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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 <오케피> [No.149]

글 |정수연(한양대 연극영화과 겸임교수) 사진제공 |샘컴퍼니 2016-02-29 4,021

기대에 못 미친 백 스테이지 투어




이면을 보는 재미      

백스테이지 투어라는 게 있다. 무대 뒤를 직접 보고 체험하는 일종의 견학 코스라고 보면 될 거다. 관객 입장에서 보면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다. 배우가 연기하는 무대에 서보기도 하고 무대장치와 조명, 음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살펴보면서 분장실과 무대 뒤 배우 대기실까지 돌아보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닐 테니 말이다. 연극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공연장 관계자의 배려로 과외 받듯이 백스테이지 투어를 경험한 적이 있는데, 그날 저녁에 봤던 공연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무대장치의 비밀을 알고 난 후 일루전이 깨지기는커녕 오히려 무대 기술의 절묘함에 감탄하면서 공연을 즐겼더랬다. 공연의 얼굴이 작품이라면 그 뒤통수는 작업임을 실감하게 된 계기였다.


톨스토이는 무대에 선 사람에게만 찬사를 보내고 무대에 못질을 한 사람들을 허드레 취급하는 공연은 예술이 아니라 사기라고 말했다. 공연의 감동은 무대 위 화려한 의상의 배우뿐 아니라 그 의상을 만드느라 열심히 재봉틀을 돌린 작업자들의 노고 위에서만 만들어지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자면 작품이라는 결과에 작업이라는 과정은 언제나 묻히게 마련이다. 작품이 일루전의 공간이라면 작업은 리얼리티의 현장이기에 작품과 작업은 서로를 완결시키기 위해 완전 별개의 것처럼 존재할 수밖에 없는 거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창작자들이 작업 과정 자체를 창작의 소재로 삼는 것은 단순히 메타 장르의 재미를 겨냥했기 때문이 아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 가장 어두운 등잔 밑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공연의 진짜 얼굴을 담아낼 수 있는 좋은 틀거지임을 알기 때문이다.


뮤지컬 <오케피>는 이런 유형의 전형을 따르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오케스트라 피트의 연주자들. 뮤지컬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배우보다 더 중요한 구성원이 바로 이들이건만 무대 밑 이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이들의 이름은 기억되지 않는다. 매일 오케스트라 피트의 어둠 속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공연을 이끄는 그들의 이야기는 뮤지컬의 민낯을 보여주기에 훌륭한 거울이다. 무대 위의 환상은 무대 밑의 ‘난리부르스’를 통해 만들어지는 법이니 말이다. 장르를 비꼬는 재치 있는 자조(툭하면 싱잉, 뻑하면 댄싱, 한마디면 될 대사를 오 분 넘게 노래하는 비효율성!)가 종종 재미를 주고, 소소한 어려움을 딛고 공연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따뜻함을 준다. 전자는 메타 장르의 재미이고 후자는 대중예술의 미덕이겠지만, 이 모든 것은 ‘오케피’라는 거울을 통해 본 장르의 뒷모습일 터다. 이처럼 <오케피>는 소재와 설정부터 그 지향점이 명확하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뮤지컬에 대한 뮤지컬인 거다. 이 작품의 재미는 이러한 시선의 방향에 있다. 그 방향을 첨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는 데 이 작품의 성패가 달려있는 셈이다.




이면을 보지 않는 원작     

그런데 정작 <오케피>는 이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제목이나 소재에 이미 작품의 방향이 담겼건만 이 작품 스스로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고 있는지 공연을 보면 볼수록 의심이 깊어진다. 그런 의심이 드는 이유는 뮤지컬에 대한 뮤지컬이 되기에 이 작품의 리얼리티가 영 부실하다는 데 있다. 이 작품의 시선은 무대 아래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야기의 시작은 그럴듯하다. 공연 시간을 앞두고 오케스트라 피트의 연주자들이 하나둘씩 출근한다. 사연도 제각각 악기도 제각각인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리저리 얽힌 연애 관계에 자잘한 자기 고민도 있는 데다 맘이 안 맞는 옆 사람 때문에 짜증도 나고. 사람이 모여 일하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는 오케스트라 피트의 연주자들도 현실 속을 살아가는 인간임을 보여주려는 의도였을 거다. 이런 에피소드는 <오케피>의 이야기 전부를 차지한다. 그런데 패착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재미있을 법한 에피소드를 늘어놓느라 정작 중요한 이야기의 중심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작품에는 중심 스토리가 없다. 


<오케피>의 연주자들에게 연주자로서의 정체성이 없다는 사실은 결정적인 결함이다. 뮤지컬 공연을 준비하는 연주자로서의 고민과 어려움이 현실감 있게 그려지려면 무대 위 환상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갈등이 있어야 한다. 생각해 보시라. 잘나가는 주연 배우의 변덕에 맞춰주느라 예고도 없이 연주를 바꿔야 하는 상황을 자괴감 없이 받아들이는 연주자들이 있을까? 욕을 해도 아주 살벌하게 할 거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오케피>의 연주자들은 군말도 불평도 자조도 없이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다에 수다. 무대 밑 사람들의 고민 많은 자존감을 끌어낼 수 있는 진짜 이야깃거리는 하릴없이 소모돼 버리고 만다. <오케피>의 에피소드는 단지 이야기되는 장소가 오케스트라 피트일 뿐 공연을 만드는 이로서의 고민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연주자로서의 정체성이 우선이요 그 위에 생활인의 에피소드가 붙어야 하건만 어찌된 것이 이야기의 중심과 곁가지에 주객이 전도된 모양새다.


상황도 과장되긴 마찬가지다. 연주자가 술을 마시고 출근하지 않나, 한 번도 맞춰보지 않은 초짜가 대타 연주자로 들어오지 않나, 이 초짜가 공연 한 번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직업에 회의를 느끼지 않나, 공연 중간에 피트 바깥을 밥 먹듯이 드나들지 않나. 극 중 시간은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의 사실적인 설정인데도 그 사이 오케스트라 피트에서는 실제로 있을 수 없는 ‘극적인 사건’이 줄줄이 일어난다. 좋다. 어차피 <오케피>도 극이니까 사건이 인위적인 건 당연하다 치자. 하지만 이런 ‘사건’들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에피소드인지 분명치 않다면 어째야 하나. 맥락도 개연성도 없는 에피소드의 나열만큼 지루하고 민망한 것도 없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원작에서부터 갈 길을 잃었다. 




단점을 부각시키는 연출     

그렇다면 이 작품을 살릴 힘은 온전히 연출에게 넘어간 셈이다. 원작의 빈약한 리얼리티를 보강해서 ‘뮤지컬에 대한 뮤지컬’로 갈 것인지 아니면 아예 리얼리티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재밌고 아기자기한 ‘뮤지컬’로 갈 것인지 선택의 여지는 아직 있으니 말이다. 이번 공연이 선택한 방향은 후자인 것처럼 보인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등장인물을 이렇게 설정할 이유가 없다. 무대에 등장하는 연주자의 옷차림을 보시라. 추리닝을 배꼽 위까지 끌어올린 찌질이, 몸빼 입은 오지랖 아줌마,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면 딱 어울릴 만한 나비넥타이 아저씨, 난데없는 레게 청년, 뜬금없는 폭주족까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에게 연주자다운 모습은 아예 없다. 리얼리티에 대한 강박을 벗어버리는 건 좋은데 인물들의 비주얼을 이렇게까지 유치하게 풀어놓을 필요가 있나 싶긴 하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신 나고 재미있게 만들기만 하면 되지.


그런데 연출의 상상력이 곳곳에서 빈곤함을 드러내면서 공연의 재미는 점점 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린다. 그 넓은 무대 공간을 (연주하지도 않을, 정말 비싼 소품에 불과한!) 악기로 가득 채우는 바람에 정작 배우의 연기 공간은 무대 앞 좁은 공간으로 밀려나 버린 것도 그렇지만, 과거 회상이든 내적 고백이든 시공간의 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어김없이 무대를 회전시키는 촌스러운 공간 연출을 보자면 이 작품에 기대감을 갖기란 영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출석 부르듯이 배우를 비추는 조명이나, 공간 전환의 기능도 없이 떼를 짓기만 하는 안무도 볼품없긴 마찬가지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뮤지컬이라 해도 좋은 음악 하나는 있게 마련이라고 <오케피>는 말하건만, 그것마저도 기대하긴 어렵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의 연출은 산만하면서도 단조롭다. 아무 이야기도 없는데 공연 시간은 세 시간을 에누리 없이 채우고, 아무 할 일도 없는데 배우들은 그 시간 내내 무대 위를 서성인다.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자기 순서 돌아오면 무대 앞쪽으로 나와 몇 마디 안 되는 대사를 읊조리기에 이 배우들은 아깝다. 차라리 이 배우들에게 악기 연주를 시키든지. 그랬다면 원작의 한계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어 오히려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공연이 됐을 거다. 지금으로서는 뮤지컬에 대한 뮤지컬은커녕 재밌는 뮤지컬이 되기에도 역부족이다. 이것이 <오케피>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9호 2016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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