깨질 것 같은 요소는 피했고요.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면 부담이 크기 때문에 조금씩 하고 있어요.”
THE MUSICAL 보기와 다르게(?) 개그감이 가득한 것 같습니다. 피크닉 장면 애드리브도 그렇고요. (특히 시조새!) 개그 본능의 원천은 어디인지 궁금해요. 크크. (tethys1110)
카이 책으로 배웠습니다.
“휴 그랜트나 다니엘 헤니처럼 여유 넘치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좋아해요. 긴장하는 모습이 전혀 느껴지지 않잖아요. 미국은 대통령도 유머를 던지잖아요. 그런 차원에서 유머라는 건 삶의 굉장한 원천 같아요. 저는 나름대로 유머를 항상 시도하는데 코드가 남다를 때가 있나 봐요.(웃음) 무대에서도 그런 걸 좋아하고요. 아마 이런 제 모습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가 시도하는 유머들을 더 재미있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
THE MUSICAL 배를 움켜잡다가 팔짱 끼고 싶다고 한 건 즉흥인가요? 아니면 미리 준비한 건지요. (wldnjsekekd)
카이 아니요. 김순영 배우에게 철저히 교육을 시켰습니다.
“팬텀은 크리스틴과 가까운 사이가 아닌 데다 누군가와 스킨십을 해본 적도 없기 때문에 스킨십을 하는 게 두려워요. 농담 삼아 연애를 책으로 배웠다고 했는데, 연애 경험도 없고 미모의 여자를 본 적도 없이 냄새나고 어두운 지하에서만 살았으니 얼마나 떨리겠어요. 제 느낌에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능숙할 것 같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피크닉 장면에서 “아, 팔짱 끼고 싶다”란 애드리브를 했는데 관객들이 굉장히 웃으시더라고요. 괜찮겠다 싶어서 순영이 누나한테 다음 공연 시작 전에 “또 하면 재미없으니까 내가 좀 생각해 봤거든? 이렇게 할 거야”라면서 어떻게 할지 설명했더니 누나가 웃으면서 “알았어. 해줄게” 해서 연습을 시켰죠. 단, 아무리 애드리브라도 상대가 모르는 걸 하면 안 돼요. 사전에 철저히 약속하고 하죠.”
뮤지컬로 잇는 끈
THE MUSICAL 뮤지컬 <아리랑>을 통해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하게 되었는데 어떤 양치성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나쁜 놈(?)이 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smj0922)
카이 악역이긴 하나 결국 카이입니다.
“양치성이 일제 앞잡이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악역이란 말을 쓸 수밖에 없지만 시대적 상황에서 볼 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거든요. 전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요. 중요한 점은 악역을 위한 악역은 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저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강한 척, 센 척하는 건 악역이라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러다 보면 ‘팬텀’ 역과 똑같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전 악역은 동기가 설득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설득은 휴머니즘과 감성에서 오기 때문에 (제가 연기하는 양치성은) 감성 악역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양치성이란 인물 이전에 카이고, 정기열이란 사람이기 때문에 선과 악의 대립보다는 감정의 표현이 넓어지는 게 양치성의 역할이 아닐까 해요. 그렇게 따지면 팬텀도 진짜 나쁜 사람이거든요. 다 죽이잖아요. 하지만 팬텀은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듯이 양치성에게도 그것이 제일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THE MUSICAL 류정한 배우와는 작품도 여럿 같이하고 인연이 많이 있는 걸로 아는데 어떤 선배인지 질문해도 될까요? (albatross464)
카이 건승정한인가요?^^ 에릭 같은 인물입니다.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마세요.^^
“제가 정한이 형을 참 좋아하는 건 맞는데 정한이 형과 자주 어울리는 분들과는 조금 다른 경우예요. 내성적이진 않지만 낯을 조금 가리고 술, 담배도 안 하거든요. 정한이 형이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는 성향은 아닌데 <두 도시 이야기>로 처음 같은 작품 하면서부터 그런 저의 면을 잘 이해해서 그런지 굉장히 따뜻했어요. 당시 회사 없이 일했는데 저한테 방향성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해 주시고 경험을 많이 들려주시더라고요. 조언을 많이 구했어요. 커리어를 많이 쌓아둔 상태가 아닌 상황에서 지금 소속사로 오게 된 것도 정한이 형 덕분이에요.”
THE MUSICAL <드라큘라> 마지막 공연 때 앞으로 더 이상은 웃통을 까지 않겠다고 선포해서 많은 팬들의 원성을 받았는데요. 완벽한 복근은 아직도 잘 유지 중인가요? (enchanted)
카이 겸손해졌습니다.
다양한 색깔로 만나는 음악
THE MUSICAL 팝페라 가수, 뮤지컬 배우, 라디오DJ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데 각각의 매력을 한 가지씩만 꼽는다면? (reno)
카이 엄마가 좋니 아빠가 좋니^^
“활동하는 분야가 다른 장르라고 해도 개인적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표현하는 창구가 다를 뿐인 거예요. 지금은 클래식을 하고 있고, 이번엔 뮤지컬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임선혜 누나도 그런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요. 좋은 음악 하고 열정적인 관객들 만나고 싶고, 재능 많은 배우들과 함께하고 싶어서 하는 활동들인 거죠.”
THE MUSICAL 뮤지컬도 멋지지만 클래식 공연에서도 만나고 싶어요. 오페라에는 관심 없나요? 정말 좋아하는 작품은 어떤 것이 있나요? (plusluck)
카이 한 가지를 꼽을 수는 없지만 ‘푸치니’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중 <라보엠>, <나비부인>을 특히 좋아하고요.
“푸치니는 바그너 다음으로 가장 대중성 있는 선율과 스토리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뮤지컬로 각색된 것도 굉장히 많죠. <나비부인>은 <미스 사이공>이 됐고, <라보엠>은 <렌트>가 됐고. 푸치니의 화성과 감수성이 저한테는 굉장히 큰 감동을 안겨주는 것 같아요. 가장 뮤지컬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오페라이기도 하고요.”
THE MUSICAL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크리스틴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장면 때문인지 ‘음대 오빠’ 같다는 후기도 있었는데 나중에라도 교단에 설 생각은 없는지? (reimy6724)
카이 저의 꿈은 교단에 서는 것입니다. 제가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던 시절 그 누구도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 없었거든요.
“대학생 시절 클래식 마니아였지만 오페라 가수나 성악가가 되고 싶진 않았어요. 그땐 팝페라란 단어도 없었고 뮤지컬도 2001년 <오페라의 유령> 초연 이후에나 붐이 생겼기 때문에 확 와 닿지 않았고요. 그래서 고민이 많았어요. ‘다음’ 계정 있는 사람도 많지 않던 시절 나름 조사를 하다 알게 된 정한이 형 이메일로 일면식도 없는데 메일을 보냈어요. “나도 너처럼 그런 고민을 할 때가 있었지. 언젠가 만나게 되길 바란다”라고 답을 받았던 추억이 있는데 그만큼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착오도 많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서울대 성악과라도 성악가가 되고 싶지 않다는 후배들은 많은데 뮤지컬을 하려 해도, 팝페라를 하려 해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교단에 서고 싶은 것도 명예보다 그들의 능력을 적재적소에 쓸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예요. 경영학과만 해도 교수님 각각의 전문 분야는 다 다르잖아요. 그런데 성악과는 성악 하나예요. 발성을 봐줄 수는 있지만 상황에 맞게 인도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죠. 성악 전공자가 뮤지컬을 하는 경우는 늘고 있고요. 정말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배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는 꿈을 갖고 있어요.
카이이자 정기열
THE MUSICAL 여행 다니는 거 좋아하나요? 다녀왔던 곳 중 가장 좋았던, 추천해 주고 싶은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jsm543)
카이 좋았던 여행지는 담양을 추천하고 싶어요. 소쇄원을 걷기에 딱 좋은 때인 것 같아요.
“저는 여행을 참 많이 가요. 매니저한테 거짓말하고 가기도 할 정도예요.(웃음) 모차르트, 슈베르트 할 것 없이 모든 예술가들에게는 여행이 필수라고 생각해요. 정서 순환이 필요하거든요. 담양은 특히 제가 좋아하는 곳이에요. 소쇄원은 “잠시 휴대폰을 꺼주셔도 좋습니다.” 광고에 나왔던 대나무 숲인데 바람에 부딪히는 풀 소리가 사람을 겸허하게 만들어요.”
THE MUSICAL 이상형도 궁금합니다. 2010년도 이상형에서 달라졌나요? (wldnsekekd)
카이 2010년 이상형이 뭐였나요? 매일 바뀌어서요. 하하.
“저는 딱히 이상형이 없어요. 돌이켜 보면 참 다른 사람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확실히 나의 노래와 무대를 사랑해 주고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건 공통된 성향 같아요.”
THE MUSICAL 눈웃음이 참 매력적인 것 같아요. 스스로 생각하는 본인의 매력 포인트는 뭔가요? (albatross464)
카이 카블리^^ 죽었다 깨도 나쁜 남자는 못됩니다.
THE MUSICAL 인생에서 이것만은 꼭 지킨다 하는 철칙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reno)
카이 자신만을 위해 살진 않으려고 합니다. 무대에서든 삶에서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1호 2015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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