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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INSIDE THEATER] <비(Bea)> [No.158]

글 |나윤정 사진제공 |아이디어랩 2016-11-15 3,894

스스로 행복해질 권리

<비(Bea)>


2010년 런던 소호 시어터에서 초연해 주목받은 연극 <비>가 김광보의 연출로 국내 무대에 오른다. 북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겸 연출가 믹 고든이 쓴 <비>는 슬프고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결코 어두운 작품은 아니다. 안락사란 묵직한 소재를 인간의 존엄한 자유와 행복이란 관점에서 유쾌하고 활기차게 풀어내 특별함을 더했다. 8년이란 긴 시간 동안 병상에 갇혀 지낸 비, 그녀는 죽음을 선택하며 질문한다. 스스로 행복해질 개인의 권리와 존엄한 자유가 무엇인지. 



비의 현실과 내적 자아

                     

 

 

비는 생기 넘치고 자유롭다. 그녀는 예쁘게 자신을 치장하고, 마돈나의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춘다. 여느 20대 여성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아니 오히려 더 생기발랄한 비의 모습. 하지만 이건 실제로 비가 갖지 못하는 삶이다. 왜냐하면 비는 지금 8년 동안 침대에 갇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지만 만성적 체력 저하 증상으로 비는 제대로 말을 할 수도 없고,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야말로 삶이 굳어버린 육체에 묶여버린 것이다.


비록 비의 몸은 침대에 갇혔지만, 그녀의 자아는 자유롭다. 비의 내적 자아는 계속 성장했다. 그 안에서 비는 자유롭게 움직이고 에너지가 넘친다. 이런 비를 이해하고, 그녀와 소통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동성애자 간병인 레이다. 비는 레이가 자신과 소통할 수 있는 인물임을 한 눈에 알아보고, 8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곰곰이 생각해 온 일을 그를 통해 실행하고자 한다. 비는 레이에게 자신의 생각을 편지로 적게 하고, 그것을 어머니 캐더린에게 전하게 한다. 자신의 죽음을 어머니에게 부탁한다는 내용이다. 이렇듯 <비>의 소재는 안락사다. 사실 죽음을 다룬다는 것은 언제나 비극에 가깝다.


그러나 <비>가 이야기하는 죽음은 슬픔보다 행복에 맞닿아 있다. 때문에 이를 표현하는 방식도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 실제로 비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엄청난 고통에 빠져 있는 상태다. 하지만 연극은 그녀의 내적 자아를 무대 위로 끌어내 현실과 대비시킨다. 현실의 비는 쇠약하지만, 그녀의 내적 자아는 밝고 당차다. 때론 간병인 레이를 놀리기도 하고, 19금 발언도 서슴없이 한다. 그녀의 밝음은 죽음이란 소재가 지닌 무게를 한층 덜어낸다. 그리고 작품은 그녀의 내적 자아를 통해 진짜 비의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침대에 갇힌 비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난 덫에 걸렸어요. 엄마, 이제 해방되고 싶어요. 그리고 엄마도 해방됐으면 좋겠어요. 아주아주 깊은 데에서 우러나오는 내 진심이에요.”

 


밝음 속에 배어나는 어둠

           

          

 

<비>는 북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겸 연출가 믹 고든이 쓴 작품으로, 2010년 런던 소호 시어터에서 초연했다. ‘비극이 어둠에 가려지지 않고 반드시 빛을 받을 수 있게 했다’는 언론의 호평을 받으며 주목받은 이 작품은 이후 캐나다, 그리스 등지에서 공연되며 감동을 이어갔다. 이번 공연은 국내 초연이자 아시아 초연으로, 믹 고든의 독창적인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비>의 국내 초연을 이끄는 건 서울시극단 단장이자 극단 청우 대표인 김광보 연출이다. 특유의 미니멀리즘을 선보이며 활발히 활동 중인 그는 이번 무대 또한 배우를 중심으로 두고 원작의 메시지를 군더더기 없이 전해 줄 것이다. 김광보 연출은 <비>는 ‘안락사를 통해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를 묻는 작품이라 설명한다. 단순히 비의 죽음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녀가 갈망하는 자유와 사랑, 인간의 권리를 등장인물들의 갈등을 통해 전하겠다는 것. 극 자체는 활발하고 에너지 넘치게 표현하되 그 밑바닥에 슬픔과 어둠이 배어 나오게 만들 생각이라고 한다.


<비>는 비, 레이, 캐더린, 이 세 인물이 등장하는 3인극이다. 그만큼 세 역할의 관계와 시너지가 중요한 작품이다. 이 중 비 역을 맡은 배우는 두 가지 모습을 함께 연기하게 된다.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 현실의 비, 그리고 현실과 정반대의 모습을 한 내적 자아 속 비다. 한 인물의 상반된 모습을 한 무대에서 보여줘야 하는 만큼, 배우에겐 1인 2역과 다름없는 쉽지 않은 도전이다. 이번 무대에서는 작품마다 놀라운 변신을 보여주는 배우 전미도가 비를 맡아 눈길을 끈다. 김광보 연출이 대본을 읽고 가장 먼저 전미도 배우를 떠올렸을 만큼,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비 역은 전미도와 싱크로율이 높다.



비의 유일한 소통 창구인 레이 역은 배우 이창훈이 맡았다. 동성애자 레이는 자폐증인 누나를 두고 있는 까닭에 간병인이 되었는데, 세심한 성격으로 비와 허물없이 소통한다. 그리고 그녀의 간절한 부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다. 극단 맨시어터의 소속 배우인 이창훈은 얼마 전 전미도와 <흑흑흑희희희>에 출연하며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그런 만큼 두 배우의 시너지는 이번 무대에서도 빛을 발할 것 같다.


비의 어머니 캐더린 역은 백지원이 연기한다. 변호사인 캐더린은 쉽게 발끈하는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엄마다. 무책임한 남편은 자신을 떠났지만, 홀로 묵묵히 비를 돌보고 있다. 8년째 병상에 있는 비는 사랑하는 엄마에게 안락사를 요구하며 큰 짐을 더한다. 엄마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캐더린은 결국 딸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해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비는 자유로움의 기쁨을 만끽하지만, 캐더린은 고통으로 울부짖으며 비를 떠나보낸다. 백지원은 20여 년의 관록 있는 무대 경험을 바탕으로, 캐더린의 복잡한 감정들을 깊이 있게 표현 해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11월 11~30일   

프로젝트박스 시야   

02-6339-1232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8호 2016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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