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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킹키부츠> 이지훈 [No.156]

글 |안세영 사진 | 심주호 2016-09-28 6,146

그래도 나 끝까지 갈 거야


1996년 발라드 곡 ‘왜 하늘은’으로 가요계에 등장해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이지훈. 그 20년의 세월 가운데 10년은 뮤지컬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2006년 <알타보이즈>를 시작으로 수많은 무대에 오른 그는 최근 <모차르트!>의 타이틀롤을 맡아 그간 쌓아온 실력을 증명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킹키부츠>의 주인공 찰리로 무대에 오른다.  드래그 퀸을 위한 특별한 부츠 제작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에서 이지훈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끝나지 않은 도전

얼마 전 <모차르트!>의 서울 공연이 막을 내렸죠. 타이틀롤이자 많은 남자 배우들이 꿈꾸는 역할 모차르트로 무대에 선 소감이 어땠어요?
<모차르트!>는 초연부터 모든 시즌 공연을 챙겨 봤을 만큼 좋아하고 갈망해 온 작품이에요. 객석에서 느낀 음악의 감동이 무척 커서 무대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어떨까 꼭 느껴보고 싶었어요. 실제로 모차르트 역을 제의받았을 땐, 심장이 멈추는 기분이었죠. 이번 시즌 코이케 슈이치로 연출님이 새롭게 연출한 <모차르트!>는 음악뿐 아니라 드라마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천재지만 범인과 마찬가지로 가족, 연인, 친구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모차르트의 감정이 잘 표현되어 저도 더 깊이 있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원톱 배우로 작품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부담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굉장한 책임감을 느꼈죠. 제 컨디션이 전체 극의 흐름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항상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어요. 친구도 안 만나고 집과 공연장만 오가면서 오로지 작품에만 집중했죠. 심지어 공연 중간에 물을 마시거나 잠깐 쉴 때도 대화를 하지 않았어요. 배우도 인간이다 보니 매 순간 극에 몰입하기는 힘든데, <모차르트!>는 극이 시작하면서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잡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요.


<모차르트!>를 위해 처음으로 보컬 레슨도 받았다면서요?
그 전까지는 보컬 레슨을 받을 만큼 절실함을 못 느꼈어요. 내 실력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교만에 차있었던 거죠. (웃음) <모차르트!>는 여태까지 해온 작품 가운데 가장 노래를 많이 불러야 하는 작품이라, 겸손하게 공부를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보컬 레슨을 받기 시작했어요. 발성 연습을 하면서 <모차르트!>에 어울리는 질감의 소리를 만들려고 노력했죠. 전에는 록 발성만 갖고 있어서 표현력에 한계가 있었는데, 이번에 깊이 있는 소리를 만들면서 감정 표현에서도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킹키부츠>는 <모차르트!>와 분위기가 전혀 달라서 느낌이 새롭겠어요.
<모차르트!>가 감정을 극도로 쏟아내야 하는 작품이라, 차기작은 반대되는 성향의 작품을 고르고 싶었어요. <킹키부츠>는 초연을 봤을 때부터 밝은 에너지에 매력을 느꼈던 작품이에요. 연습을 하는 지금도 각자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기보다는 함께 이것저것 시도해 보면서 웃음을 터트리는 분위기라 재밌어요.



연습을 하면서 작품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도 있나요?
오늘 처음으로 런스루를 돌며 깨달은 점은 찰리가 진짜 많이 등장한다는 거예요. 1막과 2막을 통틀어 두어 장면 빼고는 계속 무대에 있어야 하거든요. 게다가 작품 안에서 찰리의 성장 드라마가 굉장히 진지하게 다뤄져요. 쇼 뮤지컬이지만 대본을 찬찬히 읽어보면 드라마가 강한 작품이란 걸 알 수 있죠. 찰리의 심리가 잘 묘사되지 않으면 개연성이 떨어지고 지루해지겠더라고요. 아, 이건 그냥 대사만 후루룩 읊는다고 될 문제가 아니구나, 철저하게 계산된 연기가 아니면 어렵겠다 생각했어요. <모차르트!>의 경우, 그날그날 무대에서 느끼는 감정에 따라 표현을 달리 하기도 했는데, <킹키부츠>는 사전에 잘 계획된 감정을 표현해야 할 것 같아요. 노래 한 곡 안에도 찰리가 점차 성장해 가는 과정이 담겨 있어서, 그 변화를 잘 보여줘야만 노래의 맛을 살릴 수가 있더라고요.


드래그 퀸 롤라에 대한 찰리의 감정 변화도 표현하기 까다로운 부분일 것 같아요. 처음에는 여장을 한 롤라를 보고 난감해하다가 어느새 동업자가 되고, 친구가 되잖아요.
찰리는 원래 드래그 퀸이나 동성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보수적인 사람이었을 거예요. 다만 공장을 살려보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넘치다보니, 그런 문제는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 거죠. 그러다가 ‘I’m Not My Father’s Son’ 장면에서 롤라와 대화를 나누면서 결정적인 깨달음을 얻었다고 봐요. 잠깐! 나도 아버지가 강요하는 삶의 틀에 갇혀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면서 살았는데, 얘도 나랑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았네? 너나 나나 똑같은 사람이구나!


하지만 2막에서는 다시 롤라에게 ‘사회 부적응자’ 같은 말을 쏟아내며 갈등을 빚기도 하죠. 그때 찰리의 속마음은 뭘까요?
사실 그 부분이 연기하기 제일 어려워요. 롤라와 공장 노동자들의 분쟁, 떠나버린 약혼자,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는 공장, 그런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서 결국 생각지도 못한 막말을 하게 되는 건데, 그게 자연스럽게 드러나려면 앞에서부터 찰리가 받는 스트레스의 수치가 치밀하게 표현돼야 하거든요. 그렇다고 찰리가 마냥 화만 낼 수도 없는 캐릭터예요. 음악적으로도 롤라의 노래는 호소력 있고 폭발적인 반면, 찰리의 노래는 감정이 절제된 편이죠. 꾹 참고, 설득하고, 화내고, 그러다 상처받고, 이걸 계속 리드미컬하게 왔다 갔다 하는 게 관건이에요. 그러다 마지막에 ‘Soul of A Man’을 부르면서 모든 스트레스가 빵 터져 나와야 하는 거고요. 쉽지 않겠지만, 확실한 연기 공부가 될 거라고 기대해요.




무대에서 보낸 10년

찰리의 이야기에서 특별히 공감 가는 부분이 있나요?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나 꿈도 열정도 없이 살아가던 찰리는 어느 날 갑자기 공장을 물려받고 롤라를 만나면서 드래그 퀸을 위한 부츠를 만들겠다는 꿈을 갖게 되잖아요. 저도 고등학생 때까지는 아무런 목표 없이 막연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그걸 직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우연히 캐스팅 제의를 받아 가수가 됐고, 또 가수 활동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연기와 뮤지컬에 도전하게 됐고, 지금은 그게 제 삶의 전부가 되었어요. 처음부터 꿈꾸었던 일은 아니지만 어느새 그 일이 나를 더 열정적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포기할 수 없는 꿈이 된 거죠. 그런 점에서 저도 찰리와 비슷한 길을 걸어온 것 같아요.


뮤지컬 활동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지났어요. 그 10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나요?
제 자신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죠. 어릴 때는 워낙 바빠서 뮤지컬에만 집중하기 힘들었고, 몸이 피곤하면 연습을 빠지기도 했어요. 공연 전 목 풀기나 몸풀기가 습관이 되어 있는 다른 뮤지컬 배우들과 달리 그런 걸 해야 하는 이유조차 몰랐죠. 하지만 이제는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솔선수범해야 할 때잖아요. 연습에 늦거나 빠지지 않는 건 물론이고, 공연 때도 두세 시간 전에 미리 도착해서 준비를 해요. <모차르트!>를 공연한 뒤로는 주연 배우에게 필요한 리더십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어요. 전에는 내 할 일만 마치면 연습실을 나섰는데, 이제는 다른 배우들을 격려하고, 후배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래서 공연이 끝까지 아무 사고 없이 올라가게 만드는 것도 주연 배우의 책임이라는 걸 배웠죠.


뮤지컬 관객이 해준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모차르트!>를 본 관객 한 분이 블로그에 적으셨더라고요. 노력으로 바뀌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제 공연을 보고 그 생각이 깨졌다고요. 얼마나 혹독하게 노력했으면 소리며 연기, 무대 장악력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느냐는 글을 읽고 정말 뿌듯했어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구나. 단 십 분이라도 더 투자한 사람에게 결실이 돌아오게 되어 있구나. 그렇지, 내가 이만큼 공부했는데 티가 나야지. (웃음) 그걸 모두가 느끼지는 못해도, 관객 한 사람만이라도 느낀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킹키부츠>의 핵심 메시지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거잖아요. 자신이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힘들었던 적이 있나요?
올해로 데뷔한 지 20년이 됐는데, 아직도 어릴 적 덧씌워진 이미지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오래전 방송에 비친 모습만 기억하는 분들은 저를 술 잘 마시고 잘 노는 날라리 같은 이미지로 생각하시더라고요. 실제로는 술도 안 하고 생활 습관을 철저히 관리하는 편인데 말이에요. 일에 대한 열정도 전보다 더 커졌고요. 근데 이제 남들이 뭐라든 신경 쓰지 않아요.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고 믿거든요. 살다보면 몸에 밴 가치관이 자연스레 드러날 거라고. 나 이렇게 산다고 말로 떠들기보다는, 삶으로 보여주고 싶어요.


SNS 계정 상단에 적혀 있는 ‘그래도 나 끝까지 할 거야’라는 문구도 그런 의미를 담은 다짐인가요?
누가 뭐래도 개의치 않고 가던 길을 가겠다는 의미죠. 제 삶의 모토는 길게 가는 거예요. 과연 언제까지 노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잘 관리하면 50대, 60대가 되어서도 무대에 설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때는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의 아버지, 할아버지를 맡게 되겠지만요. 뭐가 됐건 관객들에게 좋은 노래를 들려줄 수 있게 끝까지 한번 가보려고요.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을 발매할 거라는 소식도 들었어요. 어떤 앨범이 될 예정인가요?
데뷔곡인 ‘왜 하늘은’을 리메이크해 볼까 해요. 20년이 지나 부르는 ‘왜 하늘은’은 예전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서 듣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서요. 사실 저와 같이 데뷔했던 가수들 중에 지금까지 계속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20년 동안 어떻게 버텨왔는지, 그렇게 살아보니 어떤 희망이 보였는지 이야기하는 앨범을 만들고 싶어요. 기존에 제 노래의 주요 테마는 사랑과 이별이었다면, 이번엔 희망이 담긴 노래, 힘을 줄 수 있는 노래를 부를 생각이에요. 그래서 지금까지 저를 기억해 준 팬분들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6호 2016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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