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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윤동주, 달을 쏘다.> 온주완 [No.162]

글 |배경희 사진 |배임석 2017-03-16 5,200

단단하게
빛나기 위해


지난해 봄 <뉴시즈>로 뮤지컬 무대에 첫발을 내디딘 온주완. 첫 작품에서 뮤지컬의 3대 요소로 꼽히는 연기와 노래, 춤, 모든 부문에서 두루 합격점을 받았지만, 더 멀리 가기 위한 숨 고르기를 했던 그가 두 번째 작품으로 돌아왔다. 서울예술단의 인기 레퍼토리 공연 <윤동주, 달을 쏘다.>가 그것이다. 지난 2012년에 초연된 <윤동주, 달을 쏘다.>는 많은 사랑을 받는 시인 윤동주의 생애를 다룬 작품. 비극적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쓰러져간 청춘을 표현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 앞에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온주완을 만났다. 




뮤지컬 무대에서 느낀 희열


반항적인 청춘의 이미지가 강한 배우였는데, 아까 사진 찍을 때 보니까 이제 앳된 느낌이 없더라.
내일모레면 마흔인걸? (삼심 대 중반인 그가 마흔이 얼마 안 남았다고 너스레를 떨자 주위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사실 이십 대 때는 앳된 얼굴이 너무 싫었다. 나도 진중하고 남자다운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얼굴 때문에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루라도 빨리 나이 먹고 싶었기 때문에 삼십 대인 지금이 정말 좋다. 나이를 먹으니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도 생기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는 게 좀 문제지만. (웃음)


뮤지컬을 직접 해보니 어땠나? 오랜 심사숙고 끝에 도전한 만큼 무대만의 매력이 있던가.
아무래도 오랜 시간 배우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열정이 조금씩 무뎌졌던 것 같다. 마음가짐이 흐트러질 때도 있었다. 근데 뮤지컬을 하면서 소위 말하는 초심이라는 게 되살아났다. 누군가 나라는 사람의 화로에 장작을 계속 넣어주는 느낌 같았다고 할까.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기분을 느꼈다. 공연 기간 내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자기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게 엄청난 부담이긴 했지만, 관객들이 그날 공연에 만족했을 때의 쾌감은 지금껏 내가 연기하면서 느꼈던 감정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뉴시즈>는 국내에 인지도가 없는 작품이었는데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서 더 큰 성취감을 느꼈을 것 같다.
초연이다 보니 배우들끼리 우리가 이 작품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었다. 지금 우리가 만들어 가는 공연이 <뉴시즈>의 초석이 된다니까 더 똘똘 뭉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공연을 할수록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서 ‘<뉴시즈> 역주행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게 진짜 뿌듯했다.


두 번째 작품을 하기까지 반 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첫 작품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서 차기작을 고르기가 오히려 더 어려웠겠다 싶더라.
<뉴시즈>를 할 때 불가피하게 드라마 <미녀 공심이> 촬영을 병행했는데, 두 작품을 동시에 한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더라. 작품 두 개를 비슷한 시기에 끝내니까 기가 다 빠져서 사람 상대할 힘도 없을 정도였다. (웃음) 그래서 다음 작품은 좀 천천히 생각하고 싶었다. 원래 완벽주의 기질이 있어서 제대로 못할 것 같으면 안 덤벼드는 편이다. 사람들은 평균 이상만 돼도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평타쳤다는 말이 너무 싫다. 평타를 칠 바에야 타석에 안 들어서고 싶다.




신중하게 선택한 두 번째 무대


<윤동주, 달을 쏘다.>는 강한 느낌이 왔나.
<윤동주, 달을 쏘다.>는 대본을 받기 전에 유튜브에서 박영수 선배 공연 영상으로 먼저 접했다. 영상을 보는 내내 이 사람은 자기가 진짜 윤동주라고 생각하고 연기하는구나 싶더라. 형이 너무 잘해서 그랬겠지만, 공연 영상에 마음이 확 끌려서 이거 해야겠다고 바로 마음을 굳혔다. 사실 이번에 영수 형하고 더블캐스트를 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진 않다. 형은 초연 멤버고 그 캐릭터를 대표하는 배우니까. 근데 내가 언제 또 이렇게 전 국민적으로 사랑받는 실존 인물을 연기해 보겠나 싶었다. 원래 시를 되게 좋아하기도 하고.


여러 문학 장르 중에서 특별히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마음이 복잡하고 생각이 어지러울 때 찾는 책은 사람마다 다르지 않나. 나는 그게 그냥 시집이다. 시를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쓰는 것도 좋아한다.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인데,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기억하기 위해 그때마다 생각나는 단어나 문장을 적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시를 쓰게 됐다. 문득 머릿속에 뭔가 떠올라 글로 표현하고 싶을 때, 그 자리에서 소설을 쓰긴 힘들지만 시는 쓸 수 있으니까. 물론 바쁘게 활동하다 보면 마음에 여유가 없어져서 꾸준히 쓰진 못한다. 근데 이 작품을 하면서 지금까지 쓴 시를 봤는데, 뭐라 말할 수 없이 기막히게 유치하더라. 내가 이걸 왜 썼지 싶었다. (웃음)


캐스팅이 공개되고 나서 관객들 반응이 어떤지 살펴봤나.
내가 직접 안 찾아봐도 주위 친구들이 다 찾아보고 알려준다. (웃음) 아마 되게 의외였을 거다. 나도 처음엔 의외였으니까. ‘나한테 윤동주를? 왜?’ 이런 느낌이었다. (웃음) 사실 내가 외향적이고 동적인 이미지가 강하지 않나. 나도 어렸을 때는 내가 동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정적인 사람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스스로는 윤동주라는 역할하고 아주 안 맞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관객분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열심히 할 테니 열린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역사 속의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기에 연습 과정에서 특별히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 있을까?
어떤 작품이 과거의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실화라고 해도, 사람들에게는 픽션이나 논픽션이나 모두 허구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지 않나. 어쨌든 그 시대를 살아본 것도 아니고, 그 인물을 직접 만나보지 못 했으니까. 개인적인 생각은 그렇다. 그래서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 특별한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윤동주, 달을 쏘다.> 같은 경우에는 스토리보다 주인공 윤동주의 감정선이 중요한 작품이라, 어떻게 감정을 세세하게 전달할지 그 점에 신경 쓰고 있다. 실제 윤동주의 삶이 그랬듯이 우리 작품 역시 윤동주가 후쿠오카 감옥에 투옥되기 전까지 특별한 극적인 사건이 없다. 관객들이 지루하게 느끼지 않을까 걱정되는 부분인데, 디테일한 감정 표현으로 극복할 수 있을 듯싶다.


연습하면서 특히 힘들었던 장면이 있나.

윤동주가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을 한 혐의로 체포돼 감옥에 투옥되는 장면부터 엔딩 신까지 통째로 힘들다. 윤동주를 연기하는 입장에서 그의 인생이 무너질 때의 감정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그 주사를 맞는 날이면 바다 속 저기 물고기들이 내 핏줄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기분이다. 잠이 왔고, 며칠을 잤는지 모를 정도다. 그래도 꿈을 꾸면 행복하다.” 윤동주가 감옥에서 정체 모를 주사를 맡고 나서 하는 대사인데, 이 말이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슬프다. 며칠 전에 이 장면을 처음으로 연습해 봤는데, 겁이 확 났다. 과연 내가 이 공연을 매일 버틸 수 있을까 싶어서. 공연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감정 조절을 잘해야 할 것 같다.



윤동주에 대해 새로 알게 된 점은 없나.
윤동주의 후배인 정병욱에게 고마워하게 됐다. 그가 윤동주가 맡긴 자필 원고를 잘 보관하지 않았다면, 윤동주는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사실 어렸을 때는 윤동주를 왜 독립운동가라고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른 독립운동가들처럼 직접 독립운동을 한 건 아니니까. 근데 이번에 작품을 준비하면서 왜 그를 그렇게 부르는지 이해하게 됐다. 윤동주에게는 우리말로 시를 쓰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독립운동이었고, 때론 한 편의 글이 행동보다 더 센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새삼 글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꼈다.


더 좋아하게 된 윤동주의 시도 있을 것 같은데.
「별 헤는 밤」이 부르짖는 마음으로 노래하는 슬픈 시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읽었던 기억으로는 예쁜 제목에 과거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예쁜 내용의 아름다운 시라고 생각했는데, 극 중 그 시를 직접 읊다 보니 그렇게 절절할 수가 없다. 그 장면만 되면 감정이 북받친다. 윤동주의 대표 시로 잘 알려진 「서시」나 「쉽게 쓰여진 시」도 좋고, 우리 작품의 시작을 열어주는 「팔복」이라는 시도 좋아한다. 버릴 시가 하나도 없다.


관객들이 온주완의 윤동주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 공연을 통해 이거 하나만큼은 얻고 싶다 하는 게 있을까?
없다. 이 작품을 통해 뭔가를 얻어야겠다는 생각은 진짜 안 한다. 관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내가 연기한 윤동주를 좋아할 관객도 있고, 또 반대로 마음에 안 들어 할 관객도 있을 거다. 그건 너무 당연하다. 그저 내가 두 시간 동안 <윤동주, 달을 쏘다.>라는 공연을 제대로 마칠 수만 있다면 더는 바랄 게 없다.


앞으로 또 어떤 작품에 도전하고 싶나.
첫 작품 <뉴시즈>를 할 때만 해도 앞으로 이 작품도 하고 싶고, 저 작품도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이번에 <윤동주, 달을 쏘다.>를 하면서 다시 느낀 건데 작품 인연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솔직히 말하면 <윤동주, 달을 쏘다.>는 하고 싶은 작품 리스트에 없었다. 근데 처음에 회사에 제안이 들어왔단 얘기를 듣고 나서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계속 신경이 쓰였고, 결국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됐다.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을 운명처럼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잠깐 뮤지컬에 관심을 가졌다 금세 사라지는 배우가 아니라 오래도록 무대에 서는 배우가 되고 싶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2호 2017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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