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빛나는
자신감의 무대
자신을 믿는다는 것. 이보다 스스로를 빛나게 하는 방법이 또 있을까?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자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지닌 이들이 특별한 빛을 발산한다는 것을. 배우 김도빈도 그랬다. 그는 스스로를 굳게 믿고 있었기에 얼굴 가득 자신감이 넘쳤다. “항상 제 자신을 믿어요.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정답이라 믿거든요. 그래서 늘 자신감에 차 있어요.” 물론 이런 당참이 바로 무대 안과 밖에서 그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김도빈의 지난 시간을 거슬러보면, 그가 배우가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결과였다. 부모님이 모두 배우 출신이었던 까닭에 스스럼없이 무대를 접할 수 있었던 것. “배우를 꿈꾸게 된 명확한 계기가 있기보단 어떻게 보면 그냥 정해져 있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항상 부모님을 따라 공연을 보러 다녔고, 아버지가 봉산탈춤 이수자여서 늘 집에서 장구와 북을 두드리며 놀았거든요.” (웃음) 아버지 덕분에 국악에도 재능을 보였던 그는 단소 신동 소리를 들으며 전국 콩쿠르에서 1등을 했는데, 그럼에도 그가 택한 것은 운명 같은 배우의 길이었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후 극단 인혁에 입단한 그는 데뷔작 <이상한 동양화>를 시작으로 3년간 극단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2010년 서울예술단에 입단하며, <윤동주, 달을 쏘다>, <잃어버린 얼굴 1895>, <뿌리 깊은 나무> 등으로 서서히 이름을 알렸고, <블랙메리포핀스>의 요나스, <비스티 보이즈>의 알렉스, <쓰릴 미>의 리처드 등 마니아층을 확보한 외부 작품에 출연하며 점차 입지를 넓혔다.
특히 올해는 서울예술단의 다양한 레퍼토리로, 김도빈의 다채로운 변신을 연이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난 7월 <신과 함께_저승 편>에서 그는 저승으로 간 평범한 소시민 김자홍을 맡았는데, 만화에서 갓 튀어 나온 듯한 2대8 가르마를 앞세우며, 비주얼부터 원작과의 높은 싱크로율을 이뤘다. 이어 지난달 막을 내린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는 혁명가 김옥균의 패기를 초연보다 더 디테일하게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김옥균의 넘버가 추가돼 갑신정변 실패 후의 감정을 좀 더 잘 살릴 수 있었어요. 특히 이번 무대엔 제가 요청해 새로 생긴 대사도 있어요. ‘달은 비록 작지만 천하를 비춘다.’ 자료를 찾다가 발견한 건데, 실제로 김옥균이 이런 말을 했더라고요. 그래서 이 말을 극 중 대사로 사용해 의미를 더했죠.”
무대 앞의 진실함
한글날에 맞춰 개막해 더욱 뜻깊은 공연 <뿌리 깊은 나무>는 김도빈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무대다. 바로 서울예술단에서 첫 주연을 맡았던 작품이기 때문. 이번 재연에서도 그는 세종 시절, 궁궐 내 연쇄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무사 채윤 역을 맡아 종횡무진 무대를 누빈다. “채윤은 매력이 정말 많아요. 매력 덩어리죠. 10년 전 고모 덕금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서 왕 앞에서도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이 진짜 남자다워요. 어떻게 보면 무모하기도 하지만, 상남자의 매력이 있죠. 반면 궁녀 소희 앞에서는 또 한없이 순수해져요. 바보 같을 정도로요. 그리고 학사들의 죽음을 추리해 나갈 때는 굉장히 총명해요. 이처럼 채윤은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인물이에요.” 이런 인물과의 재회이니 김도빈의 무대가 한층 더 기대가 될 수밖에 없다. “제가 체력이 정말 좋아요. 가급적 군대 이야기는 안 하고 싶지만, (웃음) 헌병대 특별 경호대 출신이거든요. 그래서 요즘도 이종 격투기 같은 무술을 즐겨요. 그런데 <뿌리 깊은 나무> 초연 땐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더라고요. 복잡한 동선을 계속 뛰어다니느라, 연기 디테일을 찾을 겨를이 없었죠. 이번에는 깔끔하게 다듬어서, 더욱 에너지가 가득한 채윤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한편, 김도빈은 오는 10월 또 한 편의 신작 출연 소식을 알리며 새로운 변신을 준비한다. 김나정이 극작, 김혜영이 작곡, 이용균이 연출을 맡은 뮤지컬 <상자 속 흡혈귀>다. 이 작품은 한때 로열 패밀리였던 뱀파이어 가족이 생계형 흡혈귀로 전락해 전 세계를 떠돌다가, 한국의 드림월드 내 유령의 집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동료 배우들이 이 작품의 리딩 공연을 보고 난 후 저에게 잘 어울리겠다며 적극 추천을 했어요. 그래서 대본을 보게 됐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음악도 기존에 듣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이었죠.” 그는 이 작품에서 아들 바냐를 맡아 인간의 탐욕으로 비극을 맞이하는 흡혈귀 가족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존의 흡혈귀 작품과는 다른 점이 흡혈귀의 본성을 드러내는 장면은 드물어요. 바냐는 취미가 뜨개질일 정도로 다정다감해요. 그리고 인간인 미봉을 사랑하죠. 흡혈귀를 통해 인간군상을 보여주는 인간적인 가족 이야기에요.” 특히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 마음이 끌렸다는 김도빈. 곧 무대에서 그가 느낀 끌림을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향한 믿음으로 더욱 빛나는 배우 김도빈. 이제 그는 좀 더 깊이 있는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려 한다. “석 달만 있으면, 서른다섯이에요. 지금까지는 좀 어린 역할을 맡았는데, 앞으론 나이에 맞게 더 깊이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만큼 제가 더 노력해야겠죠?” 그의 눈빛은, 시간이 더해지는 만큼 그의 무대 또한 깊어지리란 강한 믿음을 전해 주었다. “배우 김도빈 하면, ‘진실됨’을 떠올렸으면 해요. 삶에서도 무대에서도 누구에게도 한 점 부끄럽지 않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특히 무대에 올라가는 배우는 그 누구보다 진실해야 하니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5호 2015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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