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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이상훈의 세계의 도시, 세계의 공연장 [No.150]

글 |이상훈 사진 |이상훈 2016-03-17 4,744

영상 도시에서 음악 도시로 거듭나는 로스앤젤레스




이 코너를 연재하고 처음으로 미국을 다룬다. 이번에는 로스앤젤레스(이하 LA)의 공연장과 공연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 볼 생각이다. 한동안 우리 국적기 1, 2번은 인천발 LA행 왕복 노선으로 대한항공 KE 001/002편이었다. 관련 내용을 검색해 보니 1972년 4월 김포 → 도쿄 → 호놀룰루 → LA 로 가는 노선이 첫 비행이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중·장거리를 한번에 갈 수 없었기에 주유를 위한 경유지로 하와이를 들른 모양이다. 그래서 최근 001편은 인천발 호놀룰루 편으로 바뀌었다. 제번하고 그만큼 LA라는 도시는 거리에 비해 왕래가 잦은 곳이며, 현재에도 가장 많은 교포들이 사는 해외 도시 중 한 곳이다. 또한 미국 내에서는 뉴욕 다음 가는 인구와 경제 규모를 자랑한다. 현재 도심 내 거주 인구만 400만 명으로 광역권까지 합치면 1,500만 명에 육박한다. 할리우드를 시작으로 월트 디즈니의 본사와 디즈니랜드, 우리에게 익숙한 다저스 구단과 아름다운 롱비치의 해변은 LA 하면 금세 떠오르는 것들이다. 하지만 미국 내 제2위 도시이자 우리에게 익숙한 LA의 공연 문화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가끔 명절 때 한국 가수들의 교포를 위한 해외 공연 소식 정도가 언론에서 다뤄질 뿐이다. 하지만 2000년 이후로 클래식을 중심으로 LA는 공연 도시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이제 더이상 ‘Made in Hollywood, Disney’와 같은 영상 산업이 다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도밍고가 이끄는 LA 오페라                    

LA 공연 문화의 중심에는 LA 뮤직센터가 있다. 다운타운에 위치한 이 복합 문화센터는 미국 내에서 뉴욕의 링컨센터 다음의 규모를 자랑하는 공연 시설로 그 메인 홀은 3,200석 규모의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Dorothy Chandler Pavilion)이다. 그리고 2,000석 규모의 아만손 극장(Ahmanson Theater)과 750석 규모의 마크 테이퍼 포럼(Mark Taper Forum)이 있어 이곳에서 뮤지컬과 연극이 올라간다.


LA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공연 단체는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에 상주해 있는 LA 오페라이다. 이곳의 전신은 1948년 창립한 시민 그랜드 오페라(Civic Grand Opera)이다. 창립 초기 제작할 여력이 되지 않아 뉴욕시티 오페라와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가져다 상연하였다. 1964년부터는 지금의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고 1984년 이후로는 LA 뮤직센터의 재정으로 다시금 자체 제작을 하기 시작했는데,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스페인 출신의 오페라 가수 플라시도 도밍고가 예술감독을 맡으면서부터이다.


흥행 보증수표나 다름없는 그 자신이 직접 출연하고 때로는 우디 알렌 같은 할리우드의 감독 등에게 연출을 맡기면서도 LA 오페라만의 색깔을 잃지 않았다. LA 오페라로선 도밍고가 플레잉 코치(감독 겸 선수)인 셈이다. 그의 명성과 영향력으로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들을 걸음하게 하였고, LA 오페라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단숨에 우뚝 서는 데 기여했다. 필자는 2012/13 시즌 개막 공연인 베르디의 오페라 <두 명의 포스카리인>을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유럽의 여느 오페라 프로덕션 못지않은 제작 실력을 보여주었다. 절정의 연기를 펼치는 도밍고가 그 중심에 있었다. 1941년생인 도밍고는 지금도 오페라 무대 최다 배역이라는 신기록을 세우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두다멜이 이끄는 LA 필하모닉 거물 오페라 가수인 도밍고가 LA 오페라의 부흥을 이끌어냈다면,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신예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이 지휘봉을 잡고 새 역사를 쓰고 있다. 1981년생인 그는 베네수엘라 태생으로 *엘 시스테마(El Sistema) 출신이다. 2009/10 시즌 LA 필하모닉 음악감독에 취임했을 때 불과 28세였으니 정말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에게는 심지어 특별한 배경도 없었다. 미국과 베네수엘라는 외교적으로 원만한 관계가 아니었다. 이처럼 배경이 빈약한 젊은 아티스트를 기용한 것은 두다멜이 처음은 아니다. 1962년 25세의 젊은 지휘자이자 심지어 인도인인 주빈 메타가 그에 앞서 LA 필하모닉을 지휘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라는 지역 자체가 여러 인종이 섞이어 다원적이고 다층적인 문화가 일찌감치 자리 잡은 곳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현재 LA 필하모닉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더불어 서부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로 자리매김했으며, 중부의 시카고, 클리블랜드 심포니, 동부의 보스턴 심포니, 필라델피아 필하모닉 그리고 뉴욕 필하모닉과 더불어 미국내 빅 7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영국에서 발행하는 세계 최고의 음반 전문지 그라모폰 주도로 전 세계 유력 일간지 소속 음악 평론가들이 투표한 월드 톱 20 오케스트라 발표에서 LA 필하모닉은 뉴욕 필하모닉보다 앞선 8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LA 필하모닉의 승승장구에는 이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보금자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페라 공연을 염두에 두고 지은 챈들러 파빌리온은 사실 관현악 공연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컸다. 이에 10여 년 걸려 총액 2억 7400만 달러를 들인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이 2003년 완성된다. 월트 디즈니의 미망인인 릴리언 디즈니가 5천만 달러를 기부한 것이 큰 힘이 되었다. 건축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프랭크 게리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 외관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덮고 그 외부는 장미꽃이 피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마치 은색을 뒤집어쓴 엉성한 마분지 상자 같다는 혹평도 있지만 그 독특한 모양으로 인해 이내 LA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음향은 도쿄 산토리홀을 설계한 일본의 음향학자 야스히사 도요타가 내부를 설계해 완벽한 음향 효과가 나도록 했다. 이 공연장은 무대 홀이 중앙에 있어 모든 청중이 무대를 향해 앉을 수 있도록 2,200여 좌석을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멋진 공연장에서 젊은 지휘자가 지휘하는 LA 필하모닉은 확실히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제 LA는 할리우드가 전부가 아니다. 캘리포니아의 비옥한 땅 위에는 세계 정상급 오페라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성장해 나가고 있다.


P.S. 얼마 전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지금은 돌비극장(구, 코닥극장)에서 개최되지만 1969년부터 1987년까지는 LA 뮤직센터,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시상식이 열리기도 하였다.




* 엘 시스테마(El Sistema)

음악을 통해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베네수엘라는 남미 최대의 산유국이면서도 고질적인 빈곤과 범죄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브레우 박사는 조국의 빈민가 아이들에게 총이나 마약 대신 악기를 안겨주고 음악을 가르쳐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도록 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하는 한편 그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고 협동·질서·소속감·책임감 등의 덕목과 가치를 심어주고자 했다. 처음에 수도 카라카스(Caracas)의 한 빈민가 차고에서 11명의 단원으로 출발한 엘 시스테마는 2010년 기준으로 베네수엘라 전국에 190여 개의 본부, 26만여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다. 두다멜은 이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최대의 인재이자 최고의 스타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0호 2016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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