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ARTIST’S ROOM] 정승호 무대디자이너의 작업실 [No.148]

글 |배경희 사진 |양광수 2016-02-26 7,677

끊임없이 탐구하는 실험가

무대디자이너 정승호



2015년 연말 기대작 <한밤중에 개에게 생긴 의문의 사건>을 말할 때, 많이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는 무대 디자인이다. 한정적인 예산으로 주인공 크리스토퍼의 우주를 잘 그려냈다는 것. 이 같은 호평을 끌어낸 정승호 무대디자이너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지 어느덧 20년을 훌쩍 넘긴 국내 자타 공인 대표 무대디자이너다. 해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무대를 탄생시킬 수 있는 그의 창조적 힘은 무엇일까? 무대 디자인 작업 공간이 아닌 정신 작업이 이뤄지는 그의 개인 작업실을 찾았다.





해소하고 정진하기  
정승호 디자이너의 작업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작업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림이다. 작업실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은 모두 정승호 디자이너가 그린 것.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이제 반 년 정도 됐어요. 그림을 따로 배우진 않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제 방식대로 그리고 있죠.” 무대 디자인에서 사각 박스 디자인이라는 확고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답게 그가 그린 그림 또한 분명한 자기 색깔을 드러낸다. 캔버스보다는 주로 작은 나무 블록이나 도마, 빨래판으로 만든 자신의 고유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의 작업 방식이다. 지난 여섯 달 남짓한 기간에 그가 완성한 그림은 모두 스무 여 점. “요즘엔 대개 컴퓨터로 디자인 작업이 이뤄지다 보니, 세 시간만 작업을 해도 어깨가 결려요. 그런데 그림은 서너 시간을 그려도 괜찮더라고요. 보통 한 작품을 마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그림 작업을 하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죠.” 정승호 디자이너에게 그림은 무대 디자인 작업에서 쌓인 육체적, 감정적 피로를 해소하는 좋은 방법인 셈. 한 작품을 끝낼 때마다 그림을 그려 해당 작품을 기록해 두는 것은 그가 좋아하는 그림 작업 중 하나다.


“예전엔 색깔에 민감한 편이 아니었는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색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게 됐어요. 단순한 흥미에서 시작한 취미가 디자인 작업에도 영향을 주고 있죠.” 여가 활동을 작업에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모습에서 베테랑 디자이너의 연륜이 엿보인다. “최근작인 <한밤중에 개에게 생긴 의문의 사건>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사실 그 무대는 저보다 조명디자이너와 영상디자이너의 공이 커요. 학교 제자였던 두 사람이 훌륭한 디자이너로 성장한 걸 보면서, 후배들에게 제가 누렸던 기회를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앞으로 뮤지컬이나 연극은 매년 스스로 꼭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 한두 작품만 할 계획이에요. 대신 새로운 도전을 많이 해볼 생각이죠.”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정진하는 중견 디자이너는 그의 넓고 깊은 세계를 위해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그가 근시일 내에 도전하고 싶은 분야는 미술. “아직은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10년 정도 꾸준히 그리다 보면, 언젠간 화가로서 그림을 선보일 날이 오지 않을까요?”





작업의 자양분
장르를 불문하고 책을 많이 읽을 것. 무대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정승호 무대디자이너의 조언이다. 무대 디자인에 필요한 중요 자질 중 하나인 풍부한 상상력을 키우는 데 독서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는 게 그 이유. “어떤 분야의 크리에이터나 마찬가지겠지만, 무대디자이너 역시 잡다한 분야에 걸쳐 다양한 책을 읽는 것이 좋아요. 그래도 좀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도서 장르를 꼽자면, 건축 관련 도서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유럽 시대극 뮤지컬이 많이 올라가기 때문에 시대별 건축 양식을 공부해 놓으면 세트 디자인에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그가 최근 가장 많은 영감을 받은 건축 도서는 아르누보 건축의 선구자로 꼽히는 빅터 오르타(Victor Horta) 관련 서적. 3여 년 전 19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황태자 루돌프>를 준비하던 당시에도 19세기 말 유럽에서 유행한 아르누보 양식으로 무대를 꾸미기 위해 빅터 오르타의 책을 많이 참고했다.



책장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책 가운데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또 다른 도서 장르는 일러스트트집과 화집.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증세가 있어서 오랜 시간 집중해 책을 읽는 데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일러스트집이나 화집 같은 그림책을 즐겨 보죠. 개인적으로 어두운 성향의 작품을 선호하다 보니 백진스키(Zdzislaw Beksinski)처럼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의 화집을 좋아해요. 그 밖에도 다양한 작가들의 화집을 즐겨 보는데, 다양한 그림이 영감의 원천이 되곤 하죠.” 그의 주요 작품으로 꼽히는 <내 마음의 풍금>이나 <번지 점프를 하다>가 각각 상자 콜라주 미술가 조셉 코넬과 추상표현주의 거장 마크 로스코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가 미술 작품에서 어떤 영향을 받는지 느낄 수 있다. “방법은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만의 우주를 완성해 갈 수 있는 상상력을 키워가는 게 중요합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8호 2016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