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유효한 복음,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
<맨 오브 라만차>의 연출가 데이비드 스완과 음악감독 김문정은 인터뷰 내내 작품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자신들이 만든 작품이면서 서로에게 참 잘했다는 칭찬을 스스럼없이 주고받았다.
<맨 오브 라만차> 한국 공연은 전 세계 어느 프로덕션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원작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현대적으로 드러냈으며, 또 그것을 배우들이 잘 표현해 주었다.
10년 동안 긍정적인 마인드의 복음을 전파해 온 한국 프로덕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0년 전 역사적인 시작
<맨 오브 라만차>는 한국에서 연출한 두 번째 작품이다. 처음 제안받았을 때는 망설였다고 들었다.
데이비드 스완(이하 데이비드) 미국에서 이 작품을 두 번 정도 다른 프로덕션으로 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감동을 받지 못했다. <맨 오브 라만차>는 잘 만들기 어려운 작품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망설였는데 대본을 받아 읽어보니 내가 본 공연하고 많이 다르더라. ‘작품의 심장’을 봤달까. 거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의 매력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만들 때 핵심적인 한 문장을 찾는다고 들었다. 이 작품의 핵심적인 한 문장은 무엇이었나?
데이비드 “내가 원하는 대로 보기 시작하면 세상을 그렇게 바꿔갈 수 있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전하는 작품들은 많다. 그러나 이 작품은 쓰레기 더미에서도 아름다움을 보고 시체 더미에서도 희망을 찾는 그런 작품이다.
원작 『돈키호테』는 연극이나 오페라, 무용 등 다양한 장르로 만들어졌다. 뮤지컬에서는 독특하게 세르반테스를 등장시킨다.
데이비드 돈키호테는 환상 속의 인물이지만 세르반테스가 등장해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졌다. 세르반테스의 삶은 매우 어려웠다. 생계를 위해 세금을 거두러 다녔고, 군인이 됐고, 노예로도 잡혔다. 노예 시절 “우리가 왜 죽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왜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죽어가는 동료의 눈빛을 봤다. 우리 작품에도 이 경험이 반영됐다(여죄수가 잡혀가고 카라스코의 질문에 세르반테스가 미친 세상에 제정신을 지니고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는 장면). 그것을 본 순간 세르반테스도 처음으로 삶의 가치와 목표를 찾아가게 된 게 아닌가 싶다.
김문정 감독은 처음 제안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김문정 처음 제안받고 앉은 자리에서 대본을 다 봤다. 그 자리에서 대본을 다 본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흡인력이 무척 좋은 작품이었다. 고민은 플라멩코였다. 피아졸라 음악이나 그런 스타일의 음악을 듣는 걸 좋아했지만, 그 음악을 전달해야 하는 입장이 되니까 부담감이 생기고 잘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세르반테스의 이야기이기 때문인지 스페인풍의 음악이 기조를 이룬다. 악기 구성도 다를 것 같다.
김문정 보통 오케스트라라고 하면 현악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현악기와 피아노가 없다. 기타 두 대와 목관 악기, 브라스 악기, 퍼커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은 퍼커션 연주자를 두 명 정도 기용하는데 우리는 세 명을 써서 퍼커션을 강조했다. 피아노가 부드럽게 분위기를 이끌어갈 수도 있고 현악기가 있으면 아무래도 정서를 강조하게 되는데, 기타와 관악기로 구성되어서 음악이 열정적이고 쭉쭉 뻗어나가면서 웅장한 느낌을 준다. 플라멩코는 변박 위주의 음악이다. 두 마디의 변박이 한 패턴을 이뤄서 우리나라의 장단 같은 느낌을 준다. ‘이룰 수 없는 꿈’ 같은 곡을 보면 반복되는 리듬이 뜨겁고 열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혼같이 조용한 악기 소리가 그것을 감싸 안는다. 혼란한 세상을 살아가는 돈키호테의 정신을 느끼게 한다. 음악적인 대비를 강하게 주어서 메시지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현실과 이상의 대비가 분명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극 중에서 알돈자가 윤간 당하는 장면을 매우 거칠게 표현했다.
김문정 초연 때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거북해하자 데이비드가 이들을 모아놓고 얘기한 적이 있다. “이 작품은 현실과 이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현실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보여줄수록 돈키호테가 말하는 이상이 부각될 것이다”라고. 결국 데이비드가 옳았다.
데이비드 이 장면을 연습하고 나서 통역이 내 얼굴을 제대로 못 쳐다보더라. 아무래도 동양이니까 좀 더 예민하게 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극에서 벗어날 정도로 충격을 주는 방식은 싸구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여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물어보았는데 굉장히 거슬리고 충격적이긴 하지만 극을 위해 필요한 것 같다는 대답을 얻었다. 긍정적인 대답에 밀어붙일 수 있었다.
김문정 굉장히 침울한 장면인데, 실제 만드는 입장에서는 좀 다르다. 윤간하는 장면을 음악에 맞춰 연기해야 하다 보니까, 몇 마디에서 누가 끝내야 하고, 굉장히 계산적이다. 마디를 놓치면 안 한 사람이 생기게 되고 엉망이 된다. 그래서 ‘다음 누구야’, ‘아직 안 한 사람’ 뭐 이런 말을 하게 된다.
현실과 이상, 피할 수 없는 선택
현실과 이상을 다루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돈키호테처럼 무조건 이상을 따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어서 더 감동을 준다.
데이비드 “세상을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보면,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이 작품의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다(See)’, ‘만들다(Make)’란 단어를 쓴다. 삶이 현실과 이상으로 명백히 나뉠 수는 없다. 어디에 집중해서 보느냐에 달린 것이다. 현실에 집착하면 현실의 노예가 되는 거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 단어를 더 꼽는다면 ‘돕는다(Help)’라는 단어다. 억지로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 이 세상의 한 사람부터 숭고하고 정의로운 일을 하기 시작하면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된다. 관객들도 이 공연을 통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맨 마지막 피날레 장면이 떠오른다.
데이비드 왜 그 장면이 떠올랐는지 알겠다. 세르반테스가 죄수들에게 ‘자발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겠니?’ 질문하는 양 그렇게 떠난다. 그 전에 돈키호테 죽음 장면부터 이런 의도들이 드러난다. 돈키호테가 주었던 행복감을 다시 느끼고 싶어 찾아온 알돈자에게 세르반테스는 알돈자가 스스로 ‘둘시네아’라고 말하고 ‘이룰 수 없는 꿈’을 부르게 만든다.
다른 배우들은 그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조정은이 알돈자를 할 때, 그 장면에서 ‘둘시네아’라는 말을 굉장히 떨면서 하더라. 그때 아! 알돈자가 이제껏 자신을 ‘둘시네아’라고 부른 적이 없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데이비드 알돈자 역을 맡은 배우들을 연습시킬 때 항상 하는 말이, 알돈자가 돈키호테에게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의 이름을 잘못 불러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체성의 문제라는 말을 항상 한다. “인간들이 모두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이듯 알돈자 너도 소중한 존재”라는 걸 돈키호테는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죽음 장면에서 알돈자가 ‘둘시네아’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녀의 정체성을 찾는 순간이다.
하나가 둘이 되고, 셋이 된다는 말에서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던 것은 세르반테스가 떠나려 할 때 돈키호테가 부르던 ‘이룰 수 없는 꿈’을 알돈자와 산초가 부르고 나중에 죄수들이 합창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뮤지컬에 훌륭한 마무리가 많지만 이렇게 훌륭한 마무리는 없는 것 같다. 떠나는 세르반테스를 보고 합창하는 순간까지 배우들이 진솔하게 해주었다면 관객들이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김문정 유일하게 전체 배우가 합창을 하는 장면이다. 딱 이 장면밖에 없다. 그런데 배우들이 뒤돌아서 노래를 한다. 음악적으로도 놓치지 않아야 하니까 배우들이 앞을 보고 노래하면 안 되느냐고 했는데, 데이비드가 이 부분은 뒤를 보면서 끝내고 싶다며, 나에게 방법을 찾아달라고 했다. 그래서 초연 때는 중간에 있는 배우가 신호를 하면 거기에 맞춰 연주를 하고 다른 배우들은 그 배우의 호흡에 맞춰 노래를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약속 없이도 한마음이 되어 잘 맞춘다. 유일하게 허공에 대고 지휘를 하는 순간이다.
극중극 구조를 띠고 있는데, 연극 놀이를 하듯 연출했다. 극중극 장면이 어떻게 보이기를 바랐나?
데이비드 잘 쓰인 대본은 연출의 가장 좋은 친구다. 세르반테스가 감옥에서 죄수들과 연극을 만들면서 인생에서 배워야 할 것을 연기로 배우게 한다. 극중극을 천재적으로 활용하는데 극중극에서 어두운 장면이 전개되는 순간, 세르반테스에게도 힘겨운 시간이 찾아온다. 알돈자가 윤간을 당하는 장면 뒤에 세르반테스가 종교재판에 끌려갈까 봐 두려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뮤지컬이나 코미디에서는 우리 작품은 이런 작품이라고 알 수 있는 내용을 처음 부분에 넣는다. 극중극 장면에서도 처음 연기를 하는 죄수들이 과도한 연기를 하다가 점점 연기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느낄 수 있도록 처음에는 오버 연기를 한다. 차츰 진지해져 2막에는 더 극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연출했다.
현실에서 상상의 공간으로 들어갈 때는 ‘나는 나, 돈키호테’라는 곡이 나온다. 일종의 현실에서 극중극으로 들어가는 키와 같은 구실을 한다.
데이비드 세상이 미쳐 돌아갈 때 제정신으로 사는 것이 미친 것인지, 아니면 불가능할 꿈일지라도 찾아가는 것이 미친 것인지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에서도 열정적으로 말하다가 ‘돈키호테’를 부른다. 노래 앞부분 ‘나는 나 돈키호테’를 알론조 키하나가 아니라 세르반테스의 젊은 목소리로 노래하도록 주문했다. 배우에 따라 다른데 조승우는 젊은 세르반테스와 알론조 키하나 영감의 목소리 차이가 명확해서 이 부분의 효과가 잘 드러난다.
김문정 음악성을 고집하기 힘든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이 그렇다. ‘이룰 수 없는 꿈’도 데이비드는 말하듯 하다 노래로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말하듯이 하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노래로 이어진다. 이 작품은 음악에서 풍부한 성량을 보여준다거나 가창력을 기대하기보다는 내용 전달을 어떻게 하느냐가 포인트인 것 같다. ‘알돈자’는 강간을 당한 후에 부르는 노래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나중에는 배우의 감정이 폭발해서 목이 망가져 남은 공연에 지장을 줄 지경까지 간다. 그래서 오히려 이 노래 같은 경우는 감정을 눌러주어야 한다. 이 작품은 박자나 리듬, 음악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포기하고 가야 한다.
한국 프로덕션의 현실과 이상
현실과 이상의 대비를 주는 작품이라는 점과 극 중 이야기가 실시간으로 전개되는 방식이 잘 어울린다. 원작은 원래 인터미션이 없다. 국내에서는 공연 문화 정서상 인터미션을 넣었다.
데이비드 여전히 나는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이룰 수 없는 꿈’을 부르고, 알돈자가 “한 번만이라도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하는 대사로 연결될 때 감동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인터미션이 없으면 2시간 20분 정도 러닝타임이 나올 것이다. 현재 관객들에게는 너무 긴 시간이다. 이 작품을 처음 올렸을 때 관객들이 주로 봤던 작품은 <맘마미아!>나 <그리스>처럼 가볍고 대중적인 쇼였다. 진지한 작품을 인터미션 없이 진행하는 것에 대한 제작사의 걱정이 있었다. 요즘은 관객들이 진지한 드라마의 뮤지컬도 많이 선호하니까 인터미션 없이 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
김문정 처음 2일 정도는 인터미션 없이 공연했다. 그런데 중간에 나가는 사람들이 생기더라. 그래서 어디에 인터미션을 넣어야 할까 고민하다, 윤간 장면이 끝나는 지점에 인터미션을 넣었다. 다음 장면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야 하니까 그런 결정을 했는데, 1막이 끝나고 화장실에서 나눌 이야기가 필요한데 그 장면은 아니었다
데이비드 확실히 기억난다. 내가 정말 잘못했다. 쉬는 시간에 기운이 너무 가라앉아 있더라. 그런 기분으로 쉬는 시간을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룰 수 없는 꿈’ 장면에서 나뉘게 된 것이다. 이 노래를 한 번 더 하는 일이 있더라도.
관객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장면 중 하나는 해바라기 장면이다. 무어인들에게 강탈당하는 장면이지만 그런 내용보다 어두운 지하 감옥과 대조되는 이상적인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는다.
데이비드 돈키호테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다. 무어인들은 질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돈키호테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전 장면이 알돈자가 강간을 당하는 장면이었기 때문에 연출적으로 어두운 기운에서 밝은 기운으로 전환해 줄 필요가 있었다. 극 중 장소들이 지하 감옥이나 여관밖에 없다. 극중극도 어두운 곳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밝은 색감이 있는 장면으로 한번쯤은 관객들의 마음을 덜어주고 싶었다.
김문정 어떤 시즌에서는 이 장면을 볼 때 유혹은 언제나 달콤하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살아가면서 각자 처한 상황에 맞게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50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작품의 음악은 원래 뮤지컬 음악이 다소 올드한 느낌을 주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의 시간성을 느끼지는 못한다.
김문정 난 비교적 올드하다는 느낌을 받긴 한다. 넘버들이 길지 않고 테마도 AABA 하는 식으로 진행되어서 고풍스러운 느낌을 받는다. 보통 멜로디들이 여러 번 들어야 세뇌가 되는데 옛날 노래는 친근해서 한 번 들으면 익숙해지는 넘버들이 많다. 노래들이 강렬한 멜로디로 포인트만 짚어주지 않나. 그렇게 넘버가 많지 않은데도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요소가 있다.
지금 관객들의 감각에 맞추기 위해 음악적으로 수정한 것이 있는가?
김문정 템포 조절을 가장 많이 했다. 영화를 보면 알돈자 노래가 굉장히 느리다. 여러 프로덕션에서 작업한 자료가 있어서 그것을 바탕으로 필요한 악기를 추가하기도 했다. ‘이룰 수 없는 꿈’에서도 ‘이게 나의 가는 길이요’ 하는 부분에 감정이 터져야 하는데, 원작에서는 자제시키고 있더라. 그런 부분에 악기를 추가해서 감정을 터뜨려주는 역할을 했다. ‘알돈자’라는 노래도 배우가 흥분한 상태여서 반주를 못 들어서 몇 부분에 퍼커션 파트를 추가했다. 무어 댄스 장면도 동선에 맞게 음악을 손봤다.
데이비드 김 감독이 훌륭한 게 노래를 작품에 맞게 숨 쉬게 해준다. 가장 적절한 예가 윤간 장면인데, 음악이 따로 가는 게 아니라 행동과 같이 연결되어서 음악이 숨 쉬는 느낌을 준다.
김문정 데이비드가 안무를 해서 음악을 잘 안다. 이 작품은 논레플리카 공연이어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가는 게 가능했다.
세르반테스/돈키호테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나이가 비교적 어린 편이다.
데이비드 미국에서는 이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의 나이는 어려야 50대이다. 처음에는 한국 시장이 그러니까 하고 이해했는데, 이제는 미국에서도 이 작품을 연출한다면 30-40대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다. 30대 중에 인생의 깊이를 아는 배우가 돈키호테를 연기했을 때 주는 매력이 있다. 연극이 끝나고 가발을 벗을 때 할아버지였던 알론조 키하나에서 젊은 세르반테스로 변신하는 장면에서 ‘아 저 사람이 젊은이였지’ 하는 순간이 연출된다.
어떤 조건도 없다면 캐스팅 할 때 어떤 배우를 선택하고 싶나?
데이비드 돈키호테 역은 무엇보다 똑똑하고 관대하고 매력이 있어서 남을 끌어들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실제 나이와 상관없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돈키호테를 할 수 있다. 모든 오디션에 임할 때 저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본다. 저 배우는 어떤 조건 때문에 안 돼, 하기보다 가능성을 찾으려고 한다. 시즌2에서 이훈진 배우가 들어왔는데 딱 ‘산초’더라. 다른 사람들은 경험이 없어서 걱정했지만 나는 들어오는 순간 알아챘다. 오디션장에 들어설 때 캐릭터를 떠올리는 배우를 보면 희열이 생긴다. <드림걸즈>에서 에피의 최현선이 그랬고, <지킬 앤 하이드> 엠마 역의 이지혜도 들어서는 순간 엠마라고 생각했다.
김문정 어떤 조건도 없다면 알돈자 역을 예쁘지 않고 뚱뚱한 배우가 맡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더 의미가 분명해질 것 같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3호 2015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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