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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 <인 더 하이츠> [No.145]

글 |지혜원(경희대학교 객원교수) 사진제공 |마케팅컴퍼니아침 2015-11-05 5,774

비주류가 주도하는  역동적인 삶의 에너지


라틴 힙합 뮤지컬 <인 더 하이츠>는 자칫 단조로워 보이는 일상을 파워풀한 랩과 결코 흔하지 않은 음악, 춤으로 풀어낸다. 뉴욕에 거주하는 남미 이주민들의 삶은 문화와 정서를 뛰어넘어 우리의 오늘과도 맞닿아 있다.




뉴욕의 변두리 이주민들의 삶,     
함께 공감하는 이야기  
  



<인 더 하이츠>는 실제 뉴욕 맨해튼 북서부에 위치한 ‘워싱턴 하이츠’의 남미 이주민 커뮤니티의 이야기를 그들의 소울이 한껏 묻어나는 랩과 힙합 리듬으로 풀어낸다. 사촌 동생 소니와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우스나비, 헤어숍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바네사, 스탠퍼드대학교를 다니는 수재이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학업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니나, 그녀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택시 회사에 근무하는 베니 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이외에도 우스나비를 키워준 클라우디아 할머니, 헤어숍 주인인 다니엘라, 니나의 부모님 등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며 극을 이끈다. 무더운 어느 7월, 독립기념일 연휴인 3일간 벌어지는 이야기로 줄거리는 단조롭다. 맨해튼의 북쪽 끝에 위치한 워싱턴 하이츠는 중심부인 미드타운과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격차가 큰 동네다. 한마디로 변두리다. 무더위 가운데 전기가 끊기고, 어둠 속에서 폭동이 일어나기도 하는 그곳에서 남미 이주민들은 나름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서로 소통하고 의지하며 살아가지만, 늘 돈 때문에 갈등을 겪는다. 우스나비를 키워준 클라우디아 할머니가 1억 원의 복권에 당첨되며 모두 기뻐하지만, 정작 그녀는 우스나비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게 된다. 혼자서라도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돌아가려던 우스나비는 할머니가 남긴 돈을 자신의 식료품점을 재건하는 데 투자하면서 워싱턴 하이츠에 남기로 하고, 니나는 택시 회사를 처분한 부모님의 도움으로 학교에 돌아가 학업을 계속하기로 결심한다. 이로써 그들이 직면한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듯 보이지만 정작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닌 가족, 그리고 커뮤니티라는 힘이었다.


<인 더 하이츠>는 자칫 우울해질 수도 있을 가난한 이주민들의 삶을 시종일관 경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힙합 리듬으로 풀어낸다. 워싱턴 하이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비록 사회의 비주류이지만 차갑고 냉소적인 도시 뉴욕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끈끈한 정과 의리를 보여준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도 현실은 쉽게 달라지지 않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딸의 학비를 위해 기꺼이 공들여온 회사를 정리하고 원점으로 돌아가는 니나의 부모님이나 나날이 오르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브롱스로 이사를 결정하고도 웃음을 잃지 않는 다니엘라의 모습처럼 쉽사리 좌절하지 않는다. 과거에 집착하거나 미래에 대해 불필요한 걱정도 하지 않는다. 바로 오늘을 가장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백 마디 대사보다 감동으로 전해지는 이유다.



신예 린 마누엘 미란다의 야심찬 도전



2008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인 더 하이츠>는 작곡과 작사를 담당했던 린 마누엘 미란다가 주연까지 겸하면서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푸에르토리코 출신 가정에서 성장한 미란다는 힙합과 스토리텔링, 뮤지컬 등에 심취하여 공연 단체에서 활동하던 대학 시절부터 이 작품을 개발했다. 이후 오프브로드웨이를 거쳐 브로드웨이에 입성하며 최우수 작품상과 음악상, 안무상, 오케스트레이션상 등 4개 부문의 토니상을 석권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당시 막 데뷔한 신예 창작자로서 주목받기에 충분한 성과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전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라틴 힙합 장르를 메이저 무대인 브로드웨이에서, 그것도 비주류 사회인 워싱턴 하이츠의 이야기를 경쾌하고 대중적인 작품으로 잘 풀어내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랩을 본격 도입한 것은 물론 시종일관 파워풀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인 더 하이츠>의 스트리트 댄스는 화려한 무대 전환 없이도 관객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특히 강렬한 오프닝 넘버인 ‘인 더 하이츠’와 1억 원의 복권을 둘러싸고 주요 인물들이 함께 부르는 ‘96,000’은 에너제틱한 이 작품의 매력을 대표하는 넘버들이다.


이 작품은 <렌트>, <애비뉴 Q>를 제작한 프로듀서 케빈 맥컬럼과 제프리 셀러가 또 한 번 의기투합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앞선 두 작품 모두 작은 커뮤니티 속에서 여러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공감을 이끌었던 것처럼 <인 더 하이츠>에서도 유사한 색깔을 느낄 수 있다. 맥컬럼과 셀러는 이 작품이 뉴욕의 이야기라는 점에 주목하여 보통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뉴욕 이외의 지역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을 거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례적으로 오프브로드웨이에서의 트라이아웃 공연을 시도하기도 했다.



우리의 색을 덧입힌 라이선스 프로덕션



이지나 연출과 원미솔 음악감독이 진두 지휘한 국내 프로덕션은 탄탄한 실력을 갖춘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포진한 것은 물론 SM C&C가 제작에 참여한 만큼 아이돌 가수들의 대거 참여로 눈길을 끈다. 아역으로 시작한 베테랑 배우이자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하며 힙합퍼로도 인정받아온 양동근이 8년 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와 주인공 우스나비 역을 열연한다. 랩으로 극을 이끌며 극의 꼭짓점 역할을 하는 주인공 우스나비는 결코 쉬운 배역이 아니다. 양동근은 모처럼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은 듯하다. 군 복무 중 출연했던 <마인>에 비해 한층 편안한 모습으로 무대를 즐기는 그는 자연스러운 힙합 리듬 속에서 자신만의 색을 마음껏 발산한다. 친구를 넘어 우스나비와 연인으로 발전하는 바네사 역으로 뮤지컬 배우 오소연과 더블 캐스팅된 가수 제이민은 무난한 연기를 선보이지만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은 아직 역부족으로 보인다. 서경수(베니 역), 김보경(니나 역), 류수화(클라우디아) 등 실력파 배우들도 안정적인 앙상블을 만들어내지만, 필자가 관람한 캐스트 중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소니 역으로 열연한 육현욱이었다. 그는 톡톡 튀는 연기와 남다른 랩, 춤 실력으로 등장하는 장면마다 활력소가 되며 신 스틸러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라이선스 프로덕션으로 라틴계 이주민들의 고유한 정서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우려했으나 우리만의 정서와 유머 코드를 적절하게 배합한 로컬라이제이션은 비교적 성공적이다. 하지만 캐릭터를 소화하는 데 여전히 아쉬운 점이 있다. 우스나비가 극을 열지만 <인 더 하이츠>는 등장하는 사람들 모두의 이야기다. 힘을 빼고 모두와 가장 가깝게 소통하는 사람이 바로 우스나비이지만, 이야기의 중심에 서야 하는 사람 또한 그다. 양동근이 연기한 우스나비는 자연스레 극에 녹아들기는 했지만, 극을 끌고가는 인물로서의 힘이 약했다. 라이선스 프로덕션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양동근을 비롯한 배우들의 랩에서 라틴 힙합만의 스타일이 좀 더 분명하게 살아나지 못했던 점도 아쉽다. 또한 커뮤니티의 구심점이자 갈등 해소의 열쇠를 제공하는 클라우디아 할머니는 류수화보다는 좀 더 연륜 있는 배우가 연기함으로써 극에 무게감을 더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몇몇 배우들의 무르익지 않고 겉도는 연기도 극의 조화를 깨트리는 요인이 된다. 그리고 언어가 강조되는 라이선스 프로덕션에서 늘 대두되는 문제이지만 영어와 스페인어가 혼용되는 <인 더 하이츠>에서도 매끄럽지 않게 언어를 구분하여 번역하고 표현하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특히 랩을 번역하여 소화할 때 다소의 어색함을 감출 수 없는 점은 안타깝다.


대다수의 작품이 소설이나 영화 등 원작에 기대어 제작되는 상황에서 <인 더 하이츠>는 모처럼 만난 순수 창작뮤지컬이다. 흔한 라이선스 뮤지컬과 달리 시대극이나 판타지 장르가 아닌 실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살아있는’ 작품이라는 점도 이 작품의 큰 미덕이다. 라이선스 프로덕션의 크고 작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하이츠의 식지 않는 에너지는 오늘도 수고하며 사는 우리에게 충분한 활력을 선사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5호 2015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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