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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허난설헌-수월경화> 국립발레단 박슬기 [No.164]

글 |박보라 사진 |김영기 2017-06-05 6,224

<허난설헌-수월경화>

국립발레단 박슬기

부용화를 닮은 몸짓


사뿐사뿐. 사진 촬영을 마치고 인터뷰를 위해 카페로 향하는 박슬기의 발걸음을 보자, 떠오른 단어다. 벚꽃과 개나리가 핀 우면산 산길을 지나 그녀와 마주 앉자 도도하고 화려한 발레리나의 모습 대신 기분 좋은 웃음이 가득한 선한 얼굴이 보였다. 질문마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던 발레리나 박슬기. 그녀가 그리는 발레의 매력에 한 걸음 다가가 보자.





빛나는 인생의 가치


발레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그렇게 특별하지 않아요. (웃음) 언니가 있는데, 언니가 예술적인 끼나 재능이 있었거든요. (박슬기의 언니는 국립발레단에서 활동 중인 발레리나 박나리다.) 엄마가 ‘너도 같이 한번 가볼래?’ 이렇게 해서 시작했어요.


그렇게 발레를 시작했더라도, 오랜 시간 꾸준히 발레를 하게 된 원동력이 있을 것 같아요.

솔직하게 말하면, 열정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어요. 발레리나가 좋아서라든지 발레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아서 시작한 건 아니니까요. 언니를 따라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발레에 매료됐고 지금까지 쌓여 왔어요. 신기하게도 제가 부상을 입고 쉬거나 하루라도 발레를 안 하면 너무 힘들어요. 마음도, 몸도요! 매일매일 발레를 하니까 몰랐다가 다시 토슈즈를 신으면 정말 재미있고 좋은 거예요. 발레를 할 때마다 제가 살아 있음을 느끼고 제 인생의 가치를 깨닫죠. 저는 가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제겐 발레가 가장 가치 있는 일이죠. 


발레의 대중화가 이뤄졌다고 해도, 아직은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것 같아요. 발레에 더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팁을 주면요?

국립발레단은 갈라 프로그램이나 찾아가는 발레처럼 해설이 있는 발레 등의 많은 프로젝트를 준비해요. 두 시간이 넘는 공연을 갑자기 보려고 하면 부담되잖아요.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발레를 한번 접해 보는 걸 추천해요. 처음은 어려울 수 있지만, 확 빠지는 어느 순간이 있을 거예요. 또 요즘은 다이어트를 위해 발레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발레를 만난 분들은 발레를 많이 사랑하게 되시는 것 같아요. 자신이 직접 발레를 체험해 보니 무대에서의 몸짓이 더 대단해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취미 삼아 건강 삼아 발레를 만나면 정말 재미있을 거예요.


본인이 생각하는 발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발레리나로서는 매일 변화되는 신체요. 매일 제 몸에 신경을 쓰게 되는데 변하는 모습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우리 몸은 하루라도 신경을 안 쓰면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있거든요. 그래서 항상 신경을 써야만 해요. 혹독하게 트레이닝을 해야만 그만큼의 대가가 나와요. 아주 정직하죠. 그게 매력이에요. 또 관객들에게는 아름다운 몸짓을 알려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아름다움은 예쁨과 다르잖아요. 발레는 무용수들의 몸짓이나 선이 정말 아름다워요. 대중적인 뮤지컬이나 연극과는 또 다른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느끼실 수 있죠.


몸의 아름다움이라고 하니 유튜브에 업로드된 국립발레단 영상 중에 <우리의 언어는 발레다>라는 걸 봤어요. 가녀린 무용수의 모습만 상상하다가 상당히 파격적인 모습이어서 놀랐어요.

국립발레단의 홍보 영상을 찍고자 여러 무용수가 다양한 색깔을 표현한 영상이에요. 사실 무대는 굉장히 멀잖아요. 가까이에서 영상 촬영을 했기 때문에 신체를 더 꼼꼼하게 보여주게 된 것 같아요. 동작을 수행할 때 포괄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발끝이 어떻게 되고 배의 근육이라든지, 팔의 근육이라든지 무용수들의 몸을 더 잘 볼 수 있죠. 말 그대로 ‘몸의 언어’를 표현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꽃이 피는 순간

                     

강수진 단장 취임 이후 해외 진출이 더 활발해진 것 같아요. 벨기에 플랑드르 발레단에 초청되어서 <스파르타쿠스>를 공연했어요. 어땠나요?

처음에 <스파르타쿠스>를 공연하는데 유리 (그리가로비치) 선생님과 안무가 선생님들(안무보조 옥산나 츠베니츠카야, 루슬란 프로닌)이 오셨어요. 연습하면서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평가를 좋게 해주신 거죠. ‘이번에 우리가 잘 해냈어!’ 이렇게 끝난 줄 알았어요. (웃음) 그런데 벨기에에서 유리 선생님의 90세 생일을 맞아 <스파르타쿠스>를 공연하신다는 거예요. 볼쇼이 발레단을 비롯한 세계적인 발레단의 무용수들을 초청해서 만드는 공연이요. 그런데 거기에 저랑 (변)성완 씨를 기억하고 추천해주신 거예요. 그렇게 초청을 받아서 좋은 경험을 했죠.


해외에서 한국 발레리나로 공연한다는 일이 특별했을 것 같아요.

정말 그 무대에 왔던 게스트들은 제가 한국에서 동영상으로 찾아보고 그랬던 분들이었어요. 그런 분들과 함께 초청됐고 같은 무대에 선다는 거잖아요. 물론 성완 씨랑은 ‘좋은 경험을 한다는 마음으로 가자’고는 했지만, 한국 발레를 대표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부심을 가졌고, 한국 발레가 이 정도라는 걸 세계에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무엇보다 저희만의 색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각오가 컸어요.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허난설헌-수월경화>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허난설헌-수월경화>는 허난설헌이 자기의 죽음을 예언했던 시를 푼 작품이에요. 허난설헌이 주인공이라기보다는 그녀의 시 「감우(感遇)」와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을 표현하고 있죠. 그래서 허난설헌의 감정을 완전히 표출하기보다는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아요. 시에 나오는 난초, 바다, 새, 잎과 같은 것들을 움직임으로 표현했는데, 직접 보시면 감탄하실 거예요.


상당히 한국적인 작품인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점을 표현했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요?

일단 가야금 명장 황병기 선생님이 참여하세요. 한국의 가락들을 바탕으로 음악이 구성됐어요. 그리고 한국무용의 호흡이 잘 묻어나요. 발레는 가슴을 들고 꼿꼿이 세우는 자세가 기본이고 익숙한데 한국무용에서는 갑자기 몸을 누르는 등 다르거든요. 안무를 맡은 (강)효형 씨는 이런 한국적인 호흡을 몸짓에 담았고, 한국적인 모습을 잘 표현해 주기를 원하더라고요.


작품에서 특별히 애정이 가는 장면이 있나요?

처음에 허난설헌의 등장을 보여주는 움직임이 있어요. 그 장면에서 음악이나 몸짓이 너무 좋아요. 그리고 마음이 가장 쓰이는 장면은, 마지막에 허난설헌의 죽음을 암시하는 부용화가 지는 장면이 있는데, 떨어지는 부용화를 보면서 허난설헌이 체념하고 죽음을 받아들여요. 그 부분을 연습할수록 마음에 확 와 닿아요.


드라마가 강한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무대 위에서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해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도 좋고, 미쳐서 죽어가는 <지젤>의 지젤을 좋아하죠. 이렇게 무용수로서 한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고, 그 캐릭터의 드라마가 살아 있는 작품을 좋아해요.


올해 초 공연한 에서 직접 구성한 안무(‘Quartet of the soul’)를 선보였다고 들었어요. 어땠어요?

제대로 안무 작업을 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웃음) 초반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재미있었어요. 저는 무용수니까 안무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런 움직임이나 생각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미처 못했죠. 작업을 하다 보니 ‘어, 나한테 이런 움직임이 있었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몰랐던 저에 대해서 알아가는 계기도 됐죠. 좋은 경험이었어요.


그 경험을 토대로 무용수와 안무가 사이에서 차이점도 확실하게 느꼈을 것 같아요.

안무가는 자신이 만든 움직임을 무용수한테 입혀야 하잖아요. 그 움직임은 제가 가장 편하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몸짓이거든요. 그것을 다른 무용수한테 입히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제 색을 무용수들의 색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이 안무가로서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내가 하면 굉장히 쉽게 나오는 움직임이지만 남들에겐 되게 낯선 움직임이잖아요. 또 카운트나 정확한 몸짓들을 저 혼자만의 느낌이 아니라 남들에게 구체적으로 알려줘야 하는데, 그런 점도 힘들었어요.



좋은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지닐 자질이나 태도는 무엇이 있을까요?

점점 나이가 들면서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됐는데,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진중하게 임해야 한다고 봐요. 깊이 있게 말이에요. 관객에게 발레리나의 모든 걸 보여주기 위해서는 역할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해요. 그래야 무대 위에서 캐릭터를 잘 표현할 수 있어요. 동작 하나하나를 의미 있게 해야 내용이 잘 전달되거든요. 발레리나에게 제일 중요하고 빛나는 장소는 바로 무대 위잖아요. 또 저도 아직 늘 신경을 쓰는 부분인데, 부상을 정말 조심해야만 해요. 조금이라도 다치면 열심히 한 시간이 사라지고 말죠. 다시 재기하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무대에서 어떤 기분을 느끼나요?

살아 있음에 가장 가치를 느끼고 있는 순간이에요. 무대를 내려오면 그냥 박슬기라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무대 위에 있으면 제가 지닌 가장 큰 진가를 보여줄 수 있고, 제 안의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어요. 제가 가장 잘하는 것도 무대 위에서 보여줄 수 있죠. 그래서 그 순간은 제 가치가 가장 빛나는 것 같아요. 다른 어떤 때보다 행복을 느끼죠. 이렇게 제 모든 것을 쏟은 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만 같아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4호 2017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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