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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상류사회> HIGH SOCIETY [No.145]

글 | 조연경 (런던 통신원) 사진 | Johan Persson·Tristam Kenton 2015-11-03 4,036

기분 좋은 저녁을 선사하는 <상류사회>

런던에서 화제가 되는 신작 뮤지컬은 대체로 두 종류다. 얼마 전에 화려하게 개막한 <킹키부츠>처럼 브로드웨이의 화제작이 넘어오는 경우와 옛날 영화나 뮤지컬을 새롭게 매만져서 선보이는 경우. 뮤지컬 <상류사회(High Society)>는 후자다. 1939년에 공연된 희극 <필라델피아 스토리(Philadelphia Story)>는 1940년 캐서린 헵번을 주연으로 한 동명의 영화로 제작됐다. 그리고 1956년에는 그레이스 켈리 주연의 뮤지컬 영화 <상류사회>로 리메이크 됐다. 이후 영화를 바탕으로 무대화된 뮤지컬 <상류사회>가 1998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고, 2003년에는 영국으로 건너와 리젠트 파크 오픈에어 시어터와 전국 투어를 거쳐 2005년 웨스트엔드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2015년, 10년 만의 리바이벌 공연이 런던 올드 빅 시어터에 올랐다. 오랜 전통의 올드 빅 시어터는 믿고 볼 수 있는 공연을 올려 관객들과 평론가들의 신뢰를 받는 극장이다. 지난 10년간 올드 빅 시어터의 예술감독으로 재직한 배우 케빈 스페이시가 떠나기 전 발표한 라인업의 마지막 작품인 <상류사회> 리바이벌 공연은 원형 무대에서 관객들과 가깝게 호흡하며 올여름 화제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상류사회 살짝 엿보기

미국이나 영국은 요즘 같은 현대 사회에도 은연중에 상류층이 존재한다. 공연 문화는 본래 상류사회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는 다양한 관객층의 취미 생활로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도 공연은 상류층의 생활을 살짝 엿보는 창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극 중 배우들을 보고, 상류층이 즐겼을 법한 파티의 분위기를 만끽하면서도 상류층의 인물들이 좌충우돌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대놓고 <상류사회>라는 제목을 단 이 작품은 부유한 가문의 큰 행사를 앞두고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세련된 의상, 훈훈한 배우들, 멋진 춤, 연주자들이 즉석에서 선보이는 기분 좋은 음악이 쉴 새 없이 무대 위에 펼쳐지며 관객들에게 만족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기본 바탕이 1940~1950년대 영화에 있는 만큼 스토리 구조는 단순하다. 흔하게 봐온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이틀에 걸친 한바탕 소동 끝에 결국 모든 갈등이 일거에 해소되고, 모두 행복해지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작품이다. 그렇게 또, 익숙한 즐거움을 주며 영국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완성된다. 중년의 영국 관객들이 즐겨 찾는 올드 빅 시어터가 선보이는 작품, 기분 좋은 저녁 시간을 선사하는 공연,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도 현대적으로 꾸민 작품, 전반적으로 무난하게 좋은 작품. <상류사회>는 보수적인 영국 공연계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해피엔딩이 약속된 소동극

<상류사회>는 부유한 집안의 맏딸인 트레이시의 두 번째 결혼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린다. 다음 날 결혼식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보며 여유를 즐기던 트레이시는 갑자기 나타난 전남편이자 이웃사촌인 덱스터를 보고 놀란다. 덱스터가 트레이시의 결혼식에 삼류 잡지 기자를 초대했다는 말에 트레이시는 화를 내고, 덱스터와 친한 사이인 트레이시의 동생, 톰보이 같은 다이너는 덱스터의 꿍꿍이가 뭔지 알아내려고 한다. 덱스터의 꿍꿍이를 알아내는 데 실패한 트레이시 자매는 그를 곤란하게 하기 위해, 기자라는 신분을 숨기고 도착한 마이크와 리즈를 모르는 척 골려먹는다. 하지만 알고 보니 덱스터는 트레이시의 아버지가 젊은 무용수와 바람을 피운다는 소문을 입수한 마이크와 거래하여, 상류 가문의 스캔들을 폭로하는 대신 상류층의 결혼 특집 기삿거리를 제공해 주겠다고 설득했던 것. 그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파티는 진행되고, 전남편의 등장에 심란해진 트레이시는 결혼식 전야제에서 술에 만취하여 마이크와 수영장에 가서 신 나게 즐긴다. 안하무인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트레이시는 정작 다음 날 결혼할 남자인 조지에게는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고, 오직 갑자기 나타난 전남편 덱스터의 속을 궁금해하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에만 신경을 쓴다. 신경 쓰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덱스터가 던진 말 한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트레이시를 보면 보편적인 연애 감정에 공감이 된다. 그리고 그런 트레이시 옆에는 처음 접해 보는 상류사회의 분위기에 취해 버린 마이크가 있다. 마이크는 으리으리한 대저택에서 열린 화려한 파티에 정신을 못 차리고, 급기야 술에 취해서 트레이시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급하게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마이크는 트레이시가 진심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하고, 그동안 쭉 자신의 옆을 지킨 리즈의 마음을 깨닫고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트레이시와 결혼하려고 했던 예비 남편 조지는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을 알고 분노해서 떠나고, 트레이시 가족은 아버지가 바람을 피운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아버지와 화해한다. 그리고 마이크는 기사를 쓰지 않기로 약속한다. 또한 덱스터가 그동안 가족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안 트레이시는 다시 마음을 열고, 다 준비되어 있던 결혼식 자리에서 덱스터와 두 번째 결혼식을 올린다. 



무대 사용의 아쉬움

올드 빅 시어터는 원래 객석이 전면에만 있는 전형적인 프로시니엄 무대 형태였지만, 무대 뒤에도 객석을 놓아 원형 극장으로 변신했다. 임시로 만든 형태라고는 하지만, 작품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에도 계속 원형 무대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상류사회>는 꼭 원형 무대에 올라와야 할 필요가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무대 때문에 오케스트라는 2층 발코니석으로 밀려났고, 파티가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음악 배틀을 위해 연주자가 사다리를 타고 2층 발코니에서 무대로 내려오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또 수영장에서 진행되는 트레이시와 덱스터의 감정 신이나, 트레이시와 마이크가 한바탕 즐겁게 뛰노는 장면에서는 원형 무대의 대부분을 차지한 수영장 조명 때문에, 배우들이 빈 무대를 놔두고 무대 가장자리로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모습이 연출됐다. 정작 파란 조명이 물처럼 출렁이는 수영장은 덱스터가 직접 만들어 트레이시에게 선물한 돛단배만 유유히 떠다녔다. 장면 전환도 여의치 않아서 그때마다 하인과 하녀 의상을 입은 앙상블 배우들이 각종 소품을 옮겨 무대를 꾸몄다. 이들이 전 장면의 흔적을 지우고 다음 장면을 위한 무대를 만들고 나면 주연 배우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이 반복됐다. 기존 객석을 그대로 두고 반대편에 또 객석을 만들어 원형의 형태로 만든 무대가 이 작품을 크게 해친 것은 아니지만, 꼭 들어맞는 옷은 아니었다. 늘려 놓은 객석 수를 다시 원래대로 줄이는 게 아까워서 원형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될 만큼, 전체적으로 전면을 중심으로 동선이 형성됐다. 배우들의 시선도 양쪽 객석에 골고루 가는 게 아니라, 원래 객석이었던 VIP석에 더 자주 쏠렸다. 



가치를 높여주는 음악의 힘

그럼에도 이 작품을 추천한다면 역시 음악 덕분이다. <필라델피아 스토리>를 뮤지컬 영화 <상류사회>로 리메이크할 때 영화음악에 참여한 콜 포터는 감미로운 음악으로 <상류사회>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사용된 음악처럼 단순하면서도 경쾌한 멜로디의 ‘상류사회(High Society)’나 ‘트루 러브(True Love)’ 등 익숙하게 들리는 음악이 <상류사회>의 무대를 한층 밝게 만들어주었다. 고전 영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의 이야기 전개가 특별히 매력적이진 않다는 것을 창작진도 알고 있었는지, 이 작품을 이야기가 가볍게 전개되는 음악 쇼로 만들려는 듯 음악에 특히 신경을 썼다. 무대 막도 없이 공연 전부터 열려 있는 무대에는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다. 실제 재즈 싱어송라이터이면서 극 중 결혼식 파티에 초대받은 유명 가수 역할을 맡은 조 스틸고가 마치 자신의 콘서트장에 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등장하면서 공연이 시작된다. 조 스틸고는 관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관객들에게 지금 듣고 싶은 음악이 뭔지 물어봤고, 관객들이 클래식부터 동요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외치자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엮어서 즉석에서 멋지게 재즈를 연주했다. 프리쇼(pre-show) 느낌으로 조 스틸고가 공연의 문을 연 뒤, 장면은 자연스럽게 파티 준비로 넘어가며 메인 넘버인 ‘상류사회(High Society)’가 이어진다. 조 스틸고는 결혼식 전야 파티 장면에 다시 등장해 분위기를 한껏 띄워준다. 특히 음악감독과 함께 벌이는 피아노 연주 배틀은 압권이다. 무대 아래에서 올라온 그랜드 피아노 두 대로 함께 연주하던 두 사람은, 서로 자리를 바꿔서 즉석 연주를 이어간다. 두 사람이 뛰어서 자리를 바꿔가며 연주를 이어가는 흥미로운 볼거리에 파티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는다. 더구나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추는 춤도 화려하고 볼만하다. 상류층의 행복한 파티답게 멋진 옷을 차려입은 남녀가 흥겹게 발을 구르는 모습에 관객들도 웃으며 박자를 맞춘다. 음악과 춤이 이어지는 파티 장면은 단연 이 작품의 백미다.



넓은 관객층을 노린 필-굿 뮤지컬

영국에서는 관객들에게 얼마나 즐거운 저녁을 선사하느냐가 공연의 성공 여부를 가린다. 작품성이 높아 객석에 전율을 느끼게 하거나, 영화에서나 보던 유명한 배우가 멋진 연기를 선보이거나, 좋은 음악과 춤이 있는 한 편의 멋진 작품이 무대 위에 펼쳐지거나. 과정이야 어찌됐든 관객은 즐겁게 극장을 나서야 한다. 관객들은 반가운 사람들과 함께 ‘공연 전 메뉴(Pre-theatre Menu)’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저녁 식사를 하고, 와인이나 맥주를 한잔하며 즐겁게 공연을 본 뒤, 즐겁게 한잔을 더 하며 공연에 대한 감상을 나누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집에 가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상류사회>와 같은 필-굿(feel-good) 뮤지컬, 즉 관객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훈훈한 뮤지컬이 어느 정도 이상의 성공을 거두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올드 빅 시어터는 중년 이상의 관객층이 좋아할 만한 옛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을 세련되게 포장하고, 상대적으로 올드 빅 시어터에 관심이 덜한 젊은 관객들에게 저렴한 티켓을 판매하여 전 연령대의 관객을 모두 잡으려고 했다. 50~60년 전의 영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작품성과 음악성이 검증된 리바이벌 작품이고, 최근 10년간 공연된 적이 없어서 관객들에게 새롭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상류사회>다. 
문제는 런던의 많은 극장들이 이 전략을 택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래서 처음에 이야기한 런던 공연계의 흐름이 형성된다. 이미 브로드웨이에서 검증된 화제작, 혹은 수십 년 전에 공연되었던 고전의 현대적인 리바이벌 작품이 아니면 웨스트엔드 무대에 발을 올리기 어렵다. 런던에는 전 세계 최장 기록을 갈아 치우며 60년 넘게 공연 중인 연극 <쥐덫>이 있다. <레 미제라블>과 <오페라의 유령>이 아직도 인기를 구가하고 있고, 이미 10년 고지를 넘긴 <라이온 킹>, <빌리 엘리어트>, <맘마미아!>가 여전히 대세다. 최근 <로키 호러 쇼>가 개막했고, <아가씨와 건달들>이 개막을 발표했다. 최근 화제작은 <집시>와 <시티 오브 엔젤>이었고, 관객들이 뽑은 최고의 뮤지컬 상은 <위키드>에 돌아갔다. 그 와중에 야심차게 명함을 내밀었던 신작 <아이 캔트 싱!>과 <메이드 인 다겐함>은 예정보다 일찍 막을 내렸다. 당분간 ‘포스트 <빌리 엘리어트>’는 나오기 어려운 걸까. 영국 관객들의 필-굿 뮤지컬 사랑이 계속되는 한, 프로듀서들의 고전 뮤지컬 옷 갈아입히기는 계속될 것 같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5호 2015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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