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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FOCUS] 촛불을 든 뮤지컬 배우와 관객들 [No.160]

글 |안세영 2017-02-13 4,355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레 미제라블>에 등장하는 혁명가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는 모르는 이가 드문 유명한 뮤지컬 넘버.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 노래가 가장 뜨겁게 울려 퍼지고 있는 곳은 뮤지컬 무대가 아닌 광화문 광장이다. 지난 10월 29일부터 매주 토요일 광화문 광장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
하루 최대 200만 명의 시민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가운데, 시민들이 직접 만든 풍자적 피켓과 여러 가수의 콘서트 무대는 마치 축제 같은 새로운 집회 문화를 만들어냈다.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 배우들


뮤지컬 제작진과 배우들 역시 특별한 방식으로 이 촛불 집회에 참여했다. 11월 18일 금요일, 청계광장에서는 주말 집회 전야 행사로 촛불 콘서트 <물러나SHOW>가 펼쳐졌다. 가수, 마임이스트, 시인 등 다양한 예술인이 함께한 이 무대의 피날레를 장식한 건 뮤지컬 배우들이었다. 변정주 연출과 구소영 음악감독을 주축으로 뭉친 뮤지컬 배우 19명은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 배우들(이하 시함뮤)’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올라 <레 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를 합창했다. 이날 배우들은 모두 검은색 의상을 맞춰 입어,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거나 오를 예정임을 풍자하기도 했다.


공연 당시 시민들은 전광판에 나오는 자막을 보며 <레 미제라블>의 노래를 따라 불렀고, 온라인상에 공연 영상이 퍼지면서 더 큰 호응이 이어졌다. 이를 지켜본 촛불 집회 주최 측에서는 ‘시함뮤’에 광화문 광장 집회 본무대 출연을 요청했다. 일주일 뒤인 11월 26일 토요일, 광화문 광장에 올라간 ‘시함뮤’ 2기 공연에는 1기보다 더 많은 32명의 뮤지컬 배우가 참여했다. 이들은 전영관 시인의 산문집 『슬퍼할 권리』에 실린 글을 가사로 차용한 창작곡 ‘나 여기 있어요’부터 <레 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와 ‘내일로’, <넥스트 투 노멀>의 ‘빛’을 합창해 감동을 선사했다.


‘시함뮤’ 배우들은 모두 출연료를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공연에 참여했다. 연습실도 따로 없어 다른 공연 팀의 연습실이 빌 때 양해를 구하고 사용해야 했지만,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배우들은 열정적으로 공연을 준비했다. 변정주 연출은 “배우들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하거나, 여러 공연 팀의 단체 메신저 방에 공지를 올려 참여를 원하는 배우를 모집한다. 연습과 공연 일정이 맞는 배우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지만, 추운 날씨에 출연료도 없는 공연이라 처음에는 참여하려는 배우가 있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참여 열기가 뜨거워 현재까지 배우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다”고 밝혔다.


‘시함뮤’는 앞으로 두 번의 공연을 더 올릴 예정이다. 먼저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 광화문 광장에 3.5기의 공연이 올라간다. 이어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천 일이 되는 1월 9일, 안산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 3기의 공연이 올라간다. 먼저 꾸려진 3기는 30여 명, 3.5기는 20여 명의 뮤지컬 배우로 이뤄져 있다. 1월 9일 세월호 참사 천 일 추모 공연에서는 이전에 부른 두 곡과, 새롭게 추가한 다섯 곡을 합해 총 일곱 곡을 30분에 걸쳐 부른다. 세월호 유가족분들을 모시고 진행되는 데 맞춰 뮤지컬 넘버를 약간 개사한 곡도 있다. 새롭게 만든 창작곡도 선보인다. 변정주 연출은 “2기 공연 당시 전영관 시인이 세월호의 아픔을 표현한 글 「나 여기 있어요」에 <아랑가>의 이한밀 작곡가가 곡을 붙여 공연했는데, 공연을 본 전영관 시인이 「우리 엄마」라는 시를 보내주셨다. 이번에는 이 시에 <러브레터>의 김아람 작곡가가 곡을 붙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연극·뮤지컬 단두대 연합


극장 대신 광장으로 향한 것은 배우뿐만이 아니다. 2백만 시민이 촛불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했던 11월 26일, 뮤지컬을 사랑하는 관객들도 ‘연극·뮤지컬 단두대 연합(이하 연뮤단)’이라는 깃발을 들고 이 역사적 행렬에 동참했다. 관객이 자발적으로 뭉쳐 탄생한 ‘연뮤단’은 11월 26일부터 12월 3일, 12월 10일 총 3회에 걸쳐 집회에 참여했다. 연합 주최 측이 트위터 계정(@yeonmuscaffold)을 통해 매주 모임 일정을 공지한 뒤, 후원금과 참가자를 모집했다. 집회 현장에서는 다섯 명의 주최 측 스태프가 피켓을 나눠주고 깃발을 흔들며 행진을 이끌었다. 행진에는 하루 최대 50여 명의 참가자가 함께했다.


주최 측은 “그동안 하나의 공통된 관심사를 지닌 분들이 모여 집회에 참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뮤지컬 넘버 중에 혁명과 저항에 관한 노래가 많은 만큼, 연극과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도 함께 모여 집회에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연뮤단’의 출발 계기를 밝혔다. 이름을 ‘단두대 연합’으로 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첫째는 뮤지컬 가운데 단두대가 등장하는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 <두 도시 이야기>, <레 미제라블>,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 등 많은 뮤지컬에 단두대가 등장한다. 둘째는 단두대가 시민 혁명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시민들이 나라를 바꿔놓았듯, 우리나라도 시민들에 의해 바뀌기를 기원하며 ‘단두대 연합’이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연뮤단’의 행진이 유독 돋보인 이유는 각종 뮤지컬을 패러디한 센스 있는 피켓과 구호, 합창 때문이었다. 이들은 행진 내내 <레 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는 물론 <엘리자벳>의 ‘밀크’, <비스티>의 ‘누나누나’ 등 다양한 뮤지컬 넘버를 개사해 합창했다. 주최의 선창에 따라 뮤지컬 대사를 패러디한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곤 투모로우>에서 갑신정변의 시작을 알리는 대사 ‘마음을 주셨다, 혁명이다!’를 ‘마음을 주셨다, 퇴진이다!’로 바꿔 외치는 식이다. 후원금으로 제작한 피켓과 스티커의 문구도 눈길을 끈다.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가사 ‘너의 꿈에 살고 싶어’를 ‘너의 꿈에 살기 싫어’로, <지킬 앤 하이드>에 나오는 대사 ‘자정, 모든 게 정상, 기대 이상의 자유’를 ‘하야, 모든 게 정상, 기대 이상의 퇴진’으로 패러디하는 등 재치 넘치는 문구로 행진에 참여한 관객들의 공감대를 자극했다.


주최 측은 지금까지 활동에 대한 소감을 전하며 참가자들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문득 떠오른 생각으로 연합을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고 함께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도와주신 분들 덕분에 어렵고 힘든 적도 없었다. 앞으로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언제든 다시 모일 예정이다. 배우와 연출님 들의 참여도 환영한다.”



 극장과 광장의 경계 허물기


*동아방송예술대 뮤지컬 시국선언: 10일 동아방송예술대 학생들은 보신각 앞에서 <레 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를 부르며 시국선언을 펼쳤다. 학생들은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를 ‘더 이상 비선실세 볼 수 없다 외치는 소리’, ‘당장에 박근혜는 퇴진하라 외치는 소리’로 개사해 노래했다. 창작뮤지컬 <영웅>의 ‘누가 죄인인가’도 함께 불렀다.


*150명의 ‘민중의 노래’ 플래시몹: 3일 ‘하야든 탄핵이든 플래시몹 오케스트라’ 회원 100여 명과 청춘문화그룹 ‘생각’ 회원 50여 명은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레 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를 공연하는 플래시몹을 펼쳤다. 악기를 든 연주자가 한 명씩 계단 위로 등장해, 마지막에는 웅장한 합창과 오케스트라 연주로 마무리되었다.


*<인터뷰> 촛불 든 캐스팅 보드: 약속된 공연 일정 때문에 촛불 집회에 나가고 싶어도 나가지 못할 때가 많은 배우들. 그래서 <인터뷰>의 배우들은 색다른 방식으로 촛불을 들었다. 26일 촛불 집회 당일 <인터뷰> 캐스팅 보드에는 배우 사진과 촛불 모양의 등이 나란히 걸렸다. 배우들도 마음만은 촛불 행렬과 함께함을 표현한 것이다.


*<오! 캐롤> “이름이 순실이라고…”: “우리 집 개가 말을 안 들어요. 이름이 순실이라고.”, “버릇을 고쳐주러 달로 보내야겠군요. 심심하지 않게 ‘그네’도 달아주고 말이죠.” <오! 캐롤>에 등장하는 이 대사는 원래 ‘우주선에 사람을 태워 달에 보내는 시대’에 대한 평범한 내용이었지만, 한국 공연 연출과 배우들이 협의해 통쾌한 현실 풍자를 보여줬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0호 2017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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