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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LIFE GRAPH] 송용진의 인생 그래프 [No.163]

글 |안세영 사진제공 | 2017-04-28 4,029

멈추지 않는 도전
송용진


“저는 항상 작품 선택을 치열하게 해요.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죠!” 지난 출연작을 훑어본 송용진은 웃으며 말했지만, 18년간 수많은 초연에 도전하여 성공을 일궈낸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 말이 결코 농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작품이 지닌 잠재력을 꿰뚫어 보고 그걸 끌어낼 줄 아는 배우, 송용진. 그의 용감무쌍한 인생 그래프를 따라가 보았다.




화려한 데뷔 <락햄릿>
“실용음악과를 졸업하고 홍대 클럽에서 밴드를 하던 때였어요. 어느 날, 공연을 본 관객 한 분이 느닷없이 제게 뮤지컬 출연을 제안했죠. 알고 보니 레어티즈 역으로 햄릿 역의 신성우 형과 비슷한 이미지의 록커를 찾고 있던 <락햄릿> 연출부였어요. 춤도 연기도 몰랐던 저는 그렇게 노래와 이미지만으로 덜컥 뮤지컬 무대에 데뷔했죠. 그런데 이 작품에서 레어티즈가 정말 파격적인 캐릭터였어요. 동생인 오필리어를 여자로 사랑하면서 햄릿과 삼각관계를 이루는 역할이었거든요. 게다가 다른 뮤지컬 배우와 달리 걸걸한 목소리로 힘있게 노래하는 제가 무척 눈에 띄었나 봐요. 이 역할로 예상 밖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여러 록 뮤지컬에서 절 찾아주었고, 자연스럽게 뮤지컬 배우의 길로 접어들었어요.”




인생을 함께한 <헤드윅>
“<헤드윅>이 국내에서 공연되기 전부터 저는 주위에서 알아주는 ‘헤드헤즈’였어요. 대한민국에서 나만큼 헤드윅을 잘 알고 음악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자신했죠. 연출가나 제작자는 연기력이 부족한 제게 일인극은 무리라고 말했지만, 굴하지 않고 공개 오디션에 도전한 끝에 박수까지 받으며 당당히 합격했어요. 이후 작품의 성공과 함께 제게는 뮤지컬 스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고, 그 전까지 스스로를 ‘뮤지션’으로만 생각해 온 저도 ‘배우’라는 이름의 무게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죠. 지난 10년간 제가 <헤드윅>에 출연한 회차가 총 364회라니, 인생에 1년은 헤드윅으로 산 셈이에요. <헤드윅>을 빼놓고는 제 인생을 논할 수 없죠.”





영감의 원천 <록키 호러 쇼>
“<록키 호러 쇼>는 저에게 지대한 영감을 준 작품이에요. 컬트 뮤지컬을 좋아하고 자주 출연해 온 저지만, 그중에서도 컬트 문화의 효시인 <록키 호러 쇼>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죠. 제가 만든 뮤지컬 <치어걸을 찾아서>, <노래 불러주는 남자> 역시 이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록키 호러 쇼>는 제가 가장 다양한 역할을 연기해 본 작품이기도 해요. 2005년 에디 역, 2008년 프랑큰 퍼터 역, 2010년 내한 공연 내레이터 역으로 세 번 참여했거든요. 한번은 원작자인 리처드 오브라이언과 화상 인터뷰까지 하게 됐는데,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면서 나름대로 진보적인 예술가라 자부해 온 제가 70대 노인인 그보다 훨씬 고리타분한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알게 해준 귀중한 기회였죠.”





눈부신 성취감 <셜록 홈즈>
“<셜록 홈즈>는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만 해도 관심이 없었어요. 신생 제작사 작품인 데다, 영국도 아닌 한국에서 홈즈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을 만든다니 잘될 리 없다고 생각했죠. 한참 지나서야 심심풀이 삼아 대본을 펼쳤는데 웬걸, 빨려들어가는 거예요. 그때부터 ‘내가 이 작품 잘되게 만든다’는 각오로 치열하게 임했죠. 캐스팅이 안 될 때는 직접 배우들에게 연락해 설득하고, 영국 배우 ‘제레미 브렛’의 홈즈를 연구하며 괴짜와 천재를 오가는 저만의 홈즈를 완성했어요. 그 결과, 개막 며칠 만에 표가 매진되더니 시상식에서 온갖 대형 라이선스 작품을 제치고 11개상을 휩쓰는 쾌거를 거둔 거예요. 그때의 성취감이란 마치 골리앗을 이긴 다윗의 기분이랄까! 앞으로도 2탄, 3탄, 힘 닿는 데까지 쭉 함께하고픈 작품이에요.”




연기에 눈뜨다 <칠수와 만수>
“첫 연극인 <칠수와 만수>는 연기 때문에 한창 방황하던 시절 만난 작품이에요. 동료 배우였던 박호산 형의 연기를 보면서 연기를 제대로 배우려면 연극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때마침 <칠수와 만수>라는 30년 전통의 명작에 출연 제의를 받게 된 거죠. 제의를 받자마자 열 일을 제치고 뛰어들었어요. 결과적으로 이 작품에서 진선규라는 연기 잘하는 파트너를 만나 좋은 영향을 받았고, 노래뿐 아니라 연기를 하는 배우로서 연기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죠. <칠수와 만수>라는 작품으로 연극에 데뷔했다는 건 제 배우 인생에 큰 영광이에요. 이때 이후로 1년에 한 작품은 연극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새로운 비전 <더데빌>
“2011년 브루클린에서 <스탑 더 버진스(Stop the Virgins)>라는 공연을 보고 흥분이 가시지 않아 비 내리는 밤거리를 몇 시간이고 걸은 적이 있어요. 수십 명의 댄서와 합창단이 대사 없이 강렬한 록 음악과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신선하고 파격적인 공연이었죠. 한국에서 그와 가장 흡사한 느낌을 받은 공연이 바로 <더데빌>이에요. 말과 서사가 아닌 음악과 이미지로 진행되는 뮤지컬. 연기도 대사보다 목소리, 눈빛, 움직임이 중요하죠. 예컨대 계단을 어떻게 올라오고 내려오는지만 봐도 그 인물의 서사가 보여야 하는 거예요. 저는 뮤지컬이 소설보다 시에 가까운 장르기 때문에 상징과 은유로 표현될 때 더 세련되고 뮤지컬다워진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더데빌>은 뮤지컬의 미래를 제시하는 작품이죠. 아직은 낯설고 불편할지 모르지만, 향후 10년은 이런 뮤지컬이 더 많아지리라 기대합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2호 2017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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