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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ZOOM IN] 관객 유대가 만들어낸 팬 아트 나눔 문화 [No.144]

글 | 안세영 2015-09-29 4,818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공연을 앞둔 어느 날,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8월 2일 저녁 공연에 이런 그림으로 엽서를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혹시 나눔 받고 싶은 분이 계시면 대략적인 수량 조사를 위해 멘션을 남겨주세요.’ 공연 당일이 되자 이번에는 공연장에 엽서를 놓아두었다는 글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찍은 해당 장소의 사진이 올라온다. 사진 속 장소를 찾아간 관객들은 작은 쇼핑백 안에 든 엽서를 한 장씩 집어간다. 그중 몇 명은 쇼핑백 안에 과자나 음료수 같은 간식을 사례로 남기기도 한다.
마치 비밀스런 보물찾기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요즘 관객들 사이에서 팬 아트 나눔이 진행되는 방식을 묘사한 것이다. 팬 아트 나눔이란 말 그대로 한 작품이나 배우를 기념하기 위해 팬들이 직접 만든 물품을 나눠 갖는 활동을 말한다. 물품의 종류는 인화한 커튼콜 사진부터 직접 구운 쿠키, 그림엽서, 스티커, 전자파 차단 스티커, 액세서리 등 다양하다. 관객이 기념품을 제작하거나 지인과 나누어 갖는 것이 새삼스런 일은 아니지만, 이처럼 공연장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하는 문화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팬 아트 나눔 문화는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관객간 소통이 활성화되면서 발생했다. 특히 트위터 등의 SNS가 가진 개방성과 빠른 전파력은 팬 아트 나눔 문화가 자리잡는 데 크게 일조했다. 스마트폰으로 SNS에 올라오는 실시간 공지만 확인하면 공연장을 찾는 누구든 쉽게 나눔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지어 만드는 이나 받는 이 모두 직접 만나는 번거로움과 오프라인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부담 없이 나눔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나눔 물품은 주로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숨기는데, 이는 나눔 사실을 모르는 누군가가 치워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부피가 작은 엽서나 스티커는 팸플릿 꽂이에 놓아두기도 한다. 하지만 특정 장소에 물품을 놓아두는 경우 남아있는 물품의 뒤처리가 어렵기 때문에 직접 전달을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 그림엽서를 나눔 한 팬아터 지븨는 “트위터를 통해 수량을 공지하고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는다. 당일에는 옷차림을 알려주고 신청한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게 한다”며 자신의 나눔 방식을 설명했다. 공연 전까지 약속 장소에서 대기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받는 이들이 기뻐하면서 팬아트에 대한 감상을 들려주기 때문에 더 뿌듯하다는 의견이다. 또 다른 팬아터 스깻은 “공연장에 오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배송비만 받고 우편으로 물품을 보내주기도 한다. 하지만 입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있는 데다 절차가 번거로워 선호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팬 아트 물품을 제작하는 이들 중에는 관련 전공이나 직업을 가진 이도 있고, 순수하게 취미를 살린 이도 있다. 하지만 나눔을 시작한 이유는 대부분 비슷하다. 같은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추억 거리를 나누고 싶다는 것. 또한 제작소가 정해놓은 최소 주문 수량 때문에 애초에 소량 제작이 어렵다는 점도 나눔을 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림엽서와 스티커를 나눔 한 팬아터 Kk는 “처음에는 개인 소장용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출력소에 맡길 수 있는 최소 제작 수량이 생각보다 많았다. 혼자 가지기엔 많은 양이라서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나눔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작품 속 캐릭터와 이미지를 차용하여 팬 아트를 제작하고 나누는 행위에는 저작권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상업적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대부분의 제작사가 이를 문제 삼지 않고 있다. 팬 아트 나눔이 유독 활발했던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의 경우, 관객들이 제작사인 HJ컬쳐의 양해를 구하고 멤버십 회원용 티켓 창구에 나눔 물품을 맡기고 가기도 했다. 고흐 사망 125주기 기념 공연이나 마지막 공연 때는 나눔 물품으로 창구 앞이 꽉 찰 정도였다고 HJ컬쳐 홍보 팀은 설명했다. “물품이 소량인 경우 티켓과 함께 직접 나눠드렸지만, 대개는 창구 앞에 놓아두면 관객분들이 알아서 하나씩 가져가셨다. 워낙 양질의 팬 아트가 많다보니 우리도 알리고 싶은 마음에 공식 트위터 계정으로 오늘의 나눔 물품을 찍어 올리기도 했다.” 홍보 팀은 <빈센트 반 고흐>가 소극장 창작뮤지컬이고 마니아가 많은 작품이라서 관객 사이의 유대감이 남달랐던 것 같다며 “대극장 공연이었다면 제작사도 지금처럼 협조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팬 아트 나눔을 위해서는 개인이 직접 수고를 들여 도안 제작과 주문, 수량 조사를 해야 하고, 제작 비용도 감수해야 한다. 그렇지만 나눔 문화를 취재하면서 인터뷰한 팬아터 모두는 앞으로도 나눔을 계속할 생각임을 밝혔다. 나눔을 통해 많은 사람과 작품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고, 본인의 창작물이 인정받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의 순수한 열정이 만들어낸 이 새로운 문화가 앞으로도 작품을 즐기는 방법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길 기대해 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4호 2015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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