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또 다른 나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스모크>, 드라마 <킬미힐미>, <하이드 지킬, 나> 등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해리성 정체 장애를 다룬 이야기라는 것이다. 해리성 정체 장애는 상당히 매력적인 소재로, 오랜 시간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내 안의 또 다른 나의 존재, 해리성 정체 장애를 살펴본다.

또 다른 나를 발견하다 
해리성 정체 장애는 다중 인격 장애라고도 불린다. 예전에는 빙의라고 칭하기도 했다. 약 100년 전부터 해리성 정체 장애가 알려졌지만, 1980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됐다. 가장 간단한 형태는 두 가지 종류의 인격이 나타나는 이중인격이고, 세 가지부터 수십 개까지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존재한다. 해리성 정체 장애는 실제로 한 사람 안에 여러 개의 인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내부에서 오랫동안 형성된 정신 상태의 일부분이 일시적으로 그 사람의 전체를 조종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다중 인격 장애라는 병명을 1994년 해리성 정체 장애로 변경했다.

해리성 정체 장애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주로 유년 시절에 받은 육체적, 성적 학대가 많다. 그 외에도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 끔찍한 사고의 목격 등의 정신적 외상이 원인으로 알려졌다. 환자의 대부분이 어린 시절 근친상간이나 학대를 받은 기억이 있는데, 심한 학대나 정신적 외상의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또는 대면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피하고자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추측된다. 가해자의 폭력적인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닮기 때문에, 대부분의 환자는 분노가 많은 성격이다.

특정한 인격이 그 사람의 마음을 장악할 동안 경험한 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며, 인격의 존재도 알지 못한다. 여러 성격 중 한두 인격이 다른 인격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각각의 인격은 서로 다른 취향과 나이,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드물게는 환자가 전혀 모르는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해리성 정체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들은 자신의 증세를 감추려고 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의 증세를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오랜 치료 과정에서 여러 진단이 내려진다. 해리성 정체 장애로 확진되기까지는 평균 7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치료법으로는 최면이 대표적이다. 최면을 통해 환자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격들을 불러내고 한 인격이 다른 인격을 인지하게 해서 여러 인격 사이의 의사소통을 이뤄내 부정적인 인격의 파괴적 요소들을 조절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치료를 통해 하나의 인격으로 융합시킨다.

스물네 명의 자신을 발견하다  
해리성 정체 장애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인물은 바로 빌리 밀리건(Billy Milligan)으로 알려진 윌리엄 스탠리 밀리건이다. 1955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난 그는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도박, 음주, 우울증에 빠져 있었고 그가 네 살이 되던 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자살했다. 어머니는 그 후 재혼한다. 빌리 밀리건에 관한 연구서를 쓴 대니얼 키스는 그가  5세 때 최초로 두 번째 인격인 크리스틴이 발견됐지만, 그때에도 이미 세 명의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후 두 명의 인격을 더 만든 빌리 밀리건은 9세 때 양아버지에게 성학대를 당하면서부터 24개의 인격을 가지게 됐다. 처음에는 그에게 10개의 인격만이 발견됐다고 알려졌지만, 추가로 14개의 인격이 발견됐다. 각기 다른 성별과 나이, 성격을 가진 인격에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아서, 레이건 바다스코비니치, 앨런, 필립, 에이프릴 등이다. 빌리 밀리건은 1975년 강간 및 무장강도죄로 교도소에 수감됐고, 1977년에 석방됐지만 그해 10월 여대생들을 납치, 성폭행하고 강도 행각을 벌이다가 체포된다. 그는 수사 과정 중 10번째 인격인 에이들라나가 벌인 범죄라고 주장했다. 즉 그에게는 특정한 범죄를 저지르는 인격이 따로 있다고 밝힌 것. 피해자 중 하나는 납치된 당시 그가 아주 조용한 3세 여자아이처럼 행동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기소된 빌리 밀리건은 변호사에 의해 심리 검사를 받게 된다. 월리스 드리스콜 박사는 빌리 밀리건에게 조현병 진단을 내린다. 재판부는 그가 형량을 낮추기 위해 연기를 한다고 생각해, 다른 주의 여러 병원을 돌며 검사를 했지만 의료기관은 최종적으로 그가 24개의 다중 인격을 가진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심지어 다양한 검사 과정에서 각 인격이 가진 놀라운 능력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결국 빌리 밀리건은 1978년 무죄 선고를 받고 정신병원에서 10년 요양한 후 사회로 나왔다. 그는 단편영화를 찍는다고 알려졌지만 결과물은 공개되지 않았다. 빌리 밀리건은 2014년 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

실화를 통해 발견하다     
다양한 장르에서 해리성 정체 장애 소재를 볼 수 있는데, 특히 믿기지 않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는 대중의 흥미를 자극한다. 1957년에 개봉한 영화 <이브의 세 얼굴>은 1950년대 미국 조지아 대학에서 작성된 실제 보고서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폴 뉴먼의 아내로 유명한 배우 조앤 우드워드가 세 가지 인격을 가지고 있는 이브로 출연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브의 세 얼굴>은 조용하고 내성적인 주부이자 엄마인 이브 화이트, 활달하고 자유분방하고 책임감 없는 이브 블랙 그리고 지적이고 친절한 제인의 인격을 가진 주인공 이브의 이야기다. 어느 날 이브는 특정한 순간의 기억이 사라져 병원을 찾고, 병원에서 이브 블랙의 존재를 알아차린다. 상담 중 이브에게 새로운 인격이 순식간에 나타나는 것을 발견한 의사들은 곧 그녀가 해리성 정체 장애 환자라고 생각한다. 이브 화이트로, 이브 블랙으로 반복되는 생활을 하던 중 이브는 딸과 헤어지고 심지어 남편과도 이혼한다. 치료를 반복하던 이브에게 제인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녀가 해리성 정체 장애를 앓게 된 이유도 발견된다. 바로 어린 시절 이브는 강제로 죽음을 접하게 된 경험이 있었고 이런 끔찍한 기억이 다중 인격의 형태로 나타난 것. 마침내 그녀는 치료를 통해 이브 화이트와 이브 블랙을 몰아내고, 여유롭고 안정적인 인격인 제인만 남은 상태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5호 2017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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