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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OPLE] <비스티> 고상호 [No.163]

글 |나윤정 사진 |심주호 2017-04-26 4,660

온전히 내 몫의
도전



최근 고상호의 출연작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변신이 주를 이룬다.  <명동로망스>의 장선호, <아랑가>의 도미, <트레이스 유>의 구본하, <미드나잇>의 비지터, 그리고 <비스티>의 승우까지. 그는 새로운 도전이 즐겁기에 변신을 거듭하며 흥미로운 무대를 보여주었다. 지난해 트라이아웃 공연 후 다시 <비스티>의 승우로 돌아온 고상호. 그동안 그가 이뤄낸 변화는 무엇일까?




개츠비의 비극

<비스티>의 승우는 클럽 개츠비에 처음 발을 디딜 땐 그저 평범한 법학과 학생에 불과했다. 하지만 돈과 어둠의 세계를 맛본 후 180도 달라졌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걸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상호는 이러한 승우의 변화를 극명하게 표현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지난해 트라이아웃 공연에 참여하며 오랜 시간 역할을 고민해 온 결과다. “트라이아웃 때, 승우가 처음 호스트바를 찾은 이유는 마담에 대한 복수심이 컸어요. 그러다 보니 이 작품이 너무 복수극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고민을 했죠. 이번에는 복수심을 덜어내고, 승우의 행동이 어떻게 하면 타당성을 가질지 생각했어요. 돈이란 게 사람의 눈을 뒤집히게 할 수도 있잖아요. 이런 물욕을 더하면서 승우란 캐릭터를 더욱 타당성 있게 만들려고 했죠.”


배역에 대한 고상호의 고민은 곧 적극적인 의견으로 이어졌다. 그는 승우의 심리뿐 아니라 겉모습까지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승우의 외적인 면에서도 포인트를 주고 싶었어요. 개츠비의 에이스인 주노가 신참인 승우를 데리고 나가 정장을 사 입히거든요. 원래는 쓰리피스의 풀 정장을 입는 것인데, 제가 의견을 냈어요. 극이 진행되는 동안 넥타이를 매고, 그다음은 조끼를 착용하고, 이런 식으로 하나씩 하나씩 착용하면 어떻겠느냐고요. 이런 장치를 통해 승우의 심리 변화를 시각화하고 싶었거든요.” 나아가 마담과 주노가 치열하게 대립할 때 담담히 안주를 먹는 승우의 모습 또한 그가 의견을 낸 것이란다. “승우의 식욕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욕구를 표면적으로 드러내고 싶었어요. 오금이 지리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승우는 과자를 먹으면서 이 상황을 즐기는 거죠. 사실 마담과 주노의 신을 좀 빼앗는 느낌이 들어 개인적으론 조심스럽긴 해요. 하지만 승우를 많이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없다 보니 이런 시도를 하게 됐죠.” 이렇듯 고상호는 승우의 변화를 디테일하게 표현하기 위해 작은 부분 하나도 꼼꼼히 들여다봤다.


처음에는 단순히 빚을 갚기 위해 개츠비를 찾은 듯 보이는 승우. 그렇다면 실제로 그의 변화가 시작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딱 하나의 계기가 있기보단 손쉽게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서서히 변했다고 생각해요. 승우는 마담이 하는 행동을 하나하나 관찰하면서, 저렇게 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자기 최면에 걸렸다고 할까요? 많은 돈을 벌고 싶어 앞뒤 생각을 안 한 거죠. 워낙 머리가 좋은 친구였기 때문에 자신의 장점을 나쁜 쪽으로 활용해 버렸어요. 승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또 다른 캐릭터들을 만남에 따라. 조금씩 계속 변화하고 있거든요. 특정 지점마다 포인트를 주려 했는데, 그것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해요.” 결국 이런 승우를 통해 고상호는 개츠비의 비극을 더욱 부각하려 했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다 비극이라고 생각해요. 승우도 마찬가지죠. 물론 개츠비를 손에 넣게 되었지만, 그 역시 마담과 같은 길을 걸어갈 거란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를 통해 관객들이 ‘이제 승우가 행복하겠다’가 아니라 ‘그 역시 결국 파멸을 맞이하겠다’는 걸 느낄 수 있게요.”




넓고 깊은 세상

고상호는 최근 <비스티>의 승우를 비롯해 <미드나잇>의 비지터, <트레이스 유>의 구본하, <아랑가>의 도미, <명동로망스>의 장선호 등을 통해 다양한 변신을 보여주었다. 알고 보니 이는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그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가능한 한 이전 작품과 비슷한 역할은 피하려고 해요. 늘 다른 캐릭터를 만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거든요. 내가 이 역할을 맡았을 때 재밌게 작업할 수 있을지 가장 먼저 생각했어요.”


그는 지금까지 공연한 작품이 하나같이 다 소중하지만, 그중 <명동로망스>에 대한 각별함을 내비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극을 이끌어가는 역을 맡은 건 <명동로망스>가 처음이었거든요. 정말 열심히 했고, 많은 선배님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배운 것도 많아요. 개인적으로 많은 힐링이 되었던 작품이에요. 저도 어느덧 10년 차 배우거든요. 그동안 묵묵히 배우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부각된 작품이 바로 <명동 로망스>였어요. 성장의 계기가 돼주었죠.” 또한 그는 <명동로망스>의 장선호가 자신과 닮은 점이 많은 캐릭터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 제 성격과 가장 비슷한 게 바로 장선호였어요. 소심하기도 하고, 개구지기도 하고, 저와 닮은 점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작품 속에서 고상호로서의 모습을 많이 담을 수 있었죠.”


또한, 그는 자신과 정반대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새로운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바로 처음 도전한 2인극 <트레이스 유>를 통해서다. 그는 구본하 역을 맡아 열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며 극 안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에요.(웃음) 온전히 두 명이서 극을 이끌어야 했고, 뮤지컬 넘버의 난이도도 엄청났죠. 정서적으로도 밑바닥을 경험하는 드라마였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힘들었어요. 무대에서 정말 극한을 오가게 해주었죠. 그런데 커튼콜을 끝내고 났을 땐 정말 후련했어요. 힘든 만큼 특별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죠.”



한편, 고상호는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보도지침>의 월간 ‘독백’ 편집장 김정배 역을 맡아 연극 무대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오르게 됐어요. 스물한 살 때 잠깐 극단 활동을 했는데, 그때 연극 공연을 했거든요. 제가 지금까지 뮤지컬을 좋아하고, 무대에 올랐던 건 극 안에 노래가 함께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연극은 노래가 아닌 온전히 연기로만 평가받는 거잖아요. 지금은 두려움 반, 설렘 반이에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한번 잘해 봐야지! 이런 각오로 도전을 시도하게 됐죠.”


고상호는 지금까지 만난 작품들처럼, 앞으로도 좋은 창작물을 만나고 싶은 것이 배우로서의 큰 바람이라고 전한다. “예전에는 특정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좋은 창작품을 계속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요. 배우 고상호로서는 제가 그 작품의 처음인 게 좋더라고요. 제가 처음이면 무엇을 해도 제약이 없고, 온전하게 제 힘으로 다 만들어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초연을 찾아다니는 것 같아요. 주어진 상황에 끌려 다니지 않고, 제가 주도해서 온전하게 재미있게 작품 활동을 하고 싶어요.” 그는 이런 경험과 과정들을 차곡차곡 쌓아 더욱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길 꿈꾸었다. “어느 순간부터 디테일한 연기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소극장 공연뿐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에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배우로서 조금 더 넓어지고 싶어요. 또 그만큼 더 깊어지고 싶고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2호 2017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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