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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재규어의 눈빛 - 고궁뮤지컬 <대장금>의 김태훈 [No.80]

글 |배경희 사진 |김호근 2010-05-17 6,111


 

“어렸을 때 본 다큐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찰나 조명에 비쳐 그림자가 생겼는데, 그걸 보고 왜 ‘외로움’이 떠올랐는지. 외로움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어져 있는 거구나…” 아차, 어린 시절 이야기로 너무 진지한 분위기를 바꿔본다는 게 그만 공기를 더 무겁게 만들고 말았다. 순간, 고요한 한낮의 스튜디오에서 홀로 악보를 보고 있던 남자의 뒷모습이 겹쳐진다. 엄마와 단둘이 자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야 했던, 외로움의 정서가 배우의 길로 이끈 사내.


만약 그 사내, 김태훈이 꿈을 테마로 한 캐비닛 토크에 출연한다면 단언컨대 캐비닛 속에 그가 넣을 물건은 학예회 사진과 비디오테이프, 이 두 개일 것이다. “엄마의 바람대로 조종사, 의사, 판사, ‘사’자로 끝나는 직업을 희망했던” 소년의 꿈을 바꾼 것은 온 사람이 나를 주목할 때의 짜릿함을 알게 해준 초등학교 졸업 학예회였고, 예대 졸업 이후 갈피를 잡지 못해 “이곳저곳을 들쑤셨던” 방황하는 마음을 붙잡아준 것은 예고 시절의 공연 비디오테이프였다. “진짜 못하는 애들 열한 명이서 정말 열심히 연기하고 노래하는데 그걸 보면서 마음이 쿵. 아, 내가 저거 하던 애지. 왜 잊고 있었을까, 왜 방황했을까, 그날 그 테이프를 보면서 엄청 울었어요.”


스물일곱, “한 우물만 제대로 파자”는 각오로, 시작부터 비중있는 배역을 맡아 줄곧 직진으로 내달렸고, 뭐든 10년은 해봐야 한다는 ‘10년의 힘’ 이제 막 그 절반을 넘겼다. 김태훈은 지난 시간에 대해 “운이 좋았어요”라고 말하지만 그동안 그가 쌓아온 주목할 만한 커리어-<노트르담 드 파리>, <자나 돈트>, <바람의 나라>-를 보면 분명 운만으로 이뤄낼 결과는 아니다. 그리고 “이제 정말 내가 뮤지컬을 하고 있는 것 같고,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은 것 같다”고 말한다. 지금의 상태를 “푹신푹신한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표현하는 건 그래서다.


어떤 새싹은 따뜻한 햇볕 속에 자라나고, 어떤 새싹은 모질게 내리는 빗속에서 훌쩍 자라난다. “남경읍 선생님이 절 채찍질하셨던 방법은 딱 하나, 한마디면 됐어요. 태훈이가 그걸 못해? 그럼 그 다음날은 어떻게든 해가야 됐어요, 무조건. 지금도 그래요.” 모든 것에 한계란 없다고 믿는 이 배우가 객관적, 주관적 지표에 따라 매번 평가되는 냉정한 무대에서 그 한계를 느끼게 되는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런 날이 온다 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가 품고 있는 것은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씨앗이고, 그는 높고 큰 나무로 성장하는 법 역시 알고 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0호 2010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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