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
넓어진 세계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
<더 데빌>은 어떻게 참여하게 됐어요?
솔직히 말하면 제안을 받았는데, 시기적으로 잘 맞았어요. 출연 배우에 평소 같이 공연해 보고 싶었던 배우들도 많았고, 이지나 연출님하고도 제대로 한번 작업해 보고 싶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에 대한 프로덕션의 자신감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사실 <더 데빌>은 초연 때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어 화제가 됐던 작품이잖아요. 그런 작품을 다시 공연하는 건 제작사의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앞으로 어떻게 작품을 고쳐 나갈지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믿음이 갔죠.
호불호가 나뉘는 작품이라는 점이 출연을 망설이게 하진 않았나요?
오히려 더 욕심이 났어요. 연습을 하면 할수록 초연을 좋아하지 않으셨던 분들 발목이라도 붙잡고 우리 작품 좀 다시 봐달라고 하고 싶어요. 아마 다른 배우들도 다 비슷한 마음일 거예요. 작품의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지만, 새로운 시도를 하고 부딪치면서 좋은 방향성을 찾아가는 게 창작 작업의 매력이잖아요. 그런 작업의 한가운데 있다는 게 저한테는 귀한 경험이에요.
작품에 대한 인상은 어땠어요?
<더 데빌>은 대본보다 음악으로 먼저 접했어요. 제일 먼저 들은 노래가 X 역의 ‘포제션’이었는데, 그냥 한마디로 강렬했죠. 그레첸이 부르는 ‘매드 그레첸’이라는 곡도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극 내용이 가사에 잘 녹아 있어서 자연스럽게 캐릭터의 감정을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제 생각에 <더 데빌>의 매력 중 하나가 가사인데, 한 곡 안에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어 음악으로 풍부한 표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돼요.
연습 첫날 어떤 기분이 들었어요? 오랜만에 참여하는 공연이라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뮤지컬은 보통 음악 연습을 먼저 시작하거든요. 첫날 연습실에 보면대하고 의자가 쫙 깔려 있는데, 내가 진짜 뮤지컬을 하는구나 하는 실감이 나더라고요. 익숙했던 풍경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했던 것 같아요. 연습 시작한 지 이제 2주 정도 됐는데, 연습실에서 동료들하고 같이 노래하고, 같이 작품 얘기하는 것 자체가 좋아요. 제가 계속 공연을 했다면 일상적이었을 것들조차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재밌게 느껴지고요.
특별히 무대가 그리웠을 때가 있어요?
객석에서 공연을 볼 때요. 공연 보면서 ‘아, 나도 저거 무슨 감정인지 아는데, 공연하고 싶다’ 그런 생각 되게 많이 했어요. 근데 방송 활동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상 공연을 하기 힘드니까 좀 속상했죠. 그리고 원래 지난 시간을 많이 되돌아보는 편이거든요. 공연을 안 하는 동안 오히려 공연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했는데, 이상하게 좋았던 기억보다 후회스러운 기억만 생각나더라고요. 작품에 임했던 자세나 동료 배우들을 대했던 태도, 다 후회스럽고. 좀 더 잘했어야 했단 생각이 드니까 빨리 다시 만회할 기회가 오길 바랐어요. 지금도 후회할 게 천지라는 게 문제지만요. (웃음)
시간이 가져다준 변화
원래 동료 배우들하고 작품 얘기하는 거 좋아해요?
좋아했는데, 이젠 안 그러려고요. (웃음) 예전엔 어디에서든, 심지어 공연 팀 회식 자리에서도 삼삼오오 모이면 이 장면은 어떻고, 저 장면은 어떻고, 그런 얘기 되게 많이 했거든요. 동료 배우들끼리 공연을 보러 가면, 공연 보고 나서 꼭 작품에 대해 하나, 하나 얘기하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대화가 조금 소모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서로 연기에 대해 얘기하면서 깨닫는 것도 있지만, 그보단 지금 나랑 같이 작품하는 이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게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작품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얘기하는 거잖아요.
평소 생활에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했는데, 어두운 작품에서 악한 캐릭터를 맡아 걱정되는 부분은 없어요?
이런 얘기를 제 입으로 하긴 좀 그렇지만, 어렸을 때 꽃미남 배우도 아닌데 자꾸 그렇게 비춰져서 조금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그래서 일부러라도 더 센 작품을 하려다 보니, 한 2년 동안 줄줄이 어두운 작품만 했던 적이 있어요. 사람이 너무 피폐해지더라고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치는 거죠. 근데 문득 즐겁자고 하는 일인데, 작품 분위기가 어둡다고 해서 이렇게 일상까지 영향을 받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작품에만 빠져 주위를 못 보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고요. 그때부터 생각을 좀 바꿨어요. 지금은 작품과 일상생활을 구분 지으려고 노력해요.
X-블랙을 연기하는 데 지금 가장 고민하고 있는 건 뭐예요?
이번에는 너무 고민하지 않으려고요! 이것도 최근의 변화 중 하나인데, 예전에는 집에 일을 가져오는 스타일이었어요. 밤 열 시에 연습이 끝나면 집 근처 24시 커피숍에서 새벽 두세 시까지 대본을 보다 집에 들어가고 그랬죠. 그렇게 해야 좀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공연은 저 혼자 고민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연습실에서 동료 배우들하고 같이 만들어가야 하는 건데, 그걸 머리론 알아도 실제론 못 그랬던 거죠. 이젠 안 그러려고요. 오늘도 어려운 노래를 하나 배웠는데, 예전 같았으면 왜 안 되지 하고 혼자 괴로워했을 거예요. 근데 요즘엔 후배들한테도 “나 이 부분이 잘 안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의견을 물어보면서 먼저 다가가요. 작품에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진 거죠.
오랜만에 서는 무대인 만큼 공연 첫날 긴장될 것 같은데 어때요?
공연 전날 잠을 못 잘 것 같아요. 공연할 때 긴장 잘 안 하는 편이거든요. 근데 이번엔 너무 긴장돼요. 관객들에게 잊혀진 건 아닐까, 관객들이 많이 안 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절 가장 긴장시켜요. (웃음) 물론 공연이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지만, 흥행에 대한 책임감은 배우로서 안고 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조금이라도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 사람이라도 더 찾아올 테니까.
올해의 계획은 뭐예요?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건 없어요. 다만 올해는 무대 활동을 열심히 해서 뮤지컬 배우로 바빠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그러려면 우선 <더 데빌> 이후 좋은 작품이 들어올 수 있게끔 잘해야겠죠. 아직은 제가 공연 첫날 어떤 모습으로 무대에 설지 상상이 안 되는데,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1호 2017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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