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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INSIDE THEATER] <파운틴헤드> [No.162]

글 |배경희 사진제공 | LG아트센터 2017-04-04 3,527

새로운 형식의 지적인 연극 세계

<파운틴헤드>




지금 가장 혁신적인 연출가, 이보 반 호프

                     

지난 2015년부터 현재까지, 단 2년 동안 런던의 주요 극장에서 모두 여덟 편의 작품을 올렸으며, 같은 기간 뉴욕에서 다섯 편의 공연을 올린 연출가. 벨기에 출신 연출가 이보 반 호프(Ivo Van Hove)는 현재 세계 유수 극장의 프로듀서들이 가장 탐내는 크리에이터로 꼽힌다. 지금은 고인이 된 데이비드 보위나 줄리엣 비노쉬 , 마크 스트롱 등 세계적인 스타들과의 작업 이력도 화려하다. 오는 4월에 런던 바비칸센터에서 개막하는 신작 <강박관념>에는 주드 로가 출연할 예정. 전 세계 연극계에 불고 있는 이보 반 호프 열풍은 최근 몇 년 새 두드러지지만, 이보 반 호프는 1981년에 첫 작품을 선보인 후 40년에 가까운 오랜 연륜을 쌓아온 관록의 연출가다.


1958년 벨기에의 플랜더스에서 태어난 이보 반 호프는 1981년 스물세 살의 나이에 직접 쓴 작품 <세균(Ziektekiemen)>와 <루머(Geruchten)>를 무대에 올리면서 연극계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지역의 대표적인 극단에서 두루 활동하며 이력을 쌓았는데, 2001년 네덜란드의 대표 극단인 토닐그룹 암스테르담의 예술감독직을 맡으면서 촉망받는 연출가로 발돋움한다. 이보 반 호프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네덜란드의 홀랜드 페스티벌에서 <로마 비극(Roman Tragedies)>을 선보이면서다. <로마 비극>은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코리올레이너스」를 한 편의 이야기로 각색한 작품으로, 중간 휴식 시간 없이 무려 여섯 시간 동안 공연되는 대작이다. 관객이 무대와 객석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신선한 공연 형식으로 관심을 끌었는데, <로마 비극>이 더욱 큰 화제를 모은 이유는 관객들이 무대 곳곳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무대 위에 설치된 비디오 장치를 통해 원하는 장면을 골라 볼 수 있게 하는 파격적인 시도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로마 비극>이 이보 반 호프를 유럽 내 주목받는 연출가로 떠오르게 했다면,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은 2014년 런던에서 초연된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아서 밀러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하는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은 이탈리아계 이민 2세 노동자 에디가 조카딸 캐서린에 대한 욕망으로 불법 이민자로 살아가는 친척들을 밀고하는 내용으로, 미니멀한 무대 위에서 인간의 욕망이 빚어내는 비극을 긴장감 넘치게 그려내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런던 초연 당시 영국 최고 공연예술상인 올리비에상 연출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브로드웨이로 무대에 올라 토니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룬다.


스스로 영화 애호가라 말하는 이보 반 호프는 존 카사베츠나 잉그마르 베르히만, 피에르 파졸리니 등 거장 감독들의 영화를 여러 편 무대화했는데, 지난 2012년 국내에 소개된 그의 첫 작품 역시 동명의 영화를 무대로 옮긴 <오프닝 나이트>였다. <오프닝 나이트>는 1977년에 개봉한 존 카사베츠의 영화를 각색해 젊음을 잃은 중년 여배우의 고민을 담은 작품으로, 두 명의 카메라맨이 배우들을 촬영한 영상을 무대 위에 설치된 여러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비추는 영화적인 기법의 연출로 호평받았다.




지적인 즐거움 <파운틴헤드>

                     

국내에 소개되는 이보 반 호프의 두 번째 작품 <파운틴헤드>(마천루)는 2014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첫선을 보인 작품이다. 미국 소설가 아인 랜드가 1943년에 발표한 스테디셀러가 원작으로, 1949년에는 미국에서 킹 비더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연극 <파운틴헤드>의 탄생은 2008년 이보 반 호프의 어시스턴트가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로마 비극>을 끝낸 후 원작 소설을 선물하면서 시작된다. 건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이지만, 앉은 자리에 단숨에 다 읽었을 만큼 매료돼 연극을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것.


소설 『파운틴헤드』는 뉴욕에 마천루 경쟁이 한창이던 1930년대 뉴욕 맨해튼을 배경으로, 미국의 유명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모델로 한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한 채 이상만을 고집하는 이상주의자 하워드 로크와 고객의 요구를 중시하는 타인 중심의 사회화된 인물 피터 키팅, 극과극을 달리는 라이벌 관계의 두 건축가가 작품의 주인공. 소설은 678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걸쳐 두 주인공과 얽히는 인물들을 통해 이상과 현실의 관계를 조명하는데, 연극은 150페이지 분량으로 압축해 하워드 로크와 피터 키팅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춘다. 원작 소설가 아인 랜드가 피터 키팅을 경멸하고 하워드 로크를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바라본다면, 이보 반 호프는 이상과 현실의 딜레마로 대립하는 두 인물을 균형 있는 시선으로 그린다는 점이 소설과 연극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엔딩 신은 원작 그대로 하워드 로크의 독백으로 마무리 되는데, 10여 분에 가까운 오랜 시간 동안 예술가로서 성명서를 발표하듯 말을 쏟아내는 장면은 예술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이보 반 호프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무대 곳곳에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세련된 무대 미학이다. <파운틴헤드>의 무대는 현대적인 미학이 특히 두드러지는데, 이번 작품 역시 이보 반 호프와 30년 이상을 함께 활동해온 디자이너 얀 베르스베이펠트(Jan Versweyveld)가 맡았다. 이번 공연에서는 엔지니어와 기술자가 무대에 등장해 실제 어떻게 공연이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과감한 시도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보 반 호프의 장기인 영상 활용 역시 두드러진다. <파운틴헤드>는 음악과 영상, 퍼포먼스가 한데 어우러지는 이보 반 호프의 영화적인 연출법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3월 31일~4월 2일   

 LG아트센터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2호 2017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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