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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 <에드거 앨런 포> [No.154]

글 |전영지 사진제공 |SMG 2016-07-18 6,639

주선율을 놓치다, <에드거 앨런 포>




“포는 저녁때 밤의 어둠이 세상에 쏟아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1) 19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소설가인 에드거 앨런 포, 그의 작품들에선 정말이지 그런 소리가 난다. 어둠이 세상에, 아니 세상이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치며 내는 듯한, 무섭고, 기괴하며, 슬프고도 아름다운 소리 말이다. 이를테면, 『모르그 가의 살인』에서는 살인을 저지른 오랑우탄이 내지르는 아우성과 그것을 목격한 사람의 절규가 뒤섞여 이질적인 소리들로 변주되고, 그의 대표 시 「갈가마귀」에는 연인을 잃은 이가 슬픔으로 여러 번 소리 내어 부르는, 떠난 연인의 이름 ‘레노어’와 그를 찾아온 까마귀가 의미 없이 되풀이하는 황량한 대답 ‘네버모어’가 각운을 이루며 반복된다. 또한, 바닷가 왕국에서 함께 살던, 사랑했던 소녀의 죽음에 대해 노래한 「애너벨 리」에서는 물속에서 울려오는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죽음의 노래, 즉 세이렌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포의 문학에는 아름다움과 공포/슬픔, 선과 악이 이를테면 대위(對位) 기법으로 작곡된 음악 속 주선율과 대선율처럼 티격태격하며 함께 흐른다.2)


그의 삶도 그러했던 것일까. 영국의 록 그룹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멤버, 에릭 울프슨의 글과 음악으로 탄생한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는 포의 삶에 흘렀던 대위법적 선율들에 주목한다. 공연이 들려주는 포의 인생은 다음과 같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던 포는 첫사랑에 실패하고 술에 절어 살다 다시 찾아온 사랑과 결혼하여 간신히 삶을 추슬러보나, 그녀 또한 병으로 떠나고, 결국에는 술과 마약으로 생을 마감한다. 즉, 이 공연의 관객은 포의 켜켜이 불운했던 삶의 자락자락을 엿보며, 그의 상실과 고통, 분노와 절망을 함께하게 된다. 그러나 작품은 또한 이 모든 비극의 배후에 포를 시기했던 목사 겸 시인, 그리스월드라는 사내가 있었다고 말한다. 공연은 포가 죽은 이후 그리스월드가 추모사를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포가 작가로 등단하고 그리스월드를 만나는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갈등으로 점철되었던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을 지나, 다시 포의 죽음으로 돌아온다. 결국, 이 공연 속 포의 인생은 그리스월드와 함께 흐르고, 또 멈춘다.



에드거 앨런 포의 인생에 루퍼스 그리스월드라는 사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 둘이 서로의 인생에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확실치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 뮤지컬에서 포에게 가장 ‘의미’ 있는 존재는 두말할 것 없이 그리스월드이다. 그리스월드는 포와 포의 첫사랑 엘마이라의 아버지를 이간질하고, 버지니아와의 결혼식 날 술을 선물해 포를 다시 술에 손대게 한다. 그는 또한 버지니아의 죽음 이후 극도의 알코올중독에 빠져있는 포를 꾀어 그의 작품과 명성을 모두 무너뜨리는 계략을 세우는데, 이 장면은 하나의 독립된 뮤지컬 넘버로 표현되어 앙상블 배우들과 함께 화려하게 무대화된다. 게다가 포의 죽음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지만, 뮤지컬은 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몇몇 사람들에게 구타당하고, 술과 마약을 강제로 주입 당해 죽어간 것으로 묘사하는데, 그 장면에도 웃음 짓는 그리스월드를 세운다. 이렇듯 뮤지컬은 그리스월드 없는 포의 인생은 없다는 듯, 포의 모든 고통과 심지어 죽음조차 그리스월드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무대화한다.


그러나 왜, 도대체 왜 그리스월드가 이토록 처절하게 포를 미워하는가 하면, 그에 대한 뮤지컬의 설명은 좀 애매하다. 그들은 처음부터 어근버근했다. 서로의 작품에 대한 뜨뜻미지근한 논평을 주고받은 후 두 사람은 처음으로 대면하는데, 유쾌하지 않은 그 첫 만남 직후 그리스월드는 뇌까린다. “아직 철이 안 들었네.” 그랬다. 포는 무례했다. 그러나 이 짧은 무례가 그리스월드의 기나긴 적대감을 설명하긴 어려울 듯하다. 어쨌든 그는 목사가 아닌가. 지나치게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포를 파멸시켜 가는 그를 지켜보고 있으면, 그가 신앙심으로 포를 계도코자 한다고는 믿기 어려워진다. 그가 계도해야 하는 대상은 아무래도 그 자신이다. 그렇다면 질투였을까. 그리스월드가 주최한 시 낭송회에서 포가 「갈가마귀」를 낭송해 청중들로부터 극찬을 받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질투도 나겠다 싶다. 허나 그가 포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그의 질투는 포의 천재성에 대한 것보다는 포의 사회적 성공 때문일 것이다. 시시한 질투다. 어린 아내와 사별하고, 알코올중독으로 이미 폐인이 돼, 글도 쓰지 못하고 있는 작가에 대한 질투로는 참으로 시시하다. 결국, 이 공연에서 그리스월드는 그저 여느 누구들처럼, 마음이 아픈 사람으로 보인다. 



비루한 그리스월드 곁에 있는 포는 평범하다. 그리스월드만 제외하면 그의 삶에는 그리 큰 고통도 없어 보인다. 다시 강조하지만, 실존했던 인물 에드거 앨런 포가 아니라, 이 뮤지컬의 주인공 포 말이다. 일단 그의 사랑은 너무도 가벼워, 그의 이별이 슬프지 않다. 엘마이라와의 이별 이후 버지니아에게, 버지니아의 죽음 이후 다시 엘마이라에게 넘어가는 사이에 술을 좀 마시긴 한다. 그러나 그는 이별 없이도, 사별 없이도 항상 취해 있었다. 게다가 그에게선 창작자로서의 고통 또한 엿볼 수 없다. 앞에 언급한 포의 작품들 『모르그 가의 살인』, 「갈가마귀」, 「애너밸 리」는 노래로 불린다. 그런데 이 뮤지컬 넘버들을 바로 뒤따르는 다른 등장인물들의 호들갑스러운 찬사를 듣고 있으면, 포에게 마음을 주어야 하는 이유가 없어진다. 포가 이미 동시대에 충분히 인정받았던, 사랑받았던 예술가라면, 이제 와서 그를 연민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공연이 묘사한 포는 천재였기에 쉽게 썼고, 쉽게 써도 쉽게 사랑받는 작가였으나, 그리스월드 때문에 지옥 같은 인생을 보내다 단명한, 불운한 인물일 뿐이다.


지나치게 열정적으로 포를 괴롭히다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그리스월드, 그리고 그에게 고통받았던, 일에는 다소 천재적이었는지 모르지만 사람을 사귀고 사랑하는 일에는 도통 재능이 없었던, 그러니까 지독하게 평범했던 사내, 에드거 앨런 포. 이것이 이 뮤지컬이 그려내는 두 자락의 선율이다. 이 작품은 이 두 선율을 대립시키는 데 전념하다, 둘 모두를 초라하게 만들고 만다. 얼마 전 타계한 극작가 피터 셰퍼의 작품 <아마데우스>(1979)에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열렬히 증오하는 가운데도 그의 음악만은 뜨겁게 사랑하여, 자신의 싸움을 ‘불공평한 신’과의 싸움으로, 모차르트의 음악을 신의 음악으로, 그리고 자신을 신의 음악을 듣는 이로 만드는 것과는 사뭇 다른 전개이다.3) 위대한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는 갈등을 고결하게 하고, 자신의 라이벌,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 또한 위대하게 하는데, 애석하게도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는 그 반대의 길을 걷는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의 소모적인 갈등은 그 자체로 충분히 흥미롭다. 이것이 바로 우리 같은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의 인생 얘기가 아니던가. 그러나 에드거 앨런 포의 문학이 들려주는 음악에 귀 기울이며,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가 음악으로, 영상으로 펼쳐내는 우울하나 웅장하고, 음울하나 찬연한 세계를 목도하고 있자니, 기대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러 선율의 이야기들이 자신을 희생하지도, 서로를 지배하지도 않으며, 함께 온전한 소리를 내는, 풍성함 가득하고 위대하나, 슬프고, 슬퍼 아름다운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한 음악극, 아직 오지 않은 그 뮤지컬을 말이다.4)   



1) 메리 올리버, 민승남 역, 『완벽한 날들』 (마음산책, 2013), 46쪽.                                        


2)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더 레이븐: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 (RHK, 2009)를 참조했다. 이 책은 미국의 스릴러 소설가 마이클 코넬리가 엮은 선집으로 포의 대표작 16편과 현대 추리 작가들의 헌정 에세이 20편을 포함하고 있다.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의 관객, 그러니까 포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수록된 제프리 디버의 에세이, 「G 마이너의 포」를 참조하여 포의 작품에 영감을 받아 창작된 음악들을 찾아 들어보는 것도 즐거울 듯하다. 드뷔시의 오페라 곡에서부터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라스와 록 음악 가수 루 리드의 작품들까지, 정말이지 다양한 형식과 스타일의 곡들이 있으니 말이다. 


3) 피터 셰퍼는 자신의 희곡을 직접 각색하여 영화화했는데, 그 영화가 바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밀로스 포만 감독의 연출작 <아마데우스>(1994)이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와 아주 유사한 구조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펼쳐낸다.


4) 밀란 쿤데라는 ‘대위법’을 문학에 어떻게 적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음악에서 ‘대위법’이 어떻게 쓰이는가를 상기시키며 답한다. “다성적 방법을 사용한 위대한 음악가들의 기본 원칙 가운데 하나는 바로 소리들의 등가성이었습니다. 어떤 소리도 지배해서는 안 되고, 어떤 소리도 단순한 부속물의 구실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거죠”라고. 밀란 쿤데라, 권오룡 역, 『소설의 기술』 (민음사, 2013), 113쪽.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4호 2016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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