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뮤지컬협회가 출범시킨 K뮤지컬아카데미가 두 번째 해를 맞았다.
영화계가 한국영화아카데미를 통해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것처럼, 이 아카데미도 창작뮤지컬 활성화를 위해 각 분야의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전진 기지로 설립됐다.
이런 취지에서 현장 인력의 훈련과 교육에 초점을 맞췄던 K뮤지컬아카데미는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현장 전문가들의 생동감 있는 강의
“그 작품 얼마 번 줄 아세요? 50억 원 들여서 2억 원 벌었어요. 부가세 떼고 라이선스 비용 제하니까 그것밖에 안 남더라고요.”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허허실실 웃음에 녹여 털어놓는 이는 PMC프러덕션의 김용제 대표이사다. 그가 강사로 나선 수업은 K뮤지컬아카데미의 커리큘럼 중 하나인 ‘뮤지컬 프리젠터(배급/유통) 과정’으로, 국내외 뮤지컬의 배급과 유통에 관련된 지식 공유와 이해를 목표로 올해부터 신설됐다. ‘프리젠터’라는 이름은 언뜻 발표자나 진행자를 연상시키지만, 사실은 제작(창작/제작), 배급(유통), 공연 시설의 3단계로 구성된 뮤지컬 산업에서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배급/유통 전문가’를 일컫는 말이다.
배급이나 유통 전문가는 주로 영화계에서 자주 보던 직업 같지만 사실 뮤지컬계에서도 프로듀서의 영역 중 하나로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이날 김용제 대표의 강의도 국내 뮤지컬의 유통/배급 사례와 함께 이런 점을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일반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현장에서의 뒷얘기는 주로 업계 종사자들이 수강하는 이 강의에서 자연스럽게 공감을 이끌어냈다. 가령 <금발이 너무해>를 예로 든 라이선스 비용 문제나, <아르센 루팡>의 시행착오에서 배급과 유통의 중요성을 절감했던 경험담은 가감없이 수강생들에게 전달됐다.
특히 이날 수강생들의 이목을 끌었던 부분은 최근 한국 뮤지컬 산업의 새로운 무대로 주목받고 있는 중국 뮤지컬 시장의 구조와 현황에 관한 내용이다. 근래에 언론을 통해 중국 시장에 관한 청사진이 지속적으로 제시되고 있어 수강생에게도 흥미로운 주제였다. 김 대표는 공산당의 초법적 지위와 ‘꽌시(關係, 인맥을 중시하는 중국 특유의 관행)’마저 통하지 않는 중국 문화 산업의 한계를 지적하며 예비 프리젠터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한편 첫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과정도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열리고 있었다. 이 과정은 뮤지컬 창작 과정과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를 위해 창작 과정에 연관된 작가, 연출가, 음악감독, 조명디자이너, 음향디자이너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강사로 초빙된다. 아카데미를 찾은 주말은 장유정 연출가가 ‘스토리텔링’을 주제로 강단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동안 직접 쓴 작품들이 연이어 스테디셀러가 됐던 장 연출가의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경험담과 노하우들은 수강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됐다. “<김종욱 찾기>는 10년 된 작품인데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아직도 ‘김종욱이 누구냐’ 하는 거예요. 결국 스토리텔링의 관건은 ‘궁금하게 하는 것’에 있다는 거죠.” 이처럼 스토리텔링의 기본적인 정의부터 일상 속의 스토리텔링, 애플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린 스티브 잡스의 스토리텔링 프리젠테이션 등 그가 준비해 온 강의는 연출가가 공연을 무대화하는 과정을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었다.
여전히 진행 중인 커리큘럼 콘텐츠 개발
이제 출범한 지 1년 남짓이지만, 그동안에도 K뮤지컬아카데미는 운영에 안정감을 갖추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외형적으로도 지난해의 ‘트랜스 미디어 프로듀서’,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뮤지컬 콘텐츠 펀드 매니저’의 3개 과정에서 올해 프리젠터 과정과 창작 기초, 개발 과정이 추가로 신설되며 총 6개 과정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과정 개설 자체가 아니라 적절한 강사의 초빙과 양질의 강의일 터. 그래서 한국뮤지컬협회에서는 각 과정의 특화된 강사들의 초빙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강의 방식도 과정에 따라 다르다. 트랜스 미디어 프로듀서 과정과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과정은 실무자들이 전문 분야의 지식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먼저 설명하는 시간을 갖는다. 뮤지컬 콘텐츠 펀드 매니저 과정의 경우에는 뮤지컬 산업에서 아직은 낯선 펀드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이론 교육을 실시한다. 이와 함께 투자 제안서를 직접 작성하여 발표를 하는 등 실무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올해 신설된 과정들은 우려와 달리 반응이 좋다. 프리젠터 과정은 현장에서 뮤지컬 배급과 유통을 담당하고 있는 실무진을 강사로 초빙해 국내뿐 아니라, 중국, 일본, 미국, 유럽까지 국제적 경험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게 했다. 김용제 대표를 비롯해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 김지원 EMK뮤지컬컴퍼니 부대표 등 강사진도 탄탄하다. 기초 과정과 개발 과정으로 구분된 뮤지컬 창작 과정은 작곡가와 작사가가 한 팀이 되어 매주 창작물을 만드는 과제를 수행한다. 여기에 수준별 맞춤 멘토링이 수강생들의 실력을 배가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지난해 이미 첫 번째 기수를 배출했고, 올해도 2차 모집 수강생들의 과정이 진행되면서 K뮤지컬아카데미는 조금이나마 성과를 쌓아가고 있다. 현재 아카데미 운영을 맡고 있는 한국뮤지컬협회의 임영준 차장은 “작년부터 지금까지 각 교육 과정에서 만난 강사와 수강생들이 단순히 정보 및 지식 전달 수업으로 끝나지 않고, SNS 등을 활용한 커뮤니티를 구성해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고 전한다. 많은 수강생들이 강의에서 배운 정보를 활용해 실제로 국비 지원을 받아 작품을 만들거나, 여러 분야의 실무자들이 힘을 모아 공연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 임 차장은 “K뮤지컬아카데미가 단순한 교육을 넘어 종사자들 사이에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이를 토대로 문화 예술 분야의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우선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는 종사자가 수강 요건이 되는 아카데미는 소규모 영세업체가 대부분인 공연계의 현실을 여전히 반영하지 못해 이 점에 대한 해결이 시급하다. 특히 주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창작자들이나 무대 제작 종사자들에게 이 과정들은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한국뮤지컬협회는 앞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또 문화 예술 사업이 급변하는 환경에 있는 만큼 지속적인 교육 과정 개발도 중요하다. 업계 종사자들인 수강생과 강사진 모두가 만족하는 강의 시간대를 찾는 것도 난제로 남아 있다. 임영준 차장은 “K뮤지컬아카데미가 단순한 교육 사업을 넘어 뮤지컬계 종사자들에게 구체적인 이점을 제공할 수 있도록 앞으로 적극적으로 해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015년도 K뮤지컬아카데미는 10월에 모집하는 3차 과정이 올해의 마지막 사업이 될 예정이다. 향후 한국뮤지컬협회는 K뮤지컬아카데미를 통해 지금의 6개 과정뿐 아니라 배우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커리큘럼을 개발할 계획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5호 2015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