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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라자루스> [No.161]

글 |조연경 런던통신원 사진 |Jan Versweyveld, Johan Persson 2017-02-27 4,191

데이비드 보위의 난해한 선물  

<라자루스 LAZARUS>



뮤지컬 <라자루스>는 데이비드 보위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에 발표된 음악과 데이비드 보위가 새로 작사, 작곡한 음악으로 구성된 이 주크박스 뮤지컬은 2015년 말 뉴욕 시어터 워크숍에서 처음 공연되었고 이듬해에는 런던에 상륙해 임시로 운영되는 킹스크로스 극장에 자리 잡았다. 뮤지컬 <원스>의 각본을 맡았던 아일랜드의 극작가 엔다 왈시와 연극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의 영국 국립극장 프로덕션의 연출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극작가 이보 반 호프가 참여한 <라자루스>는 ‘데이비드 보위’라는 이름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위안을 준다.




별에서 온 남자


데이비드 보위는 우주적이다. 데이비드 보위는 1976년에 영화 <지구로 떨어진 사나이(The Man Who Fell To Earth)>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건 주크박스 뮤지컬 <라자루스>를 이 영화의 속편으로 설정하고 제작에 참여했다. 이 영화에서 황폐한 자신의 행성을 위해 물을 구하러 나선 외계인은 지구에서 ‘토마스 제롬 뉴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대기업을 설립해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갈 우주선을 지으려 한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기도 하지만 결국 헤어지고 자신의 행성으로 돌아가는 데에도 실패한 그는 붙잡혀서 온갖 실험을 당하다가 풀려난다. 월터 테비스의 1963년 작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다른 누구도 아닌 데이비드 보위의 손에 의해 다시 세상과 만나게 됐다. 지구에 쓸쓸하게 남겨진 토마스 제롬 뉴튼의 뒷이야기가 약 40년의 세월을 지나 무대에서 이어진다.


여전히 젊은 ‘토마스’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술에 전 일상을 보낸다. 헤어진 여자 친구 ‘메리루’를 그리워하며 여전히 지구에 남겨져 있다. 결국 우주선은 만들지 못했고 자신의 별로 돌아갈 수 있으리란 희망도 놓아버린 채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한 소녀는 토마스를 도와줘야 한다면서 함께 우주선을 만들어 고향 별로 돌아가자고 한다. 토마스의 일상을 도와주던 어시스턴트 ‘엘리’는 자신을 토마스의 전 애인 메리루와 동일시하면서 자기 남편에게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한다. 토마스를 가끔 들여다봐 주던 옛 동료는 난데없이 살해당하고, 그 살인자 ‘밸런타인’은 토마스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다. 여러 인물들의 불투명한 의도와 목적들이 마구 뒤얽히면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지구에 고립되어 사는 외계인의 존재보다 더 난해해 보인다.




혼란의 두 시간


뮤지컬 <라자루스>는 영화 <지구로 떨어진 사나이>의 속편이지만 새로운 사건이 이어지는 게 아니라 영화 이후 ‘토마스’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에필로그에 가깝다. 그리고 이 공연은 불친절한 표현이 많아 관객들이 쉽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토마스 역할을 맡은 배우는 공연이 시작되기 15분 전부터 무대에 나와서 멍한 표정으로 돌아다니다가 바닥에 눕는다.  관객들은 이후 쉬는 시간 없이 약 두 시간 동안 이어지는 공연을 보면서 계속해서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우게 된다.


연인이었던 메리루가 떠난 뒤 토마스는 술로 세월을 보낸다. 옛 동료가 찾아와 만류하려고 해도 듣지 않던 토마스 앞에 느닷없이 그를 도와주겠다는 한 소녀가 나타난다. 이후 이어지는 일들이 실제 일어나는 일인지 토마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환상인지 이 뮤지컬은 명확하게 구분해 주지 않는다. 토마스가 가상과 현실의 인물들과 동시에 소통하면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흐려진다. 무대 세트의 변화가 없는데도 사건은 토마스의 아파트와 외부를 오가고, 집 안에 있는 토마스가 외부의 사건을 목격하는 등 환상과 실제의 구분이 모호하다. 그런 상황과 표현이 계속 이어지면서 이야기는 혼돈으로 치닫고 점점 이해하기 어려운 전개를 보였다.


토마스는 소녀가 조언한 대로 고향에 가는 우주선을 만들기 위해 바닥에 테이프를 붙여 우주선 모양을 만들어 그 위에 눕는다. 소녀가 실제 존재하는지, 그들이 실제 우주선을 지었는지 아니면 테이프로 우주선 모양을 만들었는지, 토마스가 고향에 갔는지 아니면 어린왕자와 같은 방식으로 고향에 갔다고 하는지 무엇 하나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 없다. 결국 <라자루스>는 어떤 면에서는 데이비드 보위 자신이기도 한 토마스를 따뜻하게 지켜보고 구원하고자 한다. 토마스를 구원하기 위해 그에게만 보이는 가상의 인물들을 등장시켰고 그가 간절하게 바라던 고향 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이 작품을 따라가야 할 관객들을 놓쳐버린 것 같기도 하다.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이유 모를 행동을 한다. 특히 여성 캐릭터들이 표현된 방식이 아쉽다. 토마스의 옛 연인인 메리루는 언제나 그를 포용하는 영상 속 이미지로만 표현된다. 그리고 토마스의 어시스턴트인 엘리는 점점 자신을 메리루와 동일시하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엘리는 토마스의 집에서 찾은 메리루의 옷을 입고, 메리루와 같은 파란 머리 가발을 쓰고 토마스에게 애정 공세를 벌인다. 평범한 여성이었던 엘리가 가발을 쓴 뒤로는 약에 취한 듯 몸을 못 가누고 밤에 거리로 나섰다가 살인자 밸런타인과 어울리고, 그를 토마스의 집에 데리고 와서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짧은 사이 엘리가 변화하는 정도는 매우 극단적인데 문제는 그 원인이 뭔지, 의도가 무엇인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극 말미가 되면 또다시 이유 없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이야기의 중심에서 밀려난다. 메리루와 비슷한 모습으로 토마스 곁을 맴도는 여성의 이미지를 무대 위에 토마스와 나란히 보여주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 작품에는 여성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편인데 자신만의 목소리를 갖고 이 이야기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인물은 거의 없다. 밸런타인이 살인을 저지르고 방황할 때면 나타나는 현대식 복장의 여성 캐릭터 셋은 대사는 있지만 누구인지, 어떤 목적인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그나마 제 역할을 하는 캐릭터가 토마스 앞에 난데없이 나타난 소녀다. 십 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이 소녀는 헐렁한 원피스를 입고 맨발로 토마스 주변을 맴돈다. 인물 소개에 ‘토마스의 뮤즈’로 소개된 이 소녀를 보면 왜 굳이 겉모습이 사십 대인 토마스가 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뮤즈와 소통하며 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 ‘뮤즈’는 토마스를 도와줘야 한다면서, 의욕이 없는 그를 설득해 고향에 가자고 재촉한다. 토마스의 의욕을 부추기기 위해 메리루처럼 파란 가발을 쓰고 나와 그를 자극하기도 하고 하얀 물이 온몸을 적시도록 토마스와 함께 바닥에 누워 연기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노출이 많은 편인 여성 배우들의 의상도 그다지 필요해 보이지 않았다. 중심인물인 토마스와 여성 캐릭터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는지 전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은 채 두루뭉슬하게 넘어가고 있어서 불필요한 연출로 점철된 불친절한 작품처럼 보였다.




음악, 영상, 무대의 조화


<라자루스>의 무대 뒤쪽에 있는 밴드와 배우들이 연기하는 무대 사이에는 유리벽이 있고, 그 사이 한가운데에는 가늘고 긴 전광판이 있다. 데이비드 보위의 뮤지컬인 만큼 음악 그 자체만을 온전히 보고 들을 수 있는 장면이 있었고, 때론 유리막이 불투명하게 변해 밴드를 가려주며 배우들의 연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영상을 다방면으로 사용해서 지루할 틈을 줄여주기도 했다. 무대 위에서 배우가 연기하는 장면과 동일한 장면을 한 박자 먼저 영상으로 송출하여 영상과 무대를 독특한 방식으로 어우러지게 했다. 다른 장면에선 영상 속 배우가 그대로 무대 위에 걸어 나오는 듯한 모습으로 연출하기도 했다. 배우가 영상이 상영되는 화면을 주먹으로 치면 화면이 깨지는 듯이 연출한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단조로울 수 있는 단일 세트 무대에 영상과 유리막이 입체적으로 활용되며 다양한 질감의 레이어가 겹겹이 얹혀져 있는 효과를 냈고 그런 연출이 작품에 신비로운 느낌을 더해 주었다.


다양한 작품으로 파격적인 연출을 보여준 이보 반 호프 연출은 <라자루스> 역시 독특한 작품으로 만들었다. 다만 폭력적인 장면에서 새빨간 피를 범벅으로 연출한 점은 과하게 느껴졌다. 무대 위 연기에 불과하긴 하지만 폭력을 조장하고 잔인성을 강조하는 듯한 모습이 불필요한 사족 같았다. 애초에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헤매는 듯한 몽환적인 작품에서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잔인한 방식으로 폭력적인 장면을 그린 것은 관객을 일부러 자극해서 불편하게 하기 위함이겠지만 과했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언제나 누군가를 향한 헌사다. 가수를 향한 마음을 담아 기존에 존재하는 음악을 이용해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이 쉬울 리 없다. 그럼에도 수많은 트리뷰트 뮤지컬이 제작되었고 또 계속 제작되고 있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보위가 직접 제작에 참여했고, 이제는 사라진 그를 위해 제작된 뮤지컬 <라자루스>는 데이비드 보위를 아끼는 마음이 담긴 작품이다. 데이비드 보위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이 뮤지컬은 그가 남긴 마지막 선물 같은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해하게 진행되는 공연을 보다가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진 관객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을 만큼 이 작품은 대중적이지 않다. <라자루스>는 돈을 들이고 시간을 들여 굳이 극장까지 찾아온 관객들을 백 퍼센트 만족시키는 작품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한편으로는 그런 점에서 데이비드 보위와 잘 어울리는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1호 2017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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