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와 새로움, 하나의 창조
2014년 <프랑켄슈타인> 초연은 예상을 뛰어넘어 대형 창작뮤지컬로서 이례적인 성과를 이루며 화제를 모았다. 그런 만큼 1년 만의 재연이 관심을 모으는 건 당연했고, 그 중심에는 캐스팅에 대한 기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배우가 일인이역을 오가며 존재감을 뿜어낼까? 2015년 <프랑켄슈타인>의 선택은 영민했다. 유준상, 박은태, 한지상 3명의 초연 캐스트와 박건형, 전동석, 최우혁 3명의 새로운 캐스트를 조화시켜, 진화와 새로움을 넘나드는 무대를 꾸렸으니 말이다.
유준상, 박건형, 전동석의 빅터, 박은태, 한지상, 최우혁의 앙리, 이 여섯 배우가 각자 그리고 함께 창조해 낼 또 하나의 프랑켄슈타인.
이들의 만남은 곧 ‘프랑켄슈타인’에 더욱 강인한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무대에서 오래도록, 유준상
“작품에 참여했던 사람들 모두 외국의 고전 명작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뮤지컬로 올리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어요. 우리끼리의 자기만족에서 끝나지 않게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보자는 의지가 대단했죠. 모든 이들의 에너지가 한데로 모여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프랑켄슈타인>이 그럴 만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고요.”
유준상이 2014년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프랑켄슈타인> 초연의 이례적인 성공에 대해 말했다. 성공적인 초연에 힘입어 빠르게 재공연되는 이번 시즌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 역으로 다시 이름을 올린 배우는 유준상이 유일하다. 또 한 번 음울한 어둠으로 뒤덮인 비극에서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간직한 남자를 연기하게 된 것이다.
20년 배우 생활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작품으로 <프랑켄슈타인>을 공공연하게 꼽았던 그이기에 또다시 극한의 감정 상태로 자신을 몰아넣으려는 이유가 궁금했다. “제가 한 작품의 앙코르 공연은 웬만하면 참여해요. 그게 제 원칙이에요. 고생하면서 힘들게 만든 공연이 좀 더 단단해질 수 있게 힘을 보태고 싶거든요. 특히 <프랑켄슈타인>은 무대에 오르면, 내가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사실 외에 다른 생각은 전혀 안 들게 했어요.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온전히 집중하게 만들어서 매회 공연이 실제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느껴졌죠. 모든 배우가 그렇게 느꼈어요. 그러니까 관객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죠.쉽게 도전하긴 힘들지만, 공연이 끝나고 나면 성숙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작품이에요.”
나약한 인간성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하는 <프랑켄슈타인>에서 불안정한 존재의 고독을 잘 살려내 호평받았던 유준상. 그는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지는 다채로운 감정의 인물을 연기하면서 자신 안에서 감정의 정화가 일어나길 기대하고 있다. “오늘 <프랑켄슈타인> 프로필 촬영 현장에서 초연 실황 음원을 틀어주는데, 바로 마음이 쿵쿵대더라고요. 빨리 다시 <프랑켄슈타인>의 무대에 서고 싶어요.”
쉬지 않고 끊임없이 무대에 오르면서 그가 궁극적으로 희망하는 목표는 뭘까? 유준상이 그 특유의 능청스러운 미소를 보이며 말한다. “우리나라 뮤지컬계에서는 주연 캐릭터에 사십 대 중반을 넘어선 배우를 잘 안 쓰잖아요. 제가 그걸 어떻게든 해보려고요.”
어제의 나를 뛰어넘어, 박은태
“좀 더 자신을 믿을 수 있었던 공연이었어요. 2013년 공연에선 정해진 연기 선을 철저히 지키려 했다면, 이번에는 순간순간 살아있는 연기를 해보려고 시도했어요. 배우로서 한 단계 성숙해진 시간이었죠.” 지난 3개월간 지저스로 무대에 올랐던 박은태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여정을 마친 소회를 이렇게 말했다. 지저스의 여운이 남아 있는 지금, 그와 <프랑켄슈타인>과의 재회는 배우와 관객 모두에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번 무대에서 어떤 변화가 이뤄질까? 기대가 많이 돼요. 무엇보다 캐스트가 바뀌었으니 그에 따른 변화가 크겠죠.
특히 상대 배역인 빅터 역의 새 캐스트들과의 합이 기대돼요. (박)건형 형은 2008년 <햄릿>에서 햄릿과 레어티스로 만났을 때 기억이 참 좋거든요. 그만큼 이번 무대가 행복할 거 같아요. (전)동석이는 <엘리자벳>에서 재밌게 공연했거든요. 분명히 기존의 빅터와 앙리와 다른 새로운 코드가 나올 거예요. 이번 캐스트들이 저마다 창조적인 빅터와 앙리의 관계를 보여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어요.”
돌아보면 2014년 <프랑켄슈타인> 초연에서 박은태의 활약을 빼놓을 수 있을까? 당시 일상생활에서조차 괴물의 아픔을 느껴 눈물을 흘리며 역할에 온전히 몰입했던 박은태. 이 역할로 제8회 더 뮤지컬 어워즈의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으니 그의 무대에 다시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초연 멤버다 보니 부담이 더 커요. 다들 거기서 더 발전한 모습을 기대할 테니까요. 두 배, 세 배 나은 모습으로 짜잔 나타나야 하잖아요. 사실 <지저스> 때도 그랬는데, 가장 큰 목표는 부담감을 없애는 거예요. 항상 벽은 제 자신이더라고요. 2014년의 저를 뛰어넘어 실망스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공연마다 자신의 벽을 깨며, 완숙한 무대를 보여주는 박은태. 앞으로도 그의 이름 앞에 더해질 무한한 역할들이, 그의 무대를 기다리는 관객들을 즐겁게 만든다. “<지킬 앤 하이드>를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 전에는 무조건 새로운 작품을 하고 싶었는데, 언젠가 고전적인 작품들 하나하나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좀 더 나이를 먹었을 때, <오페라의 유령>, <맨 오브 라만차>,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들을 박은태란 이름으로 창조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지금 가장 뜨거운, 한지상
“<프랑켄슈타인>은 그 어떤 공연보다 뜨거운 작품이에요. 캐릭터의 성향, 드라마의 감성, 작품의 에너지, 모든 것이 뜨거워요.” 초연의 주역이었던 한지상은 <프랑켄슈타인>의 귀환에 유독 설렘을 표했다. “빨리 무대에서 ‘너의 꿈 속에’와 ‘난 괴물’을 부르고 싶어요.”
지난해 앙리와 괴물을 오가며, 강렬한 에너지를 뿜었던 한지상의 열연이 재연에서 한층 더 뜨거워지지 않을까? “이번 무대를 통해 이루고 싶은 거요? 더 나아졌구나! 이 말을 듣는 것이면 충분해요.” 자연스레 궁금했다. 이미 한 차례 경험했던 이 역할에 그는 어떤 매력을 느끼고 있을까? “앙리는 아주 멋있는 청년이고, 괴물은 지독한 존재예요. 지긋지긋할 정도로 지독하고 징그럽죠.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는 처연한 존재라 더 매력적이에요.”
초연의 경험을 통해 그가 느낀 것은 앙리와 괴물을 연기하기 위해 무엇보다 체력 안배가 중요하다는 것. “힘을 컨트롤하고, 체력을 안배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어요. 결국에는 계속 신경 쓰는 방법밖엔 없더라고요. 그만큼 자기 관리가 중요한 역할이에요.” 2014년 <프랑켄슈타인>에서 2015년 <프랑켄슈타인>으로 돌아오는 사이, 한지상은 언제나 그랬듯 쉼 없이 움직이며 도전을 거듭했다. <두 도시 이야기>, <더 데빌>,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고래고래> 등 뮤지컬에서의 변신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로 활약을 시작한 것.
“난생처음이었던 지상파 주말 드라마 <장미빛 연인들>의 첫 리딩 날을 잊지 못해요. 제 딴에는 굉장한 도전이었고, 살 떨리는 순간이었어요. 첫 영화 <마차타고 고래고래>를 찍을 때도 그랬고요.” 그러고 보니 새삼 한지상이란 이름에 ‘도전’만큼 잘 어울리는 단어도 없는 듯하다. “저는 늘 도전적이고 싶어요. 잘하는 것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특정한 캐릭터나 장르를 고집하지 않아요. 고착화되고 싶지 않거든요. 배우가 되기에 못나고, 못하는 게 많지만, 항상 도전을 했어요. 아니면 말고 식으로 부딪혀보는 거죠. 늘 한계를 깨고 싶어요. 상상 그 이상을 실현하는 배우이길 원하니까요.”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불꽃, 박건형
“얼마 전 개막한 연극 <택시 드리벌>로 다시 시동을 걸었으니까,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으로 힘차게 출발해 봐야죠.”
예기치 못한 건강상의 문제로 무대를 잠시 떠났던 박건형은 오랜만의 공연에 행복해 보였다. “작년 봄 지독한 목 디스크 때문에 <헤드윅> 출연이 무산되고 나서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일 년 좀 넘는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죠. 마치 끝나지 않을 것처럼.” 연습실에서 땀 흘리는 순간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저는 제 자신을 알아요. 노래를 대단히 잘 부르지도 않고, 연기를 뛰어나게 잘하지도 못하고, 얼굴이 막 잘생기지도 않았죠. 제가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게 체력과 정신력, 자신감이었는데, 몸이 망가지니까 그 세 개가 동시에 무너지더라고요. 다신 공연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살면서 가장 큰 두려움을 느꼈어요. 매일 희망에 매달렸다, 매일 다시 절망했죠.”
박건형이 경험한 두려움은 그가 보여줄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광기로 몰고 가는 것은 두려움이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 엄마가 끔찍하게 죽는 과정을 지켜본 빅터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잃는다는 두려움에 시달렸을 거예요. 두 번 다시 그런 두려움을 겪고 싶지 않아서 생명 창조라는 광기 어린 일을 벌이게 되는 게 아닐까요.” 박건형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빅터는 자신이 창조해 낸 실패한 피조물보다 더 괴물 같은 인물. 잔혹한 괴물보다 더 섬뜩한 광기를 품고 있는 빅터를 어떤 감정선으로 표현할지 고민 중이라는 그의 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새로운 작품에 이제 막 뛰어들어 앞으로 내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돼요. 배우에게 작품이 들어오는 건, 그가 배우로서 더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거잖아요. 그 기회가 주어진 지금 이 순간이 참 행복하죠.”
펄떡이는 청춘, 전동석
다시 돌아온 <프랑켄슈타인>에서 가장 파격적인 캐스트는 아마 전동석일 것이다. 초연에서 연륜 있는 사십 대 배우들이 열연했던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떠올려 봤을 때, 아직 소년과 청년 사이에 있는 젊은 배우가 이 역할에 이름을 올릴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제가 <프랑켄슈타인>을 한다고 하면, 누구나 으레 ‘괴물’을 먼저 떠올릴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괴물보다는 빅터가 여러모로 제게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가 모차르트인데, 빅터는 모차르트만큼 사랑하게 될 거란 기대가 있어요. 빨리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됐으면 좋겠어요.”
작품을 향한 기대가 강하게 전해지는 흥분한 목소리. 외로운 남자 빅터의 또 따른 얼굴인 잔혹한 자크로 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전동석에게서 두려움은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대체 <프랑켄슈타인>의 무엇이 그의 가슴을 이토록 뛰게 하는 걸까? “<프랑켄슈타인>처럼 힐링 받을 수 있는 작품을 정말 하고 싶었어요.”
인간이라는 존재의 비극과 마주하는 작품을 선택한 이유로 ‘힐링’을 얘기하는 건 뜻밖의 대답이다. “빅터처럼 고통 속에 있는 어두운 캐릭터를 연기할 때 강렬한 희열을 느껴요. 배우 입장에서는 그런 게 힐링이죠.” 아직 연습에 들어가기 전이지만, 전동석은 벌써 그만의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빅터가 생명 창조 실험을 벌이는 이유에 대한 답을 구해야 연기 노선이 정해질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사람이 두려워져서 모든 사람을 자신의 인형으로 만들려고 그런 실험에 매달리는 건가 싶기고 하고, 아직은 계속 고민 중이에요. 그런데 어쨌든 저는 빅터를 과거에 얽매여 있는 젊은 천재 사이코로 표현하고 싶어요. 제 나이에 어울리는 날것의 광기를 마구 표출할 생각이죠.”
전동석의 거침없고 당당한 태도가 무대로 옮겨진다면,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이 무너지는 순간이 연출된다면, 그의 빅터는 누구보다 강한 연민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어쩌면 조금은 새로운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기대가 머리를 스친다.
처음이라는 패기, 최우혁
<프랑켄슈타인>의 캐스팅 발표에서 가장 강한 물음표가 붙은 이름은 아마 최우혁일 것이다. 알고보면 그는 스물셋의 나이, 생애 첫 오디션에서 단번에 기대작의 주연을 꿰찬 무서운 신예다. “거짓말 같았죠. 지난해 초연을 정말 재밌게 봐서 기회가 된다면 오디션에 지원만이라도 해보고 싶었거든요. 앙상블로 오디션을 봤는데, 앙리 뒤프레 역을 맡다니! 믿기 어려울 만큼 기뻤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점점 두려워지더라고요. 많은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요?”
하지만 갓 피어난 청춘에게 두려울 게 있으랴? “그래서 지금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내 씩씩한 목소리로 청춘의 패기를 느끼게 했다. 그 누구보다 화려한 데뷔를 앞둔 배우를 마주하고 있자니, 자연스레 궁금해졌다. 그는 어떻게 배우를 꿈꾸게 됐을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권투 선수로 활약했어요. 그런데 부상 때문에 선수 생활을 그만두게 됐죠. 진로 고민을 하다가 연극영화과에 다니는 사촌 형의 권유로 연기를 배우게 됐어요.” 오랜 고민 끝에 배우를 꿈꾸게 된 그는 묵묵하게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해 나갔다. 그 과정 중엔 그와 <프랑켄슈타인>의 인연을 미리 예견해 볼 수 있는 노력도 있었다. 바로 지난해 <프랑켄슈타인>의 넘버 ‘난 괴물’로 제7회 명지대 뮤지컬 콘테스트에서 우수상을 받았다는 사실. 그만큼 그는 이 작품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다. “친구를 위해 죽음을 택하는 앙리의 강직함과 그 뒤에 남겨진 쓸쓸함, 또 괴물로서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 일인이역으로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너무나 매력적이었어요.”
앙리 역으론 유일하게 새로운 캐스트인 만큼, 그의 무대는 더욱 기대를 모은다. “신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패기를 담아내려고요. 순간순간 진화해 나가는 것, 그 자체가 저의 색깔이 되지 않을까요?” 최우혁의 무대가 기다려지는 건, 그가 장황한 미래를 늘어놓는 대신 신중하게 현재에 집중하며 충실한 오늘을 쌓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생각은 안 해요. 지금의 목표는 오직 하나예요. <프랑켄슈타인>! 이 작품이 끝났을 때 모든 스태프들과 함께 웃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것이 지금 저의 꿈이에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5호 2015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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