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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INTERVIEW] 공연 유목민 이상훈 [No.143]

글 |박병성 사진제공 |이상훈 2015-09-01 6,761





건축 디자이너, 여행가, 공연 전문가, 수집가, 문화 기획자. 이상훈에게 정확한 타이틀을 붙이기는 어렵다. 그는 자신의 아지트 ‘더 뮤지컬’과 ‘더 클래식’을 손수 디자인한 건축디자이너면서, 일 년 중 반은 해외를 떠도는 여행가이며, 그 여행이 대부분 클래식이나 오페라를 보기 위한 여행인 공연 전문가이자, 두 아지트가 공연 관련 자료로 빼곡히 들어차 있을 정도로 대단한 양의 공연 자료를 소유한 수집가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부산의 젊은이들과 결성한 ‘클럽 석포로’ 멤버들과 자신의 아지트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비정기적으로 하우스 콘서트를 여는 기획자이기도 하다. 그가 다음 호부터 본지에 ‘이상훈의 세계의 공연장’이란 꼭지를 책임지게 된다. 연재에 앞서 세계의 도시를 누비는 이상훈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취미를 직업으로
그와의 일정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다. 7월 초 토호 <레 미제라블> 30주년 공연을 보기 위해 후쿠오카에 다녀온 그는 16일 스위스 베르비에(Verbier)와 그슈타트(Gstaad)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를 보기 위해 다시 출국했다. 이번 여행은 파리를 시작으로 라인 강 북부 지역 바젤까지 이동하면서 10여 곳의 미술관에 들르고,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를 보고, 이후 토리노의 레지오 극장(Teatro Regio)을 거쳐 베로나 오페라 축제에도 참가하고, 오스트리아에서 열리는 유명한 브레겐츠 페스티벌에서 오페라를 보고 오는 일정으로 잡혀있다 . 8월 초까지 보름이 넘는 동안 유럽 일대를 돌며 유명 축제에 참가하고 공연을 본다.

아마 국내에서 이상훈만큼 세계 클래식 공연을 많이 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지난해에는 일 년에 반 이상을 해외에서 공연을 보고 다녔다. 1월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 신년 음악회를 시작으로 거의 매달 유럽을 오갔고, 7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약 100일 동안 유럽의 축제와 공연을 쫓아다녔다. 작년 한 해만 160여 도시를 돌며 80회가량의 공연을 관람했다.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할까? 이런 삶이 가능한 것은 그가 이것을 직업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20대 후반 자그마한 건축디자인 회사를 운영했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했어요. 재기를 노리면서 밑천 없이 경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가 공연 여행이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당시만 해도 공연 관람을 목적으로 한 여행 상품이 없었거든요.” 그는 한때 공연 동호회 운영자로 방학 때면 회원들과 해외 공연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취미를 직업으로 만든 것이다. 2010년 시작할 때만 해도 암담했다. 5~6명 정도는 되어야 어느 정도 수지를 맞출 수 있는데 첫 프로그램에 단 한 명의 고객이 신청했다. 신뢰를 쌓기 위해선 손해를 감수하면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벌써 5년이 흘렀다. 이제는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며 여행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아지트 ‘더 뮤지컬’, ‘더 클래식’

부산 문화회관으로 통하는 평범한 주택가 골목길에 주변 건물들과 어울리지 않는 유럽의 한적한 카페 느낌을 주는 두 개의 공간이 마주보고 있다. 온통 주황색으로 둘러싸인 왼편이 ‘더 뮤지컬’이고, 그린 컬러를 기본 색으로 인테리어 된 오른쪽 공간이 ‘더 클래식’이다. 이 두 공간은 이상훈이 직접 인테리어 한 곳이다. 대학에서 건축디자인을 전공하고 한때 건축디자인 회사를 운영한 경력답게 아지트 공간을 세련되게 꾸몄다. 더 놀라운 것은 원래 그 장소가 순댓국 집과 연탄 판매하던 곳이라는 사실이다. 다락방이 있는 2층 구조를 천장이 높은 공간으로 개조해 근처에서 보기 드문 문화의 장소로 만들었다. 지나던 이들이 카페인 줄 알고 종종 들어오기도 한다. 그런 분들과 커피를 나누며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담소를 나누는 것도 그의 큰 즐거움이다.

이런 아지트를 만든 이유는 분명했다. 보기에는 세련된 문화 공간이나 전시회를 해도 좋을 미술관 같지만 용도만 놓고 본다면 그에게는 ‘창고’다. “처음 뮤지컬을 본 것이 1991년 롯데월드 예술극장에서 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였어요. 그때부터 모아왔던 프로그램이나 음반, 포스터, 악보가 늘어나서 더 이상 보관하기 힘든 수준이 된 거예요. 결국 보관할 창고를 찾다가 ‘더 뮤지컬’을 만들었고, 세계를 돌며 수집한 클래식 자료들을 보관하다 보니 맞은편에 ‘더 클래식’을 만들게 됐죠.” 주황색을 기본 컬러로 한 ‘더 뮤지컬’에는 다양한 뮤지컬 포스터와 DVD, CD, 캐릭터 상품 등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몇 해 전 DIMF 에서는 그의 물품으로만 뮤지컬 전시회를 열었을 정도로 그가 소유한 양은 엄청나다. 그린 컬러의 ‘더 클래식’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유럽 전도 위에 촘촘히 자리한 마그네틱이다. 방문한 도시마다 마그네틱을 사 와서 해당 나라에 붙여놓았는데, 벽면의 유럽 전도 역시 그가 직접 제작한 것이다.
용도는 ‘창고’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전시회나 카페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부산 지역의 음악, 미술, 공연을 좋아하는 또래의 친구들과 ‘클럽 석포로’(카페가 위치한 곳이 석포로 126번길이다)를 결성하고 미술사 스터디를 하거나, 비정기적으로 하우스 콘서트를 개최한다. 피아니스트 표세구, 플루티스트 정세린, 국립국악원 연주자들의 작은 콘서트가 이루어졌다. 부산 문화회관에서 공연했던 뮤지컬 배우 최정원과 문종원도 이곳에 들러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그는 문화와 다량의 전문 자료가 있는 이곳이 지금은 사라진 런던의 ‘드레스 서클’처럼 뮤지컬과 클래식의 전문 뮤지엄이 되기를 바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3호 2015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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