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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오! 캐롤> 서영주 [No.159]

글 |안세영 사진 |심주호 2016-12-27 5,515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


애절한 멜로부터 웃기는 감초, 강렬한 악역까지 천의 얼굴을 자랑하는 배우 서영주. 최근 <스위니 토드>에서 음흉하면서도 섹시한 터핀 판사를 연기해 또 한 번 신 스틸러로 떠오른 그가, 이번에는 순정파 로맨티스트로 변신한다. 닐 세다카의 히트곡을 엮어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오! 캐롤>에서 서영주가 맡은 역할은 리조트 쇼 MC이자 20년간 한 여자만 바라본 순애보의 주인공 허비다.




코미디와 멜로의 조화


전작과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로 변신했네요. 이번 작품은 어떤 점에 끌려서 참여했나요?
어둡고 힘든 작품을 끝낸 터라 밝고 신나는 작품이 하고 싶었어요. <오! 캐롤>은 흥겨운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그리스>를 연상시켰는데, 저한테 <그리스>는 OB팀을 꾸려 다시 공연해보고 싶을 만큼 즐거웠던 작품이거든요. <오! 캐롤>도 <그리스>만큼 즐겁게 공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허비 역은 스탠딩 코미디라는 새로운 도전을 해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죠. 근데 이게 해보니까 굉장히 힘드네요.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코미디라서 드라마에 녹아있는 코미디를 할 때보다 부담이 클 것 같아요.

그렇죠. 반응이 예상과 다르게 나와도 거기에 맞춰서 배우가 순발력 있게 애드리브를 쳐야 하니까요. 극 중에서 허비가 던지는 말장난이나 난센스 퀴즈도 원래 대본에 나와 있던 게 아니라 배우들이 하나하나 고민해서 채워 넣은 거예요. 예를 들어 ‘깨’를 가지고 말장난을 하는 장면의 경우, 대본에는 ‘들깨’ 하나만 나와 있고 ‘참깨’, ‘잠깨’는 다 제가 만든 거죠. 그래서 배우마다 조금씩 멘트가 달라요. 이런 개그에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난센스 퀴즈는 공연을 여러 번 본 관객이 금세 맞춰 버릴까봐 그때그때 조금씩 다른 문제를 내려고 생각 중이에요. 지금도 계속 주변 사람들로부터 개그 소스를 수집하면서 아이디어를 짜고 있어요. 진짜 코미디언이 된 심정으로.


코미디언 캐릭터지만 마냥 가볍기만 한 게 아니라, 진중하고 젠틀한 면도 느껴졌어요. 
연령대가 다른 네 커플이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중년 커플이 무게를 잡아 줘야할 것 같았어요. 그렇지 않아도 허비와 에스더는 리조트 쇼의 MC로서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무대에 있을 때는 밝고 웃기게 가되, 평상시에는 약간 색깔을 다르게 가는 데 중점을 뒀죠. 저도 코미디언 동생들을 많이 알고 지내지만, 걔들이 평상시에도 막 웃긴 건 아니거든요. 무대에서 코미디를 할 때나 웃기지 사석에서는 별로 말도 없고 그래요. 그러니까 허비라고 항상 코미디언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코미디와 멜로의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게 관건이죠.


코미디와 멜로가 절묘하게 교차하면서 탄생한 명장면도 있던데요. 허비가 에스더한테 진지하게 마음을 고백을 하는데 갑자기 ‘와우~’ 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장면이요.
‘당신은 나의 모든 것(You Mean Everything To Me)’ 말이죠? 전 그 장면이 너무 좋아요. 심각하게 가다가 ‘와우’가 나오면서 갑자기 심각한 분위기를 확 풀어주잖아요. 연습 때도 그 장면에서 배우들이 다 웃었어요. 심각한데 웃음이 나오면 안 되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저는 처음 연습실에서 나왔던 그 반응이 맞다고 생각해요. 그 상황에서 ‘와우’가 나오면 웃을 수밖에 없죠. 그게 또 묘미고. 오히려 공연 때 웃음이 안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나오더라고요. 속으로 성공했다 생각했어요.


연출과 배우들이 상의해서 노래 앞뒤로 드라마 설명을 위한 살을 덧붙였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아무래도 기존 가요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보니, 앞뒤 상황을 드라마로 잘 구축시켜놔야 그 노래를 했을 때 설득력이 생겨요. ‘당신은 나의 모든 것’의 경우, 연출님이 허비가 에스더에게 이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노래 앞에 짧게 둘의 과거사를 언급하기로 했어요. 처음에는 이것도 약하지 않나 싶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둘이 왜 이런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대사로 시시콜콜 설명하는 건 아니라고 결론지었죠. 2막 초반부터 감정을 쌓아가는 장면이 있으니까 여기서는 딱 이 정도가 적당한 것 같아요.


<오! 캐롤>에 나오는 닐 세다카의 음악은 귀에 익은 것이 많아요. 하지만 이 작품을 하면서 알게 된 숨은 명곡도 있겠죠?
하비의 솔로곡인 ‘광대의 왕(King of Crowns)’이요. 굉장히 페이소스가 있는 곡이에요. 가사가 이렇게 시작하죠. ‘나는야 최고의 광대. 웃음 뒤 숨어 울고 있지만 누구도 알 수 없는, 내게 상처 줘도 난 웃을 거야. 나는야 최고의 광대. 슬픈 미소 지으며 웃고 있지만 소리 내 울 수도 없는, 표정 감춘 슬픈 광대들의 왕.’ 사실 닐 세다카의 원곡은 페이소스 없이 빠른 템포로 흘러가는데, 코미디언 허비가 이 노래를 부름으로써 더 페이소스가 생기는 것 같아요. 무명의 코미디언이지만 나는 최고의 광대다! 이게 또 배우 입장에서는 방패막이 되거든요. 무명 코미디언이라는 설정이 깔려있으니까 웃겨도 그만, 안 웃겨도 그만. (웃음)





광대의 왕


애절한 멜로부터 웃기는 감초, 강렬한 악역까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고 있는데, 평소 성격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작품에 따라 평소 성격도 왔다갔다 해서요. 어렸을 때 성격이 진짜 타고난 성격이라고들 하던데, 어렸을 때 저는 정말 천방지축이었어요. 말도 안 듣고 여자애들 고무줄 끊고 다니는 그런 개구쟁이. 그런데 연극을 시작하면서 필요한 말 외에는 잘 안 하는 성격이 됐어요. 선후배 관계가 엄격한 시절이기도 했지만, 20대 초반에 가르침을 받았던 연출 선생님께 이런 애길 들었거든요. ‘배우는 무대에서 에너지를 표출해야지 아무 때나 떠들고 까부는 게 아니다. 평상시에는 에너지를 아껴뒀다가 무대에 올라가서 터뜨려라.’ 그 말씀이 뇌리에 남아서 그런지 지금도 평상시에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에요.


허비는 스탠딩 코미디언으로서 그때그때 순발력 있는 애드리브가 필요한 역할이잖아요. 이전에도 무대에서 코믹한 애드리브를 선보이곤 했는데, 애드리브 자체를 즐기는 편인가요?
아니요, 애드리브는 아무 때나 남발하면 안 되죠. 애드리브는 캐릭터와 드라마 성격에 맞게, 정해진 틀에서 너무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하는 게 맞아요. <그리스> 때는 이지나 연출님이 아예 대본을 배우한테 맡겨서 애드리브를 정말 많이 했지만, <오! 캐롤>은 드라마가 이미 짜여있으니까 스탠딩 개그를 할 때 외에는 대본에 맞춰서 하고 있어요. 엄밀히 말하자면, 원래 애드리브라는 건 실수가 일어났을 때 그걸 메우기 위해 하는 거거든요. 요즘은 배우들이 튀고 싶은 나머지 애드리브를 하지 말아야할 곳에서도 하곤 하는데, 그건 작품 전체로 볼 때 마이너스예요. 애드리브를 안 해도 각자 맡은 역할을 잘하면 거기서 오는 커다란 시너지가 있어요. 애드리브며 개인기를 선보여서 웃기는 것보다 정확하게 짜인 대로 딱 해냈을 때, 그 뿌듯한 감동이 요즘은 더 와 닿아요.


이번에 순정파 허비를 연기하는 모습을 보니 서영주표 베르테르는 어땠을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저는 아쉽게도 <베르테르> 초연을 못 봤거든요.
연습할 때도 후배들이 그랬어요. 베르테르 생각난다고. 오래된 뮤지컬 팬들은 알겠지만, 제가 초기에는 주로 멜로 연기를 했거든요. 최근 관객들은 저를 <맨 오브 라만차>의 여관 주인 같은 코믹한 이미지로만 기억해서 베르테르는 상상도 못하더라고요. 지금처럼 여배우랑 러브라인이 있는 역할은 오랜만이죠. 좋았어요. 앞으로 계속하고 싶어요. (웃음) 이제 웃기는 건 자제하고 다시 진한 멜로를 해보고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뮤지컬로도 나왔던데, 거기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역할을 꼭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거든요. 그런 가슴을 후벼 파는 멜로가 하고 싶어요.


어느덧 ‘명품 조연’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배우가 됐는데, 좋은 의미이긴 하지만 덮어놓고 조연 배우로 대하는 수식어가 불편하게 느껴진 적은 없나요?
조연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치러야할 홍역은 <맨 오브 라만차>의 여관 주인 역으로 이미 치렀어요. <맨 오브 라만차> 대본을 받았을 땐 솔직히 ‘이걸 나더러 하라고?’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죠. 내가 나이를 먹어서 이런 역할까지 해야 하는구나 싶고. 하지만 결국은 새로운 도전 과제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조연이라도 제대로 뭔가 보여주는 존재가 되자고 마음먹고 진짜 열심히 준비했죠. 결과적으로 관객 분들도 많이 좋아해주셔서 ‘영주영주’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잖아요? 그때 어떤 배역을 맡든 내가 열심히 하면 그만큼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 이후로는 주·조연 타이틀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물론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게 쉽게 내려놓아지는 건 아니지만요.


최근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 <닥터 지바고>의 지바고, <스위니 토드>의 스위니 토드를 연기하고 싶은 역할로 꼽기도 했는데요.
세 역할 모두 어느 정도 나이대가 있고, 세상 경험도 풍부한 배우가 연기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제작자들 마음도 충분히 이해해요. 국내 뮤지컬 시장 여건 상 배우의 티켓 파워를 완전히 등한시할 수는 없겠죠. 그래도 한정된 배우가 계속 같은 역할로 무대에 서는 것보다는, 역할에 어울리는 다른 연령대의 배우를 함께 캐스팅해서 적은 회차라도 기회를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게 관객 입장에서도 다양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길이니까요.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쉽지 않겠지만, 저의 솔직한 바람은 그렇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9호 2016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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