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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YORK] <팔세토스> [No.158]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제공 |Joan Marcus 2016-11-18 5,461

네 남자와 세 여자의 사랑 이야기  

<팔세토스> FALSETTOS


지난 10월 27일 브로드웨이의 월터 커 극장에서 정식 개막한 <팔세토스>는 여러모로 예상을 깨는 작품이다. 제목이 ‘팔세토(가성)’이지만 남자 가수들에 대한 얘기나 음악에 관한 얘기가 아닐뿐더러, 알콩달콩한 로맨틱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포스터와는 달리 다양한 모양의 사랑을 풍자적인 유머로 그려내는 씁쓸하지만 따뜻한 작품이니 말이다.



각양각색의 사랑 이야기


<팔세토스>는 1981년 웨스트 빌리지에 위치한 소규모 극장인 루실 로텔 극장에 올라간 <팔세토 행진>과 1990년에 공연한 <팔세토 랜드>를 한 작품으로 묶은 작품이다. 1991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고, 이듬해 토니상에서 음악상과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1막은 1979년을 배경으로, 결혼 이후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은 유대인 마빈이 부인과 아들을 떠나 남자 친구 위저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빈의 전부인 트리나는 마빈을 담당했던 상담사 멘델에게 상담을 받기 시작하는데, 점차 그녀에게 마음을 열고 멘델 역시 트리나에게 빠진다. 멘델은 결국 아들 제이슨의 격려에 힘을 얻어 트리나에게 고백해 결혼하는데, 정작 마빈은 두 사람의 관계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그 시기, 마빈은 위저와 이별을 맞는다. 1막은 자신이 괴로워하는 모습에 상처받은 아들 제이슨에게 회한 섞인 사과의 노래를 불러주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2막은 2년 후 제이슨의 바 미츠바(유대인 성인식) 준비가 이야기의 구심점이다. 마빈과 트리나는 바 미츠바를 준비하면서 갈등을 겪는데, 제이슨은 그런 상황에 더욱 스트레스를 받는다. 2막에는 마빈의 이웃으로 새로운 레즈비언 커플이 등장하는데, 두 사람은 제이슨의 바 미츠바 준비를 도와주며 마빈의 가족과 가까워진다. 어느 날 다함께 제이슨의 야구 경기를 보러가는 자리에 제이슨의 초대를 받은 위저가 참석해 마빈과 다시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위저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다. 위저는 치명적인 질병으로(에이즈로 짐작되는) 병원에 입원하고 제이슨은 위저가 바 미츠바에 참석할 수 있도록 가족과 함께 병원에서 행사를 연다. 바 미츠바가 끝나고, 위저의 장례식에서 서로를 위로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


마빈이 트리나와 헤어진 직후의 상황을 그리는 1막의 등장인물들은 전반적으로 불안정하다. 1막의 첫 노래는 마빈과 위저, 멘델과 제이슨이 ‘네 명의 유대인이 한 방에서 불평을 늘어 놓는다’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마지막에 트리나가 잠깐 등장한다. 네 사람이 지닌 불평을 늘어놓는 것은 1막 전반의 불안정한 분위기를 설명하는데 효과적이다. 장면 연출 역시 정신없는 노래 가사에 어울리는 쉴 새 없는 안무와 움직임으로 불안한 분위기를 잘 형상화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팔세토스>의 관점은 1막과 2막이 판이하게 다르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1막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많이 등장하고, 각자 사랑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는데, 2막은 각자 삶 속에서 그 사랑을 어떻게 다루는지, 어떻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내는지 보여준다. 1막 세 번째 노래로 다섯 인물들이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부르는 ‘사랑은 눈이 머는 것’은 특히 1979년의 인물들이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드러난다. 이 노래로 멘델과 트리나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마빈 역시 자신의 새로운 사랑에 대해 진심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이 곡은 불협화음과 못갖춘마디가 넘치는 불안정한 코드로 진행돼 어딘지 모를 불안한 전조를 암시한다.

상처받은 트리나와 그 상처를 다 치료해 주기에는 스스로도 불안한 멘델, 그리고 불나방같이 사랑에 뛰어든 마빈, 그런 마빈을 큰 다짐 없이 받아들인 위저. 그리고 불안정한 어른들을 바라보는 제이슨까지, 이들의 불안정한 사랑은 1막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그 불안함을 야기한 1차적 원인은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고 있던 마빈의 결정이었다. 2막에서 등장인물들의 불안정한 사랑이 안정되는 것은 마빈이 위저와 다시 합치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된 후 그와의 안정적인 관계를 통해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고 나서부터다. 주인공들의 불안함을 야기한 일차 원인은 자신의 성 성체성을 찾아가고 있던 마빈의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팔세토스>는 마빈의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다. 1막의 시작에 마빈과 위저, 멘델과 제이슨이 함께 등장한다는 것, 1막이 마빈과 제이슨으로 끝나고, 2막의 중심 이야기가 제이슨의 바 미츠바라는 것, 그리고 제이슨의 바 미츠바를 병원에서 여는 것이 하이라이트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작품은 어느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니라, 네 남자들이 각자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의 <팔세토스>로 지칭되는 주인공들은 비유적으로 변성기를 지나지 않은 소년의 목소리를 지닌 인물들로, 나이와 성격에 관계없이 각자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상징은 1막 첫 곡 ‘불평하는 네 명의 유대인 남자들’과 중간에 등장하는 1막의 주제곡과 같은 곡 ‘팔세토 랜드의 행진’에서 특히 드러난다. 첫 곡에서는 마빈과 위저, 그리고 멘델과 제이슨이 이것저것 불평을 늘어놓는 아이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 드러나지만, ‘팔세토 랜드의 행진’에서는 이들 네 명이 어두운 무대 위에 오렌지색 네온 조명을 달고 등장해 제목 그대로, 팔세토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2막의 첫 곡인 ‘팔세토 랜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역시 이들의 팔세토 음색이 그들의 미성숙함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장난꾸러기 같던 그들의 모습은 2막이 진행되면서 점점 진지해지고, 제이슨의 바 미츠바는 제이슨을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들이 유대인으로서뿐만 아니라 남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성장한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퍼즐처럼 짜맞춰지는 음악과 무대


각각 따로, 또 같이 성장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인물들을 그려내는 데 특히 효과적인 장치는,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이미 무대 가운데에 놓여 있는 사람 키만 한 크기의 정육면체이다. 공연이 진행되면서 이것의 상징이 드러나는데, 이 정육면체는 다양한 모양의 블록 이 조립된 것으로, 때에 따라 등장인물들이 조각을 하나씩 꺼내서 의자로, 테이블로, 침대로, 또는 집의 대문으로 다양하게 만들어 무대의 대소도구로 쓴다. 마치 아이들의 블록 쌓기 장난감의 현실 버전같이 생긴 이 소품들은 끊임없이 변주되며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윌리엄 핀의 음악과 함께 이야기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짜여가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낸다. 단편적인 장소를 구분 짓는 데 쓰이는 이 블록들은 1막의 마지막쯤 멘델과 트리나, 그리고 제이슨의 새로운 가정이 형성된 후 담요와 쟁반, 액자, 쿠션 같은 소품들과 함께 새 가정의 잘 꾸려진 거실과 그 집의 대문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마빈이 위저와 헤어진 후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해 트리나와 제이슨, 멘델에게 성질을 내고 나가면서 그 집의 대문을 무너뜨리는데, 이는 단단하게 붙어 있지 않고 작은 충격에도 쉽게 어그러지고 무너지는 등장인물들의 불안정함을 드러낸다. 2막의 시작 ‘팔세토 랜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조각을 사용해 뼈대만 세운 집이 등장하는데, 노래가 끝날 때쯤에는 역시 다 무너져 있다. 다음 곡으로 진행하면서 등장인물들이 이 블록들을 무대 상수로 올려 대충 정리를 해두고, 장면 전환에 따라서 또다시 의자나 침대로 사용하지만, 1막과는 달리 2막에서는 극이 진행될수록 장난감 조각들은 하나둘씩 무대 밖으로 사라져간다. 마치 등장인물들이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상징하듯이 말이다. 2막의 마지막, 위저의 병실에는 장난감 블록의 흔적은 없고 병원 침대와 의자만 존재한다. 흥미로운 것은 위저의 장례식에서 정육면체가 다시 무대 위에 등장하는 점인데, 아마도 등장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잠시 느꼈던 안정감도, 그리고 우리가 인생에서 찾게 되는 안정감도 상대적이고, 일시적일 뿐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야기는 서사적인 구성이지만, 주요 배역으로 나오는 일곱 명 외에는 앙상블이 등장하지 않는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가장 큰 동력은 배우들의 조합이다. <위키드>와 <리틀 미스 선샤인>로 잘 알려진 연기파 배우 스테파니 제이 블락은 마빈, 멘델, 제이슨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고 방황하지만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팔세토들과 함께 성장하는 트리나의 중심을 잘 잡아준다. <북 오브 몰몬> 브로드웨이 공연에서 엘리트 신자 엘더 프라이스 역으로 이름을 알린 앤드루 라넬스는 위저 역할을 맡아 직설적이고 가식 없는 모습을 진지하게 잘 그렸고, <섬씽 로튼>에서 과장된 슈퍼스타 셰익스피어를 코믹하게 잘 표현한 크리스천 볼이 마빈을 맡아 삶에 대해 확신이 없이 방황하는 중년의 남성부터 사랑을 통해 성장한 모습까지 스펙트럼이 꽤 넓은 인물을 성공적으로 연기한다.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극 중에서 열세 살에 지나지 않는 제이슨을 맡은 아역 배우 앤서니 로젠탈이다. 브로드웨이에서 큰 역할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여러모로 쉽지 않은 제이슨을 깊이 있게 그려내 앞으로 이 배우의 앞날을 기대하게 한다.




1990년에도, 2016년에도 가능한 얘기들


동성 간의 결혼이 먼 나라 얘기 같았던 1990년대 미국인을 배경으로, 동성애 커플을 이야기의 중심에 내세우고, 레즈비언을 일상의 이웃 중 하나로 설정하며, 사회적으로 큰 이슈였던 에이즈를 자연스럽게 이야기 소재로 쓰는 <팔세토스>는 1991년 당시에는 분명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20년 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이 2016년 현재의 관객들에게 별로 낡은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직도 미국의 곳곳에서 갖가지 이유로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고, 남녀 간의 사랑을 기본으로 하는 전통적인 가족관은 여전히 존재하며, 남자이거나 여자이기 때문에 사회적 위치가 정해지는 일 또한 여전히 남아 있다. 혈연이 아닌 사람들과 새로운 의미의 가족을 꾸리는 것은 지금도 부정적인(뭔가 문제가 있을 거라는) 가정을 기정사실화하곤 한다. 그렇기에 작곡가 윌리엄 핀과 작가 제임스 라파인이 20년 전에 쓴 이 작품은 지금의 사회에서도 여러모로 시의적절하다.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이들 일곱 명의 이야기는 2016년 우리들에게도 해줄 얘기가 아직도 많이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8호 2016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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