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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정상훈과 함께한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No.79]

사진 |심주호 정리 | 김유리 2010-05-06 5,156

 

웃음이 있는 인생은 아름답다

 

아이큐 225쯤으로 추정되는 엉뚱한 박사로 언제든 돌변할 것 같은 반짝거리는 눈빛, 상대방으로 하여금 덩달아 웃고 싶게 만드는 보조개 깊은 미소를 가진 정상훈, 그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을 때 돌아온 답변은 2003년부터 7년째 롱런하고 있는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이었다. 소시민들을 다룬 가슴 따뜻한 코미디라는 점에서, <아이 러브 유>의 남자, <젊음의 행진>의 왕경태, <이블데드>의 스콧, <기발한 자살 여행>의 우상준, <펌프 보이즈>의 짐, 그리고 얼마 전 막을 내린 <점점>의 ‘오묘한’ 박사까지 인간적이어서 더 정이 가는 코미디 캐릭터를 도맡아온 그와 참 잘 어울리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던 정보는 오랜 기간 공연했다는 것과 재미있다는 점, 이 두 가지였다. 공연을 보기로 결정하고, 검색을 해보니 내가 뮤지컬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한창 방송 활동을 하고 있었던 2003년 즈음에 첫 공연이 올라가 그해의 베스트 연극 및 동아연극, 연극협회와 희곡작가협회에서 주는 각종 상을 받았고, 작년까지 21만 명 이상의 관객이 관람한 연극이었다. 궁금해졌다. 무엇이, 그리고 얼마나 재미있기에 그렇게 오랫동안 끊임없이 관객의 사랑을 받는 것일까. 일요일 낮임에도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관객으로 꽉 찬 객석을 보며 살짝 놀랐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은 아버지의 대를 이은 30년 세탁장이 강태국과 이웃 소시민들의 삶과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놓는다. 무대는 동네에 흔히 있을 만한 세탁소다. 세탁소라… 어느 동네를 가도 그곳은 왠지 허름해야 할 것 같고, 마냥 사람 좋은 웃음 짓는 아저씨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기계는 신식이 될지언정 온 벽과 천장엔 세탁을 마친 깨끗한 옷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세탁소의 풍경은 삼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오히려 상냥함으로 받아들여지는 요즘, 저마다 사연을 담고 걸려있는 옷들, 세탁물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 들락날락거리는 소리, 기계 돌아가는 소리, 다리미에서 치익칙 스팀을 내뿜는 정겨운 소리들로 사람과 사람 사이 끈끈한 정이 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강태국의 세탁소는 누군가에게는 40년 전 어머니가 맡겼던 세탁물을 찾아 희망을 찾게 되는 공간이며, 변변한 옷이 없던 무명배우에겐 꿈을 빌려주는 공간이다. 삶의 찌든 때를 씻어내는 세탁과 인생의 버거움과 근심을 해소하는 코미디는 서로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의 초반에 흐르던 음악 ‘La Vita e Bella’가 삽입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내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 냄새나는 코미디’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삽입곡이 연극의 초반과 마지막에 흐른다는 것은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과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같은 지향점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적인 코미디, 그 안엔 ‘선함’이 깔려있다. 그래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이제 코미디물은 줄일 때가 되지 않았냐고 묻지만, 아직까지는 코미디가 좋다. 나이가 들어도 아이처럼 해맑은 눈빛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코미디는 나의 삶이다. 1998년 시트콤으로 데뷔한 이래 계속 코미디물을 주로 해왔지만, 생각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코미디의 세상이 많은 것 같다. 이 장르는 끊임없이 공부를 많이 해야 하고, 그걸 무대 위에서 잘 다듬어 보여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종반에 태국의 세탁소에서 사건이 발생한다. 죽어가는 어머니의 ‘세탁…’이란 한마디에 엄청난 유산을 찾으러 한 가족이 몰려온다. 단서를 찾으면 유산의 절반을 준다는 말에 태국의 가족마저도 보물찾기에 나선다. 태국은 이들을 대형 세탁기에 넣고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세탁한다. 세탁 기계에서 나온 모든 사람들의 얼굴은 맑고 어린아이같이 순수하다. 모든 이의 마음이 모두 세탁되어 빨랫줄에 행복한 얼굴로 매달려 있는 마지막 장면은 태국의 꿈처럼 다가오는데, 이런 착하고 순수한 꿈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 작품이 오랜 기간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 데엔 바로 이런 선한 바람에 있지 않을까. 


세탁소 주인 강태국이 너무 반듯하여 20퍼센트의 인간적인 빈 구석이 아쉬웠던 공연이었지만, 내가 지향하고 있는 코미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곧 <올 슉 업>을 통해 어리바리한 바보가 아닌, 약간은 빈 구석이 있어 친근한 데니스가 되어 찾아 갈 테니 기대해주시길.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79호 2010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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