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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OPLE] <어쩌면 해피엔딩> 고훈정 [No.160]

글 |박보라 사진 |김영기 2017-01-25 8,949

무대라는 이유





반듯하게 생긴 얼굴에 유독 날카로운 눈매가 튀는 뮤지컬 배우 고훈정은 쉽게 다가가기 편한 사람은 아니다. 무슨 질문을 해도 냉소적으로 답을 해줄 것만 같은 첫인상은 곧 와장창 깨어지고 말았는데, ‘무서워 보인다’는 기자의 말에 시원한 웃음을 동반한 “그래도 오늘은 이렇게 니트도 입고 착해 보이게 왔어요”라는 대답 때문이었다. 차가운 인상이 녹은 후 다시 보니 그는 뜻밖에 털털하면서도 솔직했다. 인터뷰를 위해 들어간 카페에서는 차마 밝힐 수 없는 의외의(?) 음료를 주문했고 질문마다 꽤 긴 시간 자기 생각을 전했다. 


고훈정은 2016년 한 해 동안 <더맨인더홀>, <비스티>, <천사에 관하여> 그리고 연극 에서 늑대, 호스트바 선수, 다빈치, 성공과 야망에 미친 검사 등으로 등장했다. 고훈정은 강렬했던 캐릭터들을 뒤로하고, 이번엔 마음을 몽글거리게 만드는 부드러운 작품인 <어쩌면 해피엔딩>을 선택했다. 그에게 <어쩌면 해피엔딩>은 내부 리딩 단계부터 참여한 상당히 애틋한 작품이다. 가장 먼저 마음을 사로잡은 건 작품의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서정적인 음악은 미래를 배경으로 로봇들의 사랑 이야기라는 소재와 맞물려 “듣자마자 꼭 해야겠다”는 강렬한 다짐을 세우게 했을 정도다. 고훈정은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남자 로봇 올리버의 옛 주인인 제임스로 무대에 오른다. 그의 변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제임스뿐만 아니라 재즈 가수, 우체부 배달부, 모텔 주인으로 변신하며 극을 꾸민다. 또 직접 무대에서 피아노를 치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예정. 사실 기타가 더 익숙한 고훈정에게 피아노 연주는 가장 큰 숙제였다. 쇼케이스 무대에서 직접 피아노 연주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달 동안 끈질기고 독한 피아노 특훈을 거쳐 결국 쇼케이스에서 탄탄한 실력을 뽐냈다. 세 번의 쇼케이스 공연 모두 실수 없이 마친 그는 본 공연을 시작하기 전인 지금까지도 여전히 피아노 연습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최근 고훈정은 색다른 도전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바로 남성 4중창단을 선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인 JTBC의 <팬텀싱어>에 출연하게 된 것. 악마의 편집으로 유명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은 의외였지만, 그가 많은 고민 끝에 답을 내린 이유는 역시나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고훈정은 살벌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그동안 자신이 온 힘을 쏟은 작품의 넘버들과 평소 부르고 싶었던 뮤지컬 넘버들을 부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 위원과의 첫 만남에서 <사의 찬미> 중 ‘저 바다에 쓴다’를 불렀고, 본선 진출자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최근 고훈정은 카운트테너인 중학생 이준환 군과 팀을 이뤄 아일랜드 민요인 ‘데니 보이(Danny boy)’를 불러 또 한 번 극찬을 받았다. 이 곡은 19세기 중엽 아일랜드에서 불리던 민요의 선율을 따와 자기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는 어버이의 사랑을 가사에 입힌 노래다. 서정적인 노래를 상당히 담담하게 부르던 고훈정은 노래의 말미 감정이 울컥 솟아오른 듯 눈물을 쏟아냈는데, 방송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뜨거운 눈물의 이유는 안타까운 세월호의 비극 때문이었다. 무대 위에서 중학생이었던 파트너 이준환 군과 눈이 마주친 순간 미처 펴보지 못했던 300여 명의 안타까운 숨결들이 그의 마음으로 훅 하고 다가왔다. 고훈정은 “감히 내가 누구라고 그분들(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할 자격도 없지만, 같이 아파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걸 조금이나마 전해드리고 싶었다”고 조심스럽게 슬프고 아름다웠던 무대를 이야기했다. 진심은 전해지는 것. 심사 위원이었던 윤종신은 “울림을 주거나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테크닉이 아니다. 그냥 그 사람이 지닌 어떤 인격적인 것들, 품성적인 것들, 개성적인 것들이 목소리에서 묻어 나온다고 본다”며 그의 마음을 헤아렸다.



이렇게 매 순간 노래와 연기로 진심을 전하는 그는 역시나 성숙한 면모를 드러냈는데, 닿지 않은 인연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큰 인상을 남겼다. 정말 하고 싶었던 작품의 오디션에서 매번 미끄러진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단단한 마음가짐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고, 안 되는 것에도 다 이유가 있어요. ‘인생은 내 마음대로 안 되는구나’를 느꼈지만 내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준비하다 보면 분명 기회가 또다시 오는 거죠. 그때 내가 준비되어 있으면 기회를 잡을 수 있고, 또 그렇지 않으면 놓치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열심히 해야만 해요.” 그래서일까. 고훈정은 어떤 일이든지 대충하는 법이 없다. 그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결국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진득한 인생을 살면 된다”면서 언제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혹독하게 다잡아갔다.


사실 고훈정은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뮤지컬 ‘덕후(마니아)’로 유명한 배우다. 그는 자신을 ‘덕업일치(좋아하는 분야와 관련된 직업을 갖는 것)’가 아닌 ‘업덕일치’라고 불렀다. 뮤지컬 무대에 서다 보니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나고 배우로서, 관객으로서 뮤지컬이 지닌 매력에 푹 빠졌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것. 고훈정은 이런 꿈같은 이야기를 앞으로 어떻게 이어 나갈까.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전 자주 제가 무대에 섰던 영상이나 글, 사진을 꺼내 봐요. 그러면 ‘아, 이땐 이렇게 해야 했는데!’ 이렇게 아쉬운 부분이 보이는 거죠. 그런 부분을 계속해서 채워 나가요. 그래서 무대에 치열하게 서고,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또 채워 나가고. 이렇게 말이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0호 2017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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