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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REATIVE MINDS] <소행성 B612> 이채경 작가·김지현 작곡가 [No.145]

글 | 송준호 사진 | 심주호 장소협찬 | 카페 장(02-742-4788) 2015-11-09 5,845

중력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는 인연의 힘

{€작품 소개€}

지구로 날아오는 소행성이 발견된 어느 날 밤. 유주의 실수에서 비롯된 자동차 사고로 재형은 한순간에 가족을 잃고 그 충격으로 긴 잠에 빠진다. 끔찍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들에 머무르려고 하는 재형. 죄책감에 그런 재형의 곁을 지키는 유주. 기나긴 불면의 날을 지나 빠져든 꿈에서 유주는 재형과 만나 마음을 나눈다. 하지만 유주가 그날의 실상을 고백하자 또 한 번 상처를 입은 재형은 다시 긴 잠에 빠진다. 



역사의 작은 흔적에서 팩션으로

3년 전부터 함께 구상하며 작품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그간 가장 공들인 부분은 뭐였나. 
이채경  우리가 맨 처음에 만났을 때 세웠던 목표가 대중과의 소통이었다. (김)지현이도 클래식계에 있었던 사람이고 나도 유학에서 돌아온 직후여서 외국 사람 같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둘 다 ‘왜 이렇게 잘난 척하느냐’는 말을 자꾸 들으니까 고민이 많았다. 
김지현  그때 우리가 처음 나눈 얘기도 ‘사람들이 말하는 뮤지컬이 도대체 뭘까?’였다. 결론은 사람 사는 이야기, 특히 로맨스 같은 거였다. 


사랑 이야기이지만 소행성이 등장한다. 음악적으로 여러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것 같은데. 
김지현  원래 우주를 무척 좋아해서 이런 소재를 쓰는 데도 일조했지만, 우주가 주요 공간은 아니기 때문에 곡을 몽환적으로 표현할 생각은 없었다. 그보다는 꿈이라는 설정에 더 집중했다. 다만 어떤 정서를 제한하기보다 꿈과 우주의 느낌을 넘나들겠다는 생각은 했다. 
제목부터 『어린 왕자』가 연상된다. 실제로 캐릭터들의 순수성이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이채경  그게 느껴졌다면 다행이다. 어린 왕자와 여우의 관계를 염두에 둔 대사들을 넣었다가 너무 직접적인 듯해서 빼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어린 왕자 얘기가 너무 없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나중엔 또 너무 많다고 해서 헷갈리기도 했다. 재형이 어린 왕자와 비슷하고, 유주와의 만남이 여우와의 만남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제목도 ‘B612’를 차용했다.


원래 제목은 ‘p134340’이라고 예전의 명왕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럼 내용도 달랐을 텐데.
이채경  그래서 중간에 설정을 많이 바꿨다. 처음엔 명왕성에 다른 행성이 부딪쳐서 생기는 사건들을 생각했는데, 배경이 지구로 바뀌니까 이야기의 메타포도 훨씬 명확해진 것 같다. 게다가 ‘p134340’이라는 제목은 왠지 실험극 같다는 반응도 있었다.  




소재가 독특해서 스토리 작업이 진행되고 나서 주제 의식을 뽑았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세상과의 화해’라는 주제가 먼저였다고 들었다. 그럼 기면증은 어떻게 나온 건가.
이채경  일단 사랑 이야기로 출발했는데 어디에나 있는 사랑 이야기는 설득력이 없었다. 왜 그럴까 생각하다 상처받았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런 게 우리에게 울림이 있는 이야기였다. 시간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일상에서 시간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장치가 기면증이었다. 소재가 흥미로워서 선택한 게 아니라 필요해서 넣은 거다.
김지현  원래 설정은 시간을 멈추는 거였다. 멈춘 시간에서 주인공이 쳇바퀴 돌듯 계속 혼자 갇힌 설정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이야기도 멈춰버렸다. 그래서 꿈으로 바꿨다. 꿈을 오래 꾸려면 기면증이 있어야 했다. 소행성이라는 소재가 들어온 건 더 나중이었다.


작품 개발 과정이 길어지면서 넘버에 얽힌 사연도 많았겠다. 가장 기억나는 곡이 있다면?
김지현  우리가 처음 썼던 ‘시간이 지나면’이다. 가사에 꽂혀야 곡이 써지는 편인데 그때가 그랬다. 사실 처음에는 음악의 노선을 정하지 못한 채로 써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뽕짝’ 같은 느낌이 날까봐 고민했는데 다행히 배우들이 잘 표현해 줘서 좋았다. 오프닝 곡 ‘소행성 B612’도 내 새끼 같다. 노래 세 곡을 합쳐서인지 다 쓰고 나니 14분이 나왔다.  
이채경  그거 듣고 <위키드>인 줄 알았다. (웃음) 나는 ‘시간의 정거장’의 가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또 우리 둘 다 좋아했던 제목 중 ‘확률’이라는 곡이 있었는데, 수학과 출신 같다는 반응이 많아서 지금의 ‘우연’으로 바뀌었다. 


뮤지컬의 특성상 이야기보다 효과적인 게 인상적인 넘버다. 어떤 넘버가 이 작품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
김지현  ‘멀리서 보면’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좀 쉽지 않은 멜로디 같다. 처음 듣고 꽂히기에는 약간 어려운 곡이다. 
이채경  가까이서 보면 되게 큰 문제 같지만 멀리서 보면 그냥 작은 문제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또 우주에서 보면 너무나 조그마한 존재인데, 그런 존재가 또 그만한 존재들을 만나는 게 신기해서 그런 이야기도 담고 싶었다.  



최고의 인연들이 만드는 환상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소행성’이나 ‘기면증’ 같은 소재보다 ‘트라우마’나 ‘기억’, ‘인연’ 같은 키워드들이 더 부각된다. 이 중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뭘까.
이채경  결국엔 ‘인연’인 것 같다. 트라우마로 시작하지만 그 인연이 결국 사랑으로 이어지니까. 이 작품에서 사랑은 에로틱이나 멜로가 아니라 타인을 나처럼 생각하고 깊이 이해하는 마음이다. 작품의 제일 처음 제목도 ‘인연’이었다. 
김지현  우연이든 아니든 그런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인연이다. 우주에서 바라보면 진짜 티끌만 한 존재들이 만나서 티격태격 싸우고 화해하고 사랑까지 하니까.


바로 그 부분 말인데, 사실 재형으로서는 유주를 쉽게 용서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잠깐 동안 꿈에 빠진 뒤에 화해한다는 진행이 너무 갑작스러웠다.
이채경  끝까지 해결이 안 된 부분이다. 용서를 통해 최악의 인연을 최고의 인연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갑자기 용서하니까 설득력이 없었다. 나도 납득이 안 되는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앞으로 좀 더 디테일하게 수정할 부분이다.


심지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다는 결말은 더 개연성이 부족했다.
이채경  안 그래도 같은 지적을 많이 받았다. 굳이 멜로까지는 아니어도 그 상황이 이해되기 위해선 앞쪽에서 그걸 보완하는 장치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원래는 ‘자장가’ 부분에 그런 사랑의 뉘앙스를 담는다는 의도였는데, 하다 보니까 정말 자장가가 되어버렸다. 사실 두 사람을 사랑에 빠트리기 위한 장치는 많았는데 너무 오글거려서 장면들을 다 들어냈다.
김지현  작품의 결이 약간 달라지는 느낌이긴 했다. 그래서 합의하에 빼자고 했다. 


일인이역, 일인 삼역도 있는데 본 공연에서도 그 설정은 이어지나?
이채경  좀 정리가 필요하다. 특히 전 남자친구 지환과 기범이 그렇다. 마지막에 두 인물을 한 캐릭터로 합쳤는데, 그러니까 극 전개가 답답해졌다. 일상적인 대사를 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게다가 지환이 갑자기 그런 캐릭터를 소화하기엔 어울리지 않아서 결국 다시 둘을 나눴다. 이 과정에서 지환의 역할이 좀 줄어들어서 다시 수정해야 할 것 같다. 


그 밖에도 리딩 공연을 통해 보완할 점들이 많이 보였을 것 같다.
김지현  음악적으로 반복되는 부분들이 많다는 걸 발견했다. 더 밀어붙여도 되는데 소심하게 처리한 것도 느껴졌고, 뒤로 갈수록 넘버가 비슷비슷한 느낌을 받아서 새로운 곡들을 더 넣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채경  고칠 게 많다. 일단 결말부를 정리하고, ‘별과 별이 만날 때’ 부분이 하이라이트인데 좀 약한 것 같다. 전체적으로 드라마틱한 부분이 부족해서 많이 손봐야 할 듯하다.


두 사람의 첫 창작 협업인데 파트너로서 호흡은 어땠나.
김지현  소재 선정뿐만 아니라 취향도 비슷해서 잘 맞았던 것 같다. 추천해 주는 책이나 공연도 다 재밌다. 그래서 오히려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런 취향의 결과가 우리 둘만 좋아하고 남들에겐 별로인 작품이 될까봐. 그래도 파트너십으로서는 굉장히 좋은 것 같다. 
이채경  나는 사실 그동안 뮤지컬만 했는데 그걸 아무도 몰라줘서 이 일을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그때 지현이를 만나면서 내가 좋아하는 걸 똑같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해서 정말 기뻤다. 물론 싸우기도 했지만 3년이 지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는 분명히 생겼다. 


첫 테이프를 함께 끊었는데 앞으로 어떤 작품들을 만들고 싶은가.
김지현  내가 늘 경험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경험할 수 있는 판타지를 줄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이채경  같은 이유에서 난 이 작품이 좋다. 우리가 현실을 직면하기 위해서 연극을 본다면, 뮤지컬을 찾는 건 꿈을 꾸고 환상을 보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도피로서의 환상이 아니라 그 자체가 리얼하고 매력적인 환상을 그리고 싶다. 미국에 있을 때 한 유명 연출가에게 들은 얘기가 있다. ‘뮤지컬은 크다. 뭔가 큰 걸 써라.’ 난 그 말이 크게 와 닿았다. 그 큰 무언가가 나에게는 ‘환상’인 것 같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5호 2015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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