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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하프 어 식스펜스> [No.162]

글 |조연경 런던통신원 사진 |Manuel Harlan 2017-04-04 3,245

선택의 의미와 무게    

<하프 어 식스펜스> HALF A SIXPENCE



<하프 어 식스펜스>의 역사는 1905년에 출간된 영국 작가 H. G. 웰스의 소설 『킵스』로부터 시작된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1963년에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개막한 뮤지컬은 남자 주인공 역할을 맡은 토미 스틸을 스타로 띄우기 위해 제작됐다. 이 뮤지컬에서 토미 스틸은 노래, 춤, 반조 연주까지 다양한 재능을 뽐내며 거의 쉴 틈 없이 무대를 채웠고 2년 뒤 뉴욕 브로드웨이로 옮겨 성공적으로 공연을 이어갔다. 1967년에는 이 뮤지컬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역시 토미 스틸을 주인공으로 해서 개봉했고 그는 원한 대로 이 작품을 통해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고 끝날 듯했던 공연이 50년 뒤 다시 등장한 이유는 캐머런 매킨토시다. 어떤 공연이든 마음먹은 대로 올릴 수 있는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의 선택


캐머런 매킨토시가 선택한 뮤지컬 <하프 어 식스펜스>는 기존의 음악에 새 음악을 더하고 뮤지컬 넘버의 순서를 바꿔 매끄러운 개정판으로 재탄생했다. <하프 어 식스펜스>가 첫선을 보인 치체스터 페스티벌 시어터에서 성공을 거두고 곧바로 런던 웨스트엔드 극장에 안착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매킨토시의 새 프로덕션은 신인 남자 배우를 주연으로 발탁하고 흠 잡을 데 없는 완성도의 공연을 제작해 시내 어디서든 포스터가 눈에 띄도록 아낌없이 마케팅에 투자했다. <하프 어 식스펜스>가 21세기에 되살아난 건 순전히 매킨토시의 공이다. 그 결과, 얼마 전 있었던 2017 왓츠온스테이지 시상식에서 뮤지컬로서는 최다인 3관왕(남자배우상, 여자조연배우상, 안무상)을 기록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 뮤지컬의 만듦새에 대해선 이견 없이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4대 뮤지컬로 유명한 캐머런 매킨토시는 영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작품을 올리고 있고 개막한 지 30년을 넘긴 <레 미제라블>과 <오페라의 유령>이 여전히 웨스트엔드를 지키고 있을 정도이니 노련한 경험과 풍족한 자본으로 무장한 그가 공연을 못 만드는 게 오히려 이상할 일이다. 2004년 <메리 포핀스>에서 음악과 가사, 극작을 맡았던 창작진을 다시 모아 개작을 맡긴 <하프 어 식스펜스>는 밝은 무대와 의상, 조명이 잘 어우러지고 장면마다 경쾌한 음악과 앙상블의 춤이 지루할 새도 없이 펼쳐지면서 관객들을 들썩이게 하는 공연으로 완성됐다. 특히 안무를 맡은 앤드루 라이트의 역할이 컸다. <아가씨와 건달들>, <싱잉 인 더 레인> 등 고전 작품의 리바이벌에 주로 참여한 앤드루 라이트는 <하프 어 식스펜스>를 다양한 동작으로 꽉 채웠다. 그의 안무는 여유로운 상류층의 파티와 시끌벅적한 시골 술집에 모인 노동자 계층의 잔치를 대비해서 보여주고, 춤으로 계급 간의 벽을 허무는 시도도 한다. 주인공을 맡은 찰리 스템프가 반조를 들고 무대를 탄성 있게 누비며 안무에 힘을 불어넣었고 그런 동작들은 <하프 어 식스펜스>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형성했다.


새로 작곡해서 더한 곡들은 기존에 있던 경쾌한 음악의 분위기를 이어받아 마치 원작에 있던 곡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뮤지컬의 여러 요소들이 무엇 하나 모자라는 것 없이 전부 조화롭게 맞물려 돌아가며 관객들에게 신 나는 하룻밤의 공연을 선사하는 것, 그게 캐머런 매킨토시가 가장 잘하는 것이고 이번에도 그 부분에선 틀림이 없었다. 이렇게 템포가 빠르고 장면마다 신 나게 노래하고 춤추는 뮤지컬이 지루할 리 없지 않은가.




사회를 풍자하는 옛날 감성


하지만 190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은 어쩔 수 없이 주요 인물과 이야기가 시대착오적이라는 한계를 가져온다. <하프 어 식스펜스>는 잉글랜드 남부의 소도시 포크스톤을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이며 당시 계급과 자본에 관한 풍자극이다. 친척들 손에 자란 고아 소년 아서 킵스는 어린 시절 이웃에 살던 친구의 동생 앤과 장난처럼 육 펜스짜리 동전을 반씩 나눠 사랑의 증표로 삼는다. 그 후 아서는 포크스톤의 한 포목점에서 수습 직원으로 일하게 되어 동료들과 함께 기숙사에 살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난다. 아서는 부자가 되면 반조를 사겠다는 꿈을 꾸는 해맑은 청년으로 가게에 종종 오는 상류층 아가씨 헬렌에게 호감을 품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서는 존재도 몰랐던 할아버지에게서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아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고, 반조를 멘 ‘신사’가 되어 헬렌과 약혼까지 하지만 상류층의 파티에 적응하지 못해 고생한다. 말씨를 고상하게 바꾸고 온갖 예법을 배우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와중에 우연히 앤을 다시 만난다.


귀족가의 하녀로 일하는 앤과 교양 있는 숙녀 헬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아서는 마침 헬렌의 오빠가 투자 명목으로 가져간 아서의 재산을 전부 탕진하고 사기죄로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는다. 아서는 돈을 전부 잃고 오히려 홀가분해져서 헬렌과 파혼하고 행복하게 앤과 결혼을 약속한다. 결국 제대로 된 신사가 되기 위해 애를 쓰던 아서가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린 시절의 순수한 사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그 순수한 사랑이라는 옛날 감성의 교훈을 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재산이 없어 지위만 붙잡고 체면을 차리려는 상류층인 헬렌의 가족과 ‘순수한’ 아서를 대비시키고, 갑자기 거액을 상속받은 아서가 어떻게 상류사회에서 백안시되는지 보여주면서 계급제도가 공고했던 당시 영국 사회를 풍자한다.


이 이야기 속에서 아서는 거액의 상속금이 있을 뿐, 사랑이 뭐고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는 해맑은 남자로 등장한다. 겉보기에 우아한 숙녀 헬렌을 동경하고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헬렌의 세계와 발맞추기 위한 노력은 다 귀찮아한다. 그리고 부를 얻었을 땐 헬렌에게 정신이 쏠려 앤을 외면했으면서 정작 약혼한 후에는 앤을 만나 흔들리는 철부지 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의 이런 철없음은 순수함으로 포장되어 긍정적으로 그려진다. 아서는 모두의 사랑을 받는 이 뮤지컬의 마스코트다.

반면 헬렌은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에 떠밀려 아서와 약혼한 뒤 무책임한

아서, 건들거리며 아서의 돈을 노리는 사기꾼 오빠, 그리고 부유했던 옛 시절만 바라보며 아서를 호구로 취급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혼자 괴로워하는 인물이다. 결국 헬렌은 오빠의 사기 행각으로 파혼하고 홀로 어머니를 부양하게 된다. 앤은 어린 시절 장난 같은 사랑의 증표로 육 펜스짜리 동전을 나눠 가졌을 때부터 아서를 한결같이 사랑하고 기다리는 지고지순한 존재로 그려진다. 여성 캐릭터들이 짊어진 무게에 비해 남자 주인공인 아서는 가볍게 자신의 선택을 번복하고 해맑게 행복해진다. 노래와 안무는 유쾌했고 개연성 있게 이야기가 진행됐지만 인물들의 양상은 답답하다. 원작을 총체적으로 수선했음에도 그런 부분은 ‘옛 시절에 대한 향수’로 남겨 놓은 듯했다.




지금, 공연되어야 할 이유


새로운 작품을 만들 때에도 당연히 고민해야 할 문제지만, 백여 년간 공연된 뮤지컬 수천 편 가운데 한 작품을 선택해 리바이벌 공연을 올릴 때 왜 그 작품을 선택했고 어떻게 바꾸어 지금 시대에 새로운 의미를 갖도록 할지 결정하는 것은 프로듀서의 몫이다. <하프 어 식스펜스>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와 유쾌한 춤과 노래가 긴밀하게 연결된 코미디 뮤지컬의 정석을 세련되게 윤을 내서 새롭게 올린 프로덕션이다. ‘영국다운’ 작품을 찾아 ‘영국 관객들’에게 한바탕 웃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을 선사하려는 게 제작자의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요즘 시대엔 어느 것이 ‘영국적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조금 부족했던 게 아닐까. 뮤지컬 <하프 어 식스펜스>는 개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 출연진이 백인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인종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캐스팅이 일반화됐고 영국 예술위원회에서도 배우들의 인종 다양성에 무게를 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요즘, 비록 리바이벌이지만 새로운 프로덕션의 배우가 전부 백인이라는 건 타당한 문제 제기였다. 그런데 이 작품의 대본을 맡았고 드라마 <다운튼 애비>의 창작자로도 유명한 줄리언 펠로즈의 ‘시대극에선 인종 다양성에 덜 얽매여도 된다’는 변명이 논쟁에 더욱 불을 지폈다. 암묵적으로 인종 차별적인 생각을 창작자가 변명이라며 공적인 지면에 발언하고 그에 대한 비판이 이는 건 영국이 현재 직면한 인종 문제의 결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하프 어 식스펜스>가 백인 관객을 넘어 영국인들 모두에 공감 가고 재미있는 극으로 받아들여지려면 창작자들의 태세 전환이 필수일 것 같다. 웨스트엔드에서 예매 가능 기한을 연장하는 등 순항하고 있긴 하지만 다른 공연들에 비해 객석 점유율은 낮은 편이다. 성공한 프로듀서의 노련한 경험과 고집이 오히려 2017년에 발맞추지 못하게 발목을 잡고 있는 건 아닐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2호 2017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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