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란
소중한 기쁨
초연 이후 10년 만에 돌아온 <미스터 마우스>. 초연 당시 인후 역을 맡았던 서범석도 다시 공연에 참여해 재연의 반가움을 함께 나누었다. 이번에 무대에서 그는 인후가 아닌 강박사 역을 맡아 새로운 변신을 선보였다. <미스터 마우스>와 <오! 캐롤>, 180도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오가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서범석. 그는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무대라는 기쁨을 누리는 중이다.
10년 만의 반가운 재회
<미스터 마우스>가 초연 이후 10년 만에 다시 돌아왔어요. 이번엔 인후가 아닌 강박사로 무대에 오르게 됐는데, 첫 공연 때 느낌이 어땠어요?
공연 내내 떨었어요. 정신이 좀 없었죠. 작품 내에서 강박사는 좀 독립적인 캐릭터거든요. 예를 들면, 다른 배우들은 연습 과정 동안 큐빅을 움직여서 무대 전환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강박사는 무대 전환에 참여하지 않았죠. 그러다 보니 혼자 연습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래서 첫 공연 땐 전체를 잘 보지 못하고, 강박사를 표현하는 데 더욱 집중했어요. 무대에서 긴장하면 그만큼 자유롭지 못하거든요. 다행히 큰 실수 없이 공연이 끝났고, 관객들이 박수갈채를 보내줘서 그제야 마음이 놓였어요.
특히 커튼콜 때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땐 정말 많은 감정이 느껴졌어요. 드디어 십 년 만에 이 작품을 다시 공연하게 됐구나! 연습할 땐 실감나지 못했는데 관객들을 만나니 확 와 닿더라고요. 공연이란 게 관객이 없으면 의미가 없는 거잖아요. 10년 만에 소중한 보석을 다시 꺼내는 느낌을 전하고 싶었거든요. <미스터 마우스>로 관객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다시 왔다는 걸 몸소 느끼니 만감이 교차했어요. 또 커튼콜 때 부르는 ‘사랑이란 이름으로’란 노래는 듣기만 해도 온몸의 감성이 깨어나요. 그래서 더 울컥했죠.
초연 때는 인후 역을 맡았잖아요. 그때 가장 큰 고민은 뭐였어요?
바보였던 인후가 높은 지능을 갖게 됐다고 반드시 행복한 건 아니에요. 바보일 땐 모르고 살았던 것들이 똑똑해지면서 하나씩 시련으로 다가오거든요. 오히려 더 불행하죠. 이런 부분을 표현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어요. 과연 똑똑하다고 행복한 것일까? 내가 비록 부족하지만 스스로 행복을 느낀다면 그게 진짜 행복이 아닐까? 이렇듯 행복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을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었어요.
그런 경험을 살려 인후 역의 배우들에게 특별히 조언해 준 것이 있나요?
사실 그 부분이 굉장히 조심스러웠어요. 배우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표현할지는 각자 느끼고 판단하는 것에 따라 달라지잖아요. 굳이 조언을 해주지 않아도, 배우들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거든요. 제가 말을 많이 할수록 안 좋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약간의 조언만 해주었어요. 전반적으로 평평한 톤이 아닌 롤러코스터를 타듯 굴곡 있는 톤으로 작품의 템포를 이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죠. 그리고 인후가 바보일 때 더욱 활발하게 표현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어요.
인후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강박사를 연기하는 데도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 실제로 어땠나요?
인후에 대해 아는 것보단 이 작품을 한번 해봤다는 것이 도움이 됐어요. 예전에 작품에 대한 공부를 했으니까 더 편안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었죠. 하지만 이제 인후가 아닌 오롯이 강박사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바라봐야 하니까 고민이 됐어요. 사실 인후의 입장에서 보면 강박사는 악역이 될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강박사는 인류에 공헌하기 위해 실험을 하는 거잖아요. 저는 이 실험이 실패할 거란 생각을 하면 절대 안 돼요. 인후를 통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과학적인 혁명을 이루고 싶은 게 강박사의 꿈이에요. 그만큼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걸 거는 자기애가 강한 인물로 접근을 하게 됐죠.
강박사란 인물을 통해 특히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작품 자체가 인후를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강박사를 통해 이야기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말 그대로 ‘인후전’이잖아요. 때문에 큰 욕심 없이 인후를 잘 서포팅했어요. 그런 와중에 강박사는 나름대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이라는 것이 보였으면 해요. ‘강박사는 자기가 추구하는 이상에 대해 열심히 노력하고 집착했던 사람이라는 게 잘 표현되면 좋겠어요.
강박사를 연기하면서 자신과 닮은 점도 발견했나요?
집착이요.(웃음) 저도 뭐 하나에 꽂히면 꼭 해내야 하거든요. 어렸을 때는 만화와 전자오락게임에 빠졌어요. 커서는 연기에 꽂혀서 이렇게 배우가 됐고요. 또 당구와 골프 같은 운동에도 한참 꽂혀 지냈죠. 하나에 빠지면 뒤도 안 돌아보고 그것만 집중적으로 파는 스타일이에요. 이런 점이
강박사와 좀 닮은 것 같아요.
작품이 끝나고 난 후 강박사의 결말도 궁금하더라고요. 인후의 비극을 겪은 후, 지금 강박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지체 장애인들을 돌보며 살지 않을까 싶어요. 아마 그 뒤로 실험은 손도 안 댔을 것 같아요. 다시 재기해서 누군가를 천재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은 이제 안 할 거예요. 강박사는 신의 영역에 도전했지만, 결국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되잖아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담은 노래 한 곡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냈어요. 실제로 반영은 안 됐지만요. 오만방자하게 신의 영역에 도전했던 인간의 초라함과 겸허함을 강박사를 통해 표현했으면 했거든요.
즐기며 누리는 시간들
<미스터 마우스>는 비극인 반면, <오! 캐롤>은 유쾌 발랄한 작품이에요. 상반되는 분위기의 작품을 오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전혀 어렵지 않아요. 물론 체력적으론 힘들어요. 가장 고생하는 게 제 성대죠. 성대에게 좀 미안해요.(웃음) 그런데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보겠습니까? 오히려 상반되는 작품이라 더 좋아요. <미스터 마우스>에서는 더 진중하게, <오! 캐롤>에서는 더 까불려고 해요. 강박사와 허비 모두 제 안에 있는 모습들이거든요. 양쪽에서 그 모습을 극대화하는 거죠. 힘들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두 작품 다 어찌나 시간이 빨리 가는지 모르겠어요. 막이 오르면 어느새 공연이 끝나 있다니까요.
허비와는 어떤 면이 비슷해요?
일단 허비는 굉장히 잘 참아요. 물론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엔 불만도 많죠.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기분보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보듬으려 하거든요. 저 역시 남을 먼저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내 입장만 내세워서 상대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허비가 뚝심이 있어요. 한 여자를 이십 년 동안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은 바보라서가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고집스러운 거죠. 그런 점이 저와 비슷해요. 그리고 남을 실없이 웃기려 하고, 사람들이 웃는 걸 보며 즐거워하는 것도요.
허비는 능수능란하게 공연을 진행하잖아요. 허비처럼 좋은 MC가 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조건을 꼽는다면요?
우선 발성이 좋아야 해요. 그리고 순발력과 재치가 있어야겠죠. 마지막으로 체력도 필수!
실제로 허비처럼 대학교 때 교내 행사 MC를 도맡았다고 들었어요.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대학교 때 연극반이었는데, 교내 행사는 다 제가 맡았어요. 그중 가장 큰 에피소드는 우리 와이프를 만났다는 것.(웃음) 대학교 4학년 2학기 때, 미스터 중앙 선발 대회가 있었어요. 근육이 제일 많은 학과가 체육학과와 조소과였거든요. 조소과는 석고 반죽하고, 석고상을 자주 들잖아요. 마침 제 와이프가 조소과였어요. 그날도 제가 사회를 맡았는데, 완전 입담이 터진 거예요. 무슨 말만 하면 관객들이 웃고 난리가 났어요. 아니나 다를까 대회가 끝나자 극회 후배가 우리 과 누나가 형이 좋다더라며 한 번 만나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만났고, 결혼하게 됐죠.
<오! 캐롤>에는 추억의 팝송이 많아 관객들이 더 좋아하는 거 같아요. 특히 좋아하는 노래는 뭐예요?
‘광대의 왕’을 제일 좋아해요. 왜냐면 제가 배우잖아요. 이 노래는 배우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팝송을 잘 듣지 않았어요. 닐 세데카가 누군지도 몰랐죠. 외화도 거의 안 보고, 영어도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야말로 조선 사람인 거죠.(웃음)
<오! 캐롤>은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작품이잖아요. 출연하는 배우들도 같은 기분일 것 같은데, 최근에 재밌었던 에피소드가 있나요?
엊그저께 공연에서 들깨 시리즈를 선보였어요. 들깨를 먹으면 술이 들깨 뭐 이런 대사들인데, 평소엔 사람들이 아재 개그 같다고 재미없어 하거든요. 그런데 지난 무대에서 대본에 있는 그대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말해 봤어요. 스스로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상황에 푹 빠졌죠. 그러다 보니 혼자 웃음이 터진 거예요. 막 침을 뿜고, 웃음이 주체가 안 돼서 다음 대사를 겨우 이어갔죠. 그런데 관객들이 어느 때보다 즐거워하더라고요. 새삼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들이 내 입맛에 맞지 않는 가사나 대사를 바꾸려고 하잖아요. 대본에 있는 그대로도 이렇게 재밌을 수 있는데, 왜 다른 대사나 애드리브를 찾으려고 했을까 싶더라고요. 배우로서 어떤 것이 옳은가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죠.
<미스터 마우스>와 <오! 캐롤>로 5월 초까지 바쁠 텐데, 그 이후에 휴식 시간이 주어지면 뭘 할 거예요?
잠을 자야죠.(웃음) 골프도 치고, 등산도 하고요. 저는 여행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내 주변에도 좋은 것이 많은데 멀리까지 가서 뭔가를 보는 건 제 취향이 아니거든요. 왜 그럴까 생각해 봤더니 무대라는 곳이 제게 더 즐거움을 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무대에 오르는 것 자체로 행복하고 힐링이 되니까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올해는 또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연말까지 공연 스케줄이 잡혀 있어서, 무대에서 관객들을 계속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어요.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노래, 작품 속에서 불렀던 노래들을 한 열 곡 정도 모아서 앨범을 만들려고 해요. 그래서 저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에게 나눠드리고 싶어요. 친필 사인도 해서 무료로 드리려고요. 저의 생각과 저의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제 마음을 선물하고 싶은 것이 소망이에요. 5월에 두 작품 끝내고 나면 실행해 보려고요.
지금까지 많은 역할을 맡았잖아요. 그럼에도 최근 내 가슴을 뛰게 한 역할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번에 <미스터 마우스>를 다시 공연하면서 내가 왜 늙었을까 자책을 했어요. 인후라는 역할이 그만큼 좋거든요. 또, 저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해보고 싶은 역할들이 있어요. 특히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는 꼭 다시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얼마 전 친한 동생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자기가 투자를 해서라도, 형의 <맨 오브 라만차>를 다시 보고 싶다고요. 물론 6개월 동안 공연했으니까 원 없이 연기했어요. 그럼에도 한 번 더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가슴 뛰는 역할이죠. 많은 경험과 연륜을 쌓았으니 지금 더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무대에서도 그렇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참 여유로워 보여요.
고민이 없어요. 고민하는 거 자체를 싫어하거든요.(웃음)
여유롭게 삶과 무대를 즐길 수 있는 팁을 준다면요?
삶을 즐기는 팁은 무엇보다 하는 일을 좋아해야 하지 않을까요? 좋아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잖아요. 그런 면에서 저는 행운아 같아요. 일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면 대신 좋아하는 취미가 있어야 해요. 오롯이 자신을 위해 기쁨을 줄 수 있는 일을 어떻게든 찾아야겠죠. 그리고 무대를 즐기는 팁은, 말 그대로 즐겨야죠. 관객들하고 신 나게 놀아야죠. 무대에서 내가 뭘 해내야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해요. 모든 세포를 열고, 동료 배우들의 눈빛과 관객들의 호흡을 느끼는 것. 그 순간에만 몰두하면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가버려요. 이렇듯 많은 걸 느낄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이 무대에서 주어지는 것, 얼마나 기쁜 일인가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2호 2017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