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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힙합 뮤지컬의 가능성 - 힙합 뮤지컬 시대가 가능할까? [No.144]

글 | 박병성 2015-09-30 4,781

흔히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를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황금기라고 말한다. 리처드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2세가 북 뮤지컬의 전통을 확립하던 시기이다. 그 당시 히트했던 뮤지컬들은 속속 영화로 제작되었고, 유행했던 히트곡들은 대부분 뮤지컬 넘버였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뮤지컬은 대중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그 이유를 TV의 대중적 보급과 영화의 확산에서 찾는다. 그 외에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항은 1950년대부터 젊은이들의 마음을 빼앗았던 록 음악을 뮤지컬이 수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헤어>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처럼 성공한 록 뮤지컬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뮤지컬은 여전히 재즈와 클래식을 기반해 만들어졌다. 


최근 국내 젊은이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음악은 힙합이다. 힙합 프로그램 <쇼 미 더 머니>가 이러한 현상의 원인인지 아니면 결과인지 알 수 없지만, 최근 젊은이들은 기성세대들보다 랩에 자유롭고 친근하다. 심지어 기성세대들은 랩이나 힙합, 스트리트 댄스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런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 힙합 음악의 본산지인 미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1980년대부터 흑인들의 자유와 즉흥성을 담아낸 힙합 음악은 2000년대 들어 백인 랩퍼 에미넴, 힙합의 청사진을 제시한 제이지의 노력으로 점점 더 젊은 세대의 사랑을 받는 음악으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 브로드웨이에서는 지겨울 정도로 힙합 뮤지컬 <해밀턴>에 관한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힙합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방식도 그렇지만 이 작품이 역사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하게 만든다. <해밀턴>은 역사적 사건을 현대적으로 핫한 음악인 힙합으로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해밀턴>의 성공은 힙합 뮤지컬 시대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하게 한다. 



역대 힙합 뮤지컬들

<해밀턴>에는 흔히 힙합 뮤지컬이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그만큼 이 작품에서 힙합 음악의 비중이 많고 역할이 중요하다. 이전에 힙합 뮤지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년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대표가 브로드웨이에서 리드 프로듀서로 참여해 화제가 되었던 뮤지컬 <홀러 이프 야 히어 미(Holler, If Ya Hear Me)>(이하 <홀러 이프 야>)는 브로드웨이 최초의 힙합 뮤지컬이라는 카피로 홍보를 했다. 기존의 뮤지컬에도 힙합 음악이 종종 쓰이긴 했지만 힙합 음악을 중심으로 구성한 작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해밀턴>을 만든 린 마누엘 미란다가 2008년 힙합 음악의 비중이 높은 <인 더 하이츠>를 선보였다. <인 더 하이츠>가 여느 뮤지컬에 비해 힙합 음악의 비중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라틴 음악의 비중도 높아 이를 힙합 뮤지컬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 것 같다. 


<홀러 이프 야>는 전설적인 힙합 아티스트 투팍 사커(Tupac Shakur)의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힙합 뮤지컬이다. 투팍의 대표곡이자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Holler If Ya Hear Me’를 비롯 ‘California Love’, ‘Unconditional Love’ 등 투팍의 노래 20여 곡을 뮤지컬에 맞게 편곡하여 사용했다. 


가난한 마을의 문제아 존과 베르터스가 친구를 잃고 난 후 낙담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는다. 베르터스의 복수를 하자고 친구들이 찾아오고 존이 협조하지 않자 다툼이 생긴다. 그 끝에 존은 친구의 총에 맞아 죽고 만다. <홀러 이프 야>는 익숙한 투팍의 노래를 다양한 스타일로 편곡하여 감상할 수 있었지만, 허술한 드라마로 38회 공연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 기존의 힙합 곡을 그대로 사용하다 보니 드라마를 구성하는 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제약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2007년 국내에서도 투팍과 그의 라이벌 노토리어스 B.I.G(이후 비기)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뮤지컬 <래퍼스 파라다이스>가 공연되기도 했다. 투팍과 비기는 서부와 동부를 대표하는 랩퍼였고, 실제 둘은 친구였지만 투팍이 괴한에게 총격을 당한 후 그 배후가 비기였다고 의심하면서 둘의 관계는 멀어지게 된다. 동부와 서부의 치열한 디스전은 이런 배경에서 시작된 것이다. <래퍼스 파라다이스>는 둘의 우정과 사랑, 경쟁과 배신을 가상의 스토리로 엮은 작품이다. 투팍에게 비기를 소개해 줬던 또 한 명의 힙합 아티스트 퍼프 대디와 페이스 에반도 등장시켰다. 퍼프 대디의 ‘I'll Be Missing You’를 테마 음악으로 삼고 투팍과 비기의 노래를 4곡씩 개사해 사용했다. 이외 7개의 창작곡을 추가했다. <래퍼스 파라다이스>에서 두 아티스트의 노래는 한국어로 번역해서 노래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원곡의 아우라에서 자유로웠다. 그래서 기존 곡의 가사에 얽매이지 않고 드라마에 적합한 개사가 가능했다. 상당 부분 픽션이 가미되었지만 기본적인 토대를 둘의 관계로 삼다 보니 기존 곡들이 드라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 


이외에도 힙합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1984년 힙합 전문 레이블 데프잼(Def Jam)을 탄생시킨 힙합계 거물 러셀 시몬스(Russell Simmons)가 2016년 말을 목표로 힙합 뮤지컬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다. 50~60년대 록 음악을 바탕으로 하는 주크박스 뮤지컬 <록 오브 에이지>와 같은 방식으로 힙합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의 힙합 음악을 담은 주크박스 뮤지컬 형태로 기획 중이다. <시나리오>의 제작자로 <록 오브 에이지>의 프로듀서인 빅 블록(Big Block)을 참여시켰다. 또한 올해 뉴욕뮤지컬페스티벌에 선보인 힙합 뮤지컬 <일라> 역시 리딩 공연을 통해 투자자를 찾고 있다. 힙합 스타를 꿈꾸는 댄서의 이야기다. 이렇듯 힙합 음악을 전면으로 내세운 뮤지컬이 하나둘 시도되고 있다. 



힙합 뮤지컬의 가능성


힙합 뮤지컬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은 그 수가 매우 적다. 힙합이 점점 젊은 층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해도, 록 음악처럼 한 시대를 지배할 만큼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심장 박동과 비슷한 리듬과 비트로 표현하는 힙합은 매력적인 음악이지만 뮤지컬 음악으로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린 마누엘 미란다의 작업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힙합 뮤지컬이 랩퍼를 등장시킨 점도 힙합 음악으로 일반적인 드라마를 다루기가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힙합은 음악의 기본 리듬에 가사의 리듬과 라임이 잘 맞아야 한다. 랩이 어색하지 않고 아름답게 들려야 하며 박자와도 잘 맞아야 한다. 때론 라임을 위해 불필요하게 덧붙인 가사들이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힙합 음악은 이중창이나 삼중창이 어렵고, 파트를 나누어 부르거나, 특정 파트에 코러스가 참여해 음악을 풍성하게 해주는 방식 외에 합창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힙합 뮤지컬은 다양한 매력을 지닌다. 랩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욕망을 노래하는 ‘아이 엠 송’이거나 ‘아이 원트 송’이지만, 때론 단순한 서사(풀어서 설명하는 내용)를 전달하기도 한다. ‘옛날 옛날에 호랑이가 살았는데’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랩으로 전달하면 휠씬 맛이 산다. 린 마누엘 미란다의 두 작품에 내레이터의 역할을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 더 하이츠>에서 워싱턴 하이츠를 설명하는 우스나비의 노래나, <해밀턴>에서 에런 버가 해밀턴을 소개하는 노래는 서사로서의 랩의 장점을 십분 발휘한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충실한 랩으로 해밀턴과 제퍼슨이 정치적인 견해 차이를 보이는 배틀 장면은 압권이다. 과거의 이야기지만 현대적인 음악인 랩을 사용함으로써 해밀턴을 비롯한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정치인들의 혁명성은 더욱 빛난다. 새로운 정치를 주장하는 젊은 정치인들은 랩을 하지만, 영국의 왕 조지 3세는 정통적인 브리티시 팝 스타일로 노래하게 해, 왕정의 보수성이 두드러지게 했다. 린 마누엘 미란다의 <해밀턴>은 기존의 힙합 아티스트들의 음악에 기댄 작품들보다 진일보한 작품이다. 린 마누엘 미란다 스스로가 랩을 만들 수 있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새로운 가사의 힙합 음악이 가능했고, 공연의 생리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극 안에서 힙합 음악을 적절하게 배치할 수 있었다. 


<해밀턴>은 힙합 뮤지컬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브로드웨이에서의 관심과 찬사가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앞으로 힙합 뮤지컬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이르다. 그만큼 힙합 음악을 뮤지컬에 적용하는 작업이 어렵고 많은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힙합 뮤지컬이 어떤 역사를 써 내려가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힙합 음악과 뮤지컬에 정통한 린 마누엘 미란다의 역할이 클 것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4호 2015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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