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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삼총사> 카이 [No.151]

글 |나윤정 사진 |김희준 2016-05-02 7,214

무대라는 기적 


지난해 카이는 <팬텀>의 팬텀, 그리고 <아리랑>의 양치성, 상반된 캐릭터를 연이어 맡으며 배우로서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삼총사>의 달타냥 역시 그의 새로운 면모를 기대하게 만드는 역할. 다양한 무대를 오르며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배우 카이. 그는 누구보다 무대의 소중함을 알기에 매순간을 기적처럼 새롭게 맞이한다.





오롯이 본질에 가까이
최근 들어 배역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 같아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건 배우의 과제이자 의무라고 생각해요. 항상 저와 이미지가 꼭 맞는 역할만 찾아서 할 순 없잖아요. 그래서 항상 대본을 읽을 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지닌 캐릭터 말고, 다른 성향의 역할에 호기심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단순히 ‘이번엔 이런 역할을 해봤으니 다음엔 저런 역할을 해야지’ 하는 목적으로 배역을 선택한 건 아니었어요.


<삼총사>의 달타냥 역도 의외란 생각이 들었어요.
<아리랑> 공연을 마치고 잠시 외국에 나가 있었거든요. 그때 <삼총사>에서 출연 제안이 들어왔다는 말을 전해 들었어요. 처음엔 당연히 아라미스 역할인 줄 알았어요. (웃음) 그런데 달타냥이라고 해서 ‘어, 저요?’ 하고 반문했죠. 하지만 저 역시 아라미스보다 달타냥에 더 호감이 갔어요. 정말 재밌겠다! 지난해 <아리랑>의 양치성을 연기할 때, 물론 행복했지만 극악무도한 캐릭터라 참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무대 위에서 한 번 풀어지는 역할을 맡고 싶었어요. 즐겁고 행복하고 싶었거든요. 그런 만큼 <삼총사>란 작품과 달타냥이란 캐릭터가 굉장히 맘에 들었어요. 꼭 하고 싶었죠.


평소 여행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쉬는 동안 여행을 다녀온 건가요?
<아리랑> 끝내고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본의 아니게 불발이 됐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심각하게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피해를 입는 일이 생겼어요. 그래서 제게 휴식이란 시간이 필요했어요. 단순한 여행을 넘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했죠. 내가 살면서 부족했던 점이 무엇이었나? 찬찬히 되돌아봤어요. 제가 클래식 음악을 전공해서인지, 유럽을 가든 미국을 가든 곳곳에 친구들이 많거든요. 친구들의 작은 원룸에 끼어 살면서, 그들이 공부하고 공연하는 곳을 함께 다녔어요. 한국에서 체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느낀 거죠. 사소한 일상이었지만, 제겐 날마다 기적 같은 시간이었어요.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뭐였어요?
유럽 사람들이 굉장히 개인적이잖아요. 다른 사람의 일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지도 않고, 또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억지로 외형적인 면을 신경 쓰지도 않고. 대신 마음의 여유를 가지며 자기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데 더 집중하더라고요. 이런 부분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어요. 또, 뮤지컬 <섬씽 로튼(Something Rotten)>를 보고, 굉장히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나요. 원어를 다 알아 듣지 못했는데도, 정말 유쾌하고 재밌더라고요. 어쩌면 <섬씽 로튼>을 본 것이 <삼총사> 출연을 결심하게 된 중요한 이유가 됐는지도 모르겠어요. 무대 위 배우들이 참 행복해 보였거든요. 물론 무대를 즐기는 관객들도 행복해 보였고요. 이런 작품을 꼭 한번 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지금 <삼총사>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동안 달타냥은 배우의 개성이 많이 드러나는 역할이었잖아요. 카이의 달타냥은 기존의 캐스트들과 어떤 차별화를 이룰까요?
물론 저만이 보여줄 수 있는 달타냥을 새롭게 만들고 싶어요. 이전 공연을 봤을 때, 제가 생각했던 달타냥과 차이가 있었어요. 저는 소설을 통해 이 작품을 처음 접했거든요. 달타냥은 자기 나름대로 굉장히 진지한 캐릭터였어요. 너무 진지하고 순수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세속적인 삼총사들의 관점에서 볼 때 웃음이 나오는 거죠. 달타냥 자체가 까불까불하거나 가벼운 캐릭터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소설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웃기만 해도, 자기를 비웃는다고 생각하고 화를 내는 그런 인물로 그려지거든요. 저는 어떤 작품이든 본질에 충실하고 싶어요. 제 삶의 모토가 클래식이거든요. 그 작품의 출발선에 있는 기본적인 것들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런 면에서 저의 달타냥도 지금껏 여러분이 봐온 캐릭터와 차이가 있을 거예요.


사실 이번 <삼총사>는 캐스팅에서부터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는 듯해요.
<삼총사>는 2009년 국내 초연했고, 지금 8년째 공연을 이어가고 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하기 마련이잖아요. 왕용범 연출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옳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 작품의 많은 부분들이 변화했다고요. 그래서 이번 캐스팅에 가장 중점을 둔 것이 새로운 캐스트였대요. 이 작품에 한 번이라도 참여해 봤던 사람은 캐스팅하지 않았어요. 가장 처음의 것을 되살린 새로운 무대를 선보이고 싶었던 거예요. 연출님은 처음 이 작품을 각색했을 때의 본질로 돌아가고 싶다고 강조하세요. 그래서 애드리브를 배제하고, 작품의 본질에 가깝게 철저히 대본 위주로 연습하고 있어요.


이 작품의 본질은 뭐라고 생각해요?
연출님이 저희에게 제시한 건 ‘어벤저스’ 같은 모습이에요. 사실 영화 <어벤저스>만큼 허황되고 말도 안 되는 개그가 어디 있어요. 팔뚝이 떨어지는데도 쏜살같이 달려가는 영웅적인 모습은 배우가 관객들을 웃기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모습에 관객들이 빠져들고 심지어 재미와 감동을 느끼잖아요. 팀원 모두 <삼총사>도 그런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삼총사>란 작품이 ‘정의는 반드시 살아있다’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뻔한 스토리일 수 있지만, 뮤지컬이란 장르가 이 작품을 더욱 순수하게 표현해 주는 것 같아요. 그런 만큼 순수함과 동심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려 해요.


실제로 주위에 삼총사 같은 존재가 있나요?
음… 그동안은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 작품을 통해 만난 배우들이 ‘삼총사’라 느껴져요.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된 것 같아, 연습이 더 즐겁고 행복해요. 이번 작품은 배우들끼리 의기투합이 잘돼요. 특히 산들과 신우가 굉장히 열심히 하고, 또 연습실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줘요. 배우들이 가끔 농담 섞인 말로, 삼 개월을 무슨 재미로 버티느냐고 하거든요. 저희에겐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삼총사>는 그런 염려가 전혀 생기지 않았어요. 서로서로 많은 의견을 주고받으며, 재밌게 작품을 잘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선물 같은 무대

뮤지컬, 클래식 등 다채로운 장르의 무대를 오가잖아요. 이걸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은 뭐예요?
모든 무대가 저라는 사람에게 과분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에요. 돈을 벌어야겠다 혹은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해? 이런 생각이었다면 지금처럼 못했겠죠. 가수로서, 뮤지컬 배우로서, 어떤 무대가 저에게 주어졌을 때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난 이 무대에 오르기에 아직 부족한 사람인데…. 이렇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는데 내가 함부로 무대를 대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지나친 겸손이라고 조언하는데, 이게 제 가슴속에 있는 진심이거든요. 이것들이 절 다시금 계속해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지금 제가 받는 사랑이 너무나 과분하기 때문이죠. 


어느덧 뮤지컬 배우로서 무대에 오른 지도 5년이 넘었네요. 직장인들이 5년 차쯤 되면 미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잖아요. 배우로선 어때요?
직장에선 5년 차면 대리 정도 되는 거죠? 정 대리네요.(웃음) 2011년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로 데뷔를 했고, 지금까지 여섯 편 정도의 공연을 했잖아요. 그런데 전 여전히 제가 신인 같아요. 아직도 너무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리고 뮤지컬 배우로서 지금 저는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판단은 관객들이 해주는 거지만, 선택은 제가 하잖아요. 어떤 작품을 할 것인가, 어떤 무대에 설 것인가. 저는 뮤지컬이 정말 위대하고 아름다운 장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분야에 나란 사람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고 기뻐요.


뮤지컬을 시작하면서 얻게 된 것과 잃은 것을 각각 꼽는다면요?
연기라는 게 참 재밌더라고요. 가수로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일종의 연기라 할 수 있지만, 대사를 주고받는 행위는 없잖아요. 내가 아닌 누군가의 삶을 살아본다는 것, 혼자만의 무대가 아닌 다른 배우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 그것이 어떤 기계나 물건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고 감성이라는 것. 이런 모든 것들이 정말 아름다워요. 게다가 그 안엔 제가 사랑하는 음악까지 담겨 있으니까요. 정기열이란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봤을 때, 뮤지컬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처럼 느껴져요. 그리고 잃은 것은…. 잘 모르겠어요. 정말 하나도 없네요.



10년 전만 해도 지금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지 않았어요? 줄곧 전도유망한 성악도의 길을 걸어왔잖아요.
사실 상상은 했어요. 아주 또렷이 기억나요. 조승우 선배의 <카르멘>을 보고, 또 <오페라 유령> 국내 초연을 보면서 생각했죠. 세상에 이런 예술도 있었구나! 나도 이런 무대에 올라 다른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그 순간이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에 잊히지 않아요. 하지만 당시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지금 훨씬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제 능력보다 훨씬 더 좋은 무대에 서고 있고요.


앞으로 10년 후를 상상해 본다면 어떤 모습이 떠올라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 사실 이런 꿈을 꾸고 있지는 않아요. 제 삶을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 영 순위거든요. 어느 순간이든 제 삶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하지 못하다면 당장 그만둘 거예요. 물론 지금 그럴 일은 거의 없어 보여요.(웃음) 뮤지컬은 지금 제게 너무나 큰 기쁨이고, 제 삶에 기대감을 가져다준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10년 후에도 좋은 작품을 목마르게 기다리며, 공연에 임할 거예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작품에 대해 논하는 일이 저의 큰 기쁨이에요. 이런 모습을 10년 후에도 계속 이어 나갈 거예요. 또 하나의 꿈이 있다면 교단에 서는 거예요. 성악 전공자로서 처음 뮤지컬을 해야겠다 생각했을 때, 어떤 작품을 어떻게 연기하라고 지도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당시만 해도 성악을 전공해서 뮤지컬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런 사람들에게 좋은 지침이 되어주고 싶어요. 성악도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지금도 제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이유에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1호 2016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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