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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 <삼총사> 밀라디 [No.152]

글 |안세영 사진제공 |엠뮤지컬아트 2016-05-26 6,213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얼마 전, 장안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총사대장 아토스의 결혼. 하지만 신부는 반역자의 딸이다, 추기경의 심복이다, 말이 많은데요, 무성한 소문의 주인공 밀라디를 직접 만났습니다.


*이 글은 밀라디 역 배우 이정화와의 대화를 토대로 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첫 질문부터 미안하지만 당신을 둘러싼 안 좋은 소문이 많다는 걸 알고 있나요?
무슨 소문인데요?


많은 남자들을 유혹해 돈을 갈취한 사기꾼이다, 왕을 죽이려 한 추기경의 심복이다, 어깨에 낙인이 찍힌 반역자의 딸이라는 둥.
흠, 마음대로들 떠들라고 해요. 어차피 이해받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까. 하지만 이건 확실히 해두죠. 난 반역자의 딸이 아니에요. 단지 누명을 썼을 뿐. 아직도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니, 걸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전해주세요.


그럼 반역죄로 집안이 무너지기 전에는 어떤 삶을 살았나요?
후작가의 딸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죠.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존경하는 아버지와 사랑하는 아토스가 곁에 있어 행복했어요. 아버지는 누구나 알 만큼 정의로운 분이셨어요. 하지만 그런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집안이 한순간에 풍비박산 나는 걸 지켜보면서 더 이상 정의를 믿을 수 없게 되었죠. 특히 끝까지 나를 지켜줄 거라고 믿었던 아토스에게 배신당했을 땐 충격이 엄청났어요. 나를 사랑한다던 그가, 아버지의 결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도망치는 우리 앞을 가로막다니. 나를 향한 사랑은 다 거짓이었나? 나만 내 전부를 바쳐 사랑한 건가? 그때부터 정의를 말하는 남자들은 다 우스웠죠. 정의가 살아있다면 난 이렇게 살면 안 됐는데. 그런 남자들을 보면 가면을 벗기고 그들의 위선을 까발리고 싶어졌어요.


그런 절망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뭔가요?
아버지가 참수당하고, 어깨에 죄인의 낙인이 찍히고, 사람들에게 돌팔매질 당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날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복수’예요. 처음 감옥에 갇혔을 때만 해도 삶을 다 포기하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대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만 이렇게 죽을 순 없다, 이 원한은 꼭 갚아주리라! 그리고 크게 세 명을 복수의 표적으로 삼았어요. 먼저 무고한 우리 아버지에게 반역죄를 뒤집어씌운 자, 그리고 충신이었던 우리 아버지를 의심한 왕, 마지막으로 날 배신한 아토스.



연약한 귀족가의 아가씨가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바로 그 연약함을 나의 무기로 삼았죠. 연약한 여자인 척 남자들에게 접근해 이용하고 배신하길 반복하면서 점점 더 많은 재산과 높은 신분을 손에 넣었어요. 복수를 하려면 돈과 새로운 신분이 필요했거든요. 힘 있는 남자들의 세계에서 스스로가 미약한 존재로 느껴질 때마다 마음속으로 되뇌었어요. 나는 약하지만 이길 수 있다. 내 힘은 연약함 속에 있다.


한때 아라미스에게 접근한 것도 사랑 때문은 아니었겠네요?
물론이에요. 난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어요. 내 삶의 목표는 오로지 복수뿐, 사랑은 믿을 게 못 되니까요. 아라미스는 날 진심으로 사랑했던 모양인데 유감이에요. 내 목적은 젊고 잘생긴 오페라 스타와 바람을 피워서 남편인 백작의 주의를 흐트러트리는 것뿐이었거든요. 그 틈에 재산을 가로채 도망칠 계획이었죠. 설마 백작이 자살까지 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할 일이 태산인데 언제까지 한 남자 옆에만 붙어있을 순 없잖아요? 늘 다음 할 일은 뭘까, 다음엔 어떤 남자한테 접근해야 할까를 생각하며 움직였죠.


그동안 추기경의 심부름꾼 노릇도 한 건가요?
네, 감옥을 나와 목숨을 부지하게끔 해주는 대가로 추기경에게 충성을 맹세했거든요. 그가 시키는 일이 정의로운 일인지 아닌지는 관심 없었어요. 내가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그런데 재밌는 게 뭔지 아세요? 그렇게 추기경 말에 벌벌 떨던 내가 시간이 지나 힘을 쌓고 내부 일을 속속들이 아는 존재가 되자, 이제는 추기경조차 날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는 거예요. 추기경의 근위대장인 쥬샤크는 내가 날이 갈수록 자기를 하찮게 보는 것 때문에 열깨나 받았을걸요. 나중에 날 지하 감옥에 처넣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거야.


그렇다면 추기경이 왕을 납치하는 걸 도와준 이유는 뭔가요?
왕에게 복수할 기회이자 우리 에사르 후작가의 땅을 되찾을 기회였으니까요. 추기경이 이번 일만 잘 해내면 빼앗긴 영지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 그렇게 영지를 되찾고 왕을 지하 감옥에 가둔 것으로 제 복수도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했죠.


그때까지 추기경이 무슨 의도로 그런 일을 벌였는지는 몰랐어요?
그때까지는 그랬죠. 끝까지 이유를 안 알려주길래 몰래 사람을 써서 기밀문서를 빼냈어요. 와, 거기엔 또 내가 모르는 판이 있더라고요. 추기경이 왕의 숨겨진 쌍둥이였다니! 잘만 이용하면 이참에 추기경까지 보내버릴 수 있겠다 싶어 즐거워졌죠. 그런데 기밀문서를 가져온 자가 어떤 대가도 필요 없으니 왕의 신변만 알려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걸 듣고 가슴이 확 답답해졌어요. 도대체 왜들 저렇게 왕에게 목을 매는 거지? 내가 사랑하던 남자도 왕 때문에 날 버렸는데.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고 후환을 없애기 위해 칼을 뽑았는데, 그자가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알았어요. 아토스!



그때가 반역 사건 이후로 아토스와 처음 만난 건가요?
네, 그렇게 직접 대면한 건 처음이었죠. 십여 년 만이었어요. 죽이려고 했지만 그의 눈을 보니 힘이 빠지더라고요. 날 이렇게 만든 그가 원망스러우면서도 힘들 때면 또 그리워지곤 했으니까. 아마 그리워서 더 미웠나 봐요. 쌓인 말이 너무 많은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가 호위병을 피해 창문으로 뛰쳐나갈 때도 그저 아토스란 이름밖에 부르지 못했어요. 사랑과 증오와 전하고 싶었던 수만 가지 말들이 압축된 한 마디였죠.


아토스와 일행들이 당신을 지하 감옥에 혼자 두고 떠났을 때도 무척 슬펐을 것 같아요.
그땐 슬픔보다 분노와 원망이 컸어요. 아토스가 감옥에 갇힌 왕을 구하기 위해 찾아왔을 때, 동정은 필요없다고 말하면서도 내심 구해 주길 기대했거든요. 하지만 그가 정신을 잃고 실려 나가면서 저는 또 한 번 버려졌죠. 게다가 감옥에서 아버지를 모함한 자가 다름 아닌 추기경이란 사실을 알게 된 탓에 분노는 극에 달했어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십 년이 또 배신당한 거잖아요. 왜 나한테만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나, 난 태어날 때부터 저주받은 운명이었나? 신이 원망스러웠어요. 하지만 난 지금껏 그 모든 걸 견디고 살아남았다고요. 세상이 날 뭐라고 조롱하든 난 승자다. 어디 할 테면 더 해봐라. 그런 심정이었어요.


그래도 무너진 지하 감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을 땐 신에게 감사하지 않았나요?
감사요? 아니요. 무너진 지하 감옥에서 다시 눈을 떴을 때 내가 생각한 건 딱 하나예요. 내가 또 살아남았구나. 그래, 나는 또 견뎠다! 나의 임무를 완수하러 가자. 그러고 나서 마침내 추기경을 제 손으로 죽이는 데 성공했을 땐 말로 표현하기 힘든 후련함에 눈물이 솟았어요. 아버지, 제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것 같아요. 이제 제 원수를 갚으러 가야죠. 그래서 그 자리에 있던 달타냥에게 말한 거예요. 아토스에게 전해라. 네가 버린 밀라디는 죽었다. 난 반드시 네게 복수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일종의 애증 어린 편지였던 것 같아요. 어쨌든 내가 살아있다는 걸 그에게 알리고 싶었던 거죠.


아토스와는 어떻게 다시 만났어요?
지하 감옥을 빠져나온 뒤 갈 곳을 잃은 나는 아버지의 영지로 돌아갔어요. 그곳에서 날 찾아 헤매던 아토스와 맞닥뜨렸죠. 하지만 지하 감옥을 빠져나오면서 몸을 많이 다친 탓에 그와 싸우기는 힘들었어요. 무엇보다 내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었던 사람이 다시 나한테 돌아왔다는 사실에 마음이 흔들린 것 같아요. 내가 이렇게까지 변했는데도, 밑바닥까지 다 보여줬는데도 모든 게 날 지키지 못한 자기 탓이라며 용서를 구하는 그의 앞에서 결국 마음이 허물어졌죠. 그래, 다 네 탓이야! 그러니까 책임져.


지금은 무척 행복하겠네요.
가장 기쁜 점은 추기경의 음모가 밝혀진 뒤, 그의 모함 때문에 반역자로 몰렸던 아버지의 명예가 회복됐다는 거예요. 이건 제가 아니라 아토스가 애써준 덕분이죠. 아버지의 결백을 밝히겠다는 건 아토스가 십 년 전부터 해온 약속이거든요. 하지만 저는 그동안 지은 죄가 있으니 계속 죄인으로 살아야겠죠. 아토스는 아무 말 안 하지만 총사대장이 나 같은 여자와 결혼했다고 해서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거 알아요. 뭐, 어쩌겠어요. 난 나답게 계속 싸워야지. 다만, 이제부터는 정의를 위해서요. 다시는 나와 같은 삶을 사는, 제2의 밀라디가 생기지 않도록.


삼총사는 요즘도 사이좋게 지내나요?
그럼요. 달타냥도 콘스탄스랑 예쁘게 살고 있고, 나도 모두와 화해하고 잘 지내고 있어요. 음, 아라미스와는 처음 몇 달간 서로 피해 다녔지만… 요샌 편해져서 농담도 하고 그래요. 얼마 전엔 뭐라더라. 자기가 연애의 고수가 된 게 다 나한테 배워서라나? 아, 그리고 다 같이 포르토스의 보물도 찾으러 가려고요. 포르토스는 자기 혼자 갈 거라고 난리지만, 제가 있는 한 그렇게는 안 될걸요. 후훗!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2호 2016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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