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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조성윤의 토마스 [No.161]

글 |박보라 사진제공 |오디컴퍼니 2017-02-18 6,304

추억의 눈송이


『신기하고 신비로운 서점』, 『기억의 목욕가운』,『레밍턴 선생님의 할로윈』까지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작가 토마스 위버가 오랜만에 공개 석상에 나섰습니다. 그동안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던 그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소중한 친구와의 추억을 꺼내 놓았습니다. 토마스 위버와 절친했던 앨빈, 두 사람 사이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요.


* 이 글은 토마스 역 배우 조성윤과의 대화를 토대로 작성한 가상 인터뷰이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친구였던 앨빈의 장례식 송덕문이 큰 화제가 됐어요. 앨빈은 어떤 친구였나요?
제게 영감을 주는 친구였어요. 가장 친하고 가장 좋은 친구였죠.


최근 신작 발표가 뜸했잖아요. 오랜만에 당신의 새로운 글을 송덕문으로 만날 줄은 몰랐어요.
사실 전 슬럼프를 겪고 있었어요. 글이 안 써질 때면 저도 모르게 앨빈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죠. 내 이야기의 시작은 늘 앨빈이었으니까요. 우린 겨울이면 눈싸움을 했어요. 영화 <멋진 인생>에 나오는 것처럼 말이에요. 송덕문을 쓰기 전에 앨빈의 책방을 갔는데, 거긴 변한 게 없더라고요. 우리가 함께 눈싸움을 했던 그 시절 같았죠.


앨빈과 눈싸움을 즐겨 했나요? 혹시 눈싸움에 관련된 추억이 있으면 말해 주세요.
매년 크리스마스이브엔 저와 앨빈의 전통이 있었는데, 그건 눈싸움을 하고 나서 <멋진 인생>을 함께 보는 거였어요. 대학에 입학한 첫해에 겨울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왔죠. 그해 크리스마스이브에도 눈이 온 세상을 덮었어요. 그런데 그때 전 대학에서의 첫 과제 때문에 부담감이 엄청났어요. 책상에 앉아 있던 제게 앨빈은 눈싸움을 하자고 재촉했죠. 전 책상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고, 결국 앨빈은 혼자 밖으로 나갔어요. 그런데 창밖으로 보이는 눈 속에 파묻힌 앨빈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거예요. 마치 손에 잡을 수 없는 인생처럼요. 순간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앨빈에게 눈을 던졌어요. 그렇게 영감을 받고, 탄생한 이야기가 바로 『눈 속의 천사들』이에요. 


그 작품 전엔 당신의 첫 소설인 『나비』가 있었죠. 앨빈에게도 이 작품을 보여줬나요?
『나비』는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썼던 단편소설이에요. 앨빈에게 처음 그 이야기를 읽어주던 날이 지금도 생생해요. 언제나 우리가 함께 놀았던 책방에서 조심스럽게 소설에 대해 털어놨어요. 앨빈이 좋다고 하면 소설과 입학 원서를 낼 생각이었고, 별로라고 하면 내지 않을 생각이었거든요. 전 앨빈의 능력을 믿었어요. 만약 앨빈이 내 글이 별로라고 하면 어쩌지? 속으로 많이 걱정하기도 했어요. 내가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나갈 때마다 앨빈은 “계속해 봐”라고 말했는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나비』를 다 읽고 앨빈을 바라보니 처음 보는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그는 간단하게 “보내”라고 말했죠. 앨빈은 제 첫 독자였어요.


그래서 당신은 대학에 입학하게 된 거군요. 앨빈은 작은 책방을 물려받았다고 했는데, 그럼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은 떨어져 있던 건가요?
네. 앨빈은 고향에 남았고 전 도시로 떠났죠. 우리에겐 많은 추억이 있지만, 처음 이별했을 때가 가장 기억이 남아요. 슬펐어요. 만나고 헤어지는 건 누구나 하는 일인데, 그땐 왜 큰일 같았는지….


송덕문에서 당신은 앨빈이 했던 말을 이야기했죠. 특히 ‘모든 건 한순간에 바뀔 수 있어. 먼지처럼 작은 사건으로’란 구절이 상당히 인상 깊었어요. 당신의 삶을 바꾼 작은 사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정말 많은 순간들이 있었죠. 앨빈과 내가 처음 만났던 날, 『톰 소여의 모험』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 작가가 되기로 했던 순간, 대학 입학을 위해 『나비』를 쓴 순간, 앨빈을 도시로 초대했지만 결국엔 오지 말라고 한 순간까지. 나도 모르게 지나갔던 작은 순간들이 바로 그 ‘먼지처럼 작은 사건’ 같아요. 결국 내 삶을 결정적으로 바꾼 건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었죠.


앨빈이 죽기 전,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심지어 앨빈은 신문에 당신이 아버지의 송덕문을 쓴다고 광고까지 했다면서요?
부담스러웠어요. 앨빈이 제게 거는 기대가…. 비겁한 핑계를 대자면 그런 부담감 때문에 글쓰기가 힘들어지기도 했죠.


그렇다면 당신 슬럼프의 원인 중 하나가 앨빈이었나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네. 앨빈은 제가 글을 쓰는 것이 자기 삶의 이유가 된 것처럼 보였어요. 그게 부담스러워서 피하기도 했죠. 그런데 사실 슬럼프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쓴 글들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이런 생각이었어요. 다음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마땅한 소재도 찾을 수 없었고, 어디부터 어디까지 써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았죠.


앨빈에게 당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면 이해해 주지 않았을까요?
제가 앨빈에게 슬럼프라고 말했다고 해도, 그는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내가 글쓰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앨빈에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필요했죠. 그런데 아마 앨빈은 제 글을 읽으면서 이미 위태로운 제 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을 거예요. 맞아요, 앨빈은 다 알고 있었을 거예요….


앨빈이 정말로 자살했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믿기 힘든 이야기죠. 앨빈이 다리 위에서 그렇게…. 음, 앨빈의 소식을 듣고 책방으로 갔어요. 믿기 힘드시겠지만 전 그곳에서 앨빈을 다시 봤어요. 앨빈은 제게 “보지 못한 건 알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전  <멋진 인생>의 조지처럼 다리에서 뛰어내린 앨빈도 천사 클라렌스가 데리고 갔다고 생각해요.


더는 앨빈을 볼 수 없잖아요. 당신은 장례식 이후에 그와 함께 자랐던 책방에 간 적이 있나요?
장례식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일상을 보내는데, 갑자기 문득 앨빈의 책방이 생각났어요. 저도 모르게 차를 끌고 그곳으로 갔죠. 책방에 들어서자 신기하게도 눈물이 아니라 우리의 추억이 생각났어요. 앨빈은 그곳을 독자와 책을 연결해 주는 도구이자 매개체라고 했어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시골의 작은 책방이지만 말이에요. 전 어렸을 때처럼 바닥에 주저앉아서 서서히 책방을 둘러봤어요. 우리의 추억이 떠올랐고, 천천히 곱씹었죠. 지금도 가끔 앨빈이 생각나면 책방을 찾아가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1호 2017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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