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는 봤나? 등골 오싹한 공포 소품
손드하임의 전설적인 명작 <스위니 토드>가 국내 초연 9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19세기 런던을 배경으로 손님들의 목을 자르는 이발사 스위니 토드와 그 시체로 파이를 만들어 파는 러빗 부인의 이야기를 그린 스릴러 뮤지컬이다. 미니멀리즘을 내세운 재연 무대에서 이 피비린내 나는 세계를 완성하는 것은 바로 유혈이 낭자한 섬뜩한 소품들. 살인 도구인 면도칼부터 소름 끼치는 인육 파이까지, <스위니 토드>의 소품을 디자인한 임정숙 소품디자이너에게 그 제작 과정을 들어보았다.
면도칼
스위니 토드가 사용하는 엔티크한 면도칼은 국내에선 구할 수 없어 해외에서 공수해 왔다. 극 중 묘사에 따르면 고급스러운 은세공이 돋보이는 칼로, 러빗 부인이 상자를 여는 순간 조명을 받은 칼날이 번쩍이면서 등장부터 남다른 존재감을 발휘한다. 그 섬뜩한 광채를 잘 표현하기 위해 처음부터 빛이 잘 반사되는 소재의 제품을 선택했다. 배우들은 공연에 앞서 이 칼을 이용해 면도하는 법을 공부하기도 했다. 원제품은 실제 면도를 할 수 있을 만큼 날카롭지만, 공연에 쓰이는 소품은 배우의 안전을 위해 칼날을 갈아 무디게 만들었다. 그런데 정작 스위니 토드가 살인을 할 때 쓰는 칼은 따로 있다. 디자인과 사이즈를 동일하게 만들어 객석에서는 구분이 안 되지만, 살인용 면도칼은 손잡이 부분이 튜브로 되어 있다. 이 튜브에 피를 채우고 손잡이를 누르면, 연결된 관을 따라 칼날에서 피가 쏟아진다. 칼날이 지나간 목에서 진짜 같은 피가 흘러내릴 수 있는 비결이다.
인육 파이
러빗 부인이 토드가 죽인 사람들로 만든 인육 파이는 이 작품을 대표하는 소품이다. 일반적으로 파이라 하면 동그랗고 물결무늬가 있는 빵을 떠올리겠지만 연출가 에릭이 원한 것은 당시 시대상에 맞는 만두 모양 파이. 소품 팀은 연출의 의견을 바탕으로 샘플을 제작하고 여러 차례 모양과 색상을 점검하며 파이를 완성했다. 파이의 겉면은 라텍스로 만들어 쫀득한 질감을 살리고, 그 위에 아크릴 물감을 칠해 노릇노릇한 색감을 표현했다. 가짜 파이가 완성된 다음에는 수제 파이 전문점 ‘타르틴’에 사진을 보내 같은 디자인의 파이를 주문했다. 배우가 먹을 진짜 파이를 만들기 위해서다. 공연 중 앙상블이 들고 나오는 대부분의 파이는 가짜지만 주연 배우들이 먹는 세 개의 파이는 진짜! 매주 ‘타르틴’에서 보내오는 파이를 냉동해 뒀다가 그때그때 꺼내서 사용하고 있다. 물론 이 파이의 속은 인육이 아닌 새빨간 체리 필링으로 채워졌다. ‘타르틴’ 매장에서 공연 기간 소품과 동일한 파이를 판매하고 있으니, 파이 맛이 궁금하다면 직접 먹어보기를.
고기 가는 기계
인육 파이에 들어갈 고기를 가는 기계. 피와 장기를 쏟아붓고 손잡이를 돌리면 옆의 주둥이로 피가 흘러내린다. 무대 위에 머무는 시간이 길고,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의 시선이 집중되는 소품인 만큼, 다른 세트와의 어울림에도 신경을 썼다. 고증을 바탕으로 디자인하되, 하얗고 미니멀한 무대에 맞춰 너무 어두운 색이나 화려한 디자인은 피했다. 대신 여기저기 피가 튀고 눌어붙은 것처럼 표현해 지저분하고 으스스한 느낌을 살렸다. 이러한 조화를 위해 무대디자이너와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작업했다고.
피
고기 가는 기계에 들어갈 피와 장기가 담겨 있는 양동이. 여러 번의 색상 테스트를 거쳐 완성한 검붉은 피와 라텍스(천연고무)로 만든 장기가 한데 섞이자, 그 리얼하고 끔찍한 비주얼에 스태프들도 몸서리를 쳤다는 후문이다. 공연에 사용되는 모든 피는 분장 팀에서 제작한 뒤, 소품 팀에서 농도를 조절해 사용하고 있다. 고기 가는 기계에 들어가는 피는 묽게, 배우들이 토하는 피는 되게, 면도칼에 들어가는 피는 그 중간 정도로 농도를 맞추고 있다. 피는 배우가 입에 넣어도 무해하도록 먹을 수 있는 소재로 만드는데,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실제 맛은 아주 달게 만들었다. 오래 두면 상하는 식용 소재의 특성상 매 공연 신선한 피(?)를 제조해놓는 것이 소품 팀의 임무. 피로 얼룩진 이발 가운을 깨끗이 세탁하는 것도 매일 치러야할 전쟁이다. 처음부터 피의 소재, 가운 원단, 세재 종류까지 철저하게 세척을 고려해 선택한 덕에 그나마 수고를 줄일 수 있었다고.
+ 이발소 의자
이발소 의자는 기성품이 아니라 무대디자이너가 따로 디자인해 제작한 세트다. 의자 뒤의 발판을 밟고 회전시키면 제자리에서 방향을 바꿀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살인을 끝낸 토드가 의자를 돌리면, 시체는 그 뒤에 연결된 미끄럼틀을 타고 아래층 주방으로 떨어진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5호 2016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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