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선보인 한국 뮤지컬의 저력
모든 것이 불안했다. 최근 한중 양국 간 관계가 미묘한 이 시기에 한국 창작뮤지컬을 중국에서 소개하는 ‘K-Musical Road Show’가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을까, 그것도 천 석이 넘는 대극장에서. 우리만의 잔치로 끝나면 어쩌지. 솔직히 행사를 시작하는 당일까지 모든 것이 가슴을 졸이게 만들었던 것 같다.
우려를 씻어낸 뜨거운 반응
10월 12일 행사 첫날. 7시 시작을 한 시간 남겨둔 극장에는 한국 관계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6시 50분, 300명이나 왔을까? 초라한 모습을 중국인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데 … 초조함이 극에 달했을 때 기적은 벌어졌다. 시작 시간 십 분을 남겨놓고 500명이 넘는 중국 공연 관계자들이 극장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그제야 주최 측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행사를 잘 치르고 중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일만 남았다. 모든 불안은 정시에 막이 오르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져갔다.
첫날 네 작품이 중국 관객에게 소개되었다. <영웅>, <신과 함께 가라>, <마이 버킷 리스트>, <마타하리>. 무대는 배우의 예술이고 우리 배우들은 언제 어디서나 참 잘한다. 중국 관계자들은 한국 배우의 열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고, 기대 이상으로 작품에 대한 이해가 높았다. 특히 링링의 죽음에 같이 눈물 흘리는 중국 관객의 모습은 한국에서 관람할 때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을 전해 주었으며(<영웅>),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영향인지 영상 속에 나타난 배우 신성록의 모습만으로도 관객들은 설렐 준비가 되어 있는 눈치였다(<마타하리>). 쇼케이스가 끝난 후 로비에서 진행된 네트워크 행사는 중국 관계자들의 한국 작품에 대한 관심을 잘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 배우들은 로비에서 이미 스타급으로 환대를 받았는데 그중에도 극 중 배역에 걸맞은 폭풍 가창력을 보여준 배우 양준모(<영웅>)와 붉은색 롱드레스로 등장부터 무대를 압도하며 열연한 배우 김소향(<마타하리>)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상하이 뮤지컬계의 가장 큰손이라 불리는 상하이문화광장(Shanghai Culture Square)의 페이위엔홍 부총경리를 비롯해, SMG 상하이문광연예집단(SMG Performing Arts Group) 마천청 부총재, 상하이카이신마화문화전매유한공사(Shanghai Kaixinmahua Culture Media Co.Ltd.) 왕하이강 총경리, 상하이희극학원(Shanghai Theatre Academy) 황창롱 원장 등 업계 및 학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눈에 띄었고, 오랫동안 중국에서 뮤지컬 사업을 해온 CJ E&M China 직원들도 전원이 현장에 나와 둘째 날까지 자리를 지키며 양국 뮤지컬 관계자들의 교류 협력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우호적인 문화 교류
10월 13일. 어제의 흥분이 오늘도 이어질 것인가. 첫날이야 으레 관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틀 동안 중국 관계자들이 이곳을 찾아줄까. 하지만 이것도 기우였다. 전날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700여 명의 관계자들이 극장을 찾아주었고 우리의 작품 하나하나에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
둘째 날은 <구름빵>, <캣 조르바>, <셜록홈즈>, <아리랑>. 이렇게 네 작품이 소개되었다. 관객들은 이미 우리 작품에 친근감을 느끼는 분위기였다. 이날도 모든 배우들이 멋있었지만 그중에 히로인은 단연 서범석이었다(<아리랑>). 그는 단숨에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행사 뒤 로비에서 가장 많은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네트워크 행사에서는 우리 작품 모두에 관심을 표했지만 특히 <캣 조르바>에 많은 눈길을 주는 것 같았다. 이는 작품의 완성도와 더불어 한국 못지않은 중국의 교육열, 이에 더해 <캣 조르바>가 향후 애니메이션 등 멀티유즈로 확장된다는 제작사 대표(엄동렬, 상상마루)의 설명이 더욱 많은 관심을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
내년 상하이에서 <위키드> 투어를 준비하고 있는 중국 공연계의 또 다른 큰손인 루시 리(Lucy Lee / AC Orange International 대표)는 한 작품 한 작품을 유심히 관찰하고 우리 관계자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네트워크장의 분위기는 이틀간 연속 참석한 사람들도 꽤 되다 보니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중국인들의 대화를 눈치로 살펴보니 전반적으로 한국 뮤지컬 제작 능력이나 배우 기량, 창작 능력를 높이 평가하고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윤호진 대표(에이콤)가 언급한 것처럼 정서적으로 가깝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양국 간 정치적 긴장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우호적이고 환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행사는 마무리되었다. 이런 게 문화의 힘인가 보다.
이제 행사도 끝났고 흥분도 가라앉았고, 조용히 모든 것을 복기해 보고 미래를 준비할 때이다. 이틀간 진행된 ‘K-Musical Road Show’는 나름 성공적인 행사로 기억될 것 같다. 관객도 많았고, 분위기도 좋았으며 사고도 없었고 하우스 운영, 무대 진행, 영상 활용, 연출 등 모두 좋은 점수를 받을 만했다. 아울러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특정 파트너의 도움 없이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단독으로 행사를 진행한 것은 오히려 ‘신의 한 수’였다. 이를 통해 중국 현지인들이 아무 선입관 없이 우리 작품에 다가올 수 있었으며, 오히려 더 많은 중국 관계자들이 행사장을 찾을 수 있었다.
뮤지컬은 어찌됐건 비즈니스다. 의지와 열정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없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한국과 중국의 경제 시스템, 행정 시스템은 차이가 크며 호환되지 않는 서로의 시스템을 맞춰가는 데에는 많은 인내심과 지구력이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또 다른 역할을 기대해 본다. 지난 2002년, 세계 최고의 프로듀서 캐머런 매킨토시는 “아직 <레 미제라블>을 만나보지 못한 전 세계 3분의 1을 만나러 간다”고 당찬 포부로 중국에 입성했다가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난 바 있다. 이런 나라와 우리는 교역을 희망하고 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렇지만 우리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볼 때 결코 비관적이지는 않다. 조급하지도 지치지도 않는다면 길은 언젠가 열릴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8호 2016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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